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활동일자 | 2015년 3월14일(토) | 활동자 성명 | 김단비 |
소속(학교/단체명) | 화홍중학교/매홀아띠 | 직위(직급/학년) | 중학교/3학년 |
활동장소 | 남양주 다산유적지 | 문화재명 (문화재종류) | 다산묘, 여유당 |
활동내용 | 다산유적지로 가는 버스 안에서 도착하기 전에 신영주 교장선생님께서 조금 설명을 해주셨다. 실학은 백성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학문이고,우리가 잘 아는 다산 정약용 선생도 실학자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정약용의 호인 다산은 절대로 아이를 많이 낳는다는 뜻이 아니라며 덧붙여 설명해주셨다. 정약용은 그 당시 왕인 정조의 신임을 받아서 배를 엮어서 배다리도 만들고 수원화성을 쌓을 때 사용한 거중기도 발명 하는 업적을 남겼다고 말씀해주셨다. 또한 정약용이 쓴 글은 현재 사람들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학술적이라고 하셨다. 그런 설명을 다 듣고 보니 어느새 목적지인 다산유적지에 도착해있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정약용이 만든 거중기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교장선생님께서 거중기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셨다. 서양의 기술과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하여 거중기는 발명되었고 그 당시에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거중기가 파격적이였다고 한다. 백성들이 화성 축조 공사를 할때 돌을 드는 노고를 줄여주기 위한 좋은 의도로 만들어졌지만 거중기가 많이 만들어져서 널리 이용된 것은 아니라고 하셨다.그 점이 아쉬운 것 같다. 설명을 듣고는 실내로 들어가서 정약용에 대한 설명을 봤다. 정약용은 고향집에 ‘여유당’이라는 당호를 걸었는데,‘여유’의 뜻은 겨울에 시내를 건너는 것처럼 신중하게 하라는 뜻이고 세상사와 자신에 대한 경계의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당호를 정말 잘 지은 것 같다. 나도 ‘여유’를 마음속에 새겨야겠다. 정약용의 사상도 알았는데.그의 사상의 핵심은 조선 후기의 사회현실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서 개혁하고자 하는 것이였다. 이러한 정약용의 사상은 정치 구조의 행정체제,형률제도,경제제도,생산기술,군사제도 등 모든 영역에 걸쳐져 있다고 한다. 이러한 정약용의 경제학은 ‘일표이서’로 요약이 된다.‘일표이서’는 바로 <경세유표>·<목민심서>·<흠흠신서>이다.그리고 정약용이 만든 거중기에는 회전축이 고정되지 않고 이동하는 움직도르래와 회전축을 고정시킨 고정도르래가 사용되었다. 서로 다른 종류의 2개의 도르래를 이용하여 거중기를 만들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실내에서 그러한 것들을 알고 나서는 밖으로 나와 자찬묘지명을 보고 정약용의 무덤을 보았다. 무덤은 햇볕과 바람이 잘 드는 명당에 위치해있었다. 무덤을 본 뒤에는 배다리를 재현한 곳에 가서 배다리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배다리에는 홍살문이 총 3개가 있고 강의 가운데에 가장 큰 배를 배치하고 양쪽으로 갈수록 조금씩 작은 배를 배열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배다리를 만든 것은 내가 지금 생각해봐도 획기적인 것 같다.나도 그러한 정약용의 획기적인 생각을 본받고 싶다. 그리고 죽은 사람에게는 선생님이라는 칭호가 아닌 선생이라는 칭호를 쓴다고 한다. 그래서 설명문에 계속 정약용 선생이라고 되어있었다. 배다리를 보고 나서 홍이포를 봤다. 홍이포는 우리나라 대포가 아니여서 아쉬웠다.홍이포는 컸는데 홍이포의 폭탄은 생각보다 매우 작은 크기여서 예외였다. 홍이포 옆에 있는 실학박물관에서는 해설사 선생님과 박물관을 돌아다니며 설명을 들었다. 광해군이 백성들을 위해 처음엔 많이 노력했다는 것을 듣고 일본이 축소하여 만들기 전의 조총도 봤다.조총의 크기는 어마어마하게 크고 길었다. 일본은 그 조총을 들고 다니기 편하게 작게 줄여서 우리나라를 침략할 때 썼다고 한다.참 마음 아픈일인 것 같다. 중농학파와 중상학파에 대해서도 들었다. 박지원과 유형원과 이익,박제가,이수광 등 이러한 실학자들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그 당시에 지전설을 주장하고 농촌의 토지개혁을 주장했었던 실학자들이 너무 멋있게 느껴졌다. 그리고 중2때 역사교과서로 배웠던 것들을 실제로 보면서 들으니까 감회가 남달랐다.10000원에 그려져 있는 혼천의와 그 당시 화폐인 상병통보도 보았다. 상병통보의 크기가 지금의 동전과 다르게 크기가 모두 달라서 놀라웠다.그렇게 실학박물관에서 여러 가지를 보고 듣고 나와서 느티나무집에서 점심을 먹고 레크레이션을 했다. 이름외우기도 하고 포키포키도 하면서 점수를 받아 우리 매홀아띠가 2등을 해서 기분이 좋았지만 상품이 4등보다 좋지 않아서 불평하는 소리가 컸다. 하지만 그래도 작년보다는 좋았다.그렇게 활동을 마무리를 했다. | ||
활동소감 (후기) | 정약용을 본받고 싶다고 느꼈다. 정약용은 그 당시 사람들은 상상하지도 못했을 거중기를 만들고 배다리를 만들었다. 나도 정약용처럼 그런 혁신적인 사람이 되고싶다. 그리고 과거 실학자들의 정신도 본받아야겠다. | ||
기타 (건의사항 등) | 해설사 설명이 별로 좋지 않았다. 해설사 선생님께서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위해서 전국 곳곳을 돌아다녔다는 사실은 일본이 역사왜곡을 한 것이여서 잘못된 것이라고 했는데...네이버에 쳐봐도 일본이 그 사실을 왜곡했다는 내용이 없었다. 그리고 설명을 별로 감흥있게 해주시지않았다. 다음에는 좋은 해설사 선생님을 만나 설명을 듣고 싶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