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사람을 까페로 찾아오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문화재 지정해야한다는 100년이라는 역사성이 있음에도 팔고 사람있는 곳으로 가겠다는 교회와 황량해도 사람을 찾아오게하겠다는 까페. 마인드 관점 생각 자신감이 다르다.
죠스 떡볶이는 원래 고대 앞에서 시작했다.
나상균 대표는 관점이 달랐다. “떡볶이 팔아서 돈번다”가 아니었다. “떡볶이 매장을 팔아서 돈 번다.” 방향성이 다르다. 그는 떡볶이 파는 시스템을 팔았다. 관점이 다르다. 접근이 다르다. 이게 지혜다. 이제 모든 분야에 다르게 보는 눈이 필요하다.
예수가 있으니 광야에서도 5,000명이 모인다.
교회는 예수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믿는다고 하는데 변화 없는 사람을 “육신에 속한 사람”이라 부른다.(고전3:1) 교회는 다니는데 예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육에 속한 교회는 예수 능력이 없으니 변화가 없고 변화가 없으니 육신에 속한 사람만 양산할뿐이다 능력없는 교회는 육신에 속한 사람만 더욱 양산할 따름이다.
대조사회로서의 신앙공동체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말과 결심만 난무하는 말쟁이만 양성하는 교습소가 되었다.
능력이 없으니 가운 입고 거룩한 척 한다.
줄 세우고 교주가 되어 거짓과 위선으로 하나님처럼 행동한다.
예수는 보이지 않는다. 자꾸 성도를 사람에게 이끈다. 사소한 것 같으나 예수말고 강대상에 정치인을 세우고 공동체를 더럽힌다. 예수님만이 생수다. 아무리 훌륭한 인간이라도 인간 소개하고, 사람에게 몰고 가면 더러움이다.
열심히 뭘 믿고 뭘 하는 것 같은데, 점점 하나님을 멀리하게 된다. 예수가 그렇게 미워했던 위선 속에 있는 종교를 대표했던 바리새파처럼 되어가는지를 모른다. 아이러니다. 예수를 전하겠다는 자가 예수가 미워하는 자가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