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1019)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들은 붙드시고 악인들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는도다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할지어다…여호와는 말의 힘이 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시 147:6~11).
여호와께서 기뻐하는 자~~~~~신앙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의 긍휼을 사모하는 데서 시작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힘과 능력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자기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신다. 자신의 힘을 믿고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을 수 없고 자신의 무지와 무능을 겸손히 인정하는 자만이 하나님께 구원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 즉 자신이 스스로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임을 자백하고 하나님께 긍휼을 구하는 자만이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익명의 시인은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해방되어 고국에 귀환하여 예루살렘 성전과 성곽을 재건한 후에 이스라엘이 군사ㆍ사회ㆍ경제적으로 안정과 부흥을 누리게 된 것이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고통당하는 선민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신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에 기인한 것임을 밝힌다. 즉 시인은 이러한 이스라엘의 회복이 자신들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의 결과임을 고백하며 하나님을 찬양함이 마땅하다고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기뻐하시고 붙들어 주신다. 겸손한 자는 자신의 나약함과 한계를 깨닫고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조용히 순종하며 나아가는 자로, 하나님은 이러한 자들을 보호하시며 구원의 손길로 감싸주신다. 또한 시인은 ‘여호와는 말의 힘을 즐거워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도 기뻐아니하신다’고 말한다. ‘말의 힘’은 스스로 자기를 당할 자가 없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을 멀리하는 자의 자만심을 가리키며, ‘사람의 다리’는 자기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을 상징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마땅히 인간이 당신을 의지하고 찬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보다 자신의 힘을 더 의지하는 자들의 교만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오히려 은혜의 힘을 믿고 의지하는 자를 기쁘게 받아주신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하나님의 택함 받았을 때는 겸손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지만, 왕이 된 후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교만해져 결국은 폐위당하게 됩니다. 비록 보잘 것 없는 양치기 소년에 불과한 다윗을 하나님께서 끝까지 책임져 주신 이유는 결코 그가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죄를 솔직히 고백하고 회개할 줄 아는 겸손한 자였기 때문입니다. 교계 기자 생활을 하면서 발견한 점은 대형교회 목사치고 겸손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고, 어떤 분은 거의 하나님 수준으로 교인들 위에 군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개척 교회 시절 겸손하여서 분명히 하나님께 쓰임 받아 오늘의 대형교회가 되었을 텐데, 대형교회가 되고 나서는 하나님께서 싫어하는 ‘말의 힘’과 ‘사람의 다리’를 더 의지하는 교만함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이러한 지도자들이 오늘의 한국교회의 모든 문제의 근원이 되고 있습니다. 사람이 기뻐하는 자가 아닌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자로 살아가기를 소원해 봅니다.
오늘의 기도 :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물질과 권세로 인해 때때로 교만해질 때가 많음을 고백합니다. 모든 만물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고 항상 겸손하여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