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때리는 남자’가 보수주의 인가?
한국 정치지형도에서 구분법이라면 ‘애국세력’과 ‘반역세력’이면 족하다. 원론적인 의미의 ‘보수’·‘진보’와 ‘우익’과 ‘좌익’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며, 상대적인 의미의 표현도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과잉수사로서의 그것들을 제외하면 용어를 정확히 쓰는 사람의 숫자는 무시하는 게 나을 지경이다. 좌파 공식을 폐기하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붙잡고 ‘反김정일’ 나서는 이들도 있다. 그러한 이들을 ‘남’으로 설정할 수 있는 표현의 일반화는 온당치 못할 듯 싶다.
‘보수주의’는 모두가 알다시피 ‘진보주의’의 심장인, <프랑스 혁명>에서 ‘혁명 냉소주의’를 기반으로 시작되었다. 정치적 레볼루션(혁명)이 문화적 지평을 바꾼 게 뭐냐 하는 것이 의문의 출발이다. 정치적 레볼루션이 가져다 주는 것은, 기나긴 시간 속의 일종의 ‘야만’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 보수주의자의 근본 답변이다.
프랑스혁명을 근간으로 ‘이쪽’이냐 ‘저쪽’이냐의 사고의 선택이다. 좌파 진보주의는 ‘극복’과 ‘단절’을 주장하고, 우파 보수주의는 ‘계승’과 ‘지속’을 의미한다. 좌파측에서 ‘수구꼴통의 연장’이라 질타당하고(맑스주의 기준), 우파측에서는 ‘좌파 이중대 의혹(?)’이 지적당하는 뉴라이트의 근본 이유는, 백과사전 속에 기재될 평범한 지식에 세력의 바탕을 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非김영삼계에겐 좌익주의를 쓰고 김대중계에겐 우익주의를 쓰겠다는 측면이, ‘올드라이트’란 이름일 것이다.
워낙, 백낙청계 [창작과 비평] 식구들에 붙어서 ‘선정적’으로 디자인된 안병직교수의 ‘식민지개발론’은, 문화로 역사를 읽는 1950년대를 통해 보면 저절로 이해가 된다. 1930년대 말 ‘좌파 공산 세력’===> 1950년대 ‘반체제 세력’----연대로서의 대학가 좌파 운동 세력 을 제외하고는, 사회 전방위에서 일본어는 만연되게 쓰였다. 즉, 맑스 레닌주의를 신봉하는 사회의 5% 미만을 제외하고서는, 일제 말에 일본어를 어린 시절에 배웠던 이들은 여기저기서 숙달되게 일본어를 썼다.
박지향교수·이영훈교수는 ‘문화사’와 ‘경제사’의 입장에서 역사 새로 쓰기를 시도하는 분들이다. 1988년 이전에 고등학교를 마친 세대들이 고등학교 때 역사를 배웠던 바에서, ‘1948년 건국’이후에 국민적 자존심이 생겼다는 표현은 ‘현실’에 부합되지 않는다. 김용옥이 [노자철학 이것이다]에서 ‘조선왕조’가 개국되었어도, 여전히 고려조의 불교 문화가 융성되었다는 바탕의 지적은 어떤 역사적 지평 속에서 솟아난 표현인가는 선명하다. 4면 컷 만화에서 ‘일본어 쓰면 그리 좋아요?’ 하는 풍자만화가 있었고, 당시의 신문 광고에는 일본어가 당당하게 들어있었다.
한국 현대문학사에서도 1960년대에 이어령 교수와 김현 교수께서 ‘일본어로 생각하는 세대’와 ‘한국어로 생각하는 세대’를 나눴던 것을 기억한다. 6.25 전쟁을 치르며 일제 시대에 나라 건설을 바랬던 ‘팔학년’들의 하나님이 간섭하는 ‘대한민국’의 역사라는 측면을 온전히 끌어 안으면서, 6학년 인텔리들이 느꼈던 체험사를 온전히 반영하려는 것이 [교과서포럼]의 시도일 것이다.
6학년들은 우익 30·40이 고등학교에서 배운 ‘국민윤리’의 성곽을 답답해한다. 좌익들은 우익 30·40이 고등학교에서 배운 ‘대한민국 건국의 자존심’이란 차원의 팔학년 일반이 느꼈던 심정적 차원을 이용했다. [교과서포럼]이 ‘사실(fact)’을 말하면서도 여론에서 몰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된다면서 일제 시대와 6.25 전쟁을 거쳐서 ‘나라’의 소중함을 느꼈던 ‘팔학년’들의 논거틀에 대하여, 대중들의 감수성보다는 과도하게 단절하려 했음 때문이다.
우익은 정말로 ‘지식인 인재’가 없다. 박지향교수가 시도하는 ‘문화로 역사 읽기’를 온전하게 인터넷 웹 매체에서 후원해줄 논객 병력은, 냉정하게 ‘바다를 건너다’ 뿐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싶어진다. 오만도 아니요 그렇다고 겸손도 아니라고 여겨진다. (‘문화사학회’ 한때 가입했으나, 회비 더 안내는 무늬만 회원) 애국세력 팔학년들의 ‘거대서사’를 인정하면서도, 육학년들이 느꼈던 ‘미시서사’를 끌어안으려면, 우익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 새롭게 교양교육을 거쳐서 일반화시켜야 한다.
통계청 들날락 거리면서 자료를 얻어서 그 주제를 매스미디어에서 계속 터뜨리면서 교육 시켜 나갔으면, [교과서포럼]에 대하여 한 구절도 오해가 될 턱이 없었다.
우익의 지식인 인재 부족이 드러나면 채워지는 것은 늘 운동권 경력이나 좌익 경력을 하나 가득 품고서 ‘믿어주세요’하는 측면이며, 우익 컨텐츠 개발이 지원된 사례는 거의 없다. 박사모 내 YS사사모가 놀랄 만큼, 反YS의 필봉(?)을 높이 치드는 바는, 정말로 우익 내에 지식인 자원이 참담하게 부족하다는 것을 만든 장본인에 대한 원한인 것이다.
우익의 지식 컨텐츠 개발이 지속적으로 억제 당했고, 좌익의 지식 컨텐츠는 김영삼 시대의 지원 이후로 만발했기 때문에, 한나라당 지지자 조차도 우익 정신을 제대로 기억하는 자들이 거의 사라졌다.
아내 때리는 남자가 보수주의인가? 를 묻는 한국 사회에서, 대선 이슈로 중요한 것은 ‘각자의 잇속’의 측면이다. 이명박이 ‘검은 안경’을 쓰며 ‘강한 거’ ‘강한 거’를 자꾸 반복하는 배경에는, 아내 때리는 남자가 보수주의라는 우리 사회에 잘못된 편견을 부르짖는 측면에 있다. 아내 때리는 남자는 보수주의가 아니다. 그것이 옳다면, 노무현 대통령에 관련책에서 ‘아내를 때렸다’는 부분의 발췌인용이 인터넷을 돌고 있는데, 노대통령이 정말 보수주의자란 말이 된다.
이명박이 박근혜님의 악수를 으스러지게 했다. 이는 경선 때 만나면 으스러지게 ‘꽉 쥐어 버리겠다’는 암시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이명박님은 네티즌논객을 고소했다. 확~ 부여 잡는 확~쎄려 잡는 화통하고 신나는 어떠한 이미지가 ‘우익’이란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일본우익은 [한비자]의 ‘똥차는 가라’를 일본의 20세기 좌파 역사 의 대화관계 속에서 포용했다. 진중권은 5.16군사혁명의 발발을 ‘일본우익’ 관점의 전면적 개입으로 보는 논객이다. 이승만 타도가 아닌 이기붕이 부정선거 당선이며 장면이 부통령 되어야 한다는 데모를 통해볼 때 부정선거와 정권 전복의지에 필연성은 없었다. 김주열의 최루탄 사진과 이승만 하야는 우발적 연결이다. 그러나, 강만길 계열의 역사책은 4.19를 이승만 정권 타도의 상징으로 바라본다. 지나놓고 역사를 덧칠하여 소설쓰는 장난은 어디에서든 많이 개입된다.
바다를 건너다의 보수주의는 좌파 대학가 데모 난숙기 때 느꼈다. 덤프 트럭에 모래 담기보다도 더 많은 좌파들을 만나고서도 느꼈던 바는, 좌파들은 사회의 유기적 질서를 깨뜨리고도 그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면 된다는 일관된 사고관을 가졌다. 그들은 자신들이 질서를 깨뜨려도 누군가는 뒷설거지 해주는 보수주의자들을 은근히 바라고 있다. 그래서, 서른 즈음에 나는 ‘보수주의자’가 되고 싶었다.
보수주의자가 그 자체로 강렬한 신념으로 보수주의만 생각해도 하나님의 섭리로서 유기적 질서가 맞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50·60세대의 맺힌 한 때문으로, 혹은 좌파 운동권들의 개입의 명분 때문으로, 보수주의자가 온건히 보수주의만 공부할 수 있는 한국 여론계의 ‘절반’을 차지할 당당한 몫을 말하지 않는다.
유기적 질서가 있고 그것이 정확하게 뭐라 딱 부러지게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러한 질서에 대해서 대충은 열심히 노력하면 말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바다를 건너다는 ‘하나님이 한국 현대사에 개입하여 얻어낼 질서’를 생각한다.
아내를 때리는 남자가 보수주의자가 아니다. 대가족 시대에 형제들이 하도 많아서 서로 간에 아웅다웅 싸우는 것을 방지하러, 한 형제에 몰아주고 ‘여자’에겐 “여자가 배워서 뭐하노, 잉” 하는 가닥에서 문화사적 연구로 만날 ‘인물’들에 작별 인사를 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