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말하고 싶습니다.46
安步當車 안보당거. 가난하지만 마음 편한 것이 좋다.
노란 은행잎이 하루가 다르게 예쁜 색으로 갈아입고 있습니다.
왜 노란색이 되는지 과학적으로 설명하면 낭만이 없는 사람 같이 보여 어릴 적 한번쯤은 흉내 내었던 시인의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울긋불긋 저마다 예쁜 색을 뽐내는 가을이 저는 참 좋습니다.
해마다 지금쯤이면 우리 집 식량 창고에는 겨울을 준비하는 양식으로 가득 찼습니다.
개척 초기의 배고픔 때문일까요. 어느덧 저의 뇌리에는 풍성한 겨울나기를 위한 준비가 세뇌되어 있는 것 같아 웃음이 나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가면서 이런 저런 저의 손길이 가야 할 곳이 많아지면서 농사의 가짓수도 적어져 갑니다.
옥수수, 감자, 땅콩, 돼지감자, 들깨, 배추, 무, 대파, 양파, 상추와 토마토, 오이, 콩, 팥, 완두콩, 쪽파, 곰취 등 어휴~ 많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점차 과실이 열리는 농작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오미자, 아로니아, 대추, 밤, 봉숭아, 천도 봉숭아, 자두, 오디 등을 심고 가꾸게 되었습니다. 내년에는 배와 사과나무를 심으려고 합니다. ㅎ ㅎ 사계절 먹을 것이 가득한 저희 집으로 지금 오시면 돼지감자와 무를 한 아름 가져가실 수 있습니다.
봄이면 산으로 고사리며 취나물을 뜯으러 가야 하구여. 나물 중에 제일이라는 참나물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가을이면 토리를 줍기 시작한 지 어느덧 26년이 되었습니다.
요즘에는 인삼밭에서 이삭을 줍고 있습니다.
홍천은 기후 변화 때문인지 작물이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사과와 배 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6년 근 인삼의 고장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커다란 트랙터의 굉음이 지나가고 나면 아낙네들이 인삼을 주워 담습니다. 수고한 농부의 입가에 웃음이 가득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이삭줍기가 시골 목사에게도 주어집니다.
수확이 끝난 늦은 오후에 시작한 호미질에 알토란같은 인삼이 걸려 나옵니다. 누군가에게라도 자랑하고 싶어 큰소리로 말해 보지면 듣는 이는 아내밖에 없습니다. 어느 날은 시간이 없는데 인삼은 주워야겠기에 늦은 밤 깜깜한 밤에 광부들처럼 머리에 전등을 쓰고는 밤새 삼을 줍다가 새벽을 맞이한 적도 있습니다.
극성! 누구일까요. 왜 이러고 살까요.
이제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될 만 함에도 오늘도 저의 청승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주일 저희 교회의 밥상에는 인삼무침이 상마다 가득 놓였습니다.
그 지난 주일에는 인삼튀김이 놓였고요. 도토리묵도 같이 말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인근 요양병원에서 암을 앓고 계시는 환우들이 십여 분 참석하십니다. 이분들이 매일 먹는 병원식을 드시는 것이 마음에 걸려 자연식을 준비하다 보니 필요한 재료를 산에서, 밭에서 조달하고 있습니다. 부디 건강해 지셔서 섬기시는 교회와 가정으로 돌아가시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물론 새벽마다 이분들을 위한 기도도 빠지지 않습니다.
이런 인삼을 어디서 구해 오시냐기에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하루는 전화가 옵니다.
목사님! 저희 병원 입구에 인삼을 캐고 있습니다. 아이고 저보고 주우러 오라고 가르쳐 줍니다. 그런데 다른 환우들이 보면 마음 아플까 봐 밤에 불을 밝히며 주워 왔습니다.
집사님 이번 주에 드시는 삼은 거기서 주워 온 겁니다.
그렇게 세월이 쌓여집니다.
서울에서 교회 자리를 찾지 못한 채 이리 저리로 옮겨 다니다가 26년 전 이곳 홍천으로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시작한 시골 생활이 이제는 몸에 꼭 맞는 느낌입니다.
처음에는 고향이 어디냐고 묻던 이웃들이 이제는 홍천사람인 줄 압니다.
물론 날마다 쌓이는 청첩장들이 조금은 부담이 되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요즘 외부에서 강연할 기회가 주어지면 저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행복해서 말하는데 듣는 이들이 눈물을 흘리시니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습니다.
봄에는 농사일이 고돼서인지 밤에 끙끙 앓는 소리를 내다가 가을에는 산에서 온갖 벌레들에 물려서 여기 저기 가려워서 잠을 설치곤 하는 일을 빼고는 재미있는 시골생활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시골 생활을 준비 중에 계신 분들은 고생은 덤이라는 사실은 알고 계셔야 할 지 모릅니다.
그 고생이 즐겁습니다.
노동의 후련함이 감사합니다.
어쩌면 이 고생은 청파동 언덕길을 오르내리면서 다져진 우리의 사명일지도 모릅니다.
이만 팔천여 동리에 우물을 파라시던 김치선 목사님을 본 적은 없지만 아주 오랫동안 함께 하신 스승처럼 제 마음속에 자리 잡고 계십니다. 그 사랑이 오늘 우리 친구들에게도 같이 하겠지요. 그런데 작금의 총회 현실은 죄송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세상 풍조에 어느새 교회도 대형화되고 큰 교단을 추구하다보니 친구들의 일부가 짐을 사들고 방배동으로 갔습니다.
가지 말라며 애원도 해보고 만류도 해 보았지만 그들의 길을 돌이키기에는 얻는 것이 많았는지 그렇게 가 버렸습니다. 어쩌다 시골 목사가 나서다 보니 저도 마음고생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과격의 아이콘이 되어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제가 무섭다고 합니다.
아니 더한 말도 할 줄 압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주님께 받은 사랑 얼마나 귀한지요.
아무도 받아 주지 않던 저를 가르치시고 훈련시켜 여기 홍천으로 보내 주신 대신의 은혜를 이렇게라도 보답하지 않는다면 부끄러운 일이지요.
제가 작은 시골 목사라서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산에 다니며 토리를 주워서가 아닙니다.
삼밭에서 이삭을 주워서가 아닙니다.
제가 염려하는 것은 제가 세상을 좋아할까 그것이 두렵습니다.
큰 교회를 마음에 품을 까 그것이 두렵습니다.
주일 날 한 상에 담겨 있는 저의 땀이 아니라 호텔에서 우아하게 칼질하는 저를 상상할까 무섭습니다.
집안에 무슨 일만 생겨도 제일 먼저 저를 찾는 이들이 아닌 고상한 부인네들이 있는 곳으로 마음이 향할까 두렵습니다.
그래요. 저는 저대로 오늘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친구들아 당신들은 방배동으로 그렇게 가시려거든 가시게나.
나는 오늘 여기서 대신의 사랑을 반주하며 주님이 주신 사명대로 어제처럼 오늘도 그렇게 살아가려네.
홍천에서 김영규 목사 씁니다.
첫댓글 참으로 부지런하고 정직하고 깨끗하게 사시는 김목사님 존경합니다.
아이고 아닙니다 그냥 모자람을 채우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강건하세요
자본의 정의는 돈이 아니고 머리라고 어느 경제전문가가 말 합니다. 최고의 자본은 우리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목사님께는 그 자본이 있으십니다.
그 자본을 가진 김영규목사님 목사님은 진정 살아있는 자본중에 자본이십니다. 그런데 그 자본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자본이 텅 비어 있는 머리도 많으니 목사님은 행복 하십니다.
주님께 많은 것이 있으시니 저도 조금 주십니다 늘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