2024년 11월 21일 묵상 본문 : 요한계시록 2장 12절 - 17절 - 세상의 지속적인 유혹에서 벗어나 복음을 통해 생명의 은혜를 누리고 전하는 자로 살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이제는 쌀쌀한 아침이라 이불속에서 나오는 것이 힘들어지는 계절이네요.
육신의 편안함에 익숙한 자가 아닌 주의 품에서 안식하는 것에 익숙한 자 되기를 원합니다.
마음을 주께로 향하게 하시고 주의 보혈로 정결함을 얻어 주의 품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을 보혈로 씻으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 앞에 서게 하옵소서.
주시는 은혜를 힘입어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자로 서기를 소망합니다.
복음에 연합되어 살도록 붙드시고 거룩한 백성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연약함 가운데 있는 지체들을 기억해 주시고 영과 육의 강건함을 얻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주의 음성을 따라 주의 뜻에 순종하는 자 되길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과 주해
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 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버가모는 양피지라는 페르가몬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도시로 버가모에는 20만장의 도서를 갖춘 도서관이 있었으며 서머나로부터 해안을 따라 북쪽 약 104km 지점의 내륙도시였다. 이곳은 로마와 아시아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였으며 상업과 무역이 발달해 부요한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버가모도 각종 신전이 건축되며 우상숭배와 황제숭배가 왕성했던 도시였는데 어떻게 교회가 세워졌는지를 알려지지 않았으며 교회의 역사가 짧고 성도도 많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요한은 이러한 교회에 그리스도를 좌우에 날 선 검을 가진 분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가 가진 불가항력적 심판의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우상숭배에 대한 경각심을 보여주고 있다.
13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은 버가모가 어떤 도시인지 아시고 그곳이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임을 선언하신다. 이는 우상숭배가 만연하여 사단이 왕노릇하는 문화가 팽배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순교하는 일이 있었지만 그 일로 인해 버가모 교회 성도들이 믿음을 버리지 않았음을 칭찬하신다. 안디바는 초대교회 전승에 의하면 버가모의 감독으로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 황제숭배를 거부하다가 체포당해 불에 달군 놋쇠 황소 위에서 불타 죽었다고 전해진다.
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버가모 교회 성도들에게 2가지 책망할 것이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발람은 민수기 31장에 등장하는 인물로 모압 왕 발락을 찾아가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숭배하도록 만들어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한 자였다. 그와 마찬가지로 성도들에게 올무를 놓아 우상숭배에 동참하게 만드는 자들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버가모에는 안디바와 같은 비타협적 성도들과 발람의 교훈에 동조하는 타협적 성도들이 있었다. 이는 버가모 성도들 가운데 우상숭배에 동참하여 제물을 먹고 행음한 일이 있음을 보여준다.
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이 교회의 영적 타락을 이끄는 니골라당임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들은 교회의 신앙을 왜곡하는 이단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예수님은 버가모 교회를 향해 회개할 것을 명령하시는데 그렇지 않으면 속히 가서 싸우시겠다고 선언하신다. 속히는 임박한 종말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으며 입의 검은 12절의 날선 검을 가지고 싸우는 전사의 모습으로 심판을 행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로 역사속에서 발람은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가운데 백성들의 칼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수13:22) 이는 심판의 엄중함과 반드시 실행되는 것임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귀 있는 자에 대한 내용은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임을 보여주는 문구이다. 감추었던 만나는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영적 양식, 영생을 상징하며 흰 돌은 만나와 흡사한 모양 때문에 차용된 상징으로 새 이름의 기록은 전투에서 승리한 교회에 주어지는 새 생명의 축복을 상징한다.
나의 묵상
버가모 교회의 모습은 우상을 숭배하며 육체의 만족을 따라 살아가는 세상에 세워져 있는 교회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자기만족과 육체적 즐거움으로 살도록 유혹하는 세상에서 주의 품에서 안식을 누리고 주와 교제하는 삶을 사는 것은 치열한 영적 전투의 상황을 가져 온다.
그래서 세상은 사탄의 권좌가 위치해 있는 것처럼 성도들을 유혹하고 핍박하며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세력을 과시한다.
이런 상황에서 안디바가 순교를 당하는 것처럼 성도들도 세상에서 자기부인의 과정을 거치기도 하지만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처럼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있음을 보게 된다.
믿음을 지키고 자기를 부인하여 세상과 구별된 가치와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들은 세상의 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하나님 백성의 사명을 감당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본분을 망각하고 세상의 흐름에 동조하며 세상이 추구하는 것을 동일하게 추구하면서 우상을 섬기듯 세상을 향유하는 자들도 너무나 많음을 보게 된다.
결국 버가모 교회를 향한 주님의 메시지는 세상의 유혹 속에 살아가는 성도들을 향한 메시지이며 오늘날 나 자신을 비롯한 모든 성도들을 향한 메시지임을 고백하게 된다.
과거의 모습처럼 현재에는 실제로 우상에게 절하고 우상의 음식을 먹는 자들은 많지 않지만 세상의 것을 향유하며 즐기고 거기에서 신앙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모습은 만연하다.
그래서 주님을 섬기지만 물질적 욕심으로 자신의 배를 채우고 세상이 부러워하는 부귀권세를 얻고자 기도하는 모습은 오늘날 교회에 만연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주님은 육신의 만족을 위해 자신을 왕으로 세우려는 자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요6:47~51,63)
주의 말씀은 땅의 것을 추구하도록 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알고 하나님을 아는 생명의 은혜를 누리는 것에 목적을 둔 것임을 보여준다.
이는 교회가 땅의 것에 목적을 두고 살아가는 자들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생명의 은혜에 목적을 두고 그것을 얻고자 힘쓰며 살아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의 뜻을 따라 하늘의 생명을 구하며 사는 자들이 많지 않음을 느낀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러했으며 현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에도 그 모습은 동일함을 보게 된다.
그래서 영생의 말씀, 복음을 통해 생명을 알고 누리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고백하게 되며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주와 교제하는 삶임을 아는 것이 축임을 고배하게 된다.
주님은 주와 교제하는 삶을 통해 얻게 되는 열매로 감추었던 만나를 얻게 하신다고 하셨다.
이 만나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을 통해 얻게 되는 생명의 떡이며 영생의 삶을 살도록 만드는 힘과 능력이다.
육신의 눈과 지성으로는 깨닫지 못하는 것이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예수님을 떠나는 자가 되고 예수님을 거부하다가 예수님을 죽이는 자리까지 나아가는 자가 된다.
이 자리에서 돌이키는 방법은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회개하는 것이다.
회개는 주의 음성이 들리는 자에게 나타나는 태도이며 주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는 자에게 가능한 것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복음을 선포하는 자를 통해 주께 나아가 생명의 은혜를 경험하는 삶이 복된 삶이며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얻고 누리는 자가 복을 누리는 자임을 고백하게 하신다.
오늘도 미련한 자에게 주의 음성을 들려주시고 다시 주의 품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복이 참으로 큼을 고백하고 그 복을 날마다 누리고 영생의 은혜를 전하는 자로 설 수 있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버가모 교회를 향한 메시지는 저를 향한 메시지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세상의 가치를 거부하는 모습도 있지만 또한 세상의 것을 향유하며 세상의 교훈을 따라 살고자 하는 육신의 본성의 모습도 여전히 뿌리박혀 있음을 봅니다.
세상과 타협하며 살고자하는 본성을 거부하는 능력은 오직 주께 연합될 때만 나타납니다.
날마다 주 앞에 서기를 힘쓰게 하시고 주께 연합되어 생명을 누리는 자로 살게 하옵소서.
죄와 허물로 세상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회개하오니 다시 주 앞에서 누리는 기쁨과 소망으로 마음을 채우고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주의 백성 되게 하옵소서.
갈수록 세상은 발람의 모습처럼 성도를 유혹할 것을 깔아 놓고 걸려들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것으로 유혹하며 육신의 쾌락과 즐거움으로 유혹합니다.
깨어 있는 마음을 주시고 주 안에서 누리는 생명의 은혜에 익숙하여 땅의 것을 거부하는 태도를 견지할 수 있도록 붙잡아 주옵소서.
오늘도 주의 은혜로 살아가는 자임을 고백하며 그 은혜를 지속적으로 누리도록 도와주옵소서.
함께 하시고 날마다 생명의 은혜로 풍성케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