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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22일 화요일 새벽기도회 ♣
성경:아모스1:1-2(구1274P)
제목:드고아의 목자 아모스
1.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 지진 전 이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상으로 받은 말씀이라/
2.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부터 소리를 내시리니 목자의 초장이 마르고 갈멜 산 꼭대기가 마르리로다.
할렐루야! 오늘부터 배우게 될 아모스서의 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충만히 받으시고 말씀을 지켜 행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제목}***“드고아의 목자 아모스”
여러분! 미래에 임할 천국의 도래를 제시하는 요엘3장18-21절의 핵심적인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1. 천국은 풍성한 축복을 보상해줍니다(18절).
2. 천국은 죄를 극복한 상태에서 영원히 존재합니다(19절).
3. 우리의 축복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선포하십니다(20절).
이상의 본장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개인이나 단체는 반드시 파멸을 당하게 됩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의뢰하는자에게는 궁극적으로 승리와 구원을 맛보게됩니다.
심판의 날이 악인에게는 공포와 종말의 날이지만은 의인에게는 기쁨과 소망의 날입니다(말4:1-3절).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면서 조심스럽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요엘서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요엘서는 경고의 말씀이며 동시에 은혜와 구원, 축복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심령 깊숙히 기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드고아의 목자 아모스”(아모스1:1-2)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을 평가할 때 대표적으로 들을 수 있는 말이 “신앙은 좋은데 삶은 엉망이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신앙이 개인의 이기적인 기복신앙의 차원에 머무르고 있고 사회의식이 부족하고 역사의식이 희박하고 정의감이 결여되어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아모스서를 볼 때 우리는 이런 이원론적인 신앙이 얼마나 진리에 대해 무지한 결과로 나온 것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은혜만 베푸시는 분이 아니라 그의 백성들에게 믿지 않는 자들보다 더 높은 도덕적인 수준을 요구하고 계시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거기에 부응하지 못할 때 이방인들보다 더 높은 잣대로 심판하시는 것을 우리는 아모스서에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 백성 안에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라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불의가 판을 치고 공법이 막혀있는 세상이라고 말들을 합니다.
도대체 어디를 뚫어야 하나님의 법이 전 사회를 관통하여 흘러갈 수 있을까요? 이 문제에 대해 아모스가 답해주기를 바라며 아모스서의 말씀을 설교하려고 합니다.
1.시대적 배경.
그럼 이 아모스서가 쓰여진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1절을 보겠습니다.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 지진 전 이 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상으로 받은 말씀이라”.
여기 보니까 아모스는 유다의 왕이 웃시야이고 이스라엘의 왕이 여로보암일 때 활동한 선지자이고 남쪽 유다 출신이면서도 그의 활동 무대는 북쪽 이스라엘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활동한 웃시야와 여로보암시대는 남,북모두 강력한 국력을 자랑하던 시기였습니다.
역대하 26:1-15절에 의하면 남쪽 유다는 웃시야왕때 인접한 나라들과 싸워 영토를 크게 확장했습니다. 주위 나라들이 유다를 두려워해서 유다에 조공을 바칠 정도로 이름을 떨쳤던 시기였습니다.
북쪽 이스라엘도 남쪽 유다 못지않게 강성한 시기가 바로 이 시기였습니다. 왕하 15:25-29절을 보면 여로보암 2세때 영토를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넓혔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모스가 예언자로 활동하던 시기는 남쪽 유다와 북쪽 이스라엘 모두가 막강한 국력과 부를 자랑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이때가 남,북 모두 종교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가장 타락한 시기였다는 것입니다.
아모스가 살던 시대는 북쪽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부유한 시대였지만 가장 타락하고 부패한 시대였습니다.
아모스 2장6절에는 그들이 은을 받고 의인을 팔았으며 신 한 컬레에 궁핍한 자를 팔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 사회가 돈 때문에 인간의 모든 것을 팔아먹는 탐욕과 황금 만능과 인간성 부재의 시대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모스2장7절은 성적으로 타락한 모습을 보여주고 8절은 종교적으로 부패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암3:15절을 보면 그들은 여름궁과 겨울궁을 따로 둘 정도로, 그것도 상아궁을 둘 정도로 사치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모스4:1절에 보니까 사마리아의 암소라고 불리우는 부녀자들이 가난한 자를 학대하며 궁핍한 자를 압제하여 얻은 부를 가지고 집안의 가장에게 술을 따르라고 할 정도로 타락하고 부패한 시대였습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은 아모스를 불러서 그 시대의 백성들에게 심판의 메시지를 외치게 한 것입니다.
우리가 한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아모스가 구약의 많은 예언자중에 문서 예언자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문서 예언자(12명의 소선지, 4명의 대선지)는 그들의 예언을 글로 남긴 예언자들인데 시대적으로는 이들이 비문서 예언자들(나단, 엘리야, 엘리사)보다 늦게 등장합니다.
왜 아모스가 문서예언자인 것이 중요한가 하면 문서예언자들이 등장이 그 당시의 사회적인 경향을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서예언자들은 약 8세기경부터 등장하는데 이들은 주로 이스라엘이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극도로 부패했을 때,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예언자들이 세속화되고 그들의 활동이 점차 직업화되는 경향이 있을 때 이들을 세속화를 책망하고 개혁을 외치면서 등장합니다.
이 말은 아모스가 살던 시대의 백성들이 바른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싫어했고 선지자들도 여기에 편승해 달콤한 말로 그들의 부패한 삶을 위로만 했던 말씀이 타락한 시대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백성들은 위로와 축복만을 원했고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열심을 잃어버리고 세속화되고 직업화되어 그 시대를 향한 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지 못했을 때 하나님은 아모스를 통해 그 시대를 향한 경고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2.아모스의 출신.
그 다음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아모스의 출신입니다.
1절에 보니까 아모스는 자신을 “드고아의 목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아모스가 예언활동에만 전념하는 전문적인 예언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모스7:14절에도 아모스는 자신을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그가 전문적인 선지자 훈련을 받은 적이 없는 평신도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럼 왜 수많은 선지자들을 제쳐놓고 하나님은 평신도인 드고아의 목자인 아모스를 통해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까?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그 당시의 많은 선지자들이 타락하고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드고아의 목자인 아모스를 선지자로 삼아 이스라엘로 보내신 것은 이스라엘에 선지자가 없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직업적인 선지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생계를 위해 직업적으로 예언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선지자가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많은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들은 모두 말씀이 없는 직업적인 선지자들이었고 입에 풀칠하기 위하여 설교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의 문제도 동일하지 않습니까?
설교자나 교인들이 철저하게 말씀에 헌신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닙니까? 물론 아직도 대부분의 설교자들이 말씀에 헌신되어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헌신되지 않은 자가 신학교를 가서 목사가 되고 교인들도 말씀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는 것, 이것이 지금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아모스때의 북쪽 이스라엘이 그러했습니다. 백성들은 모두 편안한 신앙과 좀더 부유한 삶을 원했고 선지자들은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한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때에 거짓 선지자들을 사용하시지 않고 남쪽 유다 출신인 드고아의 목자 아모스를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을 이스라엘에게 전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저 타락한 선지자를 고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메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이 아무리 타락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메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타락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로막고 거짓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린다해도 하나님은 누구를 들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의 백성들에게 하고야 마신 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것은 아직 하나님이 북쪽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아직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기에 남쪽 유다 출신의 드고아의 목자 아모스를 불러서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심판의 메시지도 주실 필요가 없습니다. 가만히 두면 저절로 심판 당하고 저절로 멸망할 테인데 심판과 경고의 메시지를 주실 필요가 없지요.
하나님의 교회와 신자들에게 가장 큰 심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른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을 버렸다는 뜻이지요. 그러나 아무리 부패하고 타락해도 아직 그들에게 심판의 메시지와 경고의 메시지가 전해지고 있다는 것은 아직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시고 돌아오기를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비록 북쪽 이스라엘이 신앙의 정통성을 잃었고 참된 여호와의 종교의 특성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을 당신의 백성으로 생각하고 계시며 지금이라도 바른 말씀으로 돌아만 오면 얼마든지 그들을 치료하시고 새롭게 하여 받아들이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잘못된 신자나 교회를 보더라도 함부로 단정지어 저 사람은 끝이야, 저 교회는 끝이야,라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직 그들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정당한 반응을 보인다면 하나님은 기쁨으로 그들을 다시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자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3.하나님의 말씀의 성격.
그 다음 아모스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성격입니다.
2절입니다.“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부터 소리를 내시리니 목자의 초장이 마르고 갈멜 산 꼭대기가 마르리로다”.
이것은 경고의 음성입니다. 심판의 음성입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아모스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전달되고 있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서입니까? 아닙니다. 심판하기 위해서입니다. 책망하고 경고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 부르짖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대해 울부짖는 맹수처럼, 사자처럼 달려드신다는 말씀입니다.
왜 하나님이 이렇게 사자처럼, 맹수처럼 이스라엘을 향하여 달려드십니까?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에게로 나아갔고 하나님 앞에서 참된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두 가지로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는 한없이 자비롭고 부드러운 사랑의 음성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으로 다가가십니다. 결코 그
들을 존전에서 쫒아내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끊임없이 자기 욕심으로 죄를 향해 달려가는 자들에 대해서는 부르짖는 사자의 음성으로 발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반드시 죄를 찾아내실 것이며 그 죄에 대해 심판하실 것입니다.
주목할 것은 아모스가 자신이 받은 말씀을 지진 이 년전이라고 밝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모스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돌이키지 않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슥 14:5절에 “그 산 골짜기는 아셀까지 이를지라 너희가 그 산골짜기로 도망하되 유다 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 같이 하리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웃시야왕때 일어났던 지진은 보통 지진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친 엄청난 지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모스가 예언한 지 이 년만에 이런 엄청난 지진이 일어났다는 것은 말씀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엄청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부르짖는 사자처럼 그들의 죄를 책망하시면서 돌이키기를 바라신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들려짐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들이 말씀에 반응하지 않고 그들의 더러운 욕심과 탐욕으로 달려간다면 반드시 그 심판의 말씀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날 우리가 말씀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게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추는 것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가장 싫어하십니다.
그러나 겸손한 자에게는 한없는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교만한 것이 무엇이고 겸손한 것이 무엇입니까? 다른 것보다 말씀에 대한 태도입니다.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 나에게 전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자신의 고집과 생각대로 살아가는 것이 교만입니다.
아모스서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더욱 겸손한 자가 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우리의 자랑과 교만과 허영이 주 앞에 다 발가벗겨져서 철저하게 주 앞에 낮출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지 않으시면 도저히 소망이 없는 상태로 우리 자신들을 낮추는 시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높여주시기를 기대합니다.
***{결론}***
여러분!하나님은 죄를 싫어하십니다. 미워하십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죄를 반드시 벌하셔야 하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인간의 죄는 하나님의 독생자까지 이 땅에 끌고 내려와서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했습니까?
이 사실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죄를 가까이 하지 말고 멀리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우리 모든 죄를 다 용서해주시고 깨끗하게 하시고 우리를 의롭다 해주셨는데 이제는 우리의 몸을 더 이상 불의의 병기로 드리지 말고 의의 병기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늘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낼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묵상:아모스1:1-2절입니다. 오늘부터 배우게 될 아모스서를 통하여 은혜를 충만히 받으시고 오늘의 아모스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