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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20일(월) 14:00,
국가유산청(國家遺産廳)은 5년간의 종묘 정전(宗廟 正殿) 수리를 마치고, 창덕궁(昌德宮) 구(舊) 선원전(璿源殿)에 임시로 모셨던 조선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들을 본래의 자리로 다시 모시는 '종묘 정전 환안제 및 준공기념식(宗廟 正殿 還安祭 竣工紀念式)'을 개최하였습니다.
행사 시작 시간인 오후 2시보다 이른 11:30분경에 종묘를 미리 답사하려고 찾았더니 기념식 행사로 임시휴관 안내문이 세워져 있습니다.
한산한 종묘 앞에는 관계자분들이 천막을 설치해 놓고 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종묘 외대문이 닫혀져 있어서 담장을 따라 서순라길(西巡邏길)을 따라 창덕궁(昌德宮)으로 이동을 합니다.
서순라길이 끝나는 지점에는 일제가 종묘의 지맥을 끊기 위해 개설한 율곡로가 있습니다.
국가유산청과 서울특별시에서는 지난 2022년에 율곡로를 지하화하면서 종묘 북신문과 창경궁을 다시 이었습니다.
율곡터널을 지나면 북쪽으로 창덕궁이 보입니다.
창덕궁에 도착하니 이곳에도 기념식 준비로 휴궁(休宮)입니다.
아직 두 시간 이상이 남아서 창경궁(昌慶宮)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창경궁을 둘러 보고 행사 시작 시간인 두 시보다 이른 13:30경에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敦化門) 앞으로 왔는데, 벌써 행렬 준비를 하고 양 편으로 수많은 관람객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때, 오늘 행사 인원들의 환복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문애심 총무님으로부터 신주가 금호문 밖으로 나가고 있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새로운 나라 조선(朝鮮)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1395년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면서 경복궁(景福宮)을 중심으로 좌묘우사(左廟右社)의 원리를 따라 좌측(동쪽)에는 왕실 조상신들을 모시는 종묘(宗廟)를 배치하고, 우측(서쪽)에는 곡식의 신과 토지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직단(社稷壇)을 배치하였습니다.
600년 이상 오랜 세월 동안 왕실 제례(祭禮)가 이어져 온 종묘 정전(正殿)은 1985년 국보(國寶)로 지정되었으며, 노후 문제가 지속적으로 확인되어 국가유산청은 2020년부터 2025년까지 5년에 걸쳐 수리를 완료하였습니다.
'종묘 정전 신주 환안 행렬'은 창덕궁 구(舊) 선원전에 임시로 봉안하고 있던 왕과 황제 19위와 왕비와 황후 30위의 신주를 다시 제자리로 모셔오는 환안제(還安祭) 행사입니다.
환안 행렬은 창덕궁을 출발하여 광화문과 세종대로, 종로를 거쳐 종묘까지 약 3.5Km구간을 행진하며, 사전 모집한 200명의 시민행렬단을 비롯해 총 1,200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환안 행렬이 펼쳐집니다.
저와 함께 창덕궁에서부터 종묘까지 출발해 보겠습니다.
'종묘 정전 신주 환안 행렬'을 알리는 휘장의 뒤를 이어 왕실의 위엄을 보여주는 각종 의장물(儀仗物)들이 뒤를 따릅니다.
의장물은 왕의 권력을 상징하면서 군사적 성격을 보여주는 도끼, 칼, 창과 같은 무기의 모양을 한 것과, 그늘을 만들어 주는 실용적 역할과 함께 행렬에 신비함을 더하는 휘장과 우산[傘], 부채 등이 있습니다.
크고 화려하게 제작된 의장물은 왕실의 행렬을 바라보는 백성들에게 경외감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왕실 위엄을 보여주는 의장물과 취타대(吹打隊)의 뒤를 따라 왕과 왕비의 신주를 운반하는 19기의 신여(神輿)가 뒤따릅니다.
※ 신여(神輿): 왕의 신주를 운반하는 가마, 궁 안에서 이동 시 사용
19기의 신여가 지나가고 나면 뒤이어서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의 신주(神主)를 모신 신연(神輦)과 향용정(香龍亭)을 선두로 환안 의식을 시작합니다.
※ 신연(神輦): 왕의 신주를 운반하는 가마. 궁 밖에서 이동시 사용
※ 향용정(香龍亭): 제사에 사용하는 향로와 향합을 운반하는 가마, 향정자(香亭子) 라고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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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에 도착해서 신주를 정전으로 이안(移安)할 빈 신여(神輿)의 뒤로 향로(香爐)를 실은 향용정과,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와 신의고황후 한씨(神懿高皇后 韓氏), 신덕고황후 강씨(神德高皇后 康氏)의 신주(神主)를 모신 신연이 출발합니다.
이어서 태종대왕(太宗大王)과 원경왕후 민씨(元敬王后 閔氏),
세종대왕(世宗大王)과 소헌왕후 심씨(昭憲王后 沈氏),
세조대왕(世祖大王)과 정희왕후 윤씨(貞熹王后 尹氏)의 신주를 모신 신연과 향용정이 뒤따라갑니다.
성종대왕(成宗大王)과 공혜왕후 한씨(恭惠王后 韓氏)·정현왕후 윤씨(貞顯王后 尹氏),
중종대왕(中宗大王)과 단경왕후 신씨(端敬王后 愼氏)·장경왕후 윤씨(章敬王后 尹氏)·문정왕후 윤씨(文定王后 尹氏)의 신주,
선조대왕(宣祖大王)과 의인왕후 박씨(懿仁王后 朴氏)·인목왕후 김씨(仁穆王后 金氏),
인조대왕(仁祖大王)과 인열왕후 한씨(仁烈王后 韓氏)·장렬왕후 조씨(莊烈王后 趙氏),
효종대왕(孝宗大王)과 인선왕후 장씨(仁宣王后 張氏)의 신주,
현종대왕(顯宗大王)과 명성왕후 김씨(明聖王后 金氏),
숙종대왕(肅宗大王)과 인경왕후 김씨(仁敬王后 金氏)·인현왕후 민씨(仁顯王后 閔氏)·인원왕후 김씨(仁元王后 金氏)의 신주가 뒤따릅니다.
취타대의 뒤를 따라 태조고황제의 신연을 선두로 태종대왕부터 숙종대왕까지의 향용정과 신주를 모신 신연이 지나갑니다.
뒤를 이어 영조대왕(英祖大王)과 정성왕후 서씨(貞聖王后 徐氏)·정순왕후 김씨(貞純王后 金氏),
정조선황제(正祖宣皇帝)와 효의선황후 김씨(孝懿宣皇后 金氏)가,
순조숙황제(純祖肅皇帝)와 순원숙황후 김씨(純元肅皇后 金氏),
문조익황제(文祖翼皇帝)와 신정익황후 조씨(神貞翼皇后 趙氏)의 신주,
헌종성황제(憲宗成皇帝)와 효현성황후 김씨(孝顯成皇后 金氏)·효정성황후 홍씨(孝定成皇后 洪氏),
철종장황제(哲宗章皇帝)와 철인장황후 김씨(哲人章皇后 金氏)의 신주(神主)가 뒤따릅니다.
마지막으로 고종태황제(高宗太皇帝)와 명성태황후 민씨(明成太皇后 閔氏), 순종효황제(純宗孝皇帝)와 순명효황후 민씨(純明孝皇后 閔氏)·순정효황후 윤씨(純貞孝皇后 尹氏)의 신연(神輦)과 향용정(香龍亭)이 출발합니다.
19위의 왕과 황제, 30위의 왕후와 황후의 신주(神主)를 봉안한 신연이 지나가고 나면,
의장과 취타대와 호위부대가 뒤따릅니다.
행렬의 후미에는 안전보호를 위한 구급차까지 대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잠깐 의문이 생깁니다!
조선의 왕은 모두 27분인데 오늘 환안(還安)하는 19위 왕 이외의 임금들은 신주(神主)가 없나요?
종묘(宗廟)에는 정전(正殿) 이외에 별묘(別廟)인 영녕전(永寧殿)이 있습니다.
영녕전에는 종묘(정전)에서 옮겨온 태조의 4대조를 비롯한 왕과 황제 15위와 왕비와 황후 17위, 그리고 마지막 황태자(영친왕)와 황태자비의 신주가 모셔져 있습니다.
종묘 정전과 영녕전 참조하세요 ↓
https://blog.naver.com/khi5040/223603889873
오후 두 시에 창덕궁을 출발한 행렬은 안국동 사거리를 지나 광화문(光化門)으로 향합니다.
광화문 앞에도 종묘정전 신주 환안을 축하하는 전통 공예 공연이 열리고 있습니다.
광화문 월대 옆 잔디밭에서는 줄타기 놀음 공연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신주 환안 행렬은 광화문을 지나 세종대로를 향해 나아갑니다.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의 신주(神主)를 모신 신연(神輦)과 향로(香爐)를 실은 향용정(香龍亭) 뒤로 태종대왕(太宗大王), 세종대왕(世宗大王), 세조대왕(世祖大王)의 신주를 모신 신연과 향용정이 지나갑니다.
이어서 성종대왕(成宗大王)과 중종대왕(中宗大王)의 신주, 선조대왕(宣祖大王)과 인조대왕(仁祖大王)효종대왕(孝宗大王)의 신연(神輦)이 뒤따릅니다.
세종대왕 신주가 세종대로의 세종대왕 동상 옆으로 지나갑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을 지나,
태조고황제의 향용정과 신연을 선두로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종로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19대의 신여(神輿)가 먼저 지나가고 향로(香爐)를 실은 향용정(香龍亭) 뒤로 취타대(吹打隊)가 따르고, 이어서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와 신의고황후 한씨(神懿高皇后 韓氏), 신덕고황후 강씨(神德高皇后 康氏)의 신주(神主)를 모신 신연(神輦)이 지나갑니다.
그 뒤로 태종대왕(太宗大王)과 원경왕후 민씨(元敬王后 閔氏),
세종대왕(世宗大王)과 소헌왕후 심씨(昭憲王后 沈氏),
세조대왕(世祖大王)과 정희왕후 윤씨(貞熹王后 尹氏)의 신주를 모신 신연과 향용정이 뒤따라갑니다.
환안 행렬은 종로 거리를 지나 종묘로 향합니다.
잘 따라가고 있습니다.
국왕의 위엄을 상징하는 각종 의장물(儀仗物)이 앞장 서고, 제1실 신여(神輿)부터 제19실 신여 뒤로 태조고황제의 신주를 모신 신연(神輦)이 종로 거리를 지나갑니다.
한 시간여 동안 3.5Km 구간을 행진 끝에 드디어 행렬이 종묘(宗廟) 앞에 도착하였습니다.
먼저 도착한 신여(神輿)가 종묘 외대문 앞의 양쪽에 대기를 합니다.
종묘 정전(宗廟 正殿)은 한 건물에 19개의 신실(神室)을 따로 내어 안치하는 동당이실(同堂異室)로 서상제(西上制)의 원칙에 따라 서쪽 제1실의 태조고황제부터 동쪽 끝 제19실의 순종효황제까지의 위패를 봉안(奉安)합니다.
※ 소목법(昭穆法): 세종 초까지만 해도 태조를 종묘 중앙에 안치하고 양쪽에 4대조를 소목법(昭穆法) 위계에 따라 좌우로 번갈아 배치하였습니다.
그 후 정종이 승하하자 별묘(別廟)인 영녕전(永寧殿)을 새로 지어 4대조와 정종의 위패를 봉안하여 종묘의 신실을 보완했습니다.
신여(神輿)는 서상제에 따라 서쪽 맨 앞에 제1실(태조고황제), 동쪽 맨 앞에 제2실(태종대왕), 서쪽 두 번째 제3실(세종대왕), 동쪽 두 번째 제4실(세조대왕) 등 19실 신여까지 차례로 대기하고 있습니다.
대기중인 신여의 모습
신여가 좌우로 나뉘어서 대기중인 중앙으로 19위의 왕과 황제, 30위의 왕후와 황후의 신위를 모신 신연(神輦)도 대기를 합니다.
※ 신여(神輿): 왕의 신주를 운반하는 가마, 궁 안에서 이동 시 사용
※ 신연(神輦): 왕의 신주를 운반하는 가마. 궁 밖에서 이동시 사용
※ 향용정(香龍亭): 제사에 사용하는 향로와 향합을 운반하는 가마, 향정자(香亭子) 라고도 함
향로를 모신 향용정과 신주를 모신 신연의 모습입니다.
향용정에 봉안된 향로의 모습과,
신주를 환안한 신연의 모습입니다.
제일 앞쪽의 향용정과 신연에서 종묘 정전(正殿) 제1실에 봉안할 태조고황제와 신의고황후 한씨, 신덕고황후 강씨의 향로와 신주(神主)를 내려서 서쪽 맨앞에 있는 신여로 옮깁니다.
두 번째 신연에는 태종과 세종, 세조의 신주를 환안하였습니다.
정전 제2실 태종대왕과 원경왕후의 신주를 동쪽 맨 앞에 있는 신여로 옮깁니다.
정전 제3실에 봉안된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신주를 좌측 두 번째 신여로 옮겨 모십니다.
인조대왕(仁祖大王)과 인열왕후 한씨(仁烈王后 韓氏)·장렬왕후 조씨(莊烈王后 趙氏)의 신주는 좌측 신여에 모시고, 효종대왕(孝宗大王)과 인선왕후 장씨(仁宣王后 張氏)의 신주는 우측 신여로 모십니다.
선조대왕과 인조대왕, 효종대왕의 신주를 모신 신연(神輦)에서 신주를 내려서 종묘 내에서 이동을 하는 신여(神輿)로 이안(移安)을 합니다.
종묘 정전 19실에 환안(還安)할 모든 신주를 옮겨 모신 신여(神輿)가 종묘 외대문 안으로 들어갑니다.
(나는 다른 일이 있어서 중간에 돌아오고 지인이 보내준 사진)
환안 행렬이 도착한 이후 오후 6시 30분부터 수리를 마치고 첫 공개되는 종묘(宗廟) 정전(正殿)에서의 고유제(告由祭)와 준공기념식이 진행됩니다.
고유제는 (사)전주이씨대동종약원 주관으로 약 200여명이 참여하여 전통 절차에 따라 봉행되며, 이어지는 준공기념식에서는 수리 과정을 담은 영상 상영, 종묘 정전 월대 위에서 외벽 영상(미디어 파사드)과 함께 약 60명의 무용수가 참여하는 특별 공연이 펼쳐질 예정입니다.
나는 다른 일정도 있었고 사전예약자 200명만 입장할 수 있어서 이후 행사는 아쉽게도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국가유산청의 영상 자료로 만나보아야겠습니다.
(자료 출처: 국가유산청 공식 블로그)

첫댓글 와~👍
믿고 볼수 있는 강호인샘
참여 하고픈데 못한 아쉬움을
위로 받습니다
애쓰신 만큼 보여주시는 현장감까지
감사합니다
두고두고 공부 되겠습니다 o(^o^)o
감사합니다.
어제 월례회의 때 고문님을 못뵈어서 아쉬웠습니다.
건강하게 잘 지내시고 다음달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