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명과 암
필자 ‘풀 블루스타인’의 글이 충격적이어서 4번째도 정리했다. 스테이블코인의 실상은 자금세탁이다. 예로 러시아 사업가가 베네수엘라산 석유를 구매한다고 가정해 보자. 미국의 제재 대상국이기 때문에 달러 송금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USDT를 사용해 결재를 우회할 수 있다. 석유가 수백만 달러 치의 USDT를 베네수엘라 수도의 환전상에게 보내면, 그는 USDT를 현금 100달러짜리로 교환해 준다. 국영석유회사도 이 방식에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미국의 경제 제재를 피해 갔다. 첨단 무기도 이 방식으로 구매할 수 있다. USDT가 자금세탁, 사기, 핵 개발에 필요한 자금 조달 등과 관련된 수사에서 등장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까닭은 USDT가 안정적인 가치를 지닐 뿐만 아니라, 추적이 어렵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탐사보도 기자인 ‘제크 포크스’가 암호화폐의 실체를 폭로한 <비이성적 암호화폐>에 USDT가 활용된 범죄행위가 나열돼 있다. 그중 인상적인 것은 캄보디아에서 근거지를 마련한 중국인 범죄단체가 벌이는 ‘돼지 도살’을 꼽을 만하다. 그들은 ‘돼지’ 즉 소셜미디어에서 낚은 순진한 피해자들에게 구애하는 척 다가가, 온갖 핑계를 대며 USDT로 거액의 돈을 빼낸다. 한편, USDT는 모스크바에 본사를 둔 암호화폐 거래소인 ‘가란텟스’의 주요 결제 수단이기도 하다.
오늘날 암호화폐 시장은 범죄자들에게 손쉽게 악용되던 초창기와 비교해 몰라보게 달라졌다. 예로 선진 민주주의 국가의 암호화폐 거래소는 일반 금융회사와 동일한 법률을 적용하며, 강력한 자금세탁 방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계좌를 개설하려면 고객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지갑으로 입출금을 차단하기 위해 400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더구나 수사기관이 범죄와 연루된 주소를 적발했을 때, 암호화폐 거래소나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에 요청해 해당 주소와 연결된 지갑을 동결하고 압류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암호화폐에 관련 기능을 넣어 놓을 수 있다. 2023년 말 ‘테더’는 OPEC이 SDN으로 지정한 인물들의 지갑 41개를 동결했다. 그중 하나는 북한 해킹 조직과 연관된 지갑이었고, 32개는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서 테러를 모의하고 사용하는 데, 사용된 지갑이었다. 그러나 회피 수단은 넘쳐나므로, 규제를 우회하기란 어렵지 않다. 중요한 문제는 ‘온-램프 (법정화폐를 암호화폐로 전환되는 과정) 와 오프램프 (암호화폐를 법정화폐로 전환하는 과정) 에 대한 규제가 제대로 집행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오프램프를 노린 랜섬웨어 공격이 빈번하다. ‘랜섬웨어’ 조직은 기업이나 기관의 컴퓨터 시스템을 해킹한 뒤, 민감한 정보를 파괴하거나, 유출하지 않는 대가로 거액의 암호화폐를 요구한다. 이들 조직 대부분은 러시아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자국 기업을 공격하지 않는 한 수사기관도 눈감아주므로, 갈취한 암호화폐 역시 러시아에 기반을 둔 거래소에서 마음 편히 ‘루블’로 환전한다. 미국 재무부는 ‘데더’도 정조준했다. 재무 차관은 의회에 출석해 “달러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의 해외 거래 중 일부는 ”미국과 전혀 접점이 없습니다“. 밝히며 재무부의 권한 강화를 촉구했다. 이어 그는 ‘테더’처럼 해외에 기반을 둔, 발행사들이 ”테러리스트가 악용을 방지하는 절차“조차 마련하지 않은 채, 달러의 특권을 누리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신현송( 한국 출신 경제학자로 BIS의 고위 학자) 은 ”좌우명“이라며 “암호화폐가 할 수 있는 일은 CBDC가 더 잘할 수 있다.” 강조했다. 오늘날 토큰화는 많은 분야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수표와 주식은 지급명령을 적은 종이다. 법률에 따라 지급인과 수취인, 매도인과 매수인의 법적 권리가 규정되어 있다. 토큰화는 디지털보다 한 간계 발전된 개념이다. 자산과 부채의 기록은 물론 송금 관련 규칙과 조건도 접목한다. 그것이 충족되어야 송금이 실현되는 조건부 거래한다. 신현송은 적절한 시기에 토큰화된 예금이 개인 투자자들에게도 허용될 것으로 전망한다. 부동산의 소유권 이전할 때, 구매자는 안전한 소유 이전을, 판매자는 확실한 대금 수령을 원한다. 등기부를 확인하고, 미납 세금 여부, 선취권 설정 여부, 문화재 지정 등의 장애물 여부 등을 중계사가 확인한다. 정보를 토큰화된 형태로 디지털화할 수 있다면, 신현송은 “그렇게만 된다면 원칙적으로 우리가 토큰화된 예금과 동일한 플랫폼에 토큰화된 부동산을 올리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주장한다. 즉 부동산 매매가 전자적 거래로 처리될 수 있다는 뜻이다.
‘바젤’에 있는 BIS본부에서 화상통신으로 중계되는 실험적인 CBDC 송금 시연을 지켜봤다. 홍콩기업과 태국기업의 무역 거래 과정으로 400만 파트 송금 건이었다. 경제학자는 버튼으로 몇 가지를 크릭하고 송금액 400만 바트를 입력한 뒤 지급인과 수취인이 각각 사용할 통화를 e-HKD와 e-THB로 선택하고 환율을 입력했다. 결재 시점을 즉시로 선택하자 양국의 중앙은행이 설정한 거래 한도 등의 승인 요건을 심사하는 절차가 자동으로 진행됐다. 불과 몇 초 후에 거래가 승인되고 결제까지 완료되었다. ‘엠브리지 mBridge’로 불리며 m은 다중을 의미한다. 태국, 홍콩, 아랍에미리트, 중국 등 4개국의 중앙은행이 공동 추진하는 프로젝트다.
2024년 10월 말,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담에서 푸틴 대통령은 엠브리지를 변형한 ‘브릭스 브리지’의 개발을 제안했다. 그렇다면 중국인민은행이 엠브리지를 개발하며 쌓은 기술적 노하우를 감안할 때, 새로운 형태의 결재 시스템이 등장해 달러가 대부분의 국제무역에서 배제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이제 화폐의 디지털화라는 미래지향적인 주제에서 그리 기술적이지 않은 주제로 초점을 전환하고자 한다. 이번 장에서 다룬 e-CNY, CBDC, 스테이불 코인, BIS의 구상, 엠 부리지 등은 모두 2020년대 초반에 발생한 일이다. 같은 시기 사이버공간 밖에서도 중요한 일들이 벌어졌으니, 이로써 달러 패권은 더욱 공고해졌고, 여기에 기댄 경제 제재는 다시 한번 정당성을 부여받았다.
다행히도 2022년부터 2023년 사이에 국가 채무를 둘러싸고 대규모 위기가 확산하리라는 예측은 기우로 판명되었다. 몇 건의 채무불이행만이 산발적으로 발생했을 뿐이다. 세계 각국이 20세기 후반의 금융위기에서 교훈을 얻고는 달러 환율 급등에 대비해 자국 경제를 강화해 둔 덕분이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브라질,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의 신흥국이 좀 더 높은 이자를 부담하더라고 달러 대신 자국 통화로 차입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큰 전환이다. 2022년 달러가 외환시장에 미친 영향력은 매우 컸지만, 지정학적 수단으로 이용되어 세계 정세에 미친 영향력은 한층 더 강력했다. 필자는 주장한다.
반 달러의 축,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포린어페어스>에 ‘반 달러의 축’이라는 기고문이 실렸다. 각종 매체는 중국, 러시아와 <포스트 달러> 시대를 향한 경주, 러시아와 중국, 달러의 힘을 위협하다, 중국 무기화된 달러를 격퇴하기 위해 위안화를 세계화한다. 이 같은 기사들은 나름으로 이유가 있다. 중국과 러시아 간 무역이 급증하고, 위안화로 결제되는 비중도 증가했기 때문이다. 대러시아 제재가 본격화되기 전까지만 해도 러시아가 중국에 석유와 천연가스 등의 원자재를 수출하며 위안화로 대금을 결제받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2023년 초가 되자 러시아 기업들이 중국에 제품을 수출하고 결제받은 대금의 14% 정도가 위안화였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2022년 중국의 자동차, 전자제품, 산업 장비 제조업체들이 러시아에 제품을 수출하고 결제받은 대금의 23% 정도가 위안화였다.
쓰지 않을 순 있어도 대체할 순 없다. 국제 거래에서 위안화의 사용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은 중국과 개별 국가 간의 양자 무역에 국한되고 있다. 위안화가 제삼국 무역에서 달러처럼 널리 사용된다면, 진정으로 국제화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같은 사례는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매우 드물다. 위안화가 국경 간 결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5% 정도여서 미미한 수준이다. 국제 통화 질서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극명하게 드러나는 이야기가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중국이 석유 시장에서 위안화를 사용하는 문제를 논의했을 때 벌어진 야단법석을 생각해 보자. 물론 사우디아라비아가 위안화를 받고 석유를 판매할 수는 있다. 문제는 그것이 양국에 모두 편리하고 유용하냐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중국도 비슷한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세계 최대 수출국인 중국은 이미 외화보유고로 어마어마한 달러를 비축해 둔 상황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수출을 통해 계속해서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왜 중국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나는 달러 대신 위안화로 사우디아라비아산 석유의 수입 대금으로 결제하려고 하는 걸까? ‘호바네츠’는 발상의 전환을 요구했다. “문제는 위안화는 석유를 구매하기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언제든지 가능한데도 어째서 아직 그렇게 하지 않는지. 그 이유가 바뀔 가능성이 있는지 물어야 한다.“
달러는 세계시장에서 상품을 사고팔 때뿐 아니라 안전하고 유동성 있는 자산에 투자할 때도 즉시, 사용할 수 있는 통화다. 그러한 면에서 달러는 다른 통화들과 확연히 차별화된다. 브릭스가 독자적인 통화를 발행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경제학자들이 아무 의미도 없는 ‘소음과 분노’(맥베스‘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 의 통화 버전이라고 조롱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경제정책, 발전 수준, 문화는 물론이고 지리적 조건까지 제각각인 나라들로 구성된 연합체가 어떻게 공동 통화를 발행할 수 있겠는가?
반 달러의 축은 여러 나라가 요지부동한 지위에 지나치게 취해, 2022년의 대러 제재 때와 달리 도덕적으로 정당화하기 어려운 명분으로, 또는 경제적 역풍을 거의 고려하지 않은 채 달러를 무기로 사용한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해 보라. 이러한 검토를 통해 달러의 강력한 위력을 무책임하게 사용하지 않은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되새길 수 있다. 필자는 주장한다.
2025.10.09.
킹 달러- 스테이불코인의 명과 암-4th
풀 블루스타인 지음
서정아 옮김
인플루앤셀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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