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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4일(주)
* 시작 기도
(욘 3:1-2)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주님...
주님은 한 번 정하신 일은 반드시 행하시고야 마십니다.
제아무리 그 명을 거역하고자 하여도 하나님은 작정하신 일을 끝까지 행하시는 분임을 요나를 통하여 분명히 봅니다.
그것은 첫 번째 하신 명을 그가 거역할 때 그가 돌고 돌아서 결국 다시 하나님 앞에 섰고 또한 그 첫 번째 들었던 명령을 똑같이 듣게 됩니다.
이것이 어리석은 우리 인생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이런 요나를 보면서도 우리 인간은 또 다시 거역하고 거절하며 패역을 반복하는군요.
내가 바로 그런 죄인 중에 괴수임을 인정합니다.
말로는 하루에 열두 번도 더 안 하겠다고 다짐 또 다짐합니다.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 다짐은 손바닥 뒤집듯 하며 주님과의 약속 어기기를 숱하게 하는 자입니다.
이런 나는 주의 공의로 심판 받아 마땅합니다.
내가 이런 주님의 심판을 거부한들 가당키나 하겠는지요?
나는 지금까지 주님이 행하신 그 심판들 앞에서 두 손으로 입을 가릴 정도로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여전히 주님이 주신 그 무덤의 자리에 주님과 함께 연합하여 들어갑니다.
그 자리가 곧 내가 있어야 할 자리임을 아오니 나를 불쌍히 여기사 주님의 피로 나를 씻어 정결케 되기를 원합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오늘은 공동체로 예배하는 주일입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 설립 5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각 처소에서 드리는 예배가 주님이 기뻐 받으시는 산 제사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계 3:7-13
제목 :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나의 묵상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거룩하고 진실하신 그리스도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는데 이 문을 능히 닫을 자가 없다.
나는 너의 행위를 잘 알고 있다.
네가 작은 능력을 가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모른다고 부인하지 않았다.
자칭 유대인이라고 자랑하지만 사실 그들은 사탄의 무리에 속한 자들이다.
그렇게 거짓말을 하면서 교회를 핍박하는 자 몇 명을 교회 앞에 무릎 꿇게 함으로써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할 것이다.
내가 인내하라고 하는 말씀을 너희가 잘 지켰으므로 나도 너를 지켜줄 것이다.
너희를 지킨다는 것은 땅에 속한 사람들을 시험하기 위하여 장차 온 세상에 임할 환난의 때로부터의 지킴을 말하는 것이다.
내가 속히 올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내가 가진 것을 굳게 붙잡아서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여라.
이기는 자는 내가 내 하나님의 성전에서 기둥이 되게 할 것이며 또한 그가 다시는 성전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 사람 위에 기록할 것이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것이다.
빌라델비아는 사데에서 남동쪽으로 약 40Km 떨어진 작은 도시이다.
하지만 이 도시는 미시아, 리디아, 프리기아를 포괄하는 아시아 동북 지역으로 뻗어나가는 무역의 요충지로서 동방의 관문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이 도시는 주후 17년 발생한 지진에 의해 크게 파손되었다가 로마의 티베리우스 황제 때 재건되었다.
그래서 그를 가리기 위해서 새로운 황제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네오(new) 가이사랴로 불리기도 했었다.
한편 이 도시는 북쪽에 화산 평원이 펼쳐져 있는데, 그 비옥한 평야에서 재배되는 포도는 질이 뛰어났다.
거기서 나오는 포도주 또한 아주 유명했다.
이로 인하여 이 도시를 지키는 수호신은 술의 신 또는 식물의 신으로 불리는 ‘디오니소스’였다.
또한 이 도시는 포도주만 아니라 직물과 피혁, 농업과 상업이 골고루 발달한 매우 부유한 도시였다.
소아시아의 다른 지역이 그러하듯 빌라델비아 역시 많은 헬라 신전과 이교적 행사를 치렀던 도시이다.
그런 점에서 빌라델비아는 ‘작은 아테네’로 불리기도 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거룩하고 진실하신 분이시다.
또한 그 분은 다윗의 열쇠를 가지셨는데 다윗의 열쇠란 메시야로서의 왕권을 의미한다.
계시록 5:5절에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라는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이 가리키는 것처럼 다윗의 뿌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유일무이한 신적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통치하실 것을 뜻한다.
또한 이는 현재도 그러하지만 장차 도래할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의 통치자이심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신앙고백 곧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기쁘게 받으셨다.
그래서 주님은 반석이라는 의미의 베드로의 이름 위에 교회를 세우실 것이며 그 교회를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실 것인데 그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라고 하셨다.
(마 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그런데 오늘 본문 8절에서 빌라델비아 교회에도 동일하게 이 말씀을 하신다.
(8a)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이는 베드로 자신이 무슨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열쇠의 주인 되신 그리스도께서 열기도 하시고 닫기도 하시는 주관자이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빌라델비아 교회 앞에 ‘열린 문’을 두었다는 말씀은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그리스도께서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문이다.
무엇보다 이 문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열두 문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계 21:9-27).
그 열린 문은 낮에 도무지 닫지 않고,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 그 문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게 된다.
이들이 바로 이기는 자들이요 오늘 본문에서 이기는 자들에게 주신 주님의 선물 곧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가 결코 그 성문을 통해서 나가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신다.
(계 21:25-27)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계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이 문 곧 열린 문은 그리스도의 지배와 통치에 참여하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문이다.
이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심판에서 구원으로 들어가는 문인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작은 능력을 가졌지만 온갖 환난과 박해 속에서도 주의 말씀을 지키며 주의 이름을 모른다고 부인하지 않았다.
세상적인 기준으로는 전혀 볼품없는 자들이었으며 볼품없는 일들을 하는 자들이었지만, 그들은 신실하게 복음 전하는 일을 계속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주님은 그들을 칭찬하신다.
반면 신앙의 강자임을 자처하는 유대인들의 모임은 실상은 사탄의 모임이라고 폭로하신다.
여기에 언급된 유대인이란 교회를 박해하는 유대인들의 모임을 말한다.
그들은 외식을 행하며 자기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하여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자들이다.
주님께서는 심히 보잘 것 없는 처지일지라도 그 자리에서 증인의 삶을 사는 자들을 사랑하신다.
그러나 결국 위선적이고 세상적인 관점에서 강한 유대인들은 그들 앞에 굴복시키겠다고 말씀하신다.
특히 주님께서는 그들이 가진 능력이 비록 적을지라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지킴으로 장차 임할 시험에서 이들을 지켜주신다.
이 말씀은 지금의 시험이 끝이 아니라 앞으로도 시험이 계속될 것이며 더 나아가 장차 온 세상에 임하는 종말적 시험을 말한다.
하지만 인내하면서 주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을 주님께서 반드시 지켜주신다.
(히 10:35-37)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신다.
따라서 지금 신실한 성도들은 그 때까지 인내하면서 자기의 면류관을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
(11절)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주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 하신 말씀은 오고오는 모든 시대 모든 교회를 향하여 하시는 말씀이다.
오늘날 세상의 가치 척도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다.
회사도 능력 있는 사람을 뽑기 위하여 온갖 선발 장치를 마련한다.
학교도 능력 있는 학생을 뽑기 위하여 여러 가지 다양한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가?
그런데 오늘날 심각한 문제는 교회마저 이런 능력 있는 자를 원하고 그 능력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고 말았다.
얼마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사람이며 그 사회적 지위는 얼마나 높은지, 그 사람이 가진 명성은 얼마나 되는지, 십일조와 각종 헌금은 얼마나 하는지, 사람을 전도하여 교회로 얼마나 잘 인도해 오는지, 교회 재정규모는 얼마나 좋은지, 예배당 사이즈는 얼마나 큰지, 이런 것이 그 사람의 가치 척도가 되어 교인을 그리고 교회를 평가하는 기준이 된지 이미 오래다.
참된 신앙은 크고 작은 능력이 아니라 주님이 그러하셨듯이 거룩함 곧 세속적인 것과 구별되는 것이며 신실함이다.
(7b) ...거룩하고 진실(신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되 능력의 결실인 성공으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신실함의 결실인 거룩으로 부르셨다.
비록 가진 능력이 적고 하는 일이 보잘 것 없을지라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지켜 복음을 증거하는 빌라델비아 교회를 지켜 마지막 때에 있을 그 시험을 주님은 면하게 하시며 보호해 주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지성소를 가리던 휘장을 찢으셨고 또한 그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문을 여셨다.
곧 우리 주님이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열린 문이 되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복음인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을 통하여 열린 문으로 들어가 날마다 영생의 삶을 사는 하나님 나라를 누려야 한다.
우리가 비록 고난과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상황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이다.
또한 그 통치를 받을 때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족하며, 주의 이름을 모른다고 부인하지 않는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나의 부끄러운 모습이 너무나 분명히 드러난다.
나 또한 목회를 하면서 능력을 가치 척도로 삼았으며 세상적인 능력이나 영적 능력(기도 응답, 여러 가지 은사체험 등)을 가진 이들을 더 소중하게 여겼던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나의 실체요 거부할 수 없는 실상이다.
물론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고 아닌 척 했지만, 나의 속마음은 어떻게 해서든지 빨리 교인 수를 늘려서 재정이 든든하고, 예배당도 크게 지으려고 했으며,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목회에 성공했다는 인정받기를 원하였었다.
그런데 목회성공이 도대체 무엇인가?
거기에 매몰되면 능력만 보이고 신실함의 결실인 거룩은 보이지 않는다.
작고 연약한 자들이나 가난하고 몸이 불편한 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목회성공이라는 외적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온갖 위선과 거짓말이 수단이 되고 결국 자칭 유대인들의 모임인 사탄의 회가 되고 마는 것이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 시간을 통하여 나의 파렴치함과 겉으로는 괜찮은 사람인 척 했던 나를 진솔하게 고발한다.
그리고 이런 나 자신이 주님 앞에서 능력이 아니라 주의 말씀을 지키며 쉐마하는 자로 서기를 소망한다.
전에 섬기던 교회가 어지럽게 된 것은 다름 아니라 나 때문임을 고백하며 진심으로 회개한다.
그리고 이제는 목회성공을 통하여 능력을 검증받는 자가 아니라 주의 말씀과 함께 신실한 자로 서기를 원한다.
죽기에만 합당한 나를 심판하신 주님을 찬양한다.
그리고 광야 아니 거칠고 황량한 황야로 내모신 주님께 깊은 마음으로 감사를 드린다.
그로 인하여 내 영이 살게 되었고, 또한 복음을 통하여 생명으로 살게 되었다.
주님의 뜻인 영생이 나의 뜻임을 인정하며 오늘도 그 영생의 본질인 하나님 나라를 영원한 현재로 누리는 하루가 되기를...
* 묵상 후 기도
주님...
빌라델비아는 주님을 닮은 교회였습니다.
비록 가난하고 볼품없이 초라한 교회였지만,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그 적은 능력으로도 묵묵히 주의 말씀을 지키며 인내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주의 복음으로 생명을 누리는 교회였기에 주님께서 마지막까지 지켜주실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그 모습 앞에서 나는 한없이 부끄럽고 작아집니다.
그러나 그 부끄러움을 알게 하신 주님의 심판이 있었기에 나를 다시 볼 수 있었고 이를 통하여 복음을 알게 되었나이다.
이제는 그 복음이 나의 복음이 되어 생명으로 증거되어 뭇 영혼을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 도구로 사용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변에 육신의 질고로 힘들어 하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이 복음이 생명이 되어 증거되게 하시고 생명의 복음을 통해서 육신의 질고 또한 넉넉히 삼킬 수 있는 은혜를 주옵소서.
이것이 세상적 영적 능력으로 치부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님 앞에서 신실하고 거룩함으로 열매 맺게 하옵소서.
세상적 능력에 대하여는 눈이 감겨지게 하시고 오직 주의 신실함과 생명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나를 비롯하여 주의 자녀들을 붙드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