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부는 어디서 오는가-3rd
‘귀도 알파니’의 이어지는 글이다. 2021년에 서구에서 부유한 다섯 사람은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일론 머스크’ (테슬라와 스페이스 X), ‘베르날’ (아르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을 들 수 있다. 이들 중 재산을 상속받아 불린 사람은 패션과 소매업의 기반을 둔 ‘아르노’뿐이다. 자수성가형 부자들은 부의 계층 구조가 개방적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이는 착각이다. 현재 자수성가형 억만장자들이 돈을 번 것은 수십 년 전의 일이고, 기업의 본질적인 성격 자체가 시간이 지나면서 경쟁을 저해하고 젊은 혁신가들의 열망을 저해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서구 억만장자들의 평균 년령이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1년 평균 61.0세가 2020년에 65.4세로 증가했다. 이는 기대수명의 증가보다 빠르며, 이들의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상위 부유층이 금융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상위 5%를 보면 금융 분야 종사자가 증가한다. 부유층 상위 계층으로 갈수록 자유 전문직은 사라지지만, 하위 계층으로 갈수록 그들의 비중은 증가한다. 따라서 전문직은 소득과 자산에서 상위 1%보다는 상위 5%에 더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불로소득 사회’로 회귀하고 있다는 우려는 19세기 초기에 고전 경제학자들이 우려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데, 바로 당시에 그들도 불도 소득자들이 만연한 사회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의 집중이 사회적 문제가 되는 이유, 부를 상속받은 사람들은 그로 인한 소득 중 일부만 저축해도 전반적인 경제 규모보다 더 빠르게 자본을 축적할 수 있다. 이런 조건에서는 자본의 집중이 극도로 높은 수준에 도달해,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근본인 능력주의의 가치관과 사회정의 원칙과 양립하기 어려운 정도가 될 수 있다. 중세 철학자 ‘오리스메’에게 사회적 반란은 어떤 변화에도 바람직하지 않았다. 1356년 ‘푸아티’전투에서 프랑스의 ‘장 2세’가 영국군에 포로로 잡힌 직후 수년 동안 프랑스는 반란에 시달렸다. 따라서 ‘오레스메’는 민주적 정부에 대해 논하는 가운데 민주적으로 통치되는 사회에서는 과도한 부를 지닌 초부유층을 추방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오레스메’는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부의 재정적 재분배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따라서 재산을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도덕적 탐욕자와 죄 많은 구두쇠를 구별하는 기준이 되었다. 구두쇠는 사회를 고려함이 전혀 없이 부의 축적 자체를 목적으로 삼았지만, 도덕적 탐욕자들은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저축할 뿐 아니라, 재산의 일부를 가치 있는 산업, 집, 별장, 사원, 병원 등에 투자했는데, 이러한 건물들이 없었다면 도시에는 중요하고 아름다운 장식물들이 없었을 것이다.
부유층에 대한 불신은 ‘카를 마르크스’의 저작물에서 드러난다. 그는 부르주아 계층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가 경제적-정치적으로 억압을 받게 되는 과정의 중요한 단계를 보여준다. 그는 상업자본과 고리대금 자본을 구분했는데, 고리대금 자본이란 ‘이자가 붙는 자본’ 모두를 의미했다. 그는 고리대금업이 부의 축적에서 기생적 역할을 한다고 했는데, 이는 생산 방식을 변화시키지 않고 사람들의 생활 조건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 뿐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딜레마는 기부와 세금이다. 부유층의 일부는 기부가 단지 세금을 회피하는 수단일 뿐이며, 자신이 기부한 자산에 대해 사실상의 통제권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세제 특혜를 이용한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기부금은 자발적으로 ‘주는’ 것이고, 세금은 강제로 ‘빼앗기는’ 돈이라는 인식은 세금 회피의 수단으로서의 기부가 가진 두 번째 심각한 문제로 다시 이어진다, 즉 민주적으로 설정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공공 기관이 활용할 수 있었던 재정적 자원을 고갈시키는 것이다. 만약 사적 후원과 자선이 공공 기관과 동일한 수준의 혜택을 제공할 수 있고, 게다가 자원을 더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우려할 이유가 없다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최근 서구가 국가 전반에서 상속세와 유산세를 감축하는 추세가 나타나지만, 대규모 재산에서는 아직도 상당한 세금이 부과된다. 예로 2021년 미국은 1,170만 달러를 초과하는 재산에 대해서는 연방 상속세율이 40%였고, 이 상한선 미만의 재산은 과세하지 않았다. 영국도 40%에 면세 상한선은 32만 5천 파운드로 낮았다. 이는 면세 상한선까지 기부하게 만드는 기부자 자문 기금 또는 재단을 설립하여 자산을 기부한 후, 기부자가 자산에 대한 실질적인 통제권을 유지하는 방법을 도모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는 기업가적 성과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평가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강한 정치적 분열을 일으킨 인물이라고 필자는 주장한다. 그의 재산은 2001년 약 17억 달러에서 2016년 대선 전에 46억 달러로 정점에 달한다. 그는 전반적으로 성공한 사업가다. 그는 가업인 부동산 개발 사업을 이어가는 동시에, 1980년대부터 자신의 이름인 ‘트럼프’를 다양한 사업에 라이선스로 제공하며, 트럼프라는 브랜드 자체를 수입화하는 전략을 취했다. 20세기 초 부유층 73%는 공화당원이고 24%만이 민주당 원이었다. 21세기 접어들면서 이런 격차는 줄어들었지만, 서로 다른 정치 진영에 막대한 자금이 유입되는 구조는 정치 체제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많은 돈을 후원한 기부자의 의견이 일반 유권자의 의견보다 더 크게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금 회피 및 탈세는 마땅히 비난받아야 한다. 그러나 부자들의 도덕적 결함을 지적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세금을 회피하려 하거나, 세제 개편을 추진함으로써 실제로는 자진의 사회적 지위를 약화시키고 있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서구 문화에서 부유층이 사회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사유 재산이 공공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즉 자선이나 기부 때문이 아니라, 공동체가 추가적인 자원을 필요로 할 때 기꺼이 거액의 세금을 납부함으로써 그들의 필요성을 입증한 것이다. 전쟁, 기근, 전염병과 같은 주요 위기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그들은 사회의 기대에 부응했다. 예로 흑사병은 코로나19보다 부유층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 두 전염병의 사망률이 달랐기 때문에, 절대적 측면에서도 그랬지만, 상대적 측면에서도 그랬다. 1929년 대공황은 2008년 경기침체와 그 이후의 국가 부채 위기 때보다, 부유층의 재산에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여, 최근 수십 년 동안 부유층이 전체 부에 대한 점유율만이 아니라 위기에 대한 상대적 회복력도 향상하게 시킨 것인지에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인플레이션을 통한 몰수‘라는 개념은 보통 개인 재산의 파괴 과정을 개념화한 것이지만, 동시에 사적 부와 공적 부의 재균형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20세기 전반 부유층이 풍요로움을 상실하는 과정은 단순히 부의 파괴가 아니라 남은 부의 재분배에 관한 이야기이고 하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부자들은 전쟁으로 인한 초인플레이션으로 금융 자산 가치가 크게 하락하는 피해를 보았다. 이는 자산 가격 변동으로 인해 초부유층의 부가 절대적-상대적으로 급격히 요동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1933년 미국 대통령이 되자 소득세 최고 세율을 63%로 인상했으며, 상속세 최고 세율도 크게 인상되었다. 경제 위기는 누진세와 경제 규제 강화를 촉진함으로써, 금융을 통한 대규모 축재와 부자 가문의 설립을 어렵게 만들어 부유층에 피해를 줬지만, 직접적인 피해는 그들이 보유한 금융 자산 가치 하락이다.
“사회 안에서 다른 계층의 불만이나 의심을 사지 않고 부유층이 자신들의 자리를 정당하게 마련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부유층은 무엇을 하던? 비판을 받게 마련이고, 초부유층에 대한 비판은 그 정도가 더욱 격렬하다. 그들의 소비 행태가 너무 눈에 띄면, 과시한다며 사회적 질투를 자극하고, 그렇다고 해서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면 다른 계층과의 부의 격차를 더 벌리려 한다는 의심을 받는다. 약자나 빈곤층에게 아무것도 베풀지 않으면 인색하고 냉정하다고 비난받고, 재단이나 기금 등을 통해 상당한 재산을 환원하면 세금을 회피하려는 것이라며 손가락질받는다. 정치에 관여하면 유권자나 정치제도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정치를 멀리하면, 서민의 삶에 무관심한 엘리트로 보일 위험이 있다. 이러한 딜레마는 끝이 없다. 역사는 인간의 행동에 대한 명백한 판단을 내리지 않으며, 대신 인간 행동의 다면성과 시간과 공간에 따른 변화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이끈다.
“세금이냐 쇠고랑이냐, 역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현명한 선택을 하자.” 이는 캠페인을 주도한 부유층 집단이 2022년 5월 ’다보스‘ 회의 참가자들에게 보낸 공개서한의 결론이었다. 세금은 부유층이 제도적-문화적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았고, 지금 산업화 이전 시대보다 더욱더 그렇다. 기부할 것이 아니라 세금을 내야 한다. 모든 기부 행위에 사심이 없다고 가정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지만, 설사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부자들의 관대함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특히 초부유층은 사회적 목표를 설정하고 해결하기 위해 ’자신들의‘ 재원을 사용하는 데 있어 의회와 정부가 본인들보다 더 잘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부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자기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는 본인이 제일 잘 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중에 세금 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쩌면 위기가 반복되는 때가 지혜를 얻기에 최적의 시기일 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공통된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이 오래된 듯하지만, 사실은 비교적 최근에 형성된 경직되고 이념화된 시각들은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우리는 현재 서구 사회를 특징지어온 결정적인 요소들을 보존하는 데 위협이 될 수 있는 길 위에 놓여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위험을 인식하는 그것이야말로 사회 전체가 공유하며 모두에게 최선일 수 있는 해결책을 찾기 위한 불가피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필자는 주장한다.
2025.10.31.
최고의 부는 어디서 오는가-3rd
귀도 알파니 지음
최정숙 옮김
미래의창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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