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독서는 출애굽 사건에서도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 '유월절(과월절/해방절/파스카)예식'이므로
하느님께서 명령하신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니고,
반드시 준행해야 하는 일이다.
"너희는 이 달을 첫째 달로 삼아, 한 해를 시작하는 달로 하여라." (2)
'이 달'(hahodesh haze ; 하호데쉬 핫제)의 시기는 당시까지 이스라엘 백성이 사용하던 민간력의
7월이며, 오늘날 우리들이 사용하는 태양력의 3,4월에 해당된다. 하느님께서 명령하시기를, 이 달을
한 해의 첫 달, 즉 종교력에서 1월인 '아빕달'(탈출13,4 ; 23,15)로 삼으라고 하셨다. 이 '아빕달'이란
명칭은 후에 바빌론 포로 시기부터는 '니산달'(느헤2,1)이란 이름으로 바뀌어 불리워졌다.
출애굽이후, 이러한 새로운 월력 체계를 도입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땅을 나서는 것이
단순히 거주지를 옮기는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을 청산하고,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 새로운 출발점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 짐승은 일년 된 흠 없는 수컷으로 양이나 염소 가운데에서 마련하여라." (5)
유월절에 쓰여질 '어린 양'(seh ;쎄)은 다 자란 '염소'나 '양'과 구별되는 새끼를 말하는데, 첫번째
요건이 흠이 없어야 한다. 여기서 '흠없는'으로 번역된 '타밈'(tamim)은 '완성하다', '끝내다'란 뜻을
갖는 동사 '타맘'(tamam)에서 유래되어 '완전한', '완성된' 이라는 의미이다. 영어 성경에서 보통
'흠이 없는'(without blemish)이나 '결점이 없는'(without defects)로 번역했다. 그러나 이
단어가 가지고 있는 보다 적극적인 뜻은, 단순히 흠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온전하고 완벽한 상태라는
뜻이다.
이 본문의 단어는 유월절 어린 양이 예표하는 그리스도가 갖는 완전성과 하느님께 대한 순종, 그리고
그의 고결하고 온전한 성품들을 예표해 준다. 동시에 이것은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름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할 삶 역시, 하느님을 향하여 올바르게 헌신하는 삶이어야 함을 보여준다.
'자카르'(zakar)는 짐승의 '수컷'과 인간의 '사내 아이'를 모두 가리키지만, 제사 의식에 있어서는
짐승의 수컷만을 가리킨다. 굳이 일년 된 양을 선택하는 이유는 한 가족이 먹기에 가장 알맞기
때문이다. (3절) 그리고 수컷이 취해진 이유는 장차 이집트 땅 모든 수컷이 처음에 난 것과
맏아들이 죽게 될 것이지만, 이스라엘에 속한 짐승의 맏배나 사람의 장자는 죽음에서 구원받게
될 것을 암시하기 위해서이다.
"너희는 그것을 이달 열나흗날까지 두었다가" (6)
단순히 이달 초열흘날부터(3절) 4일 동안 어린 양을 데리고 있으면서, 그 먹이를 주는 정도가 아니라
매우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관찰하고 돌보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하느님의 지시는 그 어린 양이 갖는
특별한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그것은 첫째로 나흘이란 기간 동안 자신들을 대신해서 죽게 될
어린 양을 지켜봄으로, 하느님의 은혜를 느끼게 하기 위함이며, 또 하나는 자신이 선택한 양이 하느님이
제시한 조건을 만족시키는지, 그 기간동안 세심하게 검사하기 위함이다.
"이스라엘 온 공동체가 모여 저녁 어스름에 잡아라." (6)
'잡다'(죽이다)라는 뜻의 '사하트'(shahat)는 식사를 위해서 양을 잡는 것만이 아니라 희생 제사를 위해
양을 잡는다는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 이스라엘 백성 모든 사람들이 양을 잡고, 그 양의 고기를 먹는
자리에 참여했지만, 실제로 칼을 들고 그 양을 도살하는 임무는 한 가정의 가장(家長)의 몫이었다.
그 이유는 당시까지 이스라엘에 율법이 주어지지 않아 사제 제도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사제된 나라의 백성임을 드러내고, 더 나아가 신약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듭난 자는 누구든지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1베드2,9)이 될 것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느님께 제사드리는 단위가 가족이었고, 그 주체가 가장이었음을 볼 때, 이 사회의 가장
기초적인 세포 단위이요, 작은 교회인 '가정'의 중요성을 깊이 되새겨 보아야 한다.
"그 피는 받아서, 짐승을 먹을 집의 두 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라라." (7)
'그 피는 받아서'에서 '그 피'는 5절의 '어린 양의 피'이어야 한다. 다른 피를 발라서는 아무런 효과도
없고, 이집트인들과 함께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어린 양의 피로부터, 집에 바른 피를 취하여
바른 자는 생명을 보장받을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의 구원은 반드시 하느님께서 명하신 그대로
철저하게 지켜 행할 때 이루어진다. 그것은 바로 유월절의 어린 양이 예표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구속 성혈의 공로를 힘입는 것이다.
'문설주'(hammezuzoth ;함메주조트)는 복수형으로 되어 있고, '상인방'(hammashiqoph;
함마쉬코프)는 단수형으로 되어 있다. 각 집의 출입구에 있는 문을 지탱하는 좌,우 기둥과 위에 가로로
댄 기둥임을 보여 준다. 즉 문을 둘러싼 네 개의 기둥 가운데, 사람들이 밟을 수 있는 문지방을 제외한
세 개에는 모두 피를 바른 것이다.
당시 집의 출입구는 집 전체를 대표했기 때문에, 이 곳에 피를 바르는 행위는 곧 그 집 전체에 피를
바르는 상징적 행위라고 볼 수 있다. 하느님은 이렇게 '생명을 상징하는 피'를 흘리는 제사를 통해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 생명을 구하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던 것이다.
"그날 밤에 그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불에 구워 누룩없는 빵과 쓴 나물을 곁들여 먹어야 한다." (8)
고기를 불에 굽는 이유는 물에 삶는 것보다 짧은 시간에 간편하게 요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룻밤
사이에 이집트를 떠나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기를 삶지 않고 구워야 하는 이 규정은 꼭
지켜야 할 내용이다. 그리고 발효되지 않은 누룩 없는 빵(무교병)을 먹어야 하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으로 향하는 일의 급박성을 느낄 수 있다. 만일에 고기와 빵에 대한 규정이
지켜지지 않았다면, 시간의 지체로 말미암아 파라오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변했을지도 모른다.
'누룩없는 빵'으로 번역된 '맛초트'(matsoth)는 발효되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줄임으로써 빨리
준비할 수 있는 양식이며, 갑자기 찾아온 손님 대접에 용이했다. 따라서 '누룩없는 빵'을 먹으라는 것은
급히 서두르라는 의미이다.
동시에 '누룩'이라고 하는 것은 '죄'를 상징하기도 한다. 과거 이집트에서 하느님을 모르고 살 때,
그곳의 풍속을 쫒아 살던 모든 죄를 버리라는 의미도 갖는 것이다.
'쓴 나물'에 해당하는 '메로림'(merorim)은 '쓴 맛'이라는 뜻을 가진 명사 '마로르'(maror)에서
왔고, 탈출기 15장 23절의 써서 도저히 먹을 수 없는 물로 유명한 '마라'(mara)의 샘과 동일한
어근에서 파생되었다. 쓴 나물을 먹을 때에 느끼는 쓴 맛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이집트에서의
쓰라린 삶을 기억나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누룩없는 빵'과 '쓴 나물'을 함께 먹는 것은, 이집트에서 우상을 섬기고 죄를 짓고 살던 과거의 삶을
쓰라린 삶, 고난의 삶으로 기억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를 떠난 뒤에도,
유월절 절기를 지킬 때마다, '누룩없는 빵'을 '쓴 나물'과 함께 먹으면서, 자신의 죄가 아직 남아
있는지를 점검하게 되고, 그 고난과 고통의 생활로부터 구원하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그것을 먹을 때는 허리에 띠를 매고 발에는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서둘러 먹어야 한다.
이것이 주님을 위한 파스카 축제다." (11)
원문상 '띠를 매고'에 해당하는 '하구림'(hagurim)은 '하가르'(hagar)의 수동 분사형인데, 이 단어를
제외하고는 모두 명사로 이루어진 문장이다. '모트네켐 하구림'(mothnekem hagurim ; 허리에
띠를 매고) 나알레켐 뻬라글레켐(naalekem beraglekem ; 발에는 신을 신고)
우막켈르켐 뻬예드켐(umaqelkem beedkem ; 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각 단어의 끝부분이 '켐-임-켐-켐-켐-켐'으로 같은 음을 내고 있는데, 명사들로 이루어지고, 같은
자음으로 운을 맞추는 이러한 분형은, 히브리어의 독특한 표현 기법으로서 매우 급박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말로 직역하면, '너희 허리에 띠를 띠고, 너희 발에 너희 신, 너희 손에 너희 지팡이'이다.
이처럼 유월절 제물을 먹는 사람들의 상태를 묘사한 본문은, 그들이 급하게 떠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음을 매우 생생하게 잘 보여 주고 있다. 먼저 이들은 허리띠로 옷을 단단히 묶어야 했다. 빨리 걸을
때에 발이 옷에 걸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1열왕4,29 ;이사5,27) 또 집에서는 신을 신지 않았던
당시 관습과는 반대로 당장이라도 뛰쳐나갈듯, 신발을 신은 채로 음식을 먹어야 했다. 또한 지팡이를
잡은 것으로 보아 이는 장거리 여행을 위한 준비임을 알 수 있다.
유월절 음식을 먹는 이스라엘 백성의 이러한 모습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갖추어야 할 영적 준비,
하느님 나라를 향하여 나아가는 군사로서의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삶을 보여 준다.
"그리하여 진리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굳건히 서십시오.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위한 준비의 신을 신으십시오. 무엇보다도 믿음의 방패를 잡으십시오. 여러분은 악한 자가 쏘는 불화살을
그 방패로 막아서 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투구를 받아 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에페6,14-17)
"이것이 주님을 위한 파스카 축제다." (11)
'파스카'(유월절,해방절,과월절)로 번역된 '페싸흐'(pesah)는 '지나가다'(pass over ; 12,13-27),
'불행을 끼치지 않다', '보호하다' 는 뜻을 갖는 동사 '파싸흐'(pasah)에서 유래되었다.
파스카 규정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출애굽 백성들이 취한 어린 양의 피가 이집트
노예생활로부터의 해방과 맏아들의 죽음에서 벗어나게 하는 수단이었듯이, 우리가 영적으로 취하는
그리스도 예수의 피는 죄로부터 우리들을 구원하는 구속의 수단이라는 것이다.(로마5,9 ; 에페1,7)
"이집트 신들을 모조리 벌하겠다." (12)
당시 이집트에는 사람과 짐승의 형상을 한 우상(탈출32,1-6) 뿐만 아니라 하늘, 땅, 태양, 강, 폭포등과
같은 자연에 뱀, 독수리, 거위, 악어, 풍뎅이, 개구리등의 온갖 잡다한 생물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들을 섬겼다.
" 그 피를 보고 너희만은 거르고 지나가겠다." (13)
'그 피'(hadam ;핫담)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을 재앙에서 구원한다. '그 피'가 상징하는 것은 하느님의
어린 양으로, 장차 오실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성혈(보혈)을 가리킨다.
"이날이야말로 너희의 기념일이니" (14)
'기념'으로 번역된 '직카론'(zikaron)의 어근인 동사 '자카르'(zakar)는 하느님이 하느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실 때, '그들과의 계약을 생각하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생각을 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출처: 피앗사랑 글쓴이: rigel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