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대한 최초의 기억을 들라면 김내성의 소설을 떠올리게 된다. ‘백가면’을 시작으로 ‘청춘극장’이니,‘실낙원의 별’ 등은 당시 어린이로부터 어른까지 인기의 대상이었다. 아마도 요즘 ‘해리포터’류나 ‘반지의 제왕’류는 되지 않았을까. 내용은 잊었지만 흥미위주의 스토리였다는 것만은 기억한다. 그것이 순수문학이 아닌 통속소설의 전형이었음을 안 것은 나중 일이었다.
통속이란 주제나 성격묘사를 통해 삶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추구가 아니라 상업성을 얻기 위해 오락과 흥미위주로 창작된 작품을 말한다. 이들은 문학뿐만 아니라 연극,영화,음악,미술 등 대중을 상대로 한 것이면 어디든 파고든다. 예술의 형태는 갖추었지만 목적은 뻔하다.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여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대중의 인기를 끌려고 하다보니 내용은 관능적이요 자극적일 수밖에 없다. 통속작품에 연애,섹스,전쟁,폭력을 다룬 것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자연히 도식화 유형화의 길을 가게 될 것이며,선과 악이란 이분법적 논리에 따르게 된다. 인기에 영합하다보니 내용과 줄거리 또한 뻔해진다. 그야말로 ‘보통사람의 견문과 지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상과 감정’의 수준이다.
음악이 통속화되면 ‘나는 너를 죽도록 사랑했는데 우리는 헤어져야 한다’는 내용이 주가 되고,영화가 통속화되면 내용은 뻔하다. 애정물일 때는 삼각 관계로 티격태격하다 착한 사람이 사랑을 얻게 되고 한쪽은 자살로 끝난다. 전쟁이나 폭력물이라면 으레 ‘악인은 지옥으로’란 줄거리다. 통속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안방극장 드라마쯤 되면 웬만한 사람은 등장인물만 보고도 내용과 결과를 눈치채버린다.
이러한 통속에 반발하는 사람을 흔히 천재라고 부른다. “천재의 특징은 범인이 깐 레일에 자기의 사상을 싣지 않은 데 있다”고 스탕달이 말했듯이 비 통속적이 되면 될수록 그 천재성은 빛난다. 그들은 통속과 싸우기 위해 전력투구할 각오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의 천재성은 어디로 향해 튈지 모르나 이 사회의 희망은 보통사람의 대중성에 의하기보다는 몇 명의 천재성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우리사회의 위기는 통속은 범람하는데 비해 천재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사회 전반이 상업성에 목숨을 걸고 인기를 얻기에만 혈안이 된 것 같다. 특히 우려되는 것이 국민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치의 통속화 경향이다. 그들이 ‘국민을 위하여’라고 소리쳐 외치지만 국민은 그들의 속내를 낱낱이 들여다보고 있다. 국민들의 예상을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마치 통속의 극치를 연출하려고 작정이라도 한 것 같다.
우리는 범람하는 통속에 이미 식상해 있다. 정치만이라도 통속을 벗어났으면 싶다. 천재성을 지닌 정치는 과연 언제쯤이나 볼 수 있을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