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 모를 이름과 숫자의
암호화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강 우 택
서울 한 지인의 아파트를 찾았을 때
일이다. 지하철 ( )호선을 타고 ( )역에 내려 ( )번 버스를 타고 ( )사거리에 내리면 ‘레미안 루센티아’
아파트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웬 이름이 이렇게 길어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자
곁의 며누리가 ‘아르테온’ ‘루체하임’ ‘불레스티지‘ 등 서울에는 어렵고 긴 이름의 아파트들이 수십 곳이나 된다며, 새로운 아파트가 생기면서 지어진 이름인데 값도 비싼 고급 아파트들이라고
했다. ’루센티아'란 ‘은은하게 빛나는 휘장’이란
뜻이라고 지인이 그뜻을 말해 준 적이 있었다. 정작 이런 뜻을 알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파트 이름들 가운데 '리버젠(riverzen)은 강이라는 영어river와 최고를 나타내는 제니스(zenith)’가 합성이 되어 한단어가 된 것이며, ‘렉슬’ 아파트명은 역시 왕을 이미하는 렉스(rex)와 성(城)을 의미하는 캐슬(castle) 이 합쳐져 렉슬(rexle)이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아파트 작명시 외래어 합성에는
예술성, 지역성. 그리고 시공사까지 포함한다고 하니 이름이 길어지고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우리 고장에는 짧고 아름다운 아파트
이름들이 많아 외우기도 쉽다.
‘기린봉’ ‘호성’ ‘은마’
‘주공1,2,3,단지‘ 등이다. 전주 효자동에 ‘리벤시벨’이란 특이한 아파트가 있다. 어느날 택시 안에서 기사가 어디로 가시냐고 묻기에 자신
있게 이 아파트 이름을 댄다는 게 듣기에도 민망한 쌍 욕설을
기사에게 내뱉고 말았다.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서였다. 그 기사는 빙그레 웃으며, 이름이 특히해 잘 안다고 했던 적이
있었다. 어느 날 노인복지관 회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서울은 왜 어려운 이름의 아파트가 많느냐는 이야기 끝에 그 자리에 있던 누가 그것도 모르냐며, 시골에 사는 시부모가 찾아오지 못하게 하려고 일부러
며느리가 그런 집을 골라 산다고 하여, 한바탕 웃은 일이 있었다.
나는 요즈음 방금 기억한 것도 한참 뒤에는 재생을
못하는 편이어서 호주머니에 흰 봉투 한 장과 볼펜을 꼭 가지고 다니면서 메모를 한다. 남들은 모든 정보를 핸드폰에 저장한다지만 나는 그런 수준이
못된다. 어느 날 찾고저하는 아파트 이름을 물어 기억한 게 오후
늦게 집에 돌아갈 무렵에는 기억이 나지 않아 다시 묻는 실례를 무릅써야 하였다. ‘해오름’을 외치며 맏음이 가지 않았는지 다시 쪽지에
써주었다. 이럴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을 탓하지 않고, 자연현상이라고 자신을 위로한다. 나도 한 때 콘사이스 한 권이 걸례가 되도록 책과
씨름하며, 나의 암기능력을 자랑한 때도 있었다. 다만 그때는 그때이고 지금은 지금이다.
나는 생활하면서 떼어 놓을 수 없는 두 개의 숫자
꾸러미를 갖고 다닌다.
하나는 내 신상과 밀접한
주민등록번호이며,
다른 하나는 남과의 소통수단인
핸드폰 넘버이다.
나만이 아는 암호
비밀숫자이다.
이 두 개의 숫자들을 재생시키는데
지장을 일으키면 초기 치매로 오해 받기 딱 쉽다. 이런 숫자들은 누군가에게는 편리할지 모르나 어떤이들에게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나의 핸드폰 번호를 갑작스렇게 물으면 핸드폰 가운데 숫자를 가끔
틀리게 알려주어 상대에게 낭패를
안기는 일이 있었다. 내가 나에게 전화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파트 현관출입문이나 큰건물 입구에는 숫자 계기판이
설치되어 있고, 비밀번호를 모르면 출입을 할 수 없다. 물론 방범이나 외부인의 무단 출입을 막기
위해서다. 어느 날 복지관 한 노인이 자기 집 아파트를 갑자기 찾아 갔을 때 현관문 숫자판 비밀 번호가 생각나지 않아 한참을 기다리다
다른 사람의 조력을 받고서야 들어 갈 수 있었다고 한다. 나 역시 어떤 출판사를 찾아갔을 때
그건물의 출입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숫자계기판만 달려
있었는데 물론 출입문 비밀번호를 알 수 없어 당황한 때가 있었는데
사장과 통화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4차산업의 인공지능시대에서는 이런 숫자를 외워 누르는 수고는 필요 없게 될 것
같다. ‘제임스본드’의 007, 시리즈에서 비밀출입문은 출입자의 안공 생체를 식별히여
자동으로 열어주게 되어 있어서 다른 사람은 절대로 들어갈 수
없다. 이런 자동출입문이 차츰 현실화 되고 있는 것 같다. 비밀 숫자를 암기할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숫자의 비밀화는 이제 지능범죄의
발달로 무용지물이 되는 것 같다. ‘비밀카메라' 설치 및 인터넷 해킹 등으로 쉽게 노출되어 비밀번호만 믿다가 재산상으로
크게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비밀숫자는 전략으로 쓰여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기도
했다. 냉전시대에 북의 정권은 남파간첩을 보내 우리 사회를 혼란케
한 때가 있었으며,
한 밤중에 방송으로 난수표를
불러대는 것을 들은 때도 있었다.
암호로 지령을 내리는
수법이었다. 제2차 대전당시 영국 런던 ‘다우닝1번가’ 영국 수상관저 지하에는 독일 암호 해독반이 영국
천재 수학자 지휘로 작전을 하고 있었다. 1943년 독일 신예 전함‘비스마르크’호가 수많은 병력을
싣고, 독일 항구를 떠나 노르웨이로 향하고
있었다. 영국함대는 즉각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일제히 공격하여 독일
전함을 격침시켰다.
당시 이 해전에 참가했던 영국 제독은 훗날 독일
젊은이들의 희생이 참으로 안타까웠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당시의 암호해독용으로 쓰인 기기가 오늘날 컴퓨터의 모체가
되었다고 하니, 일급 비밀이 틀림 없었던 것 같다. 제2차 대전 미국과 일본이 태평양에서 싸우고 있을 당시,
미국은 일본의 암호를 모두 해독하고 있었으나 일본은 자기네 암호가 해독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한다. 1941년 진주만공격을 총지휘한 일본군
‘야마모도(山本)’ 사령관이 전쟁중 다른 기지로 이동할 때 일본의 암호를 알게 된 미군
비행단은 미 항모에서 출격하여 일본군 사령관이 탄 비행기를 공격하여 태평양 상공에서 격추했다. 지금까지 어디에서 격추되었는지는 미스터리로 남았다고
한다.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이 100세 시대에 살고 있을 때는 우리 세대들이 살았던 시대를 가리켜 원시시시대로 부를지
모른다. 최첨단기기 출현으로 귀찮고 까다로운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첨단기기에 의존하려 들지도 모른다.
지진과 같은 재앙을 미리 정확한
지점과 시각을 알려,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하고, 오늘날 코로나 바이러스같은 바이러스가
출현하면 위험경고음을 발해서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체의학의 발달로 자신의 질병과 건강을
판독하여, 미리 사망일까지 예고해주다면 그때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지
걱정이다. 물론 나에게는 그때까지 살 일은 없을 테니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다.
사람의 두뇌는 활동함으로써 노화를 방지하고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길가에 주차한 차량번호 10여 개를 암기해 두었다가 바로 재생시키는
두뇌운동을 꾸준히 했더니 지금은
7,8개쯤은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니 놀라운 능력이다. 어떤 사람은 바둑이나 장기 같는 오락으로 두뇌를 잠시도 가만히 두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매일 보는 일간지를, 문화면은 물론 스포츠 기사까지
샅샅이 읽으며 생각한다.
배달하는 사람의 수고를 생각해서도
그렇다. 글쓰기에 참고가 될만한 자료는 그때그때 가위로 오려 두기도
한다.
(1920. 3.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