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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2일(금)
* 시작 기도
(욘 1:17)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3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
주님...
요나는 니느웨가 잘 되는 꼴을 볼 수 없어서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고 그 반대편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욥바항구에 도착한 요나는 마침 자기의 생각대로 다시스 행 배가 있어서 그 배를 타고 갑니다.
그런데 그 때부터 하나님께서 일을 하십니다.
거역한 요나를 어떻게 해서든지 니느웨로 보내기 위한 하나님의 행동하심입니다.
결국 선원들이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자 흉용하던 바다가 잔잔해집니다.
그런데 바다에 던져진 요나를 하나님께서는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시고 그의 뱃속에 3일 동안 있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기 같지만 결국 예수님 이야기임을 우리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마 12:40)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속에 있으리라.
요나의 큰 물고기 뱃속에서의 3일은 곧 주님이 땅속에서 장사된 3일의 무덤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요나와 같이 우리 주님의 십자가와 무덤에 함께 연합하여 죽고 장사되어야 함을 그대로 말씀하는 것임을 압니다.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습니다.
그리하여 주님과 연합한 자로 서게 하소서.
주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계 2:18-29
제목 :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18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1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22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주리라.
24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25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별을 주리라.
29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나의 묵상
계시록은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계시하신 말씀이다.
이 계시의 말씀은 천사들을 통하여 요한에게 전해졌고 요한은 자기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 그리고 장차 될 일을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서신으로 기록한다.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교회에 이어 네 번째 교회인 두아디라 교회에 편지를 쓴다.
불꽃 같은 눈과 빛난 주석과 같은 발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는 두아디라 교회의 사역과 사랑과 믿음 그리고 섬김과 인내를 모두 알고 계신다.
더구나 두아디라 교회는 나중 행위가 처음 행위보다 나은 교회라고 칭찬하신다.
그런데 이 교회에 책망할 것이 있는데 거짓 여선지자 이세벨을 용납하는 문제이다.
이세벨이 주의 종들을 미혹하여 행음과 우상 제물을 먹는 죄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 거짓 여선지자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지만 회개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주님은 거짓 여선지자에게 침상에 던져지는 심판을 내리실 것이며 이세벨과 간음한 자들 역시 회개치 않으면 큰 환난을 내리실 것이다.
또한 거짓 여선지자의 자녀들을 죽이실 것이며 이로써 주께서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모든 교회로 하여금 알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으실 것이다.
이어서 주님은 두아디라 교회의 선한 성도들을 향하여 격려와 권면을 아끼지 않으신다.
두아디라 교회에 이세벨의 교훈을 따르지 않고 사탄의 은밀한 미혹에 빠지지 않은 자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달리 지적할 것이 없으며 다만 그들이 주의 재림 때까지 가지고 있는 바 정결한 믿음을 끝까지 지킬 것을 권면하신다.
이기는 자 곧 끝까지 주의 뜻을 따라 행하는 자에게는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실 것이다.
또한 그런 성도는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철장 권세로 만국을 다스리게 될 것이다.
이기는 성도에게는 새벽별 곧 주님 자신을 주실 것을 약속하신다.
들을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것이다.
두아디라는 현재 터키의 ‘아키사’라 하는 곳에 해당하며 당시에는 상업과 군사도시였다.
특별히 두아디라는 모직물이 유명한데, 바울과 함께 빌립보 교회의 개척자였던 루디아가 바로 이곳 두아디라 출신의 옷감 장사였다.
게다가 상업이 활발하였으므로 그로 인해서 사람들은 여러 모임에 참석하면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전혀 거리낌 없이 행하였다.
따라서 두아디라에 사는 성도들은 이러한 세상 풍습과 타협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려면 자신들의 생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계시록에서 증거하는 성도의 영적싸움이란 이와 같이 생존의 문제와 결부된 싸움이다.
나아가 이는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로 살기 위한 처절한 삶의 몸부림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승리는 죽임 당하신 어린 양처럼 죽기를 각오하는 순교자의 각오를 통해서 얻는 것이다.
주께서는 불꽃 같은 눈으로 그들의 모든 믿음의 행위를 감찰하시고 빛난 주석 같은 발로 심판하시는 분이시다.
그 주님께서 그들의 행위와 사랑과 믿음 그리고 섬김과 인내가 처음보다 훨씬 많아졌음을 칭찬하신다.
특히 이들은 에베소 교회가 버린 처음 사랑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버가모 교회가 용납했던 니골라 당을 용납하고 있다.
이를 보면 지상 교회는 완전한 교회가 있을 수 없다.
한 쪽이 잘 하면 다른 한 쪽은 결점이 나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것은 바로 그 교회 구성원들인 성도들의 연약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이 용납한 니골라당의 가르침은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고 음행을 하게 하는 것이다.
두아디라 교회 안에는 니골라 당의 교훈을 따르는 이세벨이 있었다.
이 여자는 거짓 선지자인데 버젓이 지도자로 행세를 하는 것이다.
이세벨로 불리는 이 거짓 여선지자는 특히 주의 종들을 타락시킨다.
불꽃같은 눈과 빛난 주석 같은 발을 가지신 주님께서 이세벨과 그 무리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신다.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이세벨을 병상에 던질 것이며 그녀에게 속한 무리들 역시 그리할 것이다.
이를 통해서 모든 교회는 주께서 사람의 마음과 뜻을 살피시는 이심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주님은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으시는 분이시다.
여기서 말하는 ‘행위’란 도덕적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제의적인 의미를 가진다.
이는 우상의 제물을 먹든지, 아니면 주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을 말한다.
한편 니골라당의 교훈을 받지 않는 성도들을 향하여 주님께서는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라고 하신다.
이는 이들을 제외한 이세벨과 그 무리들은 ‘사탄의 깊은 것을 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란 말이다.
(24)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원래 ‘깊은 것’이란 하나님의 깊은 것으로서 창세전 약속하신 비밀이다.
(딛 1: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전(창세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고전 2:6-7)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전(창세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그런데 당시 기독교 이단 중에 영지주의는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깊은 것을 안다고 하면서 성도들을 미혹하였다.
이들이 말하는 ‘사탄의 깊은 것’이란 하나님의 깊은 것을 인정하지 않는 표현으로서 ‘하나님’을 ‘사탄’으로 대치시킨 것이다.
이세벨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은 ‘사탄의 깊은 것’을 ‘더 깊은 진리’라고 말한다.
NLT성경의 번역본은 이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24절) 이세벨과 그 추종자들은 그 가르침을 ‘더 깊은 진리들’로 부르고 있으나, 실상은 ‘사탄의 깊은 비밀’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성도들에게 더 깊은 진리나 더 특별한 영적 체험을 하게 해준다고 하면서 믿음을 저버리게 만드는 거짓 선지자들이었다.
결국 이세벨의 가르침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 곧 우상의 제물을 통해서 음행에 빠지게 하는 세상적 재미(fun)인 것이다.
하나님을 존재로 만나는 하늘의 기쁨(Joy) 외에 이 땅에서 즐기는 모든 즐거움은 세상의 재미(fun)를 누리는 음행에 속한다.
이세벨의 가르침은 우상의 제물을 거리낌 없이 먹게 하는데 이는 세상 풍조를 따르며 육신적 방탕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이를 가리켜 성경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고 말씀한다.
(요일 2:15-17)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지금 이 시대는 말세 중에서도 말세 곧 말세지말(末世之末)이라고 한다.
사도 요한 당시에도 적그리스도가 올 것이라는 말이 있었다.
또한 그 적그리스도가 일어났기에 마지막 때였다.
(요일 2:18)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그런데 지금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는 때이다.
이렇듯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는 ‘더 깊은 진리’로 위장한 거짓 가르침을 전하는 자와 그 무리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만약 아직 그 심판이 임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자비의 시간임에 틀림없다(21절).
그러나 이세벨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사탄의 깊은 것 곧 그들의 주장대로 ‘더 깊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칭찬하신다.
주님은 그들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으신다.
다만 지금 가고 있는 길을 묵묵히 걸어갈 것을 권고하신다.
(25절, 쉬운성경) 내가 갈 때까지 지금 가고 있는 길을 꾸준히 걸어가거라.
왜냐하면 사탄의 깊은 것이 아무리 깊고 크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깊은 것 곧 하늘지성소와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결코 육신의 정욕이나 안목의 정욕 또는 이생의 자랑에 있지 않다.
그것은 오직 영원한 생명에 있으며 이것이 또한 하나님의 뜻이다.
하지만 오늘날 기독교의 현실은 영원한 생명에 붙들려 있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외적인 것 곧 말초적인 감각을 터치하여 그들의 감성을 만져주거나 그들의 기분을 만족시켜주는 일에 매진하고 있는 것을 본다.
이는 다름 아닌 내가 바로 그런 자였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성도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어서 그들의 기분을 UP되게 하며, 그들이 단층의 목마름이라도 해갈하도록 해 줄 것인가에 집중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해도 그들 안에 영원한 생명이 찾아오지 않는다.
영원한 생명 곧 하나님의 뜻인 영생은 복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건 곧 십자가의 죽음과 무덤에 장사됨 그리고 그리스도와 연합한 상태에서 얻는 새 생명이다.
날마다 주님의 말씀으로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나도 죽고, 주님과 함께 장사되는 그 무덤에서 생명을 얻는 것을 말한다.
이런 주님과의 복음의 교제가 없이는, 생명은 저 먼 나라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에 영생이 없고 하늘로부터 오는 참된 기쁨(Joy)이 없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종교가 되고 만다.
지금 가슴 아픈 현실은 영생이요 생명 그 자체인 기독교가 세상에 수많은 종교의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하늘의 진리를 선포해서 이 땅에서도 하늘의 기쁨을 누리며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야 할 기독교가 아니던가?
그런데 땅의 것에 천착하여 땅의 것을 말하며 땅의 것만 구하는 좀 더 멋지고 고상한 기독교 종교가 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바로 그런 자의 중심에 서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나는 죽어 마땅하며 죽기에 합당한 자이나, 주님께서 나를 심판하셔서 그 심판을 통하여 회개할 기회를 주셨고 복음을 알게 하시어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셨다.
그 복음이 나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였으며 그 영생은 먼 별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오늘 나에게 주시는 영원한 현재의 말씀임을 날마다 깨닫는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는 기독교인이자 목사이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였고 내 뜻이 하나님의 뜻인 양 착각하면서 살았던 자였습니다.
내가 죄인이요 죄인 중에 괴수임을 고백합니다.
성도들을 영생으로 인도해야 하는 목사임에도 그들을 영생은커녕 땅에 속한 것에 매이도록 했던 나의 잘못은 뭐라 말을 해도 할 말이 없어서 그저 두 손으로 입을 가릴 뿐입니다.
이런 죄인을 주님은 용납하여 주셨고 또한 주의 자녀로 삼아주셨사오니 내게 주신 이 생명은 오직 주님의 것입니다.
이제 내게 주신 아들의 생명을 복음을 통하여 다른 이들에게도 전하기 원하오니 나를 사용하여 주소서.
내가 있는 곳 어디서든지 이 입술이 복음의 나팔이 되게 하시고 오직 생명으로 인도하는 샘물이 되게 하옵소서.
주변에 육신의 연약함으로 고통 가운데 있는 이들이 많이 있나이다.
이들이 단지 육신의 질고만 보는 이들이 아니라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고 날마다 존재로 오신 그리스도를 말씀을 통하여 만나게 하시고 그 나라의 기쁨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