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우골 절경지 비선대 일원. 매끈하면서도 널찍한 암반을 타고 비단결 같은 옥수가 흘러내리고 있다. 깊은 산 깊은 골은 신비감이 넘친다. |
깊었다. 맑았다. 원시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백두대간 명봉 응복산(鷹伏山·1,359.6m)은 높이 못지않게 덩치가 크고 산줄기를 사방팔방으로 뻗는가 하면 골짜기 또한 많은 산이다. 북으로 강원도에서도 심산유곡을 대표하는 미천골이, 남서로는 통마람골이 깊이 파여 있다. 동쪽으로 갈래 친 골짜기는 더욱 깊다. 합실골은 이무기가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으슥하고, 광불동은 부드러우면서도 울창한 숲이 신비감을 자아낸다.
구라우골은 더욱 그랬다. 설악산 혹은 지리산의 명골짜기 축소판 같은 구라우골은 천연 그대로였다. 단 한 곳도 손을 탄 곳이 없었다. 작지만 비경이, 절경이 아닌 곳이 없었다. 작은 폭포들이 속출하고, 바닥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신비스러운 소와 담의 연속이었다. 비경이 끝나가자 원시림 같은 숲이 반겨주었다. 게다가 한때 화전민들이 터전을 일구어 옛 이야기까지 갖추고 있는 골짜기다.
“정말 멋있어요. 때 묻지 않았고요. 중간쯤 들어서면 설악산 비선대 같은 절경지가 있어요. 능선을 타기 전까지 물줄기를 아홉 번이나 열 번쯤 건너야 할 거예요.”
한 굽이 돌아설 때마다 절경 속출
손바닥만한 비알밭마다 당귀 모종이 심어져 있는 구라우골로 들어서는 배수경(펜션 ‘전망 좋은 집’ 주인)씨의 표정은 천진스러웠다. 오늘 산행의 안내를 맡은 그는 18년 전 법수치 계곡가 팥밭메기로 터전을 옮기기 전까지 3년간 구라우골에서 살았다. 이후 한두 해에 한 번쯤 구라우골에 들어선다. 대부분 산짐승을 잡거나 나물을 뜯기 위해서였다. 이번은 토끼몰이 삼아 겨울에 들어선 이후 이태만이었다.
잔잔하면서도 깊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구라우골 초입. |
펜션이 골 들머리를 가로막고 있는 구라우골로 들어선 지 10분쯤 지났을까. 물줄기를 수시로 가로질러야 한다는 배수경씨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징검다리를 건너던 정정현 기자는 “첨벙!” 소리와 함께 물로 빠지고 말았다.
“빨랑빨랑 들어와. 얼마나 편한지 알아? 완전 자유야, 자유.”
정정현 기자는 물에 빠지자 오히려 신났다. 이제 물을 마구 헤집고 다닐 수 있는 자유인이란다. 정 기자의 첨벙거리는 소리가 잔잔히 울리는 구라우골은 예상치 못했던 비경지였다. 온통 암반으로 이루어진 골짜기는 크고 작은 소와 담·폭포가 연이어지고 한 굽이 돌아설 때마다 새로운 풍광의 골짜기가 반겨주었다. 이 골짜기에서 벌이 가장 많이 날아드는 설통바위를 지나 10분쯤 걸었을까. 개울 한쪽은 갈대숲을 이루고 있었다. 아침 햇살이 갈대숲에 파고들자 갈대들은 파르르 떨고 그 흔들림에 물결은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이며 빛을 떨쳐냈다. 구라우골은 이렇게 조용한 움직임으로 새 날을 맞아들였다.
골짝은 맑고 밝은데 물빛은 짙은 흙빛이다. 김대기(합실민박 주인)씨는 “법수치리에 음양의 두 계곡이 있는데, 물이 맑은 합실골이 양이라면 물이 탁한 구라우골은 음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물빛이 탁한 이유를 꼭 음하다는 데에서 찾을 수는 없었다. 숲에서 떨어진 나뭇잎이 쌓이고 쌓인 탓이 더 컸다. 골짜기를 들어선 이후 물줄기를 세 번째 건넌 다음 울창한 숲을 빠져나가자 제법 커다란 소와 와폭이 나타났다.
“옛날 갓 결혼한 신랑이 눈 쌓인 구라우골 중단부의 처가에 갔다가 눈이 너무 깊어 신부를 함지박에 태우고 눈 덮인 골짜기를 내려오다 얼음이 꺼지는 바람에 빠졌다는 소예요. 그래소 함지소라 불리는 거예요. 아직 하이라이트는 멀었어요. 아, 하고 탄성이 터져나올 거예요.”
배수경씨가 꼽는 비경지가 아니더라도 구라우골은 절경의 연속이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다른 풍광이 나타나 눈을 붙잡고, 모퉁이를 돌아설 때마다 비경이 발목을 꽉 붙잡았다. 그렇지만 넋을 놓는 순간 길을 잃을 만큼 산길이 희미하고 수시로 끊어진다. 희미한 족적을 찾아 길을 찾아 나가는 배수경씨는 “이래서 마음이 놓이지 않아 함께 산행키로 했다”며 웃었다.
취재팀과 법수치리 주민들이 와폭 위에서 숲을 파고든 골짜기를 바라보고 있다. |
설악산이나 지리산처럼 웅장하지는 않더라도 그 미니어처쯤으로 꼽을 만한 골짜기다. 원시 그대로 살아 있는 골짜기 풍광은 오히려 구라우골이 앞선다 할 수 있다. 햇살도 좋고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댄다. 5년 전과 2년 전 합실골에서 고생한 것을 보상해주려는가 보다.
“합실골은 <월간山> 보고 찾아온 사람이 더러 있었지만 구라우골은 처음일 거예요. 주민들이나 다니는 골짜기니까요. 그냥이야 다니겠어요? 버섯 따거나 약초나 산나물 뜯으러 다니는 거지.”
명주 한 발을 풀면 서림(미천골)에 가 닿는다는 명주소 일원 역시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절경이다. 골이 깊은 것은 골 밖 파란 하늘 덕분이기도 할 게다. 불현듯 지금 내가 골 안에 들어선 건지, 세상이 깊은 골짜기인지 헷갈린다. 세상이 속박 받는 골짜기요, 지금 이곳이 자유로운, 한없이 터진 세상인지도 모른다.
골짜기 풍광에 취하고 물소리에 넋을 잃은 채 걷노라니 최준회씨는 “꼭 설악골 같다”고 한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위에 갇힌 용이 빠져나오면서 형성된 구룡소처럼 이리 뒤틀어지고 저리 파헤쳐진 바위골이 나타나고, 숲 우거진 둔덕을 넘어서자 참빗으로 곱게 빗은 여인의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듯 고운 빛을 담은 물줄기가 쏟아지는 와폭이 나타난다. 구라우골 절경 ‘비선대’다.
“여기 참 예쁘죠? 오늘은 절경에 걸맞은 이름을 지어야 할 텐데.”
배수경씨는 와폭 아래 너럭바위 한쪽의 좁은 골을 타고 흘러내리는 계류를 양 손바닥으로 떠 마시면서 수백 번은 보았을 비선대 일원의 풍광에 새삼 감탄하고, 김대기씨는 물가에 자라고 있는 당귀 줄기를 꺾어 “이것 씹은 다음 물을 마셔 보라”고 한다. 향긋한 향과 달달한 맛의 당귀 줄기를 씹은 다음 마시는 물은 그야말로 산삼 썩은 물 마시는 기분이다.
골짜기를 거슬러 오르는 사이 아침 햇살을 받은 나뭇잎은 한층 고와졌다. |
“다른 건 다 나눠 메도 가스통만큼은 나눠 멜 수 있었겠어요? 그래서 산판길보다 힘 덜 들이고 구라우골 집에 오르내리려고 물줄기 따라 산길을 낸 거죠. 무릎도 그때 다 망가진 거예요. 별 수 있나요. 그 무거운 짐을 메고 오르내렸으니…….”
20년 전만 해도 화전민들이 비알밭 가꾸며 살아
배수경씨는 그가 50년 가까이 살아온 인생 가운데 가장 행복한 시절을 누렸던 장소로 구라우골을 꼽으면서도 결국은 구라우골을 오르내리느라 무릎이 탈나 골을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취재팀이 아래쪽 와폭에서 촬영을 하는 사이 배수경씨와 김대기씨는 위쪽 와폭을 오르내리며 자연을 만끽하고 있었다. 두 사람에게 구라우골은 동심으로 돌아가게 하는 낙원과 같은 곳이었다. 바람이 불어와 가슴팍까지 서늘하게 해준다. 도시는 이미 한여름에 접어들고 있는데 골짜기는 이른 봄날처럼 기온이 낮았다.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아 고이 간직돼 왔는데 걱정이네요. 아무나 와서 쓰레기나 버리고 가면 어떻게 해요. 깨끗이 다녀주었으면 좋겠어요.”
5년 전 광불동~합실골 취재 때 맺은 인연 때문에 오늘 산행을 도와주게 된 배수경씨는 구라우골을 일일이 소개하면서도 혹시 오염되지 않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비선대’ 3단 와폭 위로는 넓고 깊은 소. 그 위로는 또다시 이리저리 뒤틀어지면서 신비경을 자아내는 바위 골짜기다. 그러다 수더분해진 골짜기를 따라 10여 분 오르자 골짜기가 갈라진다. 갈밭구미라 불리는 곳이다. 왼쪽 골짜기로 들어서면서 길은 한층 희미해지고 멋들어진 암반 계곡 대신 커다란 돌멩이들이 들어차 골짜기 풍광이 그저 그러려니 싶어진다. 그러다 오대산 식당암 아래 담처럼 길쭉하면서도 옥빛 물을 담고 있는 무명 담을 지나자 물가의 기암절벽인 구라우에 닿는다.
애끼골 상류. 얕은 물에 구라우골이 빠져 있다. |
“저게 이 골짜기 이름이 유래한 ‘구라우’예요. 굴은 아니지만 굴처럼 생겼다 하여 굴바위라 불린 것이 구라우로 변한 것 같아요.”
배수경씨가 골짜기의 지명 유래에 대해 설명해주며 가리킨 구라우는 급한 대로 비를 피할 수 있는 처마바위였다. 구라우를 지나자 배씨의 발걸음이 바빠지고 물줄기를 벗어나 산등성이 쪽으로 향했다. 곧 숲이 벗겨지고 개활지가 나타나면서 구라우골을 감싸고 있는 산줄기가 바라보였다.
“여기가 방바닥이에요. 요긴 부엌 자리고요. 한 20년 전에는 계곡가나 등성이에 밭도 많았어요. 대부분 손바닥만한 비알밭이었죠. 강원도 말로 비알이 뭔 뜻인지 아시죠. 비탈 말이에요.”
배수경씨가 팥밭메기에 정착하기 전까지 3년간 살았다는 골짜기 일원은 이제 민가 흔적이 거의 다 사라진 상태였다. 비바람에 집들은 모두 무너지고 진흙으로 세운 담은 빗물에 씻겨 사라져 버렸다. 거기에 풀과 잡목이 우거져 아는 이가 아니라면 흔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주인 떠난 빈 집이 세월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예전엔 법수치리 주민들이 봄부터 늦가을까지 소를 풀어놓았을 만큼 사람이 많이 드나들던 골짜기예요. 주인이 하는 일은 가끔씩 올라와 소금을 주는 게 고작이었죠. 그래야 소가 염분이 부족하지 않아 건강하게 자라고 주인도 알아보니까요. 이제 왼쪽 골짜기를 타다 산등성이로 올라붙어야 해요.”
집터 일원에서 골짜기는 두 가닥으로 나뉜다. 왼쪽은 애끼골, 오른쪽은 두마니골이다. 두마니골은 옛날 구라우골에서 살던 심마니가 두마니골 어느 곳에 산삼 씨앗을 두 말이나 뿌려 놓았는데 아들에게 알려주지 못한 채 숨을 거두었다는 얘기가 전하는 골짜기다.
구라우골에서 최고의 절경지로 꼽히는 비선대 일원. 옥빛 물이 자연미 넘치는 형상의 암반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다. |
두마니골을 건너고 지능선을 가로질러 들어선 애끼골은 골을 메운 바윗덩이가 온통 이끼 옷을 입고 물줄기 양쪽 사면에는 고비나물이 우산을 거꾸로 펼친 듯 하늘 향해 만세를 부르고 있다. 김대기씨와 배수경씨는 물가 적당한 곳에서 점심을 먹자고 한 뒤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살핀다. 그리곤 잠깐 사이에 한 움큼 따온 곰취 잎사귀에 배수경씨 아내가 싸준 밥을 듬뿍 얹어 입에 집어넣는다. 이미 때가 지나 억센 기운이 스며든 잎사귀이지만 밥 한 덩어리에 된장을 듬뿍 얹어 먹는 곰취쌈 맛은 일품이 아닐 수 없다.
“이제부턴 길이 없어요. 그러고 보니까 선생님은 5년 전에도 반바지 차림으로 고생하고선 또 반바지네요.”
점심을 마치고 애끼골을 따르던 일행은 첫 번째 합수목을 지나자 왼쪽 산등성이로 올라붙었다. 그런데 황원선씨는 장딴지가 뻐근할 정도로 가파른 데다 산죽이 우거져 수시로 다리를 찔러대는 통에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다. 계곡 산행한다기에 반바지 차림으로 나섰다고 하지만 이미 5년 전에도 똑같은 상황을 겪은 것을 보면 건망증이 심하다고 할 수밖에. 된비알이 한풀 꺾이면서 거친 산죽 길 대신 호젓한 숲길로 바뀌고 15분쯤 지나 1,027.7m봉 동릉에 올라서자 황원선씨는 언제 산죽밭에서 고생했냐는 듯 “그래도 내가 산죽밭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말한다. 불과 몇 분 사이에 건망증이 다시 발동한 건지.
능선 잘룩이에 올라서자 김대기씨는 “고생 끝”이라며 광불동으로 향했다. 길이 전혀 없지만 초반부는 산세가 워낙 유순하고 5분도 내려서지 않아 물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물소리가 커지면서 산길이 점점 거칠어진다. 김대기씨가 앞장서 족적을 내는 길은 워낙 가파른 사면으로 이어져 조금만 균형을 잃으면 땅이 주저앉으면서 미끄러지곤 해 기운을 빼낸다.
갑자기 구라우골이 그리워졌다
광불동에 내려선 것은 능선을 출발한 지 50여 분 만인 오후 3시15분. 예전에 화전민들이 살았다는 광불동 화전마을이다. 옛날 화전민들이 살았던 민가의 돌담 흔적도 반가웠고 뚜렷한 길은 더욱 반가웠다. 광불동은 바로 양옆에 위치한 구라우골이나 합실골에 비해 부드러운 골짜기다. 특히 2000년 초까지만 해도 벌채한 나무를 나르기 위해 산판용 트럭이 오르내려 산림도로 흔적도 간간이 남아 있다.
원시적 신비감이 감도는 구라우골. 중류를 지나면서 골은 한층 깊어진다. |
“아니 쉬었다 가지 뭐가 그리 급해 쏜살같이 내뺀 거야.”
광불동으로 내려서자 김대기씨와 최준회씨는 모습을 감추었다. 가파르고 족적이 전혀 없는 지계곡을 걷다가 뻥 뚫린 계곡길로 내려서자 신이 났나 보다. 잘 닦인 산길을 따라 50분쯤 내려섰을까. 먼저 내려간 두 사람이 개울 물에 발을 담근 채 쉬고 있다.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걸었어. 아무래도 비가 오려나 봐. 저 하늘 좀 봐.”
오전 내내 파란 물감을 뿌려놓은 듯 파랗던 하늘은 사라지고 구름이 가득 찼다. 능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딴 세상인가. 갑자기 구라우골이 그리워졌다.
산골 사람들
하늘 향해 잎을 활짤 펼친 고비나물. 애끼골 상류는 온통 고비나물이 밭을 이루고 있다. |
법수치계곡 주민 김대기·배수경씨
“말도 마세요. 수달이란 놈이 얼마나 약은지. 개울에도 그물 쳐 놓으면 위쪽에서 한 번 뜯어 먹고, 뒤집어서 아래쪽에서 올라오다 걸린 놈 뜯어 먹곤 그물을 엉망으로 만들어놔요. 천적이 없는 것 같아요.”
산행 내내 법수치계곡의 풍광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는 김대기(金大起·53)씨와 배수경(裵水暻·48)씨는 토박이보다 더 법수치리를 사랑하는 이들이다. 20여 년 전 오대산 줄기를 타고 법수치계곡으로 내려섰다는 점에서는 두 사람 모두 같다.
고향이 강릉인 김대기씨는 전후치를 넘고 설악구비계곡을 따라 법수치계곡으로 왔다. 경북에서 살다가 법수치리가 좋다는 얘기에 77년 가을 탐색차 들어서고 78년 겨울엔 시험삼아 살아보다가 79년 봄 아예 짐싸들고 들어왔다. 배수경씨는 산천경개 좋은 곳을 찾아다니다 23년 전 개인산 개인약수에서 몇 달 머물다가 구라우골이 좋다는 얘기에 혹해 개인산에서 능선을 타고 미천골로 내려선 다음 조봉(1,116.9m)을 넘어 구라우골로 들어섰다. 배씨는 3년쯤 구라우골에서 생활하다 팥밭메기 계곡가에 새 터전을 일구었다.
“그땐 양양에서 법수치로 이어지는 길이 있는 줄 전혀 몰랐어요. 그저 좋다는 얘기만 듣고 찾아든 거예요.”
두 사람 모두 법수치계곡을 터전으로 살아오다 법수치계곡을 찾아든 아낙을 아내로 삼고 아들딸 낳고 잘 살고 있다. 20여 년 세월 동안 우여곡절이 많았다. 합실골 들머리 부근에 뿌리를 내린 김대기씨는 법수치 일원을 감나무골로 바꾸고 싶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감나무는 추위에 약하다며 극구 말렸다. 해서 가축도 키워 보았지만 그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버섯 농사는 그래도 되는가 싶더니 2002년 태풍 루사 때 깡그리 물에 떠내려가 버렸다. 그래도 뒤늦게 장뇌삼 재배에 성공해 자리를 잡았다. 민박은 부업 삼아 하고 있다.
배수경씨의 나이 마흔에 결혼한 아내 배미경(46)씨는 아들 준호(현성초교 3년)가 여섯 살 되던 해 봄에 아들과 함께 잠시 집을 떠났다. 아이를 키우기 마땅치 않은 환경 때문이다. 그러나 배씨는 아내도 법수치계곡이 그리워 돌아오리라는 믿음으로 묵묵히 기다렸다. 결국 그의 바람대로 지금은 아내와 준호와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배미경씨 역시 이젠 법수치계곡 예찬자가 되었다. 자연 속에서 살다 보니 강해지고 마음도 넓어졌다는 배미경씨는 “이젠 남편이 나와 준호 때문에 너무 고생했다 싶어 자유롭게 살아주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배수경·배미경씨 부부는 크고 작은 석 동의 집은 펜션으로 운영하고 부업삼아 벌도 친다. 게다가 나무집 짓느라 익힌 목수 기술이 날로 발전해 지금은 법수치계곡뿐 아니라 양양읍내 일원까지도 잘 알려진 대목으로 활동하고 있다.
5년 전 법수치계곡을 처음 찾았을 때 배수경씨는 이태백의 시 <산중문답>으로 법수치계곡을 사랑하는 마음을 나타냈다. 김대기씨와 배수경·배미경씨 부부는 법수치계곡의 살아 있는 신선 같은 사람들이다.
묻노니 그대는 어찌하여 벽산에 사느뇨
웃기만 할 뿐 대답 없어도 마음만은 한가롭네
복사꽃은 흐르는 물에 아득히 떠가니
배수경씨와 김대기씨(뒤쪽). |
별천지 따로 있어 인간 세상 아니네.
問余何事棲碧山 / 笑而不答心自閑
桃花流水杳然去 / 別有天地非人間
-李白 <山中文答>
산행 길잡이
합수목 만나면 왼쪽 골짜기로 들어서야
구라우골 들머리에 위치한 구라우교. 다리 양쪽에 펜션이 들어서 있다. |
구라우골 입구는 초입에 펜션 ‘연어의 꿈’이 자리잡고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어성전 삼거리에서 약 12km 지점이다. 구라우골은 수시로 물줄기를 가로지르며 길을 이어야 하며, 도중에 합수목을 세 차례 지나친다. 그때마다 왼쪽으로 꺾어지는 것을 잊지 말도록. 개울가 기암인 구라우를 지나 합수목에서 왼쪽 애끼골로 들어선 다음 지계곡을 만나면 골짜기 사이로 뻗어오른 지능선을 따라야 한다.
지능선을 타고 1,027.7m봉 북동릉에 올라서면 가장 낮은 잘룩이로 이동한 다음 광불동으로 내려서도록 한다. 광불동 지계곡은 길이 전혀 없으며 초반부는 유순하지만 내려설수록 험해진다. 물줄기보다 골짜기 왼쪽 사면을 가로지르며 내려서는 게 수월하다. 광불동계곡은 2000년대 초반까지 벌목한 나무를 실어 나르기 위해 차가 다녀 산길이 잘 나 있다.
구라우골~합실골 산행은 6시간 정도 잡으면 적당하다.
구라우골은 원시 그대로의 자연을 간직하고 있으나 산길이 중간중간 끊어져 오지산행 경험이 많은 이들이 동행해야 안전하게 산행할 수 있다. 구라우까지는 물줄기를 수시로 건너면서 길을 찾을 수 있으나 이후로는 길이 거의 없다. 따라서 지형을 잘 살피면서 길을 내가면서 산행을 해야 한다.
>>교통
법수치리행 노선버스는 양양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다닌다.
탐험적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개다니계곡 백패킹. |
서울→양양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영동선(1588-6900)에서 30~40분 간격(06:30~21:30, 심야우등 22:00·23:30) 운행. 3시간. 일반 1만5,200원, 우등 2만2,400원, 심야우등 2만4,600원. 동서울터미널(02-446-8000 ARS)에서 1일 22회(06:30~18:19) 운행하는 양양 경유 속초행 직행버스(약 3시간, 1만7,400원) 또는 상봉터미널(02-435-2122 ARS)에서 1일 6회(06:25, 08:20, 09:50, 12:40 14:10, 18:00) 운행(약 4시간, 1만9,000원).
강릉→양양 종합버스정류장(033-643-6092)에서 약 10분 간격(05:50~22:00) 운행. 1시간, 5,200원.
춘천→양양 시외버스종합정류장(033-241-0285)에서 1일 7회(06:15~18:00) 운행. 3시간, 1만4,200원.
홍천→양양 시외버스정류장(033-432-7893)에서 20분 간격(08:50~ 20:30) 운행. 2시간, 1만1,000원.
원주→양양 시외버스종합정류장(033-743-8307)에서 1일 5회(06:56~18:36) 운행. 3시간30분 소요, 요금 1만1,800원.
대구→양양 동부시외버스터미널(1666-0017)에서 1일 7회(07:10, 08:05, 10:04, 11:55, 12:38, 13:45, 14:20, 심야 24:00) 운행. 7시간30분, 3만9,000원, 심야 4만3,000원. www.gob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