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원 과정을 모두 마치고 늦은 나이에 신병훈련소에 들어가니
나보다 어린 소대장은 신원진술서를 보며
“너는 탈영하지는 않겠구나”라고 말했다.
신병 주제에 뭐라고 물어볼 수도 없어 퇴소할 무렵에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그가 냉랭하게 대답했다.
“알파벳을 아는 놈은 탈영하지 않아.” 그 뒤로 알파벳을 읽으며
한 시대의 지식인으로 살면서, 내가 가는 이 길이 맞나 하고
뒤를 돌아볼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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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에 길들여지고 침묵 택해
공천에 함몰되고 공부도 안 해
30년 내 이런 기류 안 달라질 것
좌파 정권 이후 정제되지 않은 반엘리트주의와 반미주의가
이 사회를 강타하면서(서울대 이인호) 한국의 지식 구도는 급선회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어설픈 독서량으로 황색 저널리즘에 편승하여
게릴라식으로 저돌하는(서울대 전상인) 생계형 허위 지식인의 사냥터가 되었다.
지식인은 “카메라만 들이대면 몸을 틀어 앞머리를 쓰다듬는 돼지”
(최영미의 시 ‘돼지’)로 살아간다.
자식과 함께 웅크리고 앉아 부정 입학 서류를 꾸며 유죄 판결을 받아도
출옥할 때 개선장군처럼 손을 흔들더니 국회의원에 출마하는 모습은 보기에도 황당하다.
조국은 선택 사항이 아니니 그래도 함께 살 수밖에 없다.
그래서 황현(黃玹)의 탄식처럼,
배운 값하며 살기가 참으로 힘들다(難作人間識字人).
유신 시대에도 한국의 지성사가 이렇게 황폐하지 않았다.
왜 지식인은 몰락하는가? 그들에게는 함정들이 있다.
첫째는 생계 문제이다.
유교를 잘못 해석한 청빈이라는 허구가 지식인을 죽였다.
지식인이 재물을 탐하는 것이 허물이듯 가난한 것도 허물이다.
지식인이 가난해야 할 이유가 없다.
동서양의 고금을 막론하고 지식인의 토대는 재산(토지)과 지식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관료가 토지를 겸병(兼倂)했으므로
지식인에게 토지가 돌아가지 않았다.
따라서 토지가 신분을 말하던 지식인은 박해에 의해서가 아니라
빈곤 때문에 자멸했다.
그런데 지금은 좀 다르다.
한국 대학 교수의 수입은 임금 노동자의 상위 4%에 이른다.
그러니 생계를 탓할 일도 아니다.
그런 정도라면 고급 아파트에 살며 골프 치고 포도주 마시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
그러니 편하게 살지 굳이 마음 불편하게 살 이유가 없다.
그들은 이미 그런 삶에 잘 길들어가고 있다.
현대사에서 그 호강하는 연금과 공훈을 거절한 사람은
김동길(金東吉)과 김문수(金文洙)와 장기표(張琪杓) 셋뿐이다.
둘째로 지식인은 민중주의의 박해를 견딜 만한 자기지탱력이 필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박해받는 용기보다는 침묵이 신상에 편하다는 비굴함이 시대의 주조(主潮)가 되었고
그것이 침묵을 낳았다. 민중을 동원하여 내 편으로 만들기는 쉽다.
국민의 영혼을 매수하는 데에는 27만원이면 충분하다.
돈 받고 바로 찍으면 된다지만 그런 사례는 아직 정치사에 보고된 바 없다.
그렇다면 연봉 몇 억을 받게 된 강남 좌파는 공의로운가? 그렇지 않다.
그들에게는 이미 모처럼의 기회를 즐기느라 공의로움이나
남들의 아픔을 돌아볼 양심이 없으며 맑지도 않다.
그들에게는 노란봉투법이 정의에 우선한다.
거기에 더하여 지금 한국의 지식인은 민중주의의 협박에 겁먹고 있다.
안 보고 안 읽고 안 들으면 그만이라지만,
아내와 자식들 보기가 민망하고 주위의 걱정하는 소리를 외면하기 어렵다.
대중의 익명성은 그들의 좋은 방패가 되고 있으며,
정치인들로서는 그들이 그리 고마울 수가 없다.
셋째로 한국의 지식인은 공천에 함몰되어 있다.
텔레비전에 몇 번 출연하면 공천받거나 대학의 특임교수가 되는
이 시대에 지식인을 분별하기가 어렵다.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당사자나 방송국이나 대학의 책임이 크지만,
그들에 갈채를 보내는 민중의 책임도 크다.
대학에서 비리로 퇴출되어도 텔레비전에 몇 번 나오면
공천을 받는 데 지장이 없다.
베네수엘라나 소말리아도 이렇게 살지 않는다.
공천만 주면 물고 뜯을 개떼는 우리 사회에 지천으로 깔려 있다.
해방정국 이래 지도자들에게 “단군 이래 성군이 나셨다”고
용비어천가를 쓴 사람들은 당대의 지식인들이었다.
우리 역사에서 성군은 세종(世宗)을 끝으로 대가 끊어졌다.
한국현대사를 돌아보면 지식은 이념을 넘지 못하고,
이념은 혈육을 넘지 못하고, 혈육은 돈을 넘지 못하고, 돈은 공천을 넘지 못했다.
넷째로 이 모든 악행의 근원은 공부하지 않은 탓이다.
그렇다면 저 명문대학 출신들이 공부하지 않았다는 뜻인가? 아니다.
그들은 제대로 공부한 것이 아니라 고시와 패거리를 준비한 것이다.
퇴계(退溪)의 가르침에 따르면, 정의감은 가슴에서 우러나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판단하여 나오는 것이다.
판단은 용기가 아니라 지식의 소산이다.
공부가 부족하여 속에 든 것이 없다 보니 합당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책상을 두드리며 소리만 지르는 국회의원의 모습이 보기에도 안쓰럽다.
현대와 같은 출세 위주의 산업 사회에서
지조가 생계를 뛰어넘기 어렵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지만,
영창이 무서워 철조망을 넘지 못하는 훈련소의 신병처럼 남은 날을 살아갈 수는 없다.
우리 사회에는 남명(南溟) 조식(曺植)이나 드레퓌스(A. Dreyfus)가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지금 나를 비롯하여 한국의 지식인은 변절했거나 죽었다.
그리고 슬프게도 이 어둠은 오래 갈 것이다.
앞으로 30년 안에 걷혀도 빠른 셈이니, 내 생애에 좋은 세상을 보기는 어렵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