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인가 아내의 생일날이었다. 대한민국의 50대 남자가 대부분 그러하듯이 나도 아내에게
살가운 표현을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그래도 생일인데 뭔가 표현은 해야 할 것 같아 전
화를 했는데 생일 얘기 하다가 할 말을 못 찾고는 괜히 " 지구에 온 의미를 생각해보시오."
라는 말을 했다. 교수 아니랄까봐 아내에게까지 생일을 맞아 좀 더 의미 있는 삶을 살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 아닌가. 스스로도 뜬금없는 얘기를 했다고 생각되었지만 이미 말은 떠난
다음이었고 아내의 반응도 뜨악했다.
이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그 다음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당신이 함께 지구에
와줘서 고마워." 라고 말했다면 아내도 기뻤을 터인데. 이런 생각에 이르자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즉시 아내에게 전화를 하였다. 아내는 출강 하는 대학의 강의를 마치고 식당에서
밥을 덜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어제 전화해서 말을 잘못 한 것 같아."
"왜?"
"이 말을 하려고 했던 것이 잘못 나온 것 같아."
"어떤?"
"당신이 함께 지구에 와줘서 고맙다고."
전화 수화기를 타고 아내가 크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겸연쩍게 그러나 크게 웃었다.
적어도 아내가 지구에 온 중요한 의미 하나는 분명해진 것 아닌가!
크게 웃고 나더니 아내가 말했다.
"가슴이 확 뚫리네, 어제 지구에 온 의미를 생각해 보라고 했을 때는 가슴이 꽉 막히더니 지금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확 풀리네."
나 역시 마음이 확 풀리며 기분이 좋았다. 개그맨이 유머를 던졌을 때 객석의 반응이 빵 터졌을
때도 이렇게 기분 좋지는 못할 것이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말뿐만 아니라 작은 행동에서도 우리는 감동을
받을 수 있고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의 삶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관계에서 고통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관계는 행복의 중요한 원천이다. 관계를 행복하게 해주는
비결의 하나는 바로 친절일 것이다..
덕성여대 심리학과 교수 김정호님의 글에서...
첫댓글 다운 표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