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크(1799-1850)
1799년에 발자크는 군에 식료품 공급을 하는 아버지에게서 태어나서 4년 간 보모 밑에서 자랐다. 이 일은 발자크가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의식을 심어주었다.
아버지의 뜻으로 소르본느에서 법학 공부를 하면서 실무를 강조하는 아버지의 강요로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했다. 평소에 문학서적을 많이 읽고, 문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법대 2차 졸업시험은 응시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남과 합작으로 소설을 썼으나 만족하지 못했다. 자기의 이름으로쓴 최초의 소설이 ‘올뻬미 당’이다. ‘올뻬미 당’ 이후에 현실의 ㅠ생리적 사랑과 낭만적 사랑 사이의 갈등을 다룬 ‘결혼 생리학’이 성공하면서 풍속 묘사를 사실주의 쪽으로 돌리는 소설을 썼다.
아직 성공하지 못한 작가로 먹고 살기 위해서 저급의 소설을 쓰는 것에 스스로 실망했다. 직접 인쇄소를 차려서, 쓰고 싶은 책을 써서 출판했으나. 인쇄소만 파산하고, 평생 빚을 갚기 위해서 글을 썼다.
당시에 인기절정이었던 월터 스콧에 빠졌으나, 다음 글귀에 깨닫는다‘ ’월터 스콧의 모조품이 되고 싶지 않다면 다른 방식으로 글을 써야 한다.‘ 그는 자신을 뛰어 넘는 모델의 글을 쓰려고 했다. 그리고 많은 종류의 인간형에서 외면과 성격의 특징은 서로 연관성이 있음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증명하였다.
그는 초기에 여러 인간형을 표현해내는 실험적인 작품을 썼다.
1829 ~ 1833년 사이에 그는 소설의 구조에 대해서, 인물의 유형, 구조, 인물들을 둘러싼 풍속이나 사회환경을 관찰하고, 이야기를 극적으로 구성해내는 일 등,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실행해보았다. 자신의 세계를 담아낼 수 있는 소설을 쓰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인간 희극‘이 탄생했다.
*발자크 작품은
발자크는 대성당과 비교되는 거대한 작품을 구상했다. 인간 희곡은 한 시대 전체와 모든 사회 계층 사람과 그 사람들의 일생을 볼 수 있도록 편성하였다.
동물들에게 종(種)이 있듯이 인간군상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 사람의 종류에 따라 그들의 생각, 살아가는 모습과 그들의 인생을 보여주도록 표현했다.
1834년부터 쓰인 《고리오 영감》은 그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하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발자크가 인간 희극의 주요 특징이라는, 등장인물을 다른 작품에도 등장시키는 기법을 사용했다. 인간 희곡은 한 등장인물이 여러 작품 속에서 등장한다는 점을 이해해야만 전체적인 윤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 희극’을 연작 소설로 쓰는 목적은 ‘민중의 실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 소설은 실제 인생처럼, 몇 년 동안 보지 못하다가 한 작품에 나타남으로 몇 년 동안 (우리가 모르는) 어느 곳에서 살다가 지금 나타나서 우리에게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작품의 전체적인 계획은 시간이 갈수록 새로 짜고 증보하였는데, 1845년까지 145편을 쓰기로 하였고, 85편은 이미 완성된 작품이었다. 발자크는 건강이 악화되어, 죽으므로 인간 희극은 총 90편만 출판되었다.
*고리오 영감
『인간희극』을 구성하는 작품들 중의 한 편이다. 작품의 시간적 무대는 혁명 후의 왕정복고기(1819년경)이다. 자본주의와 부르주아지 계급이 부상하던 사회가 배경이다.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신분 상승을 노린다. 소설의 인물들은 상류층 사람이 하류층으로 미끌어진 사람이거나, 하위계층 출신으로 살아가고 있는 각자가 자기의 방식으로 상류층이 되는 길을 추구한다.
노년의 고리오는 상류층의 인물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돈벌이 방식으로 돈을 번 부자이다. 발자크는 투기·고리대금업· 타산적 결혼· 범법· 노름 등 당시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축재 방식을 아주 냉소적으로 그렸다. 당시의 팽창하는 사회구조를 그대로 작품의 내용과 구성 속에 드러내는 점 때문에 발자크 문학을 사실주의 라고 한다.
사회를 마치 거울을 들고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비춰 보겠다는 스땅달식의 낭만적 사실주의에 대해서, 사회 현상에 회의를 품고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발자크의 사실주의의 특징이다. 고리오 영감이 특징을 잘 보여준다.
(스탕달이 사회의 보이는 모습을 그려냈다면, 발자크는 사회 현상 너머의 보이지 않는 내면까지도 그려냈다고 한다.)
즐거리를 요약하면
보께르 하숙집에 여러 유형의 인간들이 모여들었다. 그 인간들이 펼치는 사건들이 이야기의 내용이다. 고리오 영감도 하숙생이 이었고, 시골에서 출세할 길이나 찾을까 하여 파리에 온 법학생 라스티냐크도 보께르 하숙집의 하숙생이었다.
고리오 영감은 전에는 부자였다. 그는 자신의 재산을 상속하여 딸 두 명을 사회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로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그는 전 재산을 상속하고 가난뱅이가 된다.
그의 딸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요리조리 모두 빨아먹고는, 아버지가 가난뱅이가 되자 하숙집에 팽개쳐버린다. 아버지가 무일푼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법학생은 딸들의 잔인함에 치를 떨었지만, 고리오 영감은 자기의 딸들은 착하다고 말했다.
젊은 법학생 라스티냐크는 하숙집에 함께 지내면서 사회의 잔인함을 체험한다. 고리오 영감이 딸들에게 배신당하고,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을 지켜보며 그의 인생관이 크게 변한다.
(*그러나 이 소설에는 그랑데나 클라나 라는 인간은 자신을 위해서 두 딸을
희생시키는 인간이다. 보께르 하숙집에는 별의 별 인간이 하숙을 하고, 발자크는 그들이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이런 방식으로 “고리오 영감”의 주요 줄거리는 발자크가 그린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현실을 드러낸다. 소설은 사랑과 희생에 대한 고리오 영감의 믿음과 이에 대한 딸들의 배신,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목격한 젊은 법학생 라스티냐크의 체험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를 통해 발자크는 사회의 가혹성과 인간의 이기심을 그림으로써,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가식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보께르 하숙집에 여러 유형의 인간들이 모여들었다. 그 인간들이 펼치는 사건들이 이야기의 내용이다. 프랑스의 현실, 자본주의의 실상을 낱낱이 보여준다.
하숙생의 말 ‘600프랑의 금리로 살아가는 사람이(고리오 영감) 각기 50000프랑의 금리 수익을 가진 사람을(딸들) 도와주다가 개처럼 죽어간 사람,’이란 말이 시대 상황을 잘 요약해준다.
3) 조르쥬 상드(1804 – 1876)
유년시절을 파리의 남쪽 전원에서 할머니와 함께 보냈다. 결혼생활은 불행했다고 한다.
자유 사상을 가진 여류 소설가로 자유분망한 생활을 했다. 자유 연애주의자로 피아니스트 쇼팽과 연애는 유명하다. 이런 이유로 후대에 여성주의 운동의 선구자로 칭송받는다.
*마의 늪 --- 1844년 작으로 상드가 전원생활을 그리워하면서 쓴 소설이다.
건강한 젊은 농부가 주인공을 나온다.
낭만주의 소설이다.
**마의 늪
조르주 상드의 1846년 소설이다.
고향 농민에 대한 공감을 통하여 민주사상을 표현했다. 인물의 미묘한 심리 움직임, 단순한 줄거리, 뛰어난 풍경 묘사가 뛰어나다.
농부의 평화롭고 깨끗한 생활을 그려 보고 싶은 의욕이 일어났다. ≪마의 늪≫에서 농부 제르맹의 아내는 세 자녀를 남겨놓고 죽는다. 제르맹은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지만 장인의 뜻을 받아들여 부유한 과부와 재혼할 것을 결심한다. 어느 토요일, 제르맹은 과부와 선을 보러 가는 길에 남의 집 양치는 일을 하기 위해 떠나는 이웃에 사는 마리를 만나 동행하게 된다. 가는 도중 ‘마의 늪에 이르자 날이 저물고 안개가 자욱하여 두 사람은 그만 길을 잃고 함께 밤을 지새운다. 이튿날 교만하고 허영심이 강한 과부와 선을 보고 실망하여 돌아오던 제르맹은, 성격이 사나운 주인집을 떠나오던 마리와 다시 우연히 만나게 된다. 제르맹은 이 처녀를 때가 되면 아내로 삼을 생각이었으나, 마리는 돈을 좀더 벌어서 젊은 남자와 결혼할 의향이었다. 그러나 결국에는 두 사람은 결혼하여 행복하게 된다는 줄거리다.
상드가 발자크에게 “당신은 인간희극을 쓰지만 난 인간목가를 쓰고 싶다”고 말한 것처럼 어두운 현실 광경보다도 시골의 밝은 면을 쓰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는 상드의 본의가, 작품 아름답게 묘사함으로써 드러난다. 상드는 전원문학의 천재였다.
상드는 개인적으로 가장 불행하고 절망적인 상태에 빠졌을 때마다 그녀의 어린 시절, 할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영향 받은 고향 베리 지방의 자연과 흙과 전원을 배경으로 한 전원소설을 썼다. 마리(≪마의 늪≫)나 파데트(≪소녀 파데트≫는 자신의 슬프고 고독한 현실적인 불행을 아름답게 승화시켰다고 말한다.
4) 찰스 램(1775 – 1834)
런던의 빈민가에 태어나서 공부도 변변히 못했다. 동인도 회사에서
50세까지 근무하면서 틈틈이 글을 썼다. 정신병을 앓는 누이 매리 램을
돌보느라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매리도 글 재주가 있어서, 서로 문학의
동반자로 지냈다.
50편의 글이 실린 엘리아 수필집(전편-1820-23,후편-1833)을 출판했고, 에리아는 그의 필명이다.
수필의 문을 연 수필가는(수필의 아버지) 몽테뉴와 찰스 램이 있다.
몽테뉴는 딱딱한 지적인 글(흔히 에세이라고 한다.)을 썼고, 찰스 램은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을 소재로 수필을 썼다.(오늘의 우리 개념으로는 수필이다. 그러나 미세러니라며, 약간 낮추어 보는 경향도 있다.)
찰스 램의 수필은 진실성을 보여주면서 인간의 미를 표현했다
독신으로 살다가 누이보다 15년 일찍 죽었고, 누이가 죽자 오빠의 곁에 묻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