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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가톨릭과 개신교에서 사용하는 정경이 다른가?
굉장히 흥미로운 주제지요. 잘 아시겠지만 가톨릭의 성경과 개신교의 성경이 다릅니다. 신약성경은 똑같이 27권입니다. 신약이 더 중요하니 그나마 감사한 일이지요. 그러나 구약성경은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성경이 더 많습니다.
가톨릭은 1546년 트렌트 공회에서 외경을 정경으로 선포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본 종교회의(The Synod)는 구약과 신약의 모든 책(외경을 포함하여)을 하나님 한 분만이 저자 되심을 알므로 ... 그리스도 자신의 입으로 하신 말씀과 성령에 의하여 하신 말씀을 받아썼으므로 ... 인정하며 존경한다. 만일 앞에서 말한 전체의 책과 전체 부분을 가톨릭에서 읽고 사용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 책들을 거룩하게 인정하지 않는 자나 또는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처럼 트렌트 공회 때 개신교의 성경에는 없는 토비트, 유딧, 지혜서, 집회서, 바룩, 마카베오 상·하 등 외경 7권이 가톨릭의 정경이 되었습니다. 때문에 가톨릭이 사용하는 구약성경은 39권이 아니라 46권입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 책들이 위경이 아니라 외경이라는 것입니다. 유대교에서는 구약 39권을 정경으로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단번에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를 수용하지 않는 후대 학자들이 어떤 책의 정경성에 관하여 의문을 제기하였습니다. 다행히 여러 논의 끝에 39권을 그대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만, 논의 중 전문적인 용어로 책들을 4가지로 분류하였습니다.
첫째로, "원경"(原經, homologoumena, 일체 상동 一體相同)인데, 전체가 승인한 책들을 가리킵니다.
둘째로, "대경"(對經, antilegomena, 대질對質)인데, 몇몇 사람들이 경우에 따라 의문을 제기했던 책들입니다. 즉 논쟁의 대상이 된 책들인데 여기까지가 정경입니다.
셋째로, "외경"(外經, apocrypha, 감추어졌거나 혹은 의심스러운 책)인데, 어떤 사람들은 인정하고 어떤 사람들은 거부한 비성경적인 책들을 가리킵니다.
넷째로, "위경"(僞經, pseudepigrapha, 위조 기록)인데, 전체가 거부한 비성경적인 저작을 가리킵니다.
다행인 것은 정경에 새로이 포함된 책들이 위경이 아니라 외경에 속하는 책들이라는 점입니다. 그렇더라도 이런 차이는 매우 당혹스러운 것입니다.
그럼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요? 그리고 어느 쪽이 옳은 것일까요?
(1) 왜 가톨릭과 개신교의 성경이 다른가?
가톨릭과 개신교의 구약성경이 다른 것은 가톨릭이 트렌트 공회에서 외경을 정경으로 인정한 후부터입니다. 따라서 왜 가톨릭이 7권의 외경을 정경으로 인정했는가를 알아보아야 합니다. 현재까지 그들이 내세우는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신약의 반영
신약성경은 외경의 사상을 반영하고 있으며 외경에 들어 있는 몇 가지 사건을 담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히브리서에서는 죽은 자를 부활로 받는 여자들을 언급하고 있는데(11:35), 그것은 마카비 2서 7장과 12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또 신약성경은 외경과 위경을 인용하고 있습니다(유14-15, 딤후3:8). 이것이 그들이 내세우는 첫 번째 근거입니다.
2) 신약에서 사용한 70인경
알렉산드리아에서 만들어진 히브리어 구약성경의 희랍어 번역본을 70인경(Septuagint, LXX)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신약저자들이 가장 많이 인용한 성경입니다. 그런데 이 70인경에는 외경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내세우는 두 번째 근거입니다.
3) 최초로 완성된 필사본
최초의 희랍성경 '필사본'(manuscripts - '손으로 써서 만든 책') 역시 구약 안에 산재되어 있는 외경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필사본 알렢과 A와 B는 모두 이런 책들을 담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내세우는 세 번째 근거입니다.
4) 초기 기독교 미술
기독교 미술에 관한 최초의 기록에서도 외경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카타콤(Catacomb, 초기 기독교 박해 시에 성도들이 피난처로 사용한 로마의 지하 묘지)의 장면들은 종종 기간(구약과 신약의 중간 기간인 약 400년) 중에 기록된 성도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내세우는 네 번째 근거입니다.
5) 초대 교회의 교부들
초대 교회의 교부들 중 특히 서방측의 교부들은 외경을 받아들여 가르쳤으며 또한 설교 자료로 사용했습니다. 동방에서도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에스드라 2서를 완전한 정경으로 인정하였습니다. 오리겐은 그의 정경 목록에 예레미야의 서신과 더불어 마카비서을 첨부시켰습니다. 이레니우스는 지혜서(Book of Wisdom)를 인용하였으며 다른 교부들도 외경 중에서 다른 책들을 인용하였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내세우는 다섯 번째 근거입니다.
6) 어거스틴의 영향
어거스틴(354-430년경)은 외경을 정경의 위치로까지 끌어올림으로써 그 극에 이르게 했습니다. 또한 외경을 정경 목록에 삽입시킨 히포(Hippo, A. D. 393)와 카르타고(Carthage, A. D. 397)에서 열린 교회회의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때로부터 서방 교회는 외경을 공중 집회에서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내세우는 여섯 번째 근거입니다.
7) 트렌트 공회
1546년 가톨릭은 트렌트의 공회에서 외경을 정경으로 선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트렌트 공회 이후에 외경들은 가톨릭의 정경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8) 가톨릭 이외에서의 사용
개신교에서도 종교 개혁 이후 가끔 외경을 성경에 포함시켰습니다. 성공회에서는 공중집회에서 신구약과 더불어 규칙적으로 외경을 낭독했습니다. 동방 정교(Eastern Orthodx, 희랍 정교) 교회들 역시 교회의식 때 외경을 사용했습니다.
9) 사해 지역사회
쿰란에서 발견된 사해 지역사회의 두루마리 속에서도 외경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중의 몇 권은 히브리어로 쓰여진 것들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이전에 팔레스타인에 거주한 유대인들이 사용한 것임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그들이 내세우는 또 하나의 근거입니다.
이상과 같은 근거들을 제시하며 가톨릭은 외경 7권을 정경으로 인정합니다. 참고로, 가톨릭의 구약은 유대교의 구약성경과 다릅니다. 그러나 개신교에서 사용하는 구약성경은 유대교의 구약성경과 같습니다.
(2) 가톨릭과 개신교의 정경 어느 쪽이 옳은가?
어떻습니까? 가톨릭에서 외경을 정경으로 인정하는 이유들을 보니 '어 그렇다면 그들의 결정이 옳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시지요! 저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결정이 옳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왜 가톨릭의 결정이 옳은 것이 아닌지 그 이유들을 여러분에게 조목조목 설명해드리겠습니다.
1) 신약성경의 권위
노오만 가이슬러와 윌리암 닉스는 "신약에서는 외경을 영감 받은 책으로 인용한 적이 없다."라고 단언했습니다. 그 말이 옳습니다. 어떤 분들은 대번에 유다서 14-15절을 들고 나올 것입니다.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이것은 외경도 아니고 위경인 "에녹의 서"를 참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유 때문에 신약성경의 정경을 결정할 때 유다서가 도마에 올랐습니다. 유다서의 정경성은 일부 사람들에 의해 의문시되었고, 논란은 위경인 "에녹의 서"를 참조한 부분에 집중되었습니다(유14-15). 오리겐이 이 문제를 지적했고(마태복음 주석 18:30에서), 제롬은 이를 가리켜 문제가 있다고 심각하게 지적했습니다(저명인사들의 생애 제 4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서는 초대 교부들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레니우스,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터툴리안 등이 모두 그 책을 정경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렇다면 위경에서 인용한 부분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성경에 보면 사도 바울도 성경이 아닌 다른 책에서 인용을 했습니다.
사도행전 17: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이처럼 바울은 어떤 시인의 말을 인용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5: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이처럼 바울은 메난더의 희극 타이스에서 유래한 격언을 인용했습니다.
디도서 1:12 "그레데인 중의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라 하니"
이처럼 바울은 어떤 그레데인 선지자의 말을 인용하였습니다. 유다가 에녹의 서에서 인용한 것도 이것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습니다.
노오만 가이슬러와 윌리암 닉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고대 유대인 사회에 만연되었던 위조 신앙서적 대부분은 위경으로 알려졌다. 이와 같은 위경 속에 들어 있는 내용의 모든 것이 거짓말은 아니다."
위경은 오늘날로 말하면 성경은 아니지만 종교서적입니다. 게다가 위경 가운데 가장 널리 영향을 끼친 문헌이 "에녹의 서"입니다. 이 책에서 유다가 잘 분별하여 맞는 내용을 일부 인용한 것입니다. 바울의 성경이 아닌 다른 것의 인용이 그러하듯, 유다의 인용도 인용한 책이 권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그 책에 들어 있는 모든 것을 보증한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유다가 "에녹의 서"에서 인용했다 하여 "에녹의 서"가 정경일 수는 없습니다.
2) 70인역의 번역
가톨릭과 개신교의 구약정경 중 어느 것이 옳은가를 알려면 반드시 70인역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주전 333년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제국을 물리치고 승리를 거둠으로써 고대 근동지역은 희랍세계로 전환되었습니다. 그 결과 희랍어가 고대 근동세계의 통용어가 되었고,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모국어인 히브리어를 점차 잊게 되었고 희랍어를 상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어로 된 구약의 책들을 희랍어로 번역할 필요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 구약 번역작업은 주전 3세기 중엽, 당시 희랍 문화의 중심지 중 하나였던 알렉산드리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희랍어로 번역된 구약을 70인역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번역할 때 이스라엘 12지파에서 각각 6인씩 선출되어 모두 72인(어림 숫자로 70)이 번역했다고 해서 생겨나게 된 이름입니다.
그런데 희랍시대에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구약 이외에도 많은 종교적 문헌이 애독되었습니다. 그중 15권이 특별히 사랑을 받았는데 번역자들이 이 책들도 함께 번역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70인역 안에 포함시켰습니다. 이것이 바로 70인역입니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개신교의 구약성경은 히브리어 구약성경의 전통을, 가톨릭의 구약성경은 헬라어 구약성경(70인역)의 전통을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도 있는 문제지 뭐가 나쁜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70인역에는 헬라어를 사용하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재외 유대인들)이 즐겨 읽던 책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본토 유대인들은 이 책들이 신적 권위가 없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얌니아 회의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A. D. 90년경 유대교 최고 랍비였던 요하난 벤 자카이는 랍비들을 불러 모아 얌니아 지방에 있던 예쉬바라고 불리는 랍비들의 아카데미에서 구역성경의 정경을 결정하는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이 회의에서 랍비들은 유대교의 정경 목록 즉 구약성경의 정경을 확정했습니다. 이때 70인역에 포함되어 있었던 히브리어로 쓰여진 책 이외의 희랍어로 쓰여진 종교문헌들 즉 외경들은 제외되었습니다. 정경의 자격이 없다고 공식적으로 천명하고 정경에서 제외시켰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얌니아 회의를 믿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결과가 바뀌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얌니아 회의는 정경 목록을 새롭게 확정한 것이 아니라 B. C. 400년경에 있었던(일설에 의하면 에스라에 의해) 일차적으로 확정된 목록을 그대로 재확인한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덧붙여 드리고 싶은 말씀은, 70인역은 알렉산드리아에서 만들어진 번역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 성경의 본거지는 팔레스타인이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가 아닙니다. 아무리 훌륭한 희랍어연수원이라도 어떤 책을 유대교의 구약에 포함시킬 것인가를 결정할 권한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70인역 안에 외경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단지 알렉산드리아에 거주한 유대인들이 정경과 더불어 유대인의 다른 신앙서적들을 번역했다는 의미로만 받아들여야 합니다. 외경들이 정경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3) 최초로 완성된 필사본
성경의 초기 희랍어 필사본은 A. D. 4세기에 쓰여졌습니다. 그 필사본은 외경을 포함시키고 있는 70인역의 전례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것은 어디까지나 희랍어 번역본일 뿐 히브리어 정경은 아닙니다. 따라서 외경은 유대교의 정경이 아니고 당연히 기독교의 정경이 될 수도 없습니다.
4) 초기 기독교 미술
예술적 표현이 외경의 정경성을 결정짓는 데 결정적인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외경에서 설명하고 있는 카타콤의 장면은 당시의 성도들이 중간기간(구야과 신약의 중간기간인 약 400년) 동안에 있었던 사건들을 알게 되어 그 사건들을 그들 신앙의 유산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표현한 것뿐입니다.
5) 초대 교회의 교부들
물론 교부들 중에 일부 외경을 정경으로 인정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멜리토(Melito), 오리겐, 시릴, 아타나시우스 등 초대 교회의 여러 위대한 교부들이 외경에 반대하였습니다. 어거스틴 이전까지는 어떤 영향력 있는 교부도 트렌트 공회에서 정경으로 결정한 전체 외경들을 인정한 사람이 없습니다.
6) 어거스틴의 정경
어거스틴(354-430년경)은 히포(Hippo, A. D. 393)와 카르타고(Carthage, A. D. 397)에서 열린 교회회의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래서 외경을 정경 목록에 삽입시켰습니다. 그러나 이 두 회의는 어거스틴과 70인역 번역의 전통에 영향을 받은 조그마한 지역 회의였습니다. 권위 있는 히브리 학자는 아무도 이 두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가장 권위 있는 히브리 학자로는 제롬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외경의 정경성을 통렬히 반대하면서 어거스틴을 비난했습니다. 제롬은 외경들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것을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라틴어성경(Latin Vulgate)에 첨부시키는 것조차 반대하였습니다. 외경이 라틴어성경 가운데 포함되게 된 것은 제롬이 죽은 후이며 문자 그대로 그의 시체를 장례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벌어진 일입니다.
7) 트렌트 공회
이것이 가장 중요한 설명입니다. 트렌트 공회의 행동강령은 논쟁적이었고 또한 편파적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웨인 그루뎀은 이렇게 썼습니다.
"로마 가톨릭에서 외경을 정경의 일부로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은 1546년 트렌트 공의회에서였다(에스드라 1, 2서와 므낫세의 기도는 제외됨). 트렌트 공의회는 마틴 루터와 급속도로 퍼지던 종교개혁에 대한 반작용으로 모인 모임이었고, 외경들이 죽은 자들을 위한 기도나 믿음과 행위에 의해 의롭게 된다는 그들의 가르침을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뭔가 냄새가 나지요! 당시 루터와의 논쟁에서 가톨릭은 죽은 사람을 위한 기도를 지지하면서 마카비서를 인용하였습니다(마카비 2서 12:45-46). 루터와 그를 추종한 개신교인들은 그 책의 정경성에 도전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신약성경과 초대 교회 교부들과 교사들의 글을 증거로 들이댔습니다. 그러자 가톨릭은 트렌트 공회에서 외경을 정경화시킴으로써 루터에게 응수한 것입니다.
그리고 외경의 14권(실제는 15권) 모두가 트렌트 공회에서 승인받지 못한 것을 보면, 트렌트 공회가 분명히 논쟁 위주였고 편파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에스드라 1서, 2서와 므낫세의 기도서(Prayer of Manasseh)는 제외되었습니다. 이 중 에스드라 2서를 제외시킨 것은 특히 의심스러운 부분입니다. 그것을 제외시킨 이유가 그 책에 죽은 자에 대한 기도를 강력히 반대하는 구절이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추측 가능하기 때문입니다(에스드라 2서 7:105). 실제로 중세의 서사(書司, 서기관) 중 몇 사람은 에스드라 2서의 라틴어 필사본에서 이 부분을 삭제시켰습니다. 1874년 로버트 벤틀리(Robert L. Bently)가 프랑스 아미엔(Amiens)에 있는 한 도서관에서 라틴어로 된 것을 찾아 이 사실이 드러나기까지 죽은 자에 대한 기도를 강력히 반대하는 구절이 삭제된 것이 아랍어 필사본으로 알려졌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트렌트 공회의 결정은 개혁기의 가톨릭 내의 전체 의견도, 논의의 여지가 없는 동의가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증거로, 1518년 아우그스부르그(Augsburg)에서 루터를 반대했던 추기경 카예탄(Cajetan)은 외경을 삭제시킨 구약의 전 정사(正史, Commentary on All the Authentic Historical Books of the Old Testament)라는 해설집을 발간했습니다(1532). 또한, 그 전에 추기경 시메네스(Ximenes)는 그의 저서 코플루텐시안의 대조 성경(Coplutensian Polyglot, 1514-1517)에서 외경과 구약정경과의 차이를 구분해놓았습니다. 그러므로 트렌트 공회의 결정은 신뢰할 만한 것이 못됩니다.
8) 가톨릭 외에서의 사용
희랍정교, 성공회, 개신교 등에서의 외경 사용은 일정하지 않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공중 집회(예배의식)에서 외경을 사용하였습니다.
외경을 포함시킨 성경책들은 보편적으로 구약과 신약 사이에 외경을 분리해서 삽입시켰습니다. 외경에 성경의 다른 책들과 동일한 정경적 권위를 부여하지는 않았습니다. 외경을 사용하더라도 정경적인 목적보다는 오히려 예배의식을 위해 사용하였습니다.
9) 사해의 두루마리
사해 지역의 쿰란에서 발견된 두루마리 속에서도 외경들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러나 외경이 정경이라는 증거는 못됩니다. 왜냐하면 주석과 편람(manuals)을 포함한 많은 비정경서들이 함께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책들은 큰 장서를 이루었으나 유대인 사회에서는 그 중에 포함된 많은 책들을 영감 받은 책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것 역시 외경이 정경이라는 증거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설명해드린 것을 요약해보겠습니다. 외경들은 예배의식이나 종교서적으로 사용되었을 수는 있어도 우리 믿음의 근간이 되는 정경이 아닙니다. 그 근거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유대인 사회에서는 그 책들을 정경으로 인정한 적이 없습니다.
2. 그러한 책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또는 신약에서 인정받은 적이 없습니다.
3. 초대 교회의 훌륭한 교부들 중 거의 다가 그 책의 정경성을 부인했습니다.
4. 어떤 교회회의도 4세기 후반까지 그것들을 정경으로 간주하지 않았습니다.
5. 위대한 성경학자이며 라틴어 성경 번역자인 제롬도 외경을 강력히 부인했습니다.
6. 심지어는 개혁기간 중의 많은 가톨릭 학자들도 외경의 정경성을 부인했습니다.
7. 동방 정교(희랍), 성공회, 개신교 교회들은 지금까지 외경을 영감 받았다고 보거나 정경으로 인정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웨인 그루뎀의 글을 인용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외경을 성경의 일부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1. 외경 자체가 구약성경과 같은 권위를 주장하지 않는다.
2. 그 책들을 기록한 유대인들이 외경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3. 예수님이나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그것들을 성경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4. 성경의 다른 부분과 모순되는 부분들이 있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성경과 같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 아닌 단순한 인간의 말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외경들도 물론 역사적, 언어학적 연구를 위한 가치가 있고 구약시대 이후 믿음과 용기에 관한 유익한 이야기도 많이 있지만 구약성경의 일부였던 적은 한번도 없었고 성경의 일부로 생각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들은 오늘날 성도들의 삶과 생각을 좌우하는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외경을 포함시킨 가톨릭의 성경은 바른 것이 아닙니다. 개신교의 성경이 옳습니다. 그렇다고 가톨릭은 완전히 가짜고 구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존 스토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제자도의 기초가 된다. 물론 이 말은 성경의 권위를 부인하는 사람은 어떤 면에서도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성경에 대한 확신은 적지만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
또, 권연경 교수님은 대담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약이라는 것을 아예 몰랐던 초대 교호가 있었다. 또한 대부분의 교회가 성경의 일부만을 읽고 살아온 긴 세월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신앙이 우리보다 못한 것은 결코 아니다. 정경 형성의 과정에서 당시 교회 지도자들은 우리만큼, 아니 우리보다 더 건강한 신앙을 갖고 있었다."
그러므로 저는 가톨릭 안에도 진실한 신자들이 있고 그들은 천국에 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렇긴 하나, 저는 양심상 가톨릭을 추천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가톨릭은 외경을 포함시켰을 뿐 아니라 성경 위에 교황의 권위를 두는 집단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롬10:17). 그런데 우리 믿음의 근거를 어찌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이 아니라 일개 인간에게 둘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현재 가톨릭은 종교다원주의에 심각하게 물들어 있는 음녀입니다. 자고로 음녀일수록 화장도 전하게 하고 옷도 요란하게 입는 법입니다. 그런데 가톨릭이 바로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톨릭의 화려한 혹은 종교적인 겉모습에 현혹되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