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6: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6:4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6:5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6:7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
6:8 길르앗은 악을 행하는 자의 고을이라 피 발자국으로 가득 찼도다
6:9 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림 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그들이 사악을 행하였느니라
6:10 내가 이스라엘 집에서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거기서 에브라임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은 더럽혀졌느니라
6:11 또한 유다여 내가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네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느니라
◈ 주해
1. 호세아 1-3장을 통해 확증된 사랑 안에서 4-14장은 이스라엘에게 회개를 촉구한다.
1) 하나님의 백성이 망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고집 센 암송아지처럼 말을 듣지 않고 우상과 연합하였다.
2) 고멜 안에는 음란한 마음이 있어서 여호와를 알지 못한다. 또한 그들의 행위가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한다.
3) 여호와를 안다면, 음행에도 불구하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음란한 마음은 여호와를 알지 못하게 하였고, 여호와를 알지 못하기에 돌아가지 못한다.
2. 이스라엘은 음행하면서도 양 떼와 소 떼를 몰고 여호와를 찾아 나서며 예배했다.
1) 그들은 바알도 만나지 못하고(2:6-7), 여호와 하나님도 만나지 못한다(5:6)
3.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다른 신을 섬길지라도 그들을 사랑한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할 때까지 기다리시고, 심판하시고, 인도하신다.
1) 호세아는 여전히 사랑으로 기다리시는 하나님께 돌아가자는 회개를 촉구한다.
2) 물론 호세아가 촉구하는 회개는 진실된 회개다. 형식적으로 돌아오는 것으로는 하나님에게로 돌아오지 못한다(7:16; “그들은 돌아오나 높으신 자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니”).
4. 고멜은 호세아를 떠나 스스로 비참해졌고,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셨다.
1) 원래는 이스라엘이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여호와께 돌아가야 한다.
- 그러나 고멜은 탕자처럼 성숙한 회개로 돌아가지 못한다.
2) 하나님은 고멜의 길을 막아 바알을 만나지 못하게 하셨고, 그제서야 그 때의 형편이 나았기 때문에 남편에게 돌아가겠다고 생각하는 자다.
3) 그래서 호세아는 고멜의 상처와 고통을 치료 받기 위해서 하나님께 돌아가자고 호소한다.
호 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호 6: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5. 이스라엘은 이 상처를 치료하기 위하여 앗수르를 의지했었고, 바알을 의지했었다.
1) 그러나 더욱 깊은 상처로 고통하는 고멜에게 우리를 찢으신 하나님이 도로 낫게 하시며, 우리를 치신 하나님이 싸매어 주실 것임으로 돌아가자고 한다.
2) 어차피 싸매어 주실 것인데 치신 것이 아니다. 심판으로 결론 났어야 할 자를 친 것이다.
- 그리고 심판을 통하여 낮아져서 돌아온 자를 싸매어 주심으로, 하나님은 고멜에게 장가 드신다. 이전의 회복이 아니라, 완전한 신혼의 사랑으로 치유하신다.
6. 여호와께 돌아가 낫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여호와를 아는 것”이다.
1) 이미 호세아는 5장 4절에서 음란한 마음 때문에 여호와를 알지 못함으로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한다고 하였다.
2) 여호와를 알면 음란한 고멜도 여호와께 돌아가 순결한 신부로 결혼하게 된다.
3) 그래서 호세아는 여호와를 아는데 온전히 힘써야 한다고 호소한다.
호 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7. 하나님을 아는 것은 ‘야다’로 아는 것이다.
1) 이는 인격적인 사귐을 통하여 아는 것이다. 남편이 아내를 알고, 아내가 남편을 아는 것이다.
8. 우리가 여호와를 알기 위해서 힘쓸 수 있는 근거를 말해 준다.
1) 하나님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이 나타나신다. 성실하게 우리에게 임하신다.
2) 아버지가 삐져 있으면 탕자가 돌아가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다. 호세아가 변덕을 부린다면 고멜이 돌아가도 헛된 일이다.
3) 그러나 하나님은 고멜이 다른 신을 섬기며 행음할 그 때에도 사랑함으로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여호와를 알기 위해 힘쓰면, 여호와를 알게 하신다.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면 우리를 영접하여 싸매어 주신다.
9. 하나님은 에브라임과 유다를 향하여 “내가 너희를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으신다.
1) 백성들이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돌아오지 않고, 돌아와도 형식적으로 돌아오고 마음은 딴데 있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하겠느냐”고 반문하는 것이다.
2) 하나님께 반응하며 ‘중심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치유해 주겠느냐는 뜻도 된다.
3) 그러기에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 그들을 칠 수 밖에 없다고 하신다.
10.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형식적인 예배나 회개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표준새]호 6:6 내가 바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랑이지, 제사가 아니다. 불살라 바치는 제사보다는 너희가 나 하나님을 알기를 더 바란다.
1) 하나님은 변덕스러운 사랑을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기 원하신다”는 것이다.
2) 여호와를 영으로 알면 여호와께 돌아오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여호와를 사랑하게 된다.
11. 하나님은 그들이 예배한다고 하지만, 실상 그들은 언약을 깨뜨렸다고 하신다.
1)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하나님을 반역하였다.
호 6:10 내가 이스라엘 집에서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거기서 에브라임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은 더럽혀졌느니라
12.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성전에서 예배하고 형식적으로 율법을 지키는 일은 예수님 때에도 있었다.
1)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죄인과 세리와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을 보고 그를 비난하였다.
- 이에 예수님은 호 6:6절을 인용하며 자기는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다고 대답하셨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자비요, 희생제물이 아니다'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 9:12-13).
2) 하나님은 호세아 때나, 예수님 때나, 지금이나, 우리가 죄인으로 정직하게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하신다.
13. 그런데 중심으로 하나님께 돌아가고자 해도 돌아가지 못한다면, 먼저 여호와를 알기 위해 힘써야 한다.
1) 먼저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성령님의 조명과 성령님의 가르침을 구하며 성경을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2) 구체적으로는 십자가복음과 장사복음과 부활복음으로 나아가 생명을 얻어야 한다.
3) 또한 탕자처럼 하나님께 돌아가, 나를 용납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14. 하나님 편에서는 주권적인 사랑, 은혜의 지배, 불가항력적인 사랑으로 고멜을 사온다.
1) 우리 편에서 할 일은 “힘써 여호와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여호와를 앎으로 하나님이 찾아 오실 때 “반응”하는 것이다.
- 구속의 은총을 힘입어 비참한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집에 거하는 것이다.
2) 영생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 나의 묵상
호세아는 어떻게 하나님께 돌아갈지 그 길을 알지 못하는 나에게 조금의 안개를 거두어 준다. 먼저는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사랑이 여전히 사랑하고 있고, 그 사랑이 결국은 순결한 신부로 세운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돌아가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지 말고, “여호와를 아는데 힘쓰라”는 것이다. 여호와를 알지 못하면 결코 돌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회개하는 것,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 처음 사랑을 되찾는 것, 순종하는 것, 복음을 통해 연합하는 것은 모두 옳고 진리다. 그러나 마음은 원이로되 그 진리대로 되지 않으면 도리어 답답하다. “누구는 공부를 못 하고 싶어서 못하는가?”처럼 “누구는 생명을 얻지 못하고 싶어서 못하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호세아는 차근 차근, 기초부터 공부를 시작해 보자고 한다. 차근 차근 여호와를 알아가자고 한다. 그리고 힘써서 알아가자고 한다.
겸손, 회개, 연합, 생명, 돌아감으로 낫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하신다. 내 편에서 할 수 있는 대로 여호와를 아는데 힘쓰라고 하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힘쓰라고 한다. 호세아는 나를 공감하고, 나를 이해함으로 따뜻하게 말해 준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도달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힘써야 할 것을 사랑으로 알려주며 타이른다.
말씀 묵상뿐 아니라,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면했듯이 성경을 읽고,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라고 한다. 차분히 하나님을 알려 주는 믿음의 선배들에게 배우라고 한다.
오늘도 아주 작은 몸짓으로 하나님을 알기 원한다. 호세아를 묵상함으로 하나님을 알기 원한다. 그리고 힘써 하나님을 알기 원한다. 그리하여 저절로 여호와께 돌아가고, 저절로 변함 없는 사랑으로 사랑하길 원한다. 이 작은 몸짓도 주님의 은혜다. 그리고 은혜의 지배,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생명 얻기를 구한다.
◈ 묵상 기도
주님, 저는 고멜입니다. 고멜처럼 하나님께 돌아가지 못하고, 고멜처럼 변함없는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런 나를 여전히 사랑하시는 주님, 그런 나에게 “힘써 여호와를 알라”하시는 주님, 주님을 알아가겠습니다. 주님의 주권적인 은총으로 임하소서. 일정한 빛같이 나타나시는 하나님을 날마다 만나며 알기 원합니다. 저는 주님을 알기 위해 힘쓰겠사오니, 주님의 주권적인 은혜와 사랑, 초월적인 사랑으로 찾아와 주십시오. 성령으로 임하사 가르쳐 주십시오. 은혜의 지배로 생명을 얻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이 모습 이대로 사랑하시는 그 지극한 사랑, 영원한 사랑을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를 아는 지각을 열어 주십시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을 알며, 부활하신 주님을 알게 하여 주십시오. 11월의 마지막 주간, 주님이 주관하시고 인도하소서. 셀장님들과 섬김이들, 직분자들에게 은혜의 지배로 생명을 주옵소서. 입시를 치르는 자녀들을 눈동자처럼 돌보아 주옵소서. 영혼육을 주관하시고 통치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