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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 : 싱가포르 – 말레이시아
여행일 : ‘19. 10. 8(화) - 10.12(토)
세부 일정 : 쿠알라룸푸르(1)→싱가포르→쿠알라룸푸르(1)→바투동굴→겐팅 하일랜드→쿠알라룸푸르(1)→말라카→쿠알라룸푸르
여행 둘째 날 : 쿠알라룸푸르(Kuala Lumpur)의 명소들
특징 : ① 말레이시아(Malaysia) : 남중국해를 끼고 말레이반도의 ’서말레이시아‘와 보르네오 섬 북부의 ’동말레이시아‘로 이루어진 연방제 입헌군주국(立憲君主國)이다. 13개의 주와 3개의 연방 직할구로 구성되어 있으며 수도는 쿠알라룸푸르, 연방정부는 ’푸트라자야(Putrajaya)‘에 있다. 우리나라의 서울시와 세종시의 관계로 보면 되겠다. 말레이시아의 역사는 18세기부터 대영 제국의 식민지가 된 ’말레이왕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영국의 식민지가 된 곳은 해협식민지로 불리었고, 다른 곳들은 보호령이 되었다. 그러다가 1946년 말레이반도 주들의 연합에 이어 1948년에는 말라야연방이 이루어졌다. 1957년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였으며, 1963년에는 ’사바‘와 ’사라왁‘, ’싱가포르‘가 연방에 추가되었다. 이때 Malaya란 이름에 si를 추가해 Malaysia가 된다. 그러나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65년 싱가포르는 연방에서 탈퇴해 독립하고 만다. 한편 이 나라는 말레이계와 중국계, 인도계 및 소수 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다. 공용어도 말레이어 외에 영어·중국어·타밀어도 쓴다. 종교도 국교인 이슬람교가 60%로 대다수이나 불교 19%, 기독교 9%, 힌두교 6.3% 등 다른 종교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참고로 말레이(Malay)는 산스크리트 어로 '산지의 나라(山國)'라는 뜻이다. 이 나라 사람들은 부미푸트라(Bumiputra), 즉 '땅의 자식'이라고 부른단다.
② 쿠알라룸푸르(Kuala Lumpur) : 말레이반도 서해안 중부의 산록지대에 위치한 국내 최대 도시이자 수도이다. 이 도시의 역사는 주석 채굴로부터 시작된다. 1857년 슬랑오르(Selangor)의 왕족인 ‘라자 압둘라(Raja Abdullah)’가 주석 채굴꾼들에게 ‘클랑 밸리(Klang Valley)’를 개방하면서 건설되기 시작했다. 주석이 출토되면서 상인들이 모여들었고, 이들이 ‘곰박 강‘과 '클랑 강'이 합류하는 지역에 상점을 세우면서 도시가 시작된 것이다. ’쿠알라룸푸르‘라는 지명도 ‘흙탕물의 합류’를 뜻한단다. 19세기 말에는 셀랑고르 주의 주도(州都)로 성장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는 인구가 10만에 불과했단다. 그러다가 1957년 신흥 독립국의 수도로 지정되면서 급격히 발전했다. 주민은 2/3를 차지하는 중국계를 위시해서 말레이계(15%)와 인도계(10%) 등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저마다 역사적으로 거주구역을 달리하며 종교·언어·직업·생활수준 등에서도 뚜렷하게 구별되고 있다. 예컨대 상공업 종사자는 중국계가 절대적으로 많으나 하급관리·경찰·군인 등은 말레이계, 교통운수 종사자는 인도계가 많단다. 참고로 말레이시아 정부의 중심지는 현재 ‘푸트라자야(Putrajaya)’이다. 하지만 말레이시아 국왕의 왕궁, 의회, 그리고 사법부의 일부는 여전히 쿠알라룸푸르에 남아있다.
▼ 둘째 날은 대부분 쿠알라룸푸르의 명소들을 둘러보는 일정으로 짜여있다. 저녁에는 야시장 투어까지 잡혀있으니 빠듯한 일정이라 하겠다. 그런 일정은 시내에서 남동쪽으로 700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네가라 왕궁(Istana Negara)’을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현재 말레이시아 국왕(Yang di Pertuan Agong)이 살고 있기 때문에 외부인의 입장을 허락하진 않지만 외부에서 관람을 하는 것은 통제하지는 않는다. 기념 촬영도 물론 허용된다.
▼ 현재는 왕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원래는 주석광산으로 부(富)를 이룬 중국계 갑부의 저택이었다고 한다. 훗날 국가에 귀속되어 왕궁으로 이용되고 있다. 참! 올 정초(正初), 저곳에서 살던 국왕(무하마드 5세)이 사고를 쳤다는 기사가 뜨기도 했었다. '미스 러시아' 출신의 미녀와 비밀리에 결혼을 한 사실이 알려지자 자진해서 퇴위(退位)했다는 것이다. ‘왕관 대신 사랑을 선택한 술탄’이라는 낭만적인 별명이 붙기도 했지만, 그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영국의 ‘에드워드 8세’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왕좌에서 물러나 귀족신분으로 돌아간 에드워드 8세와는 달리 그는 ‘클란탄 주’의 술탄(세습 군주)으로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9개 주(州)의 최고 통치자들이 돌아가면서 취임하는 임기 5년짜리 국왕 자리에서 내려왔을 뿐이란 얘기다.
▼ 왕궁의 정문은 소문난 포토죤(photo zone)이다. 멋지게 차려입은, 거기다 말까지 탄 경비대원을 옆에 세워놓고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집사람이 다가가자 이번에는 칼까지 들어준다. 경의를 표하는 듯한 그의 행동이 마음에 들었던지 집사람은 마냥 ‘싱글벙글’이다. 아무래도 이 사진은 오래오래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 반면에 외로운 사람도 있었다. 초소 안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또 다른 경비병이다. 의복이 화려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말이나 칼 등의 소품도 없다. 거기다 안쪽 깊숙이 들어있으니 누구 하나 찾는 사람이 없었다.
▼ 담장 너머로 내다본 왕궁은 한마디로 화려했다. 아름답게 가꾸어진 정원과 열대수의 어울림은 왕궁의 품위를 한껏 올려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슬람 양식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중세 유럽의 왕궁을 닮기도 한 건축양식은 보는 이를 헷갈리게 만든다. 연꽃에서 모티브를 따오지 않았을까 한 생각도 든다. 만일 내 생각이 옳다면 세계 3대 종교가 화합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하긴 말레이시아가 다민족 국가일 뿐만 아니라, 종교 또한 자유로운 편이라니 내 추측이 맞았을지도 모르겠다.
▼ 노란색 돔이 아름다운 궁전의 게양대에는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국왕이 머무르고 있다는 표식이란다. 2년 전쯤 들렀던 코펜하겐의 왕궁에서도 있고 없음의 표식을 깃발로 한다고 했는데 이곳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참고로 말레이시아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왕을 선출 해 임명하는 국가다. 연방을 이루고 있는 13개 주 가운데 9개 주는 아직도 세습 왕족인 술탄이 통치를 하고 있는데, 이들 9명의 술탄이 5년마다 돌아가면서 국왕의 자리를 맡게 되며 나머지 4개주는 왕이 선출한 장관이 통치를 한다. 정권교체라는 민주주의의 원리를 도입했다고 볼 수 있겠다.
▼ 광장에는 용(龍) 희롱이 한창이었다. 20m가 족히 넘어 보이는 기다란 천을 재빠르게 움직여가며 갖가지 용트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흡사 우리나라의 상모돌리기를 보는 듯했다. 머리가 아니라 손으로 돌린다는 것만 달랐을 뿐이다.
▼ 이밖에도 쿠알라룸푸르에는 ‘베사르 왕궁(Istana Besar : 자료사진을 첨부했다)’이 있다고 한다. 1866년 조호르 왕국을 다스리던 술탄 아부 바카르가 빅토리아 양식으로 세워 1938년까지 왕궁으로 사용했다. 왕궁은 현재 왕실에서 사용하던 가구·식기·생활용품·미술품 등을 전시하는 ‘디라자 술탄 아부 베이커 박물관(Diraja Sultan Abu Bakar Museum)’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왕궁을 둘러싼 53ha의 넓은 부지는 일본 정원, 난 정원, 다실 등이 있는 공원이 조성되어 ‘조호르 바루(Johor Bahru)’ 주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 두 번째 방문지는 국립 모스크(Mosque)인 ‘마스지드 네가라(Masjid Negara)’이다. 이슬람이 국교인 나라에 왔으니 이슬람사원을 둘러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슬람 문화를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말레이시아 독립을 기념해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역대 국왕들의 무덤까지 모셔져 있다니 이 나라의 이슬람 모스크들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첫 만남부터가 조금 묘하다. 그동안 보아오던 모스크, 즉 둥근 지붕에 뾰쪽한 첨탑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사원은 73m 높이의 뾰족탑과 ‘18각 콘크리트 별’ 모양의 지붕으로 이루어졌다. 살짝 접은 듯한 우산을 연상시키는 부분은 동남아에서 가장 큰 이슬람 예배당을 짓기 위한 창의적인 해결책이었단다. 참! ‘18각’은 말레이시아 13주와 이슬람교의 5계율을 뜻한다는 것도 기억해 두자.
▼ 15,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사원은 53,000㎡의 아름다운 정원에 들어있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사원다운 규모라 하겠다. 하지만 ‘Masjid Negara(국립 회교사원)’가 유명세를 탄 이유는 다른 모스크들과는 다른 건축양식에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볼 경우, 말레이시아 국기에 그려진 별(星)처럼 나타난다는 것이다. 초승달과 별은 이슬람의 상징이다. 그래서 다른 모스크들은 돔(dome)으로 지붕을 만들고 그 꼭대기에 초승달을 다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이곳은 돔 대신에 별 모양의 지붕을 씌운 것이다. 참고로 이곳에는 원래 1922년에 문을 연 ‘베닝로신도복음교회’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정부의 조치에 따라 굵고 현대적인 철근콘크리트 건물을 새로 지었단다. 1965년의 일인데 설계는 공공사업국(Public Works Department) 소속의 팀(영국의 건축가 하워드 애슐리, 말레이시아인 히샴 알바크리와 바하루딘 카심)이 맡았다.
▼ 대예배당과 영묘, 도서관, 화의실 등이 들어있는 내부는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비신자(Non Muslim)에게는 시간(09:00-12:00, 15:00-16:00. 17:30-18:30)을 정해놓고 개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순간엔 우리 부부의 얼굴표정이 확연히 달라진다. 하나라도 더 보고 싶어 하는 내 얼굴은 우거지상으로 변하지만 집사람은 마냥 싱글벙글인 것이다. 하긴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집사람에게는 히잡(hijab)이나 부르카(burqa)를 쓰고 다녀야 하는 게 불편했을 것이다.
▼ 사원 뜨락에서 내다보이는 고풍스런 건물은 1917년 영국인 건축가 ‘아서 베니슨 허복(Arthur Benison Hubback)’이 설계한 ‘말레이시아 철도청’이다. 그 앞에는 같은 사람이 무굴양식으로 지었다는 ‘쿠알라룸푸르 역(KL Railway Station)’도 있다고 한다. 첨탑과 돔, 미나렛, 그리고 아치가 만들어내는 놀랄 만한 스펙터클이 눈길을 끈다는데 가보지는 못했다.
▼ 그밖에도 국립박물관(National History Museum : 아래 사진)과 이슬람박물관(Islamic Arts Museum)이 근처에 있다는데 들러보지는 못했다. 위에서 얘기했던 말레이시아 철도청과 쿠알라룸푸르역도 마찬가지다. 말레이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직접 느껴볼 기회인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특히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말레시아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역사박물관을 거른 것은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다. 말레시아에 이슬람이 전파되기 이전 힌두 문화와 불교문화, 영국 식민지 이전의 역사 등에 대한 사료들은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가이드의 뒤꽁무니만 따라다녀야 하는 게 우리 같은 패키지여행자들의 숙명이 아니겠는가.
▼ 메르데카 광장으로 이동하는 도중에도 중세 유럽풍의 건물들이 가끔 눈에 들어왔다. 그중 공공건물임을 나타내는 국기가 내걸린 건물들도 보였으나 내력은 알아낼 수 없었다.
▼ 다음 방문지는 ‘메르데카 광장(Merdeka Square)’이다. 광장과 그 주변에 볼거리가 몰려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말레이시아가 독립한 1957년 8월 31일, 영국 국기를 철거하고 말레이시아 국기가 게양된 역사적인 장소다. 메르데카 광장도 '독립 광장'이라는 뜻이란다. 가히 말레이시아의 상징이라 할 수 있겠다. 메르데카 광장은 현재 푸른 잔디밭과 이색적인 건물, 그리고 푸른 하늘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 광장의 축은 국기게양대다. 100m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기게양대라고 한다. 말레이시아 국기가 24시간 내내 펄럭이고 있음은 물론이다. 해마다 독립 기념행사 등 다양한 행사가 이곳에서 개최된단다.
▼ 광장 모퉁이에는 1897년에 만들어진 ’빅토리안 분수대(Victorian Fountain)‘도 있다. 한여름의 열기를 조금이나마 식혀준 고마운 분수대였다.
▼ 말레이시아 독립 선언의 역사적 무대가 되었던 광장은 현재 푸른 잔디로 꾸며져 있다. 그리고 시민의 휴식처 역할을 수행한다.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면 잔디광장 끄트머리에 십자가가 걸린 건물이 하나 보일 것이다. 영국식 고딕양식으로 지어졌다는 '세인트 메리 대성당(St Mary's Cathedral)'이다. ‘술탄 압둘 사마드 빌딩’을 설계한 영국의 건축가 노먼이 1894년에 지었다는데 현재 성공회 예배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 왼편에는 튜더왕조 양식의 '클럽하우스', ‘로열 셀랑고르 클럽(Royal Selangor Club)’도 보인다. 상위 1%의 상류층이 모여드는 사교장으로 식민지 시절에는 영국인과 각국의 상류층이 사용하던 곳이다. 건물은 현재 회원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아무튼 이 너른 잔디광장이 옛날 클럽의 크리켓 경기장이었다니 얼마나 대단한 클럽이었을지 짐작이 간다.
▼ 쿠알라룸푸르는 과거와 현재가 오묘하게 뒤섞여 있는 풍경이 매력이다. 현대적 고층빌딩이 숲을 이루는 도심(都心) 속에서도 중세 유럽풍과 이슬람풍의 건물들을 흔히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1957년까지만 해도 말레이시아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메르데카 광장’의 주변은 당시에 건설된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건축양식도 다양했다. 그래선지 건축학도가 꼭 아니더라도 한번쯤은 둘러볼만하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세상은 아는 것만큼만 보여주고 있었다. 말발굽 모양의 아치와 원형기둥·중앙현관·건물 양끝에 둥근 돔이 있는 ‘무어 양식’, 경사가 급한 주황색 지붕과 뼈대가 드러난 벽체가 있는 영국 ‘튜더왕조 양식’, 각진 고성처럼 보이는 ‘고딕 양식’, 클로버 모양의 아치가 있는 ‘무굴 양식’ 등으로 지어졌다는 건물들은 건축에 문외한 내 눈에는 다 그게 그거로 보였다.
▼ 거리는 말레이시아 근대 건축물의 전시장이다. 아래 사진의 줄무늬가 들어간 건물은 현재 ‘국립섬유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단다. 옛 중앙역을 설계한 허브복과 노르만의 설계로 1905년에 완공되었다.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영국 건축가 노르만과 러셀이 설계했다는 ‘쿠알라룸푸르 시티겔러리(KL city gallery)’도 그 옆에 있었다.
▼ 역사적인 건물들 가운데서도 백미(白眉)는 단연 ‘술탄 압둘 사마드 빌딩(Sultan Abdul Samad Building)’이다. 건축 당시 ‘슬랑고르 주(州)‘의 술탄이었던 ’압둘 사마드‘에서 따온 이름이란다. 이 건물은 1897년 영국 건축가 ‘노먼(A. C. Norman)’에 의해 영국 빅토리아 양식과 무어 양식이 결합된 형태로 설계되었는데, 메르데카 광장 주위의 건물 중에서 가장 높고 넓은데다 고층 시계탑까지 갖추고 있어 광장의 랜드마크가 되고 있다. 영국 식민지 시설에는 연방 사무국으로 사용했고 후에 말레이시아 정부 청사로 쓰이다가 현재는 대법원과 섬유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단다.
▼ 명색이 패키지여행인데 ‘쇼핑’이 빠질 리가 있겠는가. 이번에도 총 4번의 쇼핑이 들어있었다. 그 가운데 초콜릿이 가장 인상에 남아 사진을 올려본다. 우리 부부도 선물용을 듬뿍 샀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찾아간 곳은 ‘harriston boutique’. 말레이시아 브랜드인데 세계적 수준의 초콜릿을 생산한단다. Harriston(Chocolate Boutique)에서는 150 가지가 넘는 다양한 종류의 초콜릿이 생산되고 있는데 모두 독창적인 조리법에 기반한 최고의 코코아 원두로 만들고 있단다.
▼ 쇼핑센터의 뒤에는 1935년에 지어진 콜로니엄 양식의 ‘말레이시아 관광센터(Malaysia Tourism Center)’가 들어서 있었다. 말레이시아 전역에 대한 관광정보를 제공한다지만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난 안을 기웃거려 보았다. 매일 오후 ‘전통춤 공연(Cultural dance show)’이 있다는 귀띔에 귀가 솔깃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후 3시에 시작된 공연은 이미 끝나있었다.
▼ 관광센터 옆에는 ‘카르야네카(Karyaneka)’라는 말레이시아 전통 공예품 판매점도 있었다. 말레이시아 전통 직물인 바틱, 말레이시아 주산물인 주석으로 만든 주석 잔과 주석 기념품 등을 판매하는데 모두 장인이 직접 만든 정품이란다. 안심하고 선물용으로 구입해도 된다는 얘기이다. 그래선지 ‘take home a piece of Malaysia with you’라고 적힌 현수막을 문 앞에다 자신 있게 내걸었다.
▼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Petronas Twin Tower)’도 말레이시아 여행에서 빠뜨려서는 안 될 곳이다. 이른바 ‘쌍둥이 빌딩’이라고도 불리는 이 타워는 똑같은 높이에 똑같은 크기의 타워 2개가 연결돼 있다. 우리는 이곳을 야간에 찾았다. 트윈타워는 낮보다는 저녁에 찾는 것이 좋다고 했으니 제대로 찾아온 셈이다. 덕분에 우린 어둑해진 도심 속에서 찬란히 빛나는 마천루(摩天樓, skyscraper)를 볼 수 있었다. 거기다 하늘에 울려 퍼지는 아잔(adhan) 소리라니... 하지만 렌즈를 챙기지 못해 트윈타워 앞에서의 광각사진을 찍지 못했으니 절반의 성공이라 해야겠다.
▼ 두 건물은 41~42층에서 51m 길이의 ‘스카이 브리지(Sky Bridge)’로 연결되어 있었다. 171m 높이의 허공에 매달린 다리이니 상황에 딱 맞는 이름이라 하겠다. 전망대는 86층(높이 370m)에 만들어져 있단다. 트윈타워의 야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쿠알라룸푸르 전체의 야경이 궁금해졌다. 하지만 가이드는 그럴 시간이 없단다. 야시장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예약을 해야만 이용이 가능하다는 핑계도 댔다. 1시간에 2회, 각 40명씩만 관람할 수 있기 때문에 하루 입장객이 한정되어 있다면서 말이다.
▼ 452m 높이의 트윈타워는 그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같은 모양의 높은 빌딩이 쌍으로 나란히 서있다 보니 더욱 압도되는 느낌이다. 하긴 지금은 이보다 더 높은 건물들이 여럿 있지만, 한 때는 세계 최고 높이의 빌딩이 아니었던가. 아니 쌍둥이 빌딩 가운데서는 아직도 가장 높단다. 이쯤에서 또 다시 자부심을 키워보자. 1998년 지을 당시만 해도 세계 최고의 높이였던 이 건물을 우리나라 기업인 삼성물산이 지었기 때문이다. 완공된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말레이시아 국민들에게 삼성물산은 ‘신뢰의 기업’으로 기억되고 있단다.
▼ 이젠 먹거리를 찾아 ‘잘란 알로(Jalan Alor)’ 야시장으로 간다. 서민들의 삶과 애환이 서려있는 곳이 시장이니 이왕이면 말레이시아 사람들의 생활상도 함께 느껴봤으면 하는 욕심도 있었다. ‘알로르 거리’라는 뜻의 ‘잘란 알로’는 부킷빈탕 역 근처에 ‘마막(mamak)’들이 모여 만들어진 먹자골목이다. 200여 개의 마막이 있어 저렴한 로컬음식과 바비큐, 해산물 요리 등을 판매한다. 참고로 마막의 어원은 ‘인도계 무슬림’에서 찾을 수 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이들이 운영하는 식당을 ‘마막식당’이라 했단다. 그런데 그들의 식당 형태가 노점이었던 까닭에 ‘마막’이라 부르기 시작했는데 이게 말레이시아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요즘은 젊은이들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통로이자, 우정을 더욱 깊이 확인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단다.
▼ 시장은 한마디로 ‘넘친다’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노점(露店)도 많고, 파는 종류도 많고, 사람도 많다. 또한 외국 관광객도 많았으며 이들을 꼬드기는 호객꾼도 많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소지품을 관리는 필수로 변한다. 또 하나. 유흥가의 호객꾼은 절대 따라가지 말자.
▼ 명색이 시장인데 수퍼마켓이라고 없겠는가.
▼ 야시장이니 꼬지요리와 구이요리는 기본, 숫제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재료도 다양했다. 덕분에 거리는 온통 고기를 굽고 튀기고 볶는 연기와 냄새로 뒤덮인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만든다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에겐 배불리 먹은 저녁식사가 걸림돌이다. 코끝으로 흘려드는 욕념을 꾹꾹 눌러 참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참! 다양한 종류의 딤섬(dim sum)도 내놓고 있었다.
▼ 열대지방이니 열대 과일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흔하디흔한 망고는 물론이고 고약한 뒷맛의 두리안까지 갖가지 과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즉석에서 만든 과일주스도 팔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아무튼 저녁식사를 아직 소화시키지 못한 우리 부부는 육류 대신 과일을 사먹는데 만족하기로 했다.
▼ 포장마차만 있는 게 아니다. 중국 식당, 말레이 식당, 해산물 식당 등 식탁을 갖춘 식당들도 꽤 많이 보였다. 식탁 위에는 반듯한 메뉴판도 놓여있었다. 그러니 커다란 목소리의 호객꾼들은 필수. 하지만 손님들은 별로 없었다. 복잡한 저녁 시간을 피해 늦은 오후에 찾아보라던 지인의 충고가 공염불이 된 셈이다. 우리야 이미 배가 불러있었지만 말이다.
▼ 야시장을 빠져나오니 완벽하게 틀을 갖춘 상점들이 나온다. 아이스크림 가게도 눈에 띄었다. 낮부터 문을 열고 있는 상점들일 것이다.
▼ 여행 내내 머물렀던 ‘비스타나 호텔(Vistana Kuala Lumpur Titiwangsa)’
4성급 호텔다운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아니 그보다 더 나았다고 보는 게 옳겠다. WiFi가 무료로 터지는 깔끔한 객실은 인스턴트 커피와 티, 그리고 생수가 무료로 제공된다. 널찍한 욕실에는 일회용 세면도구와 헤어드라이기도 비치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여행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호텔이다 보니 아침식사도 우리 입맛에 딱 맞게 내놓고 있었다.
▼ 커튼을 제키니 아파트가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정원에 어린이 놀이터는 물론이고 농구장에 수영장까지 갖추고 있는 게 아닌가. 상류층이 사는 아파트인 모양이다. 아니 그 정원을 공중에 매달아 놓았으니 최상위 계층이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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