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13년
<개황>
-일제가 한일 합방의 전초 작업으로 1908년 9월 1일부터 10월 말까지 두 달에 걸쳐
호남 일대 및 그 외각에 산재한 의병들의 뿌리를 뽑고져 “남한대토벌작전”을 펼쳤다
이기간 동안 일본군에게 희생된 의병 1만6,000 여명, 부상자는 3만 6,000명 이르렀고
수많은 의병 근거지들이 방화로 소실되었다
“남한 대토벌작전"후 이제는 더 이상 의병이 없는 줄 알았지만 한일 합병 후에도
의병들의 의거가 줄기차게 일어나 일제 군경을 괴롭혔다
-고종의 밀조(密詔)를 받은 호남의 임병찬 의병장이 1912년에 섣달에 회문산 기슭에다
독립의군부를 조직 했다
그는 191 3년 9월에는 서울에 올라와 일본 총리대신 에게 국권 반환 요구서를 보냈다
<정치,행정>
-안창호(安昌浩)는 미국 샌프란 시스코에서 흥사단을, 박용만(朴容萬)은 미국 네부라스카 주에서
최초의 미주 유학생회를, 이동휘(李東輝)는 간도에 항일단체 한교동사회(韓僑董事會)를 조직하여
장래의 국권 회복을 꾀하였다
신민회 사건으로 신민회는 해체 위기를 맞았지만 많은 인사들이 지하로 잠적 하거나 해외로 망명해
해외 독립기지를 세우는데 이바지 하였다
중국 정부는 만주에 이주한 한국인의 토지 소유및 조차(祖借)를 방해 했고 봉촌도독(都督)은
개방지역 밖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에게 귀화나 퇴거를 강요하여 동포들은 이중의 고난을 격었다
이에 이회영, 이상룡 등 한인 지도자들이 나서서 위안 스키야에게 청원하여 동삼성총독으로부터
토지 매입권이나 임치권, 거주권 까지 얻을수 있었다
*1.5 이강덕등 국권 회복을 위한 비밀 단체를 조직하여 경기, 충청 일대에서군자금 모집중에 체포됨
*2.21 평안도 지방 항일 운동과 차병수, 이원찬등 12명이 평양 지법에서 징역, 15년- 7년선고 받음
*3.30 신민회 사건에 대한 공소심이 경성 복심원에서 ?림 ,윤치호, 양기탁, 이승훈, 안태국
임치정은 징역 6년, 옥관비은 5년, 기타 99명은 무죄 선고
*4.2 전 평리원 수반 판사 김제순, 독립운동을 하고져 일본에 건너감(독립 의군부 사건)
*4.13 중국 정부 봉천(奉天)에 이주한 한인에게 토지소유 및 조차 방해
*4월 봉천도독 개방지역 밖에 거주 하는 한국인들에게 귀화나 퇴거를 강요
-(5월 봉천성 의회, 한인에 대한 토지 매매 금지안 가결)
*5.13 안창호 미국 센프란시스코에서 흥사단(興士團) 조직
*5.21 의병장 노병직, 독립군 자금 모금 중 체포되어 지구지법에서 징역 10년 선고 받음
*8.13 독립 의군부 사건의 피고, 김재순 등4명 ,경성 지검에서 징역 6-12년 선고 받음
*9.3 임병찬, 이인순,등 서울에 독립의군 서울중안 순무 총장 설치 일본 총리 대신에게 국권 반환 요구서 제출
*11. 이동휘 간도에 항일 단체 한교동 사회(韓 僑同 事會)조직
*12.21 호남 창의대장 이석용 , 임실군에서 체포
*12.29 도의 유치 ,관활구역 및 부(府)군의 명칭, 위치 행정구역 제정
<사회,경제>
-서울 거리에는 해마다 전차 선로가 늘어났다 서울위 전차는 1899년 미국인 콜브란에 의해
청량리-서대문선이 가설됨으로써 운행되기 시작 하였다
1912년 을지로선 왕십리까지 완공, 운행 되었다 운행 초기에는 이를 타기 위해 시골 각지에서
무리져 상경하는 사람이 속출 했으며, 심지어 생업까지 미룬 채 하루 종일 전차만 타는 사람도 있었다
경부선 급행 열차에 침대차가 연결 운행 되었다
충독부 에서는 역둔토지 분령을 공표하여 일본인 이민자에게 특혜로 토지대여 우선권을 주었다
*1.15 이완용, 조중웅, 등 조선 권업회조직
*1.31 관부 연락선 고려마루 (高麗丸)취항
*2.3 경성 우편국에 공전식 시외 교환기 설치 ,서울 수도 사용가구 1만 7950호
*4.2 조선은행 도교지점 설치
*4.5 총독부 판사 검사 임용령 개정, 사법 관시보제 창설
*4.19 대한 부인회 , 하와이에서 조직 됨(회장 황마리아)
*4월 말 원구단에 철도호텔 (현 조선 호텔자리)착공
*5.1 경부선 급행열차에 침대차 운행 개시
*5.21 충남 예산에 호서은행 설립
*6.4 박용만등미국 네브라스카 주에서 최초의 유학생회 조직
*6.10 조선 철도,시베리아 경유 유럽 주요 도시 사이에 여객 수하물의 연락 운수 개시
*7.10 박영효, 유길준, 송병준 등 조선 무역 주식회사 창립
*8.15 지세 징수에 에 관한 건 공표
*9.3 을지로 -뚝섬 간 전자 괘도 공사 착공
*9월 광릉에 영업시함장 설립
*10.19 역둔토 특별 처분령 공표 (일본 이민자에게 토지 대여에 우선권을 줌)
*11.8 경신학교 학생 108명 학감 배척 동맹 휴학
*12.15 한간철교 복선화 완공
*12.27 일한 와전(日韓瓦電), 광화문-왕십리 -진팔리 간 전차운행 개시
<문화 생활>
-1894년 갑오개혁으로 봉건 사회가 무너진지 20년이 지났지만, 조선 사회 곳곳은 여전히
남존여비라는 인습에서 헤어나지 못해 여성의 사회 참여가 요원 했다
배화 학당 여학생들이 우산으로 얼굴을 가리고 소풍을 갈 정도로 남여 평등의 골이 깊었다
한용운은 불교 유신론을 통해 불교계의 사상과 제도개혁을 설파 하였다
그는 “사원은 민중 표교하기 위해서는 도시로 내려오고 불교 의식을 간결하게 하여
권위주의와 관습주의를 타파해야 하며, 사회 개혁을 담당키 위해서는 불교 조직을
통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조선총독은 경주 토함산 석선굴암을 해체 한후 최신 공법으로 보수하게 지시 하였는데
일부에서는 돌이킬수 없는 훼손이 될까 심히 우려 했다
이시기에 최남선이 국내 최초로 아린이 신문 “붉은 저고리”를 창간 했다
*1.1 월간지 붉은 저고리 창간 (최남선)
*2.5 이인지 “매일신보에 모란봉 연재 시작
*3 조선 민보 창간
*4.1 총독부 의학 강습소를 경성의학 전문 학교로 승격
*4월 배재 학당 여학생 우산으로 얼굴을 가리고 세검정에 소풍
*4 최남선 소년 후신으로 월간 새별 창간
*5.13 조중환 “매일신보에 ‘장한몽 ’연재
*5.25 한용운 “불교유신론” 간행
*6.7 총독부 민간에 흩어져 있는 도서, 고비(古碑),탁본(拓本)등 사료를 수집 할 것을 시달
*7.7이왕직 사무관 스에마츠(末松態彦) 고려배, 진남포 고분 발견
*9.5 최남선 원간 잡지 “아이들 보이“ 창간
*9.20 이승만 하와이에서 월간 “태평양 잡지 ”창간
*11.30 박한영 해동불교 창간
*11.29 혁신단 이인직 작 “귀의성” 공연
*12.15 서울에 베네딕트 수도원 설립
오늘은 여기 까지 입니다
2015년 4월 19일 아침
Aloha!
|
|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