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핀 생애》(海上開花)
— 삶은 항해이며, 항해는 곧 귀향이다 —
나의 처녀항해 출항하던 곳
부산항의 밤부두에
철과 소금의 바람이 스쳐 갔다.
엔진의 진동은 첫사랑의 가슴처럼
내 불안한 심장에 메아리쳤다.
갈매기의 울음은 흩어지는 눈물처럼
저무는 하늘에 녹아들었다.
선장의 눈빛은 겨울 바다 같았으나,
그 안에는 머나먼 고향의 파도 소리가 숨 쉬고 있었다.
일등항해사의 침묵은
바다가 가르치는 첫 번째 언어였다 —
말이 아니라, 파도와 호흡으로 배우는 언어.
짧은 명령과 긴 파도 사이에서
나는 내가 어떤 꽃이 될지 몰랐다.
파도가 나를 삼킬 것인지,
아니면 진주를 만들 것인지.
바위 같은 선원들의 주름 속에는
시간이 써 내려간 시 한 편이 흐르고 있었다.
밤바다의 별들은
조타실 창문에 비친 내 얼굴 위로
수천 개의 질문을 새겼다.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그 경계 위에
내 삶의 무게가 매달려 있었다.
폭풍이 다가올 때면
모든 이는 작은 배가 된다.
그러나 바다는 가르쳤다 —
파도가 높을수록
별은 더욱 선명하게 빛난다는 것을.
첫 월급 봉투가 어머니 손에 닿았을 때,
나는 어머니의 미소를 만졌다.
“어머니, 바다는 큽니다.
아들은 그속에서 조금 더 자랐습니다.”
그 한 줄의 편지가
모든 파도를 아름다운 파문으로 바꾸었다.
세월이 밀물처럼 오르내린다.
오늘, 일흔의 창가에 앉아
그때의 바다를 적는다.
죽음이란 이제
부모님 곁으로 돌아가는 고향길 같다.
내 생의 항해는
아직도 그리움을 타는
배 한 척이다.
달이 밀물을 데리고 오면
배는 어둠을 하얀 길로 가르며 나아간다.
그때 나는 알았다.
모든항해는
자신이라는 미지의 대륙을
발견하는 여정임을.
낯설음은 이제
내 가장 익숙한 고향이 되었다.
삼 년의 꿈이 오십 년의 시가 되었다.
바다는 나를 시험하되,
단 한 번도 외면하지 않은 스승이었다.
파도는 부서지며 노래를 만들고,
나의 무너짐은
나를 더 깊은 사람으로 빚어냈다.
항구는 단지 쉬어가는 곳이었고,
진정한 목적지는
나 자신을 찾아가는 길 그 자체였다.
이 세상의 모든 흔들림 속에서
나는 바다에게 배웠다.
불확실함을 안고 사는 법을.
이제 나는 안다 —
인생이란
끝없이 낯설면서도
끝없이 사랑스러운 바다임을.
바다의 하루는 잔잔한 날이 없지만,
그것이야말로 바다의 존엄이다.
인생 또한 그러하다 —
평온만을 바라는 자는
결코 깊은 물에 닿을 수 없다.
방향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진정한 항해이다.
바다는 나에게
인내라는 이름의 꽃을,
두려움이라는 이름의 별을 선물했다.
삶은 정복이 아니라,
미지와의 조용한 동행이며,
고요한 순례다.
나는 그것을 바다에게서 배웠다.
지금도 밤바다에서는
한 노인이 젊은 날의 파도를 적는다.
그의 붓끝에서
바다는 여전히 파도를 만들고,
파도는 여전히 시가 된다.
終章 ― 바다(海)의 철학
바다는 늘 변하되,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 품은 흐르며 머물고, 무너지며 완성된다.
인간의 생애 또한 그러하리 —
시작은 출항(出航)이요,
끝은 귀향(歸鄕)이다.
파도는 모든 생을 닮았다.
저항 속에서 태어나,
순응 속에 사라진다.
그러나 그 사라짐이야말로
다음 생의 노래를 잉태한다.
삶이여, 그대는 바다다.
나 또한 그 안의 한 물결이었다.
그리고 그 물결이 스러지며
하나의 시가 된다.
<인내의 노래 — 시간을 이기는 영혼의 힘>
(The Song of Endurance — The Power That Outlasts Time)
조용히 들으라.
세상은 빠르게 변하지만,
진정한 강함은 언제나 느리게 자란다.
나는 인내(忍耐)다.
세상의 소음이 잠잠해지고,
모든 불꽃이 사그라진 뒤에도
홀로 남아 꺼지지 않는 미약한 불씨.
나는 외치지 않는다.
나는 단지 버틴다.
폭풍이 그대를 휩쓸어도,
세상이 등을 돌려도,
그대가 여전히 서 있다면,
그것은 나의 숨결 덕분이다.
나는 그대 안에서 조용히 속삭인다.
“끝까지 버티는 자만이,
끝내 도달하리라.”
그대가 처음 시련을 만났을 때,
세상은 그대를 외면하고,
친구의 말은 멀어지고,
하늘마저 닫힌 듯 느껴지리라.
그때, 나는 시작된다.
인내는 피하지 않는다.
인내는 도망치지 않는다.
인내는 단지,
고통과 함께 앉아 있다.
눈물이 멈추지 않을 때,
나는 그대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괜찮다. 울어도 된다.
하지만 멈추지는 말아라.”
겨울의 들판은 텅 비어 있지만,
그 깊은 흙 속에는 이미
새로운 봄의 씨앗이 잠들어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고통은 멸망이 아니라,
성숙의 시작이다.
인내의 길은 길고, 말이 없다.
세상은 성취를 말하지만,
나는 지속을 말한다.
그대는 묻는다.
“언제 끝나지?”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내는 끝을 바라보지 않는다.
인내는 지금 이 순간을 견디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빛이 모두 꺼지고,
그대의 믿음마저 흔들릴 때,
나는 그대의 뿌리로 내려간다.
그대는 잊지 말라.
나무는 가지로 자라지 않는다.
먼저 뿌리로 내려가야,
하늘을 향해 올라간다.
인내는 성장의 반대가 아니다.
인내는 성장의 숨겨진 절반이다.
그대가 멈춘 듯 보이는 지금,
그대의 영혼은 더 깊이 자라고 있다.
그대는 여전히 걷고 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길 위를.
그대의 노력이 허공으로 흩어지는 것 같고,
세상의 박수는 타인에게만 향하리라.
그러나 그대여,
진정한 힘은 조용히 만들어진다.
나는 그대의 일상 속에 숨어 있다.
묵묵히 책을 펴는 순간,
실패 속에서도 다시 시도하는 손끝,
그 모든 평범한 반복이 나다.
인내는 불꽃처럼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그 어떤 불보다 오래 탄다.
나는 그대의 삶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기둥이다.
사람들은 말하리라.
“그대는 어떻게 그 모든 것을 견뎌냈는가?”
그때 그대는 조용히 미소 지을 것이다.
“나는 단지 계속 걸었을 뿐이다.”
그 한마디가 바로
인내의 노래다.
마침내,
그대는 오랜 고요의 끝에서 깨닫는다.
인내는 기다림이 아니라,
살아 있음의 증거임을.
고통 속에서도 살아 있는 자,
그가 곧 승리자다.
인내는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
그러나 인내는 그대를 바꾼다.
그리고 바뀐 그대가 세상을 바꾼다.
이제 그대의 눈은 깊고,
그대의 말은 잔잔하며,
그대의 미소는 강하다.
세월이 그대를 시험할지라도,
그대는 흔들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제 그대는 알고 있으므로.
진정한 아름다움은
끝까지 견디는 영혼에게서만 빛난다.
이제 들으라,
마지막으로 내가 남기는 말을.
나는 인내다.
나는 세상의 가장 느린 힘이지만,
가장 오래 남는 힘이다.
나는 폭풍 뒤의 고요요,
불길이 사라진 뒤의 빛이다.
그대의 포부가 세상을 향해 외칠 때,
그대의 의지가 길을 뚫을 때,
나는 그 모든 열정을 지켜주는
조용한 수호자다.
나 없이는 불꽃이 오래가지 못하리니,
나는 인간의 모든 위대함 뒤에 숨어 있는
보이지 않는 이름이다.
그러므로 기억하라.
승리란, 남들보다 빨리 이르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나는 인내다.
시간의 흐름조차 이기지 못하는,
인간 영혼의 마지막 불꽃.
그대 안에서 조용히,
그러나 영원히 타오르리라.
《의무(義務)의 찬가(讚歌) — 삶의 닻, 존재의 길》
들으라, 이 세상 모든 갈림길 앞에 선 자여,
그대 어깨 위 내려앉은 보이지 않는 무게,
발걸음 재촉하는 숙명(宿命) 같은 이끌림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늘이 내린 칙령(勅令)도 아니요,
누군가 강제(強制)하는 족쇄(足鎖) 또한 아니거늘,
그대 영혼 가장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
세월의 풍파(風波)를 넘어 굳건히 서게 하는 힘.
나는 의무(義務)로다.
나는 너와 함께 여명의 빛을 맞고,
밤의 심연(深淵)을 함께 헤쳐 나가는 동반자(同伴者)이니.
때로는 무거운 짐처럼 느껴질지라도,
때로는 솟아나는 샘물처럼 너를 일으켜 세우리.
네 손에 쥐여진 칼끝의 정의(正義)도 나로부터 발(發)하고,
네 입에서 흘러나오는 사랑의 맹세(盟誓) 또한 나의 빛깔이니.
선장(船長)의 나침반처럼,
세상을 밝히는 등대(燈臺)처럼,
나는 너의 길을 가르치고 방향을 인도(引導)한다.
무심한 발걸음 속에 씨앗을 뿌리고,
침묵하는 노력 속에 거름을 주며,
끝내 열매 맺게 하는 숙명(宿命)의 경작자(耕作者)이니.
나는 자식(子息)이 부모(父母)에게 올리는 공경(恭敬)이며,
가난한 이웃에게 내미는 따뜻한 손길이다.
겨울 강물 위에 놓인 얼음 다리처럼,
넘어질까 불안(不安)한 그 걸음을 묵묵히 받쳐주며,
흐르는 강물이 돌아서 바다를 찾듯,
스스로의 마음에 뿌리내려 싹 틔우는 인내(忍耐)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고,
새로운 문명(文明)의 지평(地平)을 여는 것은,
거대한 폭력(暴力)도 아니요,
현란한 기술(技術)도 아니니,
오직 한 사람,
혹은 만인(萬人)이 짊어진 나의 고요한 이끌림이다.
나를택한자(者)에게는
황금(黃金) 사과(沙果)의 유혹(誘惑)보다 값진,
존엄(尊嚴)의 면류관(冕旒冠)을 씌워줄 것이다.
나는 두려움 앞에 선 용기(勇氣)의 발톱이며,
절망(絕望)의 늪에 빠진 희망(希望)의 줄기이니.
때로는 너의 가장 은밀한 욕망(慾望)과 다투고,
때로는 달콤한 유혹(誘惑)의 속삭임을 물리치게 하리라.
허나 그 모든 번뇌(煩惱)와 갈등(葛藤) 속에서,
나는 너의 영혼(靈魂)을 더욱 단단히 벼려내고,
어두운 밤하늘에 별처럼 빛나는 의미(意味)를 심어준다.
오직 나를 따르는 자만이 진정한 자유(自由)를 맛보고,
자신만의 바다를 온전히 항해(航海)할 수 있으리니.
나는 너를 고립(孤立)시키는 것이 아니라,
너를 너답게 만드는 굳건한 울타리다.
그리하여 나는 노래한다.
자신을 던져 타인을 살리는 의사(醫師)의 칼날 위에서,
밤을 새워 뭇백성(百姓)의 길을 밝히는
학자(學者)의 펜 끝에서.
사랑하는 이를 위해 기꺼이 희생(犧牲)하는 가슴 속에서,
혹은 차가운 강철(鋼鐵) 위에서
피땀 흘리는 일꾼의 손마디 속에서.
모두가 잊은 듯 보여도,
나는 매순간(每瞬間) 그대와 함께 숨 쉬며,
작은 물결이 모여 큰 바다를 이루듯,
낱낱의의무(義務)들이모여
인류(人類)의 위대한 발자취를 쓴다.
나는 의무(義務)다.
삶의 닻이 되어 흔들리는 너를 붙잡고,
존재(存在)의 길이 되어 미지의 항해를 이끌어간다.
끝없이 이어지는 여정(旅程) 속에서,
좌절(挫折)과 환희(歡喜)의 모든 순간(瞬間)에,
나는 너의 가장 진실(眞實)한 노래이며,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이니라.
첫댓글 처녀항해이라
얼마나 가슴이 뛰었던고
바다에 핀 꽃은
항해사의 큰 꿈이겠지요.
잘 감상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릴 땐 그저 고향을 떠나
온 세상을 다닐 수 있다는 사실 하나로
벅찬 가슴 속에서
한 3년만 배를 타려고 했었습니다.
잘 감상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소중한 발걸음에 귀한 말씀 남기시니 감사합니다.
지기님 다녀가심 영광입니다.
바다와 평생을 함께 했는데 그 마음 알 듯 합니다.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처음 군면제 3년이면 해상생활 끝일 줄 알았는데
무려 50년이 되었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