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날 주시니 감사합니다.
날이 많이 쌀쌀해졌습니다.
영적으로도 찬바람이 틈타지 않도록 허리를 잘 동이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날마다 오염되는 영혼, 날마다 덮어 정결케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2. 또 보매 힘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
3.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4.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5.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7.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본문 주해)
1절 : 보좌에 앉으신 이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는데 거기 안팎으로 글이 적혀 있다.
그런데 그 두루마리는 일곱 도장을 찍어 봉해 놓은 것이다.
이 두루마리는 하나님이 마지막 때 세계를 심판하시고 구원하실 계획 즉 하나님의 뜻이 적힌 것이다.
2~4절 : 요한은 힘센 천사가 두루마리의 봉인을 뗄 자가 누구인지 외치는 음성을 들었다. 천사의 외침은 두루마리의 봉인을 떼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하늘과 땅과 땅 아래 어디에도 봉인을 떼기에 합당한 자가 없었다.
그러자 요한은 몹시 비통해하였다.
요한이 우는 것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을 통해서 이루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계획들이 있는데, 봉인을 떼어 열 자가 없으니 이 아름다운 계획들이 다 무산되게 된 것이다. 즉 마지막 때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에 시동을 걸만한 자격을 갖춘 이가 피조 세계에는 없다는 것이다.
5절 : 그러나 장로 중 한 사람이 그런 자격을 갖춘 이가 하나 있다고 일러준다. 그는 ‘유다 지파의 사자요 다윗의 뿌리’이다.
유다 지파에서 난 사자는 창세기 49:9에 근거하며, 다윗의 뿌리는 이사야 11:1에서 예언한 메시아를 가리킨다.
이 이름은 메시아의 능력과 통치를 나타내는 이미지이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창49:9)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사11:1)
드디어 이 땅에 갖고 계신 모든 하나님의 계획들이 이 땅에서 실현되게 하시기 위한 유일한 존재로서 주님께서 등장하신다는 것이다.
6~7절 : 요한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서 있는 한 어린양을 보았다.
어린 양이 ‘서 있는 것’은 두루마리를 열어 마지막 심판과 구원을 개시하는 것을 뜻한다.
그 어린 양은 이미 죽임을 당한 것 같았다.
그런데 그는 일곱 뿔과 일곱 눈을 가지고 있었다.
‘일곱 뿔’은 권세를 표상하며, 어린 양에게 완전한(일곱) 신적인 권세가 있다.
‘입곱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으로서 어린 양은 성령을 담지하신 것ㅇ다.
뿔로 상징되는 하나님의 통치권이 온 세상의 보이는 모든 곳으로 다 발산되고 통치가 이루어지는데, 예수님을 중심으로,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 어린 양이 나와서, 보좌에 앉아 계신 분의 오른손에서 그 두루마리를 받았습니다.”(7절, 새번역)
어린 양은 마지막 때 심판과 구원을 집행할 통치자로 즉위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임당한 어린양으로서 곧 십자가에서 무력하게 죽으셨으나 그의 죽음으로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멸하셨다. 그리고 마귀에 속하여 죽음의 종노릇 하던 우리를 살리심으로 승리하신 것이다.
(나의 묵상)
요한이 두루마리의 봉인을 뗄 자가 없는 것을 보고 울었다.
요한이 모든 것을 깨닫고 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봉인되면 이 세상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을 알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도록 하기 위해 요한을 울게 하신 것이리라.
그런데 온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이런 것’이며, ‘이렇게 이루시겠다’는 것을 어린 양이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다.
창세전 하나님의 계획은 그 창조하신 인간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셔서, 그를 당신의 처소로 삼으시겠다는 것이다. 그것을 독생자-유일하게 태어난 생명이신 예수님-가 이루시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아담이 범죄함으로 인간은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분리되고 말았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분리된 인간, 그의 죄를 대속하고 정결한 자로 하나님께로 이끌어 가시는 그 일을 어린 양이신 주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이루신 것이다.
하늘의 계획은 그렇게 진행된다.
그러나 이 세상은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마치 인간들이 중심인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발전과 혼돈을 거듭하며 살아가는 것이, 완전히 인간 중심이다.
그 가운데서 교회 안에 소속된 많은 자들도 세상 사람들처럼-나 중심, 인간 중심-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다.
바로 어린 양이신 예수님이 주인공이요, 주체이신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고, 자연재해가 일어나고, 나에게 이런저런 일이 일어나고....누가 죽고, 누가 태어나고.....이 모든 일이 일어나지만 여전히 주인공은 예수님이다.
예수님이 없어서 울었던 요한, 그가 어린 양이 서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손에서 두루마리를 받으시는 예수님을 본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울지 않을 것이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요 주체였으니 언제나 내 생각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였다.
그러니 두루마리의 내용이 알고 싶어 운 적이 없다. 아니, 두루마리 존재 자체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복음을 듣게 하시니 요한의 울음이 어떠한 것인가를 그제야 이해하는 자가 된다.
이제는 세상의 주인이시오, 통치하시는 주님의 뜻이 너무도 궁금하고 기대가 되니, 날마다 두루마리를 펼치는 자가 된 것이다.
그러면 일곱 눈을 가지신 분이 보내주신 성령께서 한 가지씩 알게 해 주시는 것이다.
대주제는 ‘예수님을 위하여, 예수님을 통하여’ 라는 사실이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이 ‘예수님을 위하여’이며, 이 세상의 멸망이 또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신다는 사실이다.
오고 오는 인간의 모든 역사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나지만 그 중심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세계의 정세나 나라의 경제나 국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가장 중요하다.
그 어린 양을 발견한 나는 요한과 함께 눈물을 그친다.
그 어린 양이 하나님의 두루마리를 받으시니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게 된 자의 기쁨이 차고 넘친다.
(묵상 기도)
주님,
봉인된 성경을 예수님의 십자가로 열어주시니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 십자가는 세상에서는 여전한 비밀입니다.
가장 세상적인 저를 택하여 주셔서 성령을 보내주셔서 그 비밀을 알게 하시니 감사뿐입니다.
날마다 제 앞에 펼쳐지는 두루마리를 기뻐합니다.
주님을 더 잘 알게 하옵소서.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주님과 교제하며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을 위하여 살게 하시고, 예수님을 통하여 살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