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자 코르테스와 토르티야, 멕시코의 영광과 굴욕 역사를 함께 하다
아즈텍·마야 문명의 신성한 음식
스페인 코르테스에게 정복당한 후
멕시코 원주민 음식 저질 취급…
피정복민은 전통음식도 천대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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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코 |
멕시코 음식은 우리에게 낯선 듯싶지만 뜻밖에 익숙한 것도 많다. 코로나
맥주, 전통 술 테킬라, 과자로 더 잘 알려진 나초와 콘칩이 있고, 전통 요리인 타코·부리토 등도 요즘 청년층에게 인기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멕시코 국민음식 토르티야(tortilla)가 있다.
멕시코 전통 음식의 기본인
토르티야
토르티야는 옥수수나 밀가루로 만든, 우리나라 전병 비슷한 빵이다. 여기에 콩과 채소·고기 등을 싸 먹으면
다양한 멕시코 음식이 된다. 토르티야를 반으로 접어 채소와 고기를 넣고 샌드위치처럼 먹으면 타코(taco), 둘둘 말아 한쪽 끝을 막고 먹으면
부리토(burrito)라는 음식이 된다. 그리고 바싹 굽거나 튀긴 토르티야에 치즈를 얹은 후 칠리페퍼와 같은 향신료를 뿌려 스낵처럼 가볍게 먹는
것이 나초(nacho)다. 내용물을 꽉 채운 토르티야에 매운 고추소스를 뿌린 후 오븐에 구운 것이 엔칠라다(enchilada), 치즈를 듬뿍
넣어 구우면 케사디아(quesadilla)다.
이렇게 멕시코 전통 음식의 기본이 되는 것이 토르티야인데 이 음식에는 멕시코
아즈텍과 마야 문명의 영광과 좌절, 굴욕이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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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토 |
스페인에 정복당한
멕시코
토르티야의 운명은 스페인의 정복 전과 후로 나뉜다. 1519년, 스페인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 일행이
쿠바를 떠났다. 10척의 배에 나누어 탄 600명의 원정군은 대포 10문과 말 10여 필을 싣고 지금의 멕시코에 도착했다. 무력과 회유로 바닷가
부족을 제압한 코르테스 일행은 아스테카 제국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 이때 일부 부하들이 쿠바로 돌아가기를 원하자 코르테스는 10척의 배를 모두
침몰시켜 버리고 내륙 원정을 떠났다. 그리고 총과 대포, 전염병을 무기 삼아 불과 600명의 병력으로 인구 500만 명의 제국을 멸망시켰다.
여기까지는 널리 알려진 역사다. 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부분도 있다. 스페인에 정복당한 후 멕시코 전통 음식의 운명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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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테스 |
농부가 왕에게 바친
요리에서 비롯
멕시코인의 주식인 토르티야는 역사가 오래된 음식으로 고대 전설에 의하면 농부가 존경하는 왕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 바친 요리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영광의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는 전설이다. 토르티야를 만드는 재료인 옥수수도 고대 아즈텍과
마야인에게는 특별한 음식이었다. 마야 신화에서 옥수수는 신이 죽어서 부활한 작물이다. 중남미 원주민들은 신의 육신이 옥수수로 환생했다고 믿었을
만큼 옥수수를 신성시했다. 그뿐만 아니라 성경에서 하느님이 진흙을 빚어 아담을 창조한 것처럼 마야 신화에서는 조물주가 옥수수 반죽으로 인간을
만들었다고 한다. 옥수수로 만드는 토르티야는 멕시코 사람들에게 그만큼 신성한 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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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테스의 아즈텍 제국
정복 |
원주민은 옥수수·백인은 밀로
만들어
이랬던 토르티야가 16세기 스페인에 정복당한 다음부터 나락으로 떨어졌다. 멕시코를 정복한 스페인 사람들은
옥수수 반죽으로 만든 토르티야를 원주민이나 먹는 천한 음식이라며 멀리했다. 그러나 맛있는 토르티야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었는지 스페인 정복자들은
당시 중남미에는 없었던 밀을 유럽에서 가져와 심은 후 옥수수 대신 밀가루 토르티야를 만들었다.
원주민은 옥수수 토르티야, 백인은
밀가루 토르티야를 먹기 시작한 것인데 이때부터 멕시코 음식 문화가 둘로 나눠졌다. 원주민의 전통 음식은 하층민 음식 취급을 당했고, 유럽에서
건너온 음식은 상류층·엘리트 음식이 됐다. 그래서 같은 멕시코 사람이라도 유럽계 조상을 둔 멕시코 백인은 원주민이 먹는 전통 음식은 거의 먹지
않았다. 멕시코 원주민으로서는 나라를 잃고 심지어 전통 음식마저도 이류로 천대를 받은 것이다. 멕시코 전통 음식이 다시 이 나라를 상징하는
음식으로 부활한 것은 무려 300년이 지난 후 19세기 멕시코에서 민족주의가 싹트기 시작하면서다.
20세기 초반에도 싸구려 음식 대명사로
하지만 멕시코 전통 음식의 수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세기 초반만 해도 멕시코 음식은 이웃 미국에서 싸구려 음식의 대명사였다. 일자리를 찾아 혹은 난민으로 미국에 온
멕시코 출신 히스패닉들이 먹는 것이었으니 멕시코 음식에 대한 시선 역시 그다지 곱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흔적이 익숙한 멕시코 전통 요리 이름에
남아 있다. 토르티야는 스페인어로 ‘작은 케이크’라는 뜻이니 특별할 게 없지만 부리토는 ‘작은 당나귀’라는 뜻이다. 둘둘 말아 먹는 모습이
당나귀 등에 싣는 짐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타코는 은 광산에서 사용하는 ‘화약 종이’라는 뜻이다. 은 광산 노동자들이 먹던 음식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다. 나초는 식당 종업원 이름이다. 주방장이 없을 때 종업원이 대신 요리를 만들어 자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전쟁에 패하고 나라를 잃은 피정복민은 이렇게 전통 음식까지도 천대와 구박의 아픔을 겪는다. 따지고 보면 일제강점기 김치
냄새, 마늘 냄새 풍긴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던 우리에게는 남의 이야기만도 아니다.
사진=필자
제공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