賞月(상월)
일타홍(一朶紅)
금산기생(錦山妓生)
우뚝 솟은 초승달이 뚜렷이 걸렸는데
亭亭新月最分明 정정신월최분명
한 조각 금빛 만고의 정신이네
一片金光萬古精 일편금광만고정
끝없는 인간세상 오늘밤 바라보니
無限世間今夜望 무한세간금야망
백년의 슬픔과 즐거움을 아는 이가 몇이나 될까
百年憂樂幾人情 백년우락기인정
有悼(유도)
심희수(沈喜壽: 1548 ~ 1622)
본관은 청송. 자는 백구(伯懼), 호는 일송(一松) · 수뢰누인(水雷累人).
저서로는 『일송문집』이 있다.
한 송이 부용꽃은 버들 수레에 실려서
一朶芙蓉載柳車 일타부용재류거
향기로운 넋은 어디 갈려고 머뭇거리는가
香魂何處去躊躇 향혼하처거주저
금강에 내리는 봄비에 붉은 명정이 젖어가는데
錦江春雨丹旌濕 금강춘우단정습
사무친 어여쁜 우리 님 이별의 눈물인가 보다
應是佳人別淚餘 응시가인별루여
*
사랑은 모름지기 이 정도는 돼야 되지 않겠는가?
흘러가는 사랑이 아니라
다가올 내일을 사랑했던 일타홍(一朶紅)
후세에도 그 마음이 살아남아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심희수는 기녀 일타홍을 만나고 나서, 학업에 열중하여
후에 우의정· 좌의정까지 올랐다
일타홍이 죽자
경기도 고양에 있는
선영(先塋)에 묻기로 마음먹고
금산으로 내려가 친히 운구하였다.
당시는 신분제도에서 기녀(妓女)를 선영에 모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유해를 친히 모시고, 금강에 이르렀을 때
마침 봄비가 내린다
고운 임의 눈물 인양 붉은 명정도 만장도 젖어간다
사내 심희수의 눈물도 명정보다 붉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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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白石)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마가리: 오막살이.
고조곤히:고요히. 소리없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백석, 다산초당,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