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조용히 함께 있음의 유익
시편 27: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찬송가 86장(내가 늘 의지하는 예수)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다윗은 평생에 하나님의 집에서 거하면서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나님을 사모하며 지내고 싶은 것이 자기 소원이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과 조용히 함께 있음을 갈망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다윗이 왜 이러한 소원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다윗은 젊은 시절 오랜 방랑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를 잡아 죽이려는 사울 왕의 집요한 추적을 따돌리고자 하루는 수풀, 다음 날은 동굴, 또 다음 날은 무너진 요새, 또 다른 날은 이방 나라 왕에게 망명하며 도망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하루도 평안한 날이 없었습니다. 훗날에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주변 나라들과 전쟁을 끊임없이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백성들의 재판 요구에 하루도 쉴 날이 없었습니다. 그의 날은 늘 바쁘고 어려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틈만 나면 사울의 도성 기브아 남쪽에 있는 돕 땅에 있는 제사장 아히멜렉이 있는 곳에서 하나님 앞에 자주 나아가 기도하곤 하였으며, 나중에 왕이 된 후에 예루살렘 왕궁 곁에 하나님의 법궤를 찾아 모셔와서 그 법궤의 휘장을 자주 찾곤 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모신 휘장 안으로 들어가 앉아 있으면 온갖 세상 일들이 다 뒷전으로 물러가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영적인 평안함이 그 영혼을 사로잡곤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성품과 그 존재의 광대하심을 생각하면 세상에서 자기가 경험한 어떤 강렬한 흥분과 행복과 성취감보다 더 마음 속에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참된 행복감이 충만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한 영적인 황홀한 행복감과 만족감은 오직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와서 오직 마음을 하나님께만 바라보면서 묵상하며 기도하며 찬양할 때만 찾아오곤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다른 어떤 것도 바라지 않았고 오직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평생 지내면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면서 그 성전에서 하나님을 사모하며 살고 있은 것뿐이었습니다.
다윗은 세상에서 다른 나라를 더 많이 정복하여 백성들의 환호를 받는 것보다, 수많은 재물을 가지고 자기 곳간에다 채우는 것보다, 수많은 여인들을 자기 아내로 맞아 육신적인 즐거움을 맛보는 것보다 오직 하나님께 가까이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습니다.
이러한 소원을 가진 다른 분을 더 예로 들자면, 모세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모세는 백성들의 진영에서 따로 떨어진 곳에 회막이라는 천막을 쳐서 그곳을 거룩한 장소로 삼아 하나님께 기도하곤 했습니다. 그가 회막에 들어가면 하나님께서도 그 회막 위에 구름으로 덮어서 그에게 나타나 친구처럼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곤 했습니다. 모세는 해야 할 일들이 많았고 몹시 중대하고 바쁜 일정을 보내곤 했지만 그는 그 어떤 일보다 회막에 따로 나와서 하나님과 홀로 교제하며 지내는 그 시간을 가장 사모하며 즐거워했습니다.
이 땅에 오셨던 우리 구주 예수님도 그러하셨습니다. 그가 행하는 모든 일들이 다 중요한 일이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명하신 일이었기에 그러한 일들을 성심으로 행하셨지만, 정작 우리 주님이 가장 즐거워하며 가장 중요하게 힘썼던 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와 홀로 독대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경건 생활에 대하여 누가복음 5:15,16 말씀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수많은 무리가 말씀을 듣고 자기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 모여 오되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여기서 수문이 퍼지는 것도 계속 진행되는 미완료시제로 기록되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모여드는 것도 계속적이고 반복적인 행동을 묘사하는 미완료시제이며,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서 물러가서 기도하시는 행동도 역시 계속적이고 반복적인 행동인 현재분사와 미완료시제의 결합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큰 기적과 이적의 소문은 계속 퍼져나가고 사람들은 계속하여 파도처럼 밀려오고 또 밀려오고 있는 중인데, 예수님은 그런 상황에서 계속하여 뒤로 물러가서 한적한 광야로 가서 계속 기도하는 것을 반복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이 행동 방식은 그의 공적 사역 3년 내내 이어진 행동 양식이었던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에워싸여 환호가 터져나오곤 하는 중이며 때로는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의 행동이 있었지만 예수님은 그러한 순간마다 항상 뒤로 물러가셔서 광야로 혹은 산 위로 기도하러 가셔서 홀로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오래 계시곤 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함께 있기를 그 무엇보다 좋아하는 이들은 유익이 많습니다. 인생은 바쁠 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서 환호를 받고 사람들이 몰려들 때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요 사람들에게 배척당하기도 하고 까닭없는 모함을 받아 홀로 지내야 하는 고독한 순간도 있습니다. 바울도 무척이나 바쁘게 지내곤 했다가도 감옥에 홀로 지낸 적이 적지 않습니다. 가이사랴 감옥에서도 이년이나 있었고 로마 감옥에서도 이년이나 지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홀로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러한 고독한 시간이 외로움과 고통과 낙심의 시간이 아닙니다. 도리어 그 동안 그토록 갈망하던 하나님과의 독대의 시간을 마음껏 가질 수 있기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됩니다. 그 동안 많이 못 보던 성경을 더 찬찬히 볼 수 있는 기회요 자기의 생애를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손길에 대하여 새삼 감사하게 되며, 자기의 허물을 회개하면서, 하나님께서 행하실 장래의 일들에 대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쌓아놓는 기회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홀로 된 시간이 참으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됩니다.
사도 바울의 로마 감옥에서 쓴 편지들을 보면, 사도 바울의 마음이 몹시 즐겁고 행복하고 평안한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오히려 더 자유롭고 부유하고 넉넉한 마음의 상태를 느낍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하나님과 더 가까이 깊은 교제를 나누며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도 오늘 다윗이 가졌던 이 소원을 가집시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세월이 갈수록 더욱더 하나님의 성전을 가까이 하며 하나님의 복된 성품과 그의 존재의 광대하심과 자기 백성에 대한 한없는 사랑과 신실한 돌보심을 묵상하면서 그를 늘 사모하는 심령이 됩시다. 그리할 때 우리들은 세상 일의 분주함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며 근심과 불안과 두려움에서 떠나서 항상 더 깊고 숭고하고 거룩한 기쁨과 평화와 행복이 충만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