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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모든 것에 대한 충실한 안내서.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각종 소셜 미디어에서 ‘최고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 능력으로 여겨지는 지금, ‘사라지는 선택’이 얼마나 강력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 뉴욕타임스 북리뷰
끝없는 노출의 시대에 시기적절한 멋지고 지적인 책. ‘보이지 않는’ 수많은 상태와 모습에 대해 깊게 고찰한다. 그것은 결국 삶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는 여정이기도 하다.
― 메리 루플(《나의 사유 재산 My Private Property》 저자)
해리 포터의 투명 망토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권하는
‘보이지 않는 모든 것과 가능성’을 담은 품위 있고 지적인 안내서
앤디 워홀의 “미래에는 누구나 15분 동안은 유명해질 것이다”라는 50여 년 전 예언은 이미 현실화되었다. 누구나 소셜 미디어와 유튜브 등을 통해 일시적으로 주목받고 유명세를 얻는 ‘마이크로 셀러브리티’가 될 수도 있고, ‘자기상품화’를 위한 노력은 미덕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모든 사람의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에는 모든 이의 일상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즉각적으로 소비된다. 소셜 미디어에 ‘최고의 삶’을 과시하는 것이 능력으로 간주되는 지금, 끊임없는 노출과 연결에 피로함을 느낀 나머지 어쩌면 앤디 워홀의 저 말을 이렇게 바꿔서 상상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15분 동안만이라도 익명이고 싶다, 아니 사라지고 싶다.
《존재하기 위해 사라지는 법》은 모든 것이 드러나고 보이고 보여주는 ‘투명성’의 시대에 비가시성(Invisibility), 즉 보이지 않는 상태의 의미, 근원 등을 다양한 사례와 경험으로 고찰하고 엮어낸 책이다. 예술, 자연, 건축, 디자인에 대한 글을 쓰고 강의하는 미국의 작가 아키코 부시는 생물학자, 물리학자, 심리학자, 예술가, 작가 들과 만나고 그랜드케이먼 섬 바닷속, 아이슬란드 항구 도시에서 물리학 실험실과 가상현실 스튜디오까지 여러 곳을 오가며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섬세하고 지적인 안내서를 완성했다. 이 책은 해리 포터의 ‘투명 망토’가 없이도 보이지 않거나 사라지는 상태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가능성, 그리고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많은 것들, 눈에 띄지 않는 삶의 가치, 보다 넓은 세계와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눈에 띄지 않으려는 노력은 결국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인 동시에 우리가 누구이고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를 이해하게 한다는 저자의 메시지는 시의적절하며 또한 희망으로 다가올 것이다.
나는 당신에게 보이지 않는 게 무엇이 아닌지 말해줄 수 있다. 그것은 외로움도 아니고, 고독도 아니고, 비밀이나 침묵도 아니다. - 머리말 <보이지 않는 것에 매혹되다> 중에서
사라지는 법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이해하는 일이다
지금 시대를 크게 ‘소셜 미디어’와 ‘디지털 감시’로 설명하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을 것이다. 눈에 띄고 많이 보이는 것이 힘이고 또 돈이 되기 때문에 “성공과 업적은 공개적으로 드러나야 하고,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보이느냐로 우리 삶이 평가되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우리의 일상이 촘촘하게 설치된 감시 카메라, 스마트폰과 각종 전자기기의 사물 인터넷에 모두 노출되고 엄청난 양의 개인 정보가 수집되고 있다는 사실은 애써 의식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이제 보이고 보여주는 것이 최고의 가치이자 필수적인 존재 방식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여기에 아키코 부시는 “눈에 띄지 않는 삶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끊임없는 노출에 대한 어떤 해독제를 찾아내고, 이 새로운 세상에서 보이지 않고, 들키지 않거나 눈에 띄지 않는 게 얼마나 값진지 다시 생각할 때”라고 말한다.
어린 시절 숨바꼭질 같은 ‘숨기’의 경험 그리고 ‘보이지 않는’ 상상 속 친구를 만들어내고 함께 자랐던 경험 등은 바로 보이지 않는 상태의 긍정적인 효과가 이미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스스로를 보이지 않게 하거나 보이지 않는 존재와 대화하는 것은 관계를 확장시키고 상상력과 창의성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아키코 부시는 ‘보이지 않는 상태’에 대한 우리의 오랜 믿음과 상상력을 1세기 마법의 돌과 플라톤의 《국가》 속 ‘기게스의 반지’에서부터 설명하며 그 위험하고도 매혹적인 힘에 대해서 언급한다. 문학과 영화, 드라마 등에서 반복되고 있는 ‘투명인간’ 모티브 역시 보이지 않게 될 때의 희열과 불안함이라는 양가성을 가지고 있다. 아키코 부시는 ‘해리 포터의 망토’를 현실화하려고 연구하는 과학자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며 보이지 않게 된다는 것의 의미와 그 영향력을 다시금 곱씹는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며 보이지 않는 상태에 대한 우리의 감정은 복합적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자신이 없고, 두렵고, 창피하고, 그저 사라지고 싶어서 보이지 않기를 바랄 때가 있다. 반면 보이지 않아서 크게 실망할 때도 있다. 보이지 않고 싶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상태여서 압박감을 느끼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상태에 대한 우리의 감정은 인간의 정체성 자체처럼 변덕스러울 수 있다.” - 104쪽
‘보이지 않는 상태’,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숨기’나 ‘도피’가 아니라 그 자체가 힘이 있는 조건, 자기 확신의 표시일 수도 있다. 또한 사회적인 발언으로서의 의도적인 부재(不在)나 정체성의 변형 등 ‘사라지는 법’은 물리적, 심리적, 기술적으로 무수히 다양하며 제한되지 않는다. 내면적이고 개인적인, 자기 만족적인 노력의 일환일 수도 있다. 이렇듯 다양한 ‘사라지는 법’을 이해하는 것은 어떻게 존재하느냐의 문제만큼 중요하며 결국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아키코 부시는 말한다.
지울 때 더 잘 보이는 것들이 있다
– 빈 페이지들의 미학과 발언
수많은 텍스트와 이미지가 쉴 새 없이 깜빡이며 흘러가는 지금, 아키코 부시는 “의외의 방식으로 빈 페이지, 희미해진 말, 지워진 문장 등 사라지는 말과 글이 설득력 있고 시의적절함을 암시해서 우리의 상상력을 더 많이 사로잡는다”고 말하며 문학, 사진, 미술 등 예술의 영역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주되게 살펴본다. 때로는 지우고 감추는 작업이 더 많은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북 디자이너 이르마 봄은 샤넬 넘버 파이브 향수에 대한 책을 잉크로 인쇄하지 않고 모든 텍스트를 양각으로 새겨 만들고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그걸 볼 수 없어요. 그러나 그것은 거기에 있죠.”
향을 피우고 남은 재나 물로 그리거나 쓴 그림과 글은 곧 사라지고, 얼음에 새긴 구절들은 녹아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과연 그것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미국의 시인이자 에세이스트 메리 루플은 오래된 책들에서 수정액과 테이프로 일부 단어들을 지워 새로운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삭제 책(erasure books)’ 작업에 대해 “부정적인 없애기 작업이 아니다. 나는 보이지 않는 것보다 보이는 것을 더 많이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하며 아키코 부시는 이러한 ‘삭제’와 ‘생략’ 작업이 “모든 걸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시대에 드러내지 않는 아름다움에 대해 일깨우고 있다”고 말한다. 포토숍으로 쉽게 더해지거나 지워지는 이미지, 얼굴을 희미하게 가린 셀피와 신분을 숨겨야 하는 ‘증명사진’ 프로젝트 등 다양한 사례를 통해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이지 않느냐 역시 우리의 정체성”임을 이야기한다.
이르마 봄은 “당신은 그걸 볼 수 없어요. 그러나 그것은 거기에 있죠”라고 말하면서 우리에게 그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그녀는 모든 걸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시대에 드러내지 않는 아름다움에 대해 일깨우고 있다. 그녀가 만든 ‘보이지 않는 책’은 그저 프랑스 향수의 역사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당신이 이야기하고 싶은 모든 것, 당신이 절대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나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던 혹은 이야기했지만 지워야 할 모든 것, 말할 수 없는 모든 것, 당신이 내게 말했지만 나는 잊어버린 모든 것, 언젠가 내가 당신에게 말하고 싶거나 당신이 내게 말하고 싶은 모든 것, 물로 돌에 쓰는 게 나을 것 같은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191쪽
“당신의 자아가 작아질 수 있다면 당신 삶은 얼마나 커질까?”
- G. K. 체스터턴
아키코 부시는 하루에도 수십만 명이 오가는 그랜드샌트럴 역에서 ‘멋진 군중’이 만들어내는 질서정연한 흐름과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익명성의 위안’에 감탄하기도 하지만, ‘사라지는 법’에 대한 크나큰 영감은 역시나 자연에서 얻었다고 말한다. 허드슨 강을 비롯한 아홉 개의 강을 수영으로 건너고 그 경험을 책으로도 출간했던 아키코 부시는, 강과 바닷속 그리고 깊은 숲속에서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게 우리 삶에서 얼마나 필요한지” 느끼고 매혹되었다. 보호색을 비롯한 각종 은폐와 위장 전략을 통해 주변 환경에 동화되어 보이지 않기를 ‘선택’하는 동식물들의 생태에서 곧 우리 주위의 세계와 하나가 되어 “지속적으로 일체감을 느끼며 현대 생활의 단절감 속에서도 소속감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성찰하고 “오늘날 너무 만연한 자기 홍보의 매력적인 대안이 되면서 자아와 이미지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제안한다.
여기에 물리적인 공간에서 벽을 지우는 증강현실 프로젝트, “경외심과 경이감을 자아내는 자연환경에 있으면서 자아가 작아진다고 느끼면 또한 더 관대하고 친사회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심리학 실험 결과를 넘나드는 탐구는 결국 ‘은유적으로 자아가 작아지는 느낌’, 자아 축소를 통해 타인 그리고 세계와의 연대감을 추구하고자 하는 의지로 향한다.
이 책은 이 밖에 보이지 않는 요정의 실존을 믿으며 함께 살아가는 아이슬란드로의 여행 이야기, 여러 문학, 예술, 과학기술에 나타난, 사라짐으로써 주위와 온전히 하나가 되기 위한 노력과 실험 등을 소개하며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 모호하고 불확실한 개념을 다양하고 구체적인 이미지와 레퍼런스로 제시한다. 그리고 말한다.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은 지금의 사회, 문화 혹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 존재감에 꼭 필요할 수 있다.”
P.23~24
이제 ‘보이지 않기’와 ‘숨기’가 똑같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질 때다. 그리고 눈에 띄지 않는 삶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끊임없는 노출에 대한 어떤 해독제를 찾아내고, 이 새로운 세상에서 보이지 않고, 들키지 않거나 눈에 띄지 않는 게 얼마나 값진지 다시 생각할 때다. 보이지 않게 되는 걸 그저 도피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와 힘이 있는 조건으로 여길 수 있을까? 보이지 않게 되는 건 품위와 자기 확신의 표시가 될 수도 있다. 눈에 띄지 않으려는 충동은 자기만족적인 고립이나 무의미한 순응이 아니라 정체성, 개성, 자율성, 목소리 지키기와 관련이 있다. 그저 디지털 세상에서 뒷걸음치려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삶에서 진정한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P.37
물론, 당연하게도 우리는 모두 매일 그리고 항상 보이지 않는 것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감시와 소셜 미디어의 세례에 끊임없이 노출되다 보면 우리의 믿음이 달라질 수도 있지만, 우리가 믿는 것 그리고 우리가 몰두하는 생각들은 우리의 모든 정서적 유대, 정신적인 신념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상태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아마도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부터 어떻게 숨는지, 우리의 욕구, 두려움, 희망과 동기를 의식적인 삶과 행동 뒤에 어떻게 깊이 감추어 둘 것인지에서 비롯될 것이다. 우리가 볼 수 있는 빛이 전자기 스펙트럼의 작은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듯이, 인간의 지식과 경험 중 어마어마한 부분이 보이지 않는 채로 남아 있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알아내지 못한 정보들로 가득한 백과사전이다.
P.42
나는 당신에게 보이지 않는 게 무엇이 아닌지 말해줄 수 있다. 그것은 외로움도 아니고, 고독도 아니고, 비밀이나 침묵도 아니다. 그 주제는 본질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나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현장 안내서를 만들고, 보이지 않는 세계의 가능성을 다시 알리고, 더 폭넓고 창의적으로 관계를 맺어 그 안에서 우리의 위치를 다시 상상하고 다시 설계하고 싶다. 계속 눈에 띄지 않는 방법들을 찾아내는 건 유용한 연습이 될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눈에 띄지 않으려는 노력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시작되지만 금방 홀로서기로 확장되고, 우리가 누구이고,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P.207
그저 우리가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이지 않느냐 역시 우리의 정체성이다. 명료하지 않은 게 우리 자신의 이미지를 다시 만드는 정당한 방법일 수도 있다. 우리 존재는 우리 자신을 어떻게 드러내느냐뿐만 아니라 어떻게 숨기느냐와도 관련이 있다.
P.332
가장 감동적인 경험을 할 때 우리 자신이 작아진다고 느낄 때가 너무 많아 놀랍다. 작은 물방울 같은 각자가 모여서 세상을 만든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연대감을 가장 강하게 느낀다. 우리가 작아지고, 우리 존재감이 줄어들수록 우리의 연대감, 인간성은 커진다. 우리 자리를 찾으려면 먼저 그 자리를 잃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아마도 우리에게는 이렇게 드러나기도 하고 지워지기도 하는 환경을 헤쳐 나가는 능력이 필요한 것 같다.
사라지는 법을 이해하는 게 우리가 누구인지를 이해하는 일의 일부라는 확신이 점점 더 강해진다. 어떻게 존재하느냐는 충만하게 지금을 살아가는 법과 사라지는 법 모두를 아느냐에 좌우된다. 그래서 나는 때에 따라 보이지 않게 되는 걸 옹호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