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48세의 나이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 김남주 시인의 <아버지>라는
시를 소개합니다
맛깔나는 지역사투리와 60년대 한 시대의 농촌 모습이 그대로 그려지는 듯
합니다 아마 그 시대를 살아오신 분이라면 "아하~" 아니면 "음~" ....
이런 정도의 감상에 젖어들지 않을까 합니다
아버지/ 김남주
그래 그랬었다 그는
새벽이면 날이 새기가 무섭게 나를 깨워 재촉했다
-해가 중천에 뜨겠다 어서 일어나 소 띠끼러 가거라
그래 그랬었다 그는
지각할까 봐 아침밥 먹는 둥 마는 둥 사립문을 나서면 내 뒷통수에
대고 재촉했다
-학교 파하면 핑 와서 소깔 비어라이 길목에서 놀았다만 봐라 다리
몽댕이를 분질러 놓을팅게
그래그랬었다 그는
방금전에 점심 먹고 낮잠 한숨 붙이려는데 나를 깨워 재촉했다
-해 다 넘어가겄다 어서 일어나 나무하러 가거라
그래 그랬었다 그는
저녁 먹고 등잔불 밑에서 숙제 좀 하고 있으면
벌써 한숨 자고 이어나 재촉했다
-아직 안 자냐 석유 닳아진다 어서 불끄고 잠자거라
그래 그랬었다 그는
소가 아프면 읍내로 약을 지으러 간다 수의사를 부르러 간다 허둥
지둥 바빴으되
배가 아파 내가 죽는 시늉을 하면 건성으로 한 마디 할 뿐이었다
-거시기 뭐냐 뒤안에 가서 물꼬시나무 뿌리 좀 캐서 달여 멕여
그래 그랬었다 그는
내가 학교에서 상장을 타오면
이놈의 종이때기는 왜 이리 빳빳하냐면서
담배말이 종이로는 밑씻개로는 못쓰겠다면서
여기저기 구멍난 창구멍을 바르거나 도배지로 벽을 발라버렸다
그래 그랬었다 그는
지푸라기 하나 헛반데 쓰지 못하게 했다
어쩌다 내가 밥퇴기 한 알 바닥에 떨치면 죽일 듯이 눈알을 부라렸다
그래 그는 머슴이었다
십년 이십년 남의 집 부자집 머슴살이었다
나이 서른에 애꾸눈 각시 하나 얻었으되
그것은 보리 서 말에 얹혀 떠맡긴 주인집 딸이었다
그는 내가 커서 어서어서 커서
면서기 군서기가 되어 주기를 바랬다
손에 흙 안 묻히고 뺑돌이 의자에 앉아
펜대만 까닥까닥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주기를 바랬다
그는 금판사가 되면 돈을 갈퀴질한다고 늘 부러워했다
금판사가 아니라 검판사라고 내가 고쳐 말해주면
끝내 고집을 꺽지 않고 금판사가 되면 골방에 금싸라기가 그득
그득 쌓인다고 했다
그는 죽었다 홧병으로
내가 부자들의 모가지에 칼을 들이대고
경찰에 쫓기는 몸이 되었을 때
그는 죽어가면서 유언을 남겼다 한다
진갤논 일곱 마지기는 두째놈한테 띠어 주라고
성찬이 한번 보고 죽었으면 싶다고.
첫댓글 옛 시절이 생각 납니다~
그 시절 그랬었지요. 마음이 뭉클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