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사순시기가 되면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1997년 IMF외환위기로 인해 우리나라 경제가 극도로 어려워지자 노숙자 수가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이때 대구대교구에서는 헐벗고 가난한 이웃과 함께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취지와 곧 사제가 될 이들이 겪어봄직하다는 생각에서 가톨릭 신학생들의 노숙자 생활체험이라는 행사(?)를 실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학생들은 길거리로 나와 지하도 등지에서 바닥에 종이박스를 찢어 깔고 신문지로 얼굴과 몸을 적당히 덮고 누워 잠도 자고 그들과 함께 식사도 하는 등, 적어도 겉보기에는 영락없는 노숙자모습으로 생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노숙자 체험은 결과적으로는 보기좋게 실패했던 겁니다.
왜냐하면, 길거리에서 신문지 한장으로 잠을 자고, 남이 먹다 버려진 음식으로 끼니를 때운다고 해서 노숙자가 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진짜 노숙자와 체험 신학생을 구분짓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생활모습이 아니었으며 결정적으로 같을 수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희망이었습니다.
희망을 갖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였습니다.
노숙자들은 삶의 희망을 놓아 버린 지 오래였고, 체험에 참가한 신학생들의 마음속에는 항상 간직하고 있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진짜 노숙자체험은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에겐 희망이 있는가?
있다면 어떤 희망을 갖고 있는가?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 로마서 8, 25-
사순절은 단순히 절제와 회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희망을 품는 시기입니다.
올해 사순시기를 지내는 우리 동촌본당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느님께서 주신 희망을 품고 부활의 기쁨을 향해 나아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