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청소년팀이 일본을 3대0으로 완파하고 카타르 대회에서 우승
했습니다. 이견이 있을 수 없는 한국의 깨끗한 한판승이었습니다.
박주영의 부상과 함께 매스컴에서는 '박주영-히라야마'의 대결에
촛점을 맞춰 요란을 떨었지만 결과는 싱겁게도 박주영을 주축으로
한 한국의 KO승이었습니다.
경기 내용 또한 스코어가 말해주듯 결승전치고는 한국의 일방적인
페이스였고, 한국은 별 어려움없이 경기의 주도권을 잡아 아주 쉽
게 경기를 풀어냈습니다.
한국의 승인은 곧 일본의 패인이므로 일본의 패인을 짚어보면 한국
이 어떻게 이겼는지 쉽게 그 답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우선 일본은 지나치게 '짧은 축구'에만 의존한 나머지 상대적으로
'긴 축구'를 구사하는 한국의 파워와 스피드에 밀렸습니다. 이것이
경기의 주도권을 한국에 내준 원인이 되었고 그것이 그대로 승부에
반영된 것입니다.
일본 축구는 성인이든 청소년이든 기본적으로 잘게 썰어가는 축구
를 고집합니다. 중간에서부터 플레이를 만들어내려는 경향이 너무
강합니다. 그래서 일본축구는 미드필드를 중시하며 모든 플레이는
반드시 미드필드를 거쳐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입니다.
물론 이런 인식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중앙에서부터 짧은
패스웍으로 경기를 주도하려면 지난 세계 청소년 대회 결승 진출팀
들인 브라질이나 스페인처럼 확실한 키핑력을 보유하지 않으면 안됩
니다.
상대의 거친 몸싸움을 버티어낼 수 있는 키핑능력과 좁은 공간을 헤
집을 수 있는 세밀함이 바탕이 되어야만 '짧은 축구'가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본 능력이 성인 축구에 비해 부족한 청소년 팀이 일류
성인 축구를 모방하려다보니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설익은 축구는 터프함과 스피드를 갖춘 축구에 취약한 법
입니다.
최근 청소년 경기에서 일본이 한국에 고전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한
국처럼 투지와 스피드가 좋은 팀을 상대로 너무 고지식하게 자잘한
축구만 고집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한국 청소년팀이 일본을 압도할 수 있는 것은 이와 반대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우선 한국은 전통적으로 기동력과 투지
를 바탕으로 상대를 밀어붙이는 축구를 구사합니다.
사실 이런 단순한 방식은 아직 기량이 만개하지 않은 청소년 축구에
적합할 때가 많습니다. 과거 80년대에 한국 청소년 축구가 4강 신화
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지난 월드컵 이후 한국 축구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미드필드의 강한 압박이 더해지면서 한국 특유의 기동력 축구가 더욱
탄력을 받게 되었습니다.
미드필드에서의 격렬한 몸싸움을 통해 상대의 예봉을 꺽고, 좌우 측
면을 활용하여 긴 패스를 통해 공간을 침투해 들어가는 '긴 축구'가
이번 대회에서도 효과를 발휘했다는 얘기입니다.
한국에게 있어서 미드필드는 일본처럼 플레이의 시발이라기 보다는
프레싱을 통해 상대의 공세를 억제하는 공간으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
습니다. 한국은 일본처럼 미드필드에서 무얼 만들어내려고 애쓰지 않
습니다. 그 대신 미드필드에서의 우월한 투쟁력을 바탕으로 긴 패스
나 크로싱을 활용하여 순식간에 상대의 문전에 도달하는 기동력 축구
에 중점을 둡니다.
결국 이번 결승은 '긴 축구의 한국'이 '짧은 축구의 일본'을 격파했다
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일본은 지나치게 뭔가 플레이를 만들어내려
다가 한국의 강한 저항에 밀려 맥없이 무너졌습니다.
다만 한가지, 기술이 뛰어나거나 체력적으로 우월한 축구를 만나면 한
국식의 긴 축구가 자칫 '뻥축구'로 돌변할 위험성이 항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터프함을 바탕으로 한 한국식 긴 축구가 상대의 기술이나
체력에 막혀 돌파구를 찾지 못해 안타까운 뻥축구로 전락했던 유쾌하
지 않은 기억이 있습니다.
세계 축구계를 주름잡는 상위권 팀들은 아시아권 팀들과는 달리 수비
조직력이 뛰어나 여간해서는 긴 패스가 나갈 공간을 허용하지 않는다
는 특성이 있습니다. 또한 설령 공간은 허용한다 해도 협력 수비로 문
전을 커버하는 능력이 뛰어나 여간해선 상대에게 결정적인 기회를 잘
허용하지 않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보여주었듯이, 경기가 잘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는 드물
게 찾아오는 한 두번의 기회를 살리는 문전에서의 강한 집중력으로 경
기를 풀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번 대회를 지켜본 일부 축구팬들은 한국 축구가 꽤 변했다고 얘기하
지만, 한국 축구의 기본 패턴이 바뀐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동안 문
제점으로 지적되던 크로싱 같은 찬스 포착 능력의 정확성이 높아졌고
문전에서의 마무리 능력이 좋아졌습니다. 김승용이나 박주영의 활약이
그걸 반증해 주고 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역시 세계 대회에서 국민들이 기대한 만큼 좋은 경기
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실 지난 대회에서도 청소년팀에 거는 축구
팬들의 기대는 남달랐습니다. 그 시절 최성국에 걸었던 기대는 지금의
박주영 못지 않았습니다.
다만 세계 축구의 벽은 역시 높아 우리가 기대한 만큼의 성과는 얻지
못했습니다. 지난 2002 월드컵을 빼놓고는, 기대치는 높은데 성과는
따라주지 못한게 그동안 한국 축구의 현실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겠지만, 팬들의 높은 기대치가 선수단에
일종의 부담으로 작용했던 면도 간과할 수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기
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청소년팀이 최근 기술적으로 크게 향상된만큼 지나치게 결과만을 요구
하는 풍토에서 벗어난다면, 최소한 지난 대회때보다는 좋은 성과를 기
대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 봅니다.
첫댓글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