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6
오랜만에 조금 임펙트 있는 하루를 보낸 유나는, 오늘도 자각몽 속으로 빠져들었다. 연두색 잔디가 빼곡한 언덕 위에 누워있던 유나는 문뜩 수진이의 얼굴을 한번 더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수진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몇 번을 더 시도해 보았지만 역시나 마찬가지 였다. 뭐지. 자신의 특별한 능력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 하고 유나는 얼른 여러 사람을 불러보았다. 엄마, 아빠, 수진이의 친구 서하, 좋아하는 아이돌까지. 모두 성공했다. 엄마는 유나에게 빵과 우유를 주었고, 서하는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아빠는 언덕위의 오두막 속을 살펴보았고 아이돌은 연신 자신들의 인사법을 외쳐댔다. 모든게 정상이었다. 유나는 다시 한 번 수진이를 불러보았다.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 유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아침 햇살이 유나를 비추고 있었다.
'왜 수진이만 소환이 되지 않았을까? 말을 나눈 사람은 소환이 안 되는 걸까? 하지만 엄마 아빤 소환이 되었는데.. 그렇다면 수진이에게 뭔가 능력이 있는 걸까? 아니면 그냥 꿈에 집중이 되지 않았던 건가..'
유나의 머릿속에 여러가지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7
유나는 침대에 앉아서 자신의 스마트폰을 켰다. 그리고 포털 사이트에 접속하여 검색창에 '자각몽' 이라고 쳤다. 유나는 이미 자신이 꾸는 꿈이 무엇인지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수십개의 자료들을 살펴보고 난 30분 뒤, 생각은 달라졌다. 자신이 꾸는 꿈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유나처럼 꿈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사람은 없었다. 꿈에서 깨고 싶으면 깨고, 어디든지 갈 수 있고, 꿈속에 나오는 사람들까지도 조종하는 유나같은 사람은 없었다. 유나는 가슴이 뛰었다. 자신이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는 생각에 설렜다. 유나는 스마트폰을 끄고 기분좋게 침대에서 일어났다.
8
요 며칠동안 수진이와 유나는 부쩍 친해졌다. 수진이의 단짝을 유나라고 말해도 될 정도였다. 그리고 각각 일러스트레이터와 화가를 뀸꾸는 수진이와 유나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구내 초등학생 그림대회 였는데, 수진과 유나네 학교에서도 대표를 뽑아 예선에 내보내기로 하였다. 선생님은 대회에 출전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위해 간단한 설명을 해 주셨다.
"학년에 1명 씩 대표를 뽑아서 대회에 내보낼 테니 출전하고 싶은 친구들은 집에서 행복이나 하늘을 주제로 다음 주 수요일까지 그림을 제출해 주세요. 대회에서 우승하면 문화상품권 15만원이 지급 됩니다."
대회의 예선에 나가게 될 6학년은 한 명 뿐이니 유나와 수진이는 서로의 경쟁상대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둘은 선의의 경쟁을 하기로 약속하고 같이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우리 집 가서 할래?"
수진이가 묻자 유나가 대답했다.
"어, 좋아"
친구집에 가는 것은 1학년 때 친구의 생일파티로 간 것 이후 처음이라 유나는 기뻤다. 둘은 팔짱을 끼고 나란히 수진의 집으로 걸어갔다.
9
"와 너 색연필 진짜 많다."
유나의 말대로 수진의 방에는 색연필이 정말 많았다. 60색이 넘는 것, 연필 색연필, 48색 색연필, 알 수 없는 언어가 적힌 것까지.
"그림을 여러색으로 그리고 싶어서..용돈을 모아서 산 거야."
둘은 그 여러가지 색연필과 싸인펜, 굵기가 다른 연필을 모두 꺼내서 흰 도와지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유나는 하늘을 주제로 그리기로 했고, 수진인 행복을 주제로 그리기로 했다. 유나는 곰곰히 생각하다 자신의 꿈에 자주 소환하는 곰돌이 구름과, 날아다니는 편지들을 그렸다. 수진은 연습장에 일러스트를 그리는 손을 스케치 중 이었다. 유나는 수진이의 그림을 보고 그림 그릴 때 가장 행복한가보다 했지만 수진은 유나의 그림에 궁금증을 가졌다.
"구름이 되게 귀엽게 생겼네"
"내 꿈에 자주 나오는 거. 정확히 말하면 등장시키는 거."
수진이는 잠깐 멈칫했다, 다시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야?"
유나는 수진이에게 자신의 꿈 이야기를 했다. 맘대로 꿈 조종이 가능하다는 것, 꿈 속과 현실을 맘대로 드나들 수 있다는 것, 꿈 속에선 초능력자와 다름 없다는 것. 내친김에 소환이 되지 않았던 수진이 이야기 까지 했다. 이야기를 듣는 수진이의 표정은 점점 이상해졌다. 그리고 말했다.
"나도 그런 꿈을 꾸고있어. 네가 말한 것 처럼, 꿈이 내맘대로 흘러가게 할 수 있고, 깼다 금방 다시 자각몽 속으로 들어갈 수 있어. 그래서 꿈 속에서 9살 때 죽은 강아지 켈리도 만나고."
유나는 놀랐다. 자신과 이렇게 비슷한 사람이 있다니.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자각몽을 꾸는. 어쩌면 이것이 수진이가 소환되지 않았던 이유일까? 그렇다면 꿈은 정말 하나의 세계일까? 뇌에서 만든 허상들이 아니라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즐길 수 있는 세계. 수진이가 자신의 특별한 능력으로 꿈 속에서 놀고 있었기 때문에, 유나에게 가지 못 한 것일까? 그럼 둘은 꿈이란 세상속에서 만날 수도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