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9일(금)
* 시작 기도
주님...
주께서는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고 위의 것을 찾고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땅에 있는 지체는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인데 탐심은 우상 숭배입니다(골 3:1-5).
나는 분명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자로서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는 자임을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죄로 이끌어가는 정욕 앞에서 무릎을 꿇을 때가 있음도 사실입니다.
하오나 이것이 나를 어찌하지 못함은 나는 여전히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악으로 이끌어가는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이 하루도 나의 육신(헬, 사릌스)은 죽고 나의 생명이 주님과 함께 살아 있음을 믿사오니 주님과 연합하여 동행하는 자로 삼으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
주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계 5:8-14
제목 :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8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24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9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11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12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14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 나의 묵상
요한은 하늘이 열리고 보좌에 앉으신 이를 보았다.
피조물을 대표한 네 생물과 증인들을 뜻하는 24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 영광과 권능과 존귀를 드리는 찬양을 하고 있다.
요한이 다시 보니까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 하나가 들려 있다.
그리고 그 안팎으로 글이 쓰여 있는데 이 두루마리는 일곱 인으로 봉인되어 있었다.
어떤 힘 있는 천사가 큰 소리로 외치기를 누가 그 인을 떼며 그 두루마리를 펴기에 합당한가, 라고 하였다.
그러나 하늘 위에나 땅 위에 땅 아래에 그것을 능히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었다.
그래서 요한은 이 사실을 알고 크게 울었다.
그러자 장로 중의 한 사람이 요한에게, 유대 지파의 사자(Lion)요 다윗의 뿌리이신 어린 양이 그 두루마리와 일곱 인을 떼실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 때 요한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어린 양은 이미 죽임을 당한 것 같았으며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었다.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다.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서 두루마리를 받았다.
그러자 네 생물과 24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렸다.
장로들의 손에는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대접이 들려 있었다.
이 향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드린 기도들이다.
그들은 새 노래를 불렀는데 그 노래는 이렇다.
(9-10절) 주님은 두루마리를 받으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이 땅을 다스릴 것이다.
요한은 또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선 많은 천사를 보았다.
그들의 수는 만만이요 천천이었고 그들의 음성도 들었는데 이렇게 큰 소리로 외쳤다.
(12절)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요한은 하늘과 땅 그리고 땅 아래와 바다 위 등 모든 피조물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13절)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그러자 네 생물은 아멘 하였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였다.
요한계시록은 장차 될 일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다.
이 계시는 4장을 서론으로 하고 5장부터 본론이 시작된다.
5장에 나오는 봉인된 두루마리는 6-19장까지 그 내용을 구성한다.
그것은 곧 마지막 때에 일어날 사건들이다.
두루마리의 봉인이 열려지면서 장차 될 일, 곧 마지막 때의 사건들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봉인을 떼는 것과 마지막 사건의 도래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야곱의 축복(창 49장)에서 언급된 유다지파의 사자(獅子,Lion)요 이사야를 통해서 예언된 다윗의 뿌리에서 날 자이신 메시야가 그 인봉된 두루마리를 받으신다.
그는 한 어린 양으로서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어린 양으로 묘사된다.
이렇게 두루마리를 받으신 그리스도는 모든 권능과 모든 지혜를 가지고 마지막에 일어날 사건들을 친히 집행하신다.
그리고 성도들의 기도는 천사들과 24장로들에 의해 하나님께 올라간다.
이 때 네 생물과 24장로들이 엎드려 경배한다.
그 찬양의 내용은 이렇다.
새 노래로 어린 양께서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나라 가운데서 성도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린다.
그리고 그들을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사 땅에서 왕노릇하게 하신 것이다.
이어서 요한은 능히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천사를 본다.
이들은 보좌와 생물들 그리고 장로들을 둘러 서 있다.
그들이 큰 음성으로 또 어린 양을 높이 찬양한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
끝으로 모든 피조물들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 양께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돌리는 찬양을 한다.
이에 대하여 네 생물과 장로들이 다시 찬양으로 화답하며 경배한다.
9절에서는 네 생물들과 24장로들이 어린 양을 찬양한다.
이 때 이들은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야말로 두루마리를 가지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다고 노래한다.
또한 12절의 천사들 역시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고 노래한다.
여기서 그리스도요 메시야이신 어린 양이 왜 그들의 찬양을 받기에 합당한가, 하는 것이다.
이는 그 분이 단지 하나님의 아들로써 마귀를 물리친 승리자요 전지전능이기 때문에 찬양 받음이 합당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일찍이 죽임을 당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 생물과 장로들의 찬양에도 그렇고 천사들의 찬양내용에도 빠지지 않고 나오는 어구가 바로 ‘죽임 당하신’이다.
이 땅에서 사탄의 궤계에 빠져 종노릇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 그들을 구원하지도 못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고 말았다.
이것은 어찌 보면 사탄에게 보기 좋게 패배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어쩌면 사탄과 그의 졸개들은 자기들이 예수를 이겼다고 흥분해서 승전 축하파티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바로 그 전쟁의 승리임을 그들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이미 복음으로 말씀하셨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뱀의 후손 곧 사탄은 여자의 후손 곧 그리스도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그것도 큰 상처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으로 승리의 쾌재를 부르는 것은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처사이다.
예수님은 그렇게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다.
그 부활로 인하여 주님은 진정한 승리 곧 사탄의 머리를 박살내신 것이다.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우리를 사탄의 속박 곧 죄의 권세로부터 대속하셨고 살리셨다.
그러하기에 네 생물과 장로들 그리고 천사들의 찬양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수식어가 오늘 내 맘을 울린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
메시야요 그리스도이신 어린 양이 날 위하여 죽임을 당하신 것이다.
그 위대하신 섬김, 온 우주를 초월하는 섬김에 나의 심령이 전율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 주님의 이러한 우주를 초월하는 섬김은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 곧 창세전에 이미 작정된 것이다.
(딤후 1:9-10)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여기서 9절의 ‘자기의 뜻’이란 1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뜻이다.
이 하나님의 뜻이 바로 창세전 약속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기로 작정하셨다.
(벧전 1:20, 우리말성경) 그리스도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려지셨고 여러분을 위해 마지막 때에 나타나셨습니다.
따라서 딤후 1:9절에 나오는 ‘영원전’은 창세전을 의미하며 거기로부터 아들이신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고 오셔서 그 위대한 섬김을 하기로 작정된 것이다.
나는 예수를 바르게 알지 못하던 자였다.
그저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죽어서 천국에 간다는 정도로 알던 자였다.
무엇보다 목사가 되어서도 복음이 무엇인지를 잘 알지 못하여 이리 흔들 저리 흔들 하면서 갈 지(之) 자를 그리며 사는 자였음을 고백한다.
그런 나에게 천지를 뒤흔드는 복음의 태풍이 불어 닥쳤다.
그것은 내가 감당할 수 없이 너무 큰 시련과 고난 속에서 온 것이다.
고난의 현실은 나를 집어 삼키기에 충분하였다.
그런데 그런 고난의 상황에서 또한 하나님은 나를 아주 버리지 않으시고 내가 주님을 온전히 알 수 있도록 나를 품어 안으셨다.
그 때 들은 복음이 바로 창세전에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내용, 창세전에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니?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그 내용은 이미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것 아닌가?
나는 성경을 읽어도 소경처럼 읽었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고 말았다.
그리고 오늘 다시 한 번 나에게 이런 복음을 알게 하신 우리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린다.
나 또한 죽임 당하신 나의 주님을 찬양한다.
나의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신 주님이심을 두 손 들어 인정하며 높인다.
내가 아무리 주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산다 할지라도 나는 죽기에 합당한 자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런 나를 창세전에 택하여 주시고 당신의 소유로 삼아주셨기에 그저 두 손으로 입을 가릴 뿐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온 우주에 비하면 날아다니는 먼지도 될 수 없는 극히 미미한 존재인 나를 이렇게 창세전에 택하여 주시고 또한 부르셔서 주의 종으로 삼아주심이 그저 감사와 감격 그리고 놀라울 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것만도 황송한데, 날 위하여 십자가까지 지셨으니 그 은혜 앞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 은혜를 갚는 것은 나의 어떠한 행동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 앞에 감사와 송구함 그리고 면목 없음으로 서는 것임을 압니다.
나의 연약함을 아시오니 나를 불쌍히 여기사 주의 긍휼로 덮으소서.
주님은 찬송과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보잘 것 없는 자, 죄인 중에 괴수인 나도 주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 작은 입을 크게 벌려 찬송하오니 이 찬송을 받아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