情의 노래
해상생활은 고독과 인내의 연속이며
그 속에서 깊어지고 또 깊어지는 것
여러 가지 있겠지만
특별한 것 우선 고르라고 하면
정(情)이요, 한(恨)이리라.
세상은 오래전부터
눈물과 웃음이 얽힌 실로 짜여 있었다.
그 실을 사람들은 이름 없이 불렀으나
어느 시대의 누군가가 조용히 말했다.
“그것은 정(情)이다.”
정은 태초부터 우리를 묶어온
보이지 않는 인연의 바람,
이별 후에도 남아 떠돌다
다시 마음으로 돌아오는
기억의 길이었다.
정은 따뜻함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안에는 그리움과 아픔,
기다림과 감응,
삶이 건네는 부드러운 무게가
모두 깃들어 있었다.
그러므로 정의 서사시란
사람의 마음을 잇는
가장 오래된 서약이자
가장 인간적인 기록이었다.
정은 아주 작은 숨결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아이의 손가락을 잡던 그 순간,
아버지가 무뚝뚝한 눈빛으로
아이의 등을 바라보던 그 순간,
말보다 먼저 건네진 온기가 있었다.
정은 말없이 자라났다.
밥을 나누는 손길,
지친 하루에 건네는 짧은 안부,
말끝에 스며 있는 미안함과 고마움—
그 모든 것들이
정의 뿌리가 되었다.
정은 무조건적인 사랑도 아니고,
단순한 애틋함만도 아니었다.
그것은 존재를 존재로서 받아들이는
태초의 수용(受容)이었다.
너는 너로 충분하다는
말없는 선언이었다.
그리하여 정은
자연처럼 흐르고
바람처럼 스며들며
사람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정은 강처럼 흘렀다.
사람의 마음에서 마음으로,
세대에서 세대로,
시간이 갈라놓은 틈마저
잔잔한 물결로 메우며 흘렀다.
그 강물은 때로 투명했고
때로는 탁했으며
때로는 굽이쳐 울부짖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흐르기를 멈춘 적은 없었다.
누군가는 말했다.
“정은 잊은 만큼 다시 흐른다.”
그 말은 진실이었다.
오래 연락이 끊겼던 친구에게
문득 안부를 묻는 손길,
오래 돌아오지 않던 마음이
어느 날 갑자기 열리는 순간—
그 모든 것이
정의 강물에 실려 있었다.
정은 인간을 서로 이어주는
깊고도 넓은 물의 길이었다.
정은 바람이 되었다.
멀리 있는 이를 향해
이름 없는 위로를 보내고,
헤어진 이의 뒷모습을 따라
끝까지 흐느끼며 흩어졌다.
바람은 때로 차고
때로 따뜻했으며
때로는 아픈 기억을 들추어내
사람의 가슴을 흔들었다.
그러나 그 흔들림 속에서
사람들은 깨달았다.
정은 붙잡는 힘이 아니라
돌아오게 하는 힘이라는 것을.
수십 년이 지나도
아무리 멀리 떨어져도
바람은 마음의 향기를 남기고 떠났다.
그 향기는 다시 돌아와
사람의 마음을 두드렸다.
“넌 혼자가 아니다.”
정의 바람은
세상 곳곳에 남아
서로를 불러주는
보이지 않는 숨이었다.
밤이 오면
정은 더욱 깊어졌다.
어린 시절 함께 웃던 목소리,
손을 잡아주던 누군가의 체온,
먼 곳으로 떠난 이의 이름—
모든 것이 밤의 어둠 속에서
빛처럼 떠올랐다.
정이 깊어질수록
눈물도 깊어졌다.
그러나 그 눈물은
절망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음이 지나온 시간을
한 번 더 어루만지는
기억의 의식이었다.
밤의 정은
슬픔보다 더 깊고,
사랑보다 더 오래되며,
그리움조차 넘어서서
우리 존재의 진앙을 건드렸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비로소 서로를
온전히 이해했다.
말이 아닌 마음으로,
말이 닿지 않는 마음까지도.
새벽이 오면
정은 다시 빛이 되었다.
밤새 곱씹던 마음을
온기의 형태로 되돌려주고,
그리운 이의 안부를
조심스레 떠올리게 했다.
정은 언제나
새벽을 향해 걸어갔다.
이별 끝에서 돌아오는 화해,
상처 끝에서 피어나는 용서,
무너진 관계 위에 다시 놓는 다리—
그 모든 귀환의 순간이
정의 새벽에 있었다.
정은 묻는다.
“너는 다시 사랑할 준비가 되었는가?”
그리고 묻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대답의 길로
우리를 이끌었다.
정은 부드러움이 아니었다.
정은 강인함이었다.
사람을 다시 살게 하는
조용하고도 위대한 힘이었다.
정은 시간과 함께 머물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 속에서 살아남는다.
마음을 잇고,
사람을 살리고,
세대를 가로질러 이어지는
이름 없는 다리가 되어
끊어질 듯 이어지고,
흐를 듯 머물렀다.
정은 말한다.
“사람은 사람으로 완성된다.”
그러므로 정의 노래는
한 사람의 노래가 아니라
모든 세대와 모든 관계의
장대한 합창이었다.
세상은 정으로 이어지고,
정은 사람을 사람으로 만든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묻는다.
“정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대답은 이렇다.
“정은 서로를 향한
작은 따뜻함 하나에서 시작되어
마침내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마음이 된다.”
恨의 노래
먼 옛날, 인간의 이름이 물 위에 쓰여 지워지던 시대가 있었다.
슬픔은 물과 같아 흘러넘치고,
사람의 마음은 그 물길을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었다.
그때부터 한(恨)은 우리 안에서 자라났으니
그것은 고통의 씨앗이 아니라
되돌아오지 않는 것들을 끝없이 부르는
영혼의 오래된 목소리였다.
한이 처음 태어난 곳은
누군가의 가슴 깊은 우물이었다.
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
한 조각의 그리움이 돌처럼 가라앉았고,
그 위로 세월의 물이 차곡차곡 쌓였다.
슬픔은 처음에는 말이 없었다.
이해받지 못한 눈물은 무겁게 침잠했고,
이름조차 없는 상처는
오랫동안, 너무나 오랫동안
누구도 건드리지 않는 침묵 속에 잠들어 있었다.
어머니들의 기도,
아버지들의 한숨,
젊은 날 잃어버린 첫사랑의 뒷모습,
전쟁에서 돌아오지 못한 누군가의 발자국—
그 모든 것이 한의 첫 뿌리였다.
한은 사라지지 않았다.
한은 자라났다.
그리고 마침내,
한은 우리를 만들었다.
한은 고여 있지 않았다.
움직이고, 넘치고, 길을 만들었다.
때로는 굽이굽이 돌다가
다시 깊은 심연으로 떨어지며
흐를수록 더 푸르른 색을 띠었다.
사람들은 그 강가에서 살았다.
강물이 넘칠 때는 삶이 뒤흔들렸고,
가뭄이 들면 마음도 바싹 말라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
그러나 누구도 떠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강은
괴로움이 아니라
잊지 못할 것들을 간직한
우리 존재의 기원지였기 때문이다.
한의 강물은 말한다.
“잊지 말라.”
“그러나 무너지지도 말라.”
그 목소리가 너무도 선명해서
사람들은 그 속에서
고통과 의지, 두려움과 용기를
구분할 수 없었다.
강에서 시작된 한이
어느 날 바람을 타고 땅 위로 떠올랐다.
그 바람은 들판을 스치고
옛 터전을 지나
미처 마르지 못한 상처들 위를 지나갔다.
바람은 오래된 이야기들을 들어 올렸다.
할머니의 떨리는 목소리,
아버지가 끝내 말하지 못한 진실,
형제가 서로의 등을 내어주던 밤들.
그 바람은 우리를 울게 했고,
또 다시 일어서게 했다.
왜냐하면 한은 쓰러뜨리는 힘이 아니라
우리를 돌아오게 하는 힘,
결국엔 더 넓은 어딘가로 떠밀어 주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숨결이었기 때문이다.
바람은 모든 것을 묻는다.
“너는 무엇을 견뎠는가?”
“너는 무엇을 아직도 사랑하는가?”
그리고 다시 돌아온다.
언제나, 다시.
한은 밤이 깊을수록
더 또렷해졌다.
달빛이 희미하게 번지는 시간,
모든 소리가 잠잠해지면
사람들은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그 속에는
잊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아직도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미처 꺼내지 못한 말,
끝내 전하지 못한 용서,
멀리 떠난 이를 향한
사무치는 사모의 마음.
밤은 잔혹했다.
그러나 밤은 진실했다.
그 어둠 속에서
우리는 가장 인간다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눈물은 흐르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살아갈 힘을 얻었다.
한의 밤은
절망이 아닌
영혼의 호흡이었다.
마침내 새벽이 온다.
차갑고 깊던 한의 밤을 지나
먼 동녘에서 첫 빛이 열릴 때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아주 작은 떨림이 깨어난다.
그 떨림은 희망이라고 부를 수도,
단념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지만
적어도 하나의 진실을 품고 있었다.
“견딘 자는 다시 일어난다.”
한은 우리를 꺾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상처를 지우지는 못했지만
그 상처를 지닌 채로
더 멀리 걸어갈 용기를 주었다.
새벽은 한을 없애지 않는다.
대신 한을 빛으로 물들인다.
그리하여 한은
저주가 아니라
삶을 꿰뚫는 지혜가 된다.
그 순간, 우리는 안다.
한은 우리 곁에 머물며
세월을 따라 길게 흐르는
긴 숨결이었다는 것을—
우리가 지닌 가장 깊고 오래된
영혼의 리듬이었음을.
한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변한다.
상처에서 목소리로,
목소리에서 이야기로,
이야기에서 마침내
새로운 길을 여는 힘으로.
우리는 한을 짊어진 민족이었고
한으로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이제 묻는다.
“한은 누구의 것이었던가?”
그리고 대답한다.
“한은 슬픔이 아니라
슬픔을 견딘 마음의 역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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情恨의 노래
思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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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23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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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해상생활이 그렇게도 열망했는데
실상(實狀)으로 하고보니
정(情)이 그립고
또 한(恨)이 생겼나봅니다.
그래서 사람은
마음이 크게 자라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정과 한이 사무치는 삶의 연속이 해상생활이 아닌가 합니다.
지기님^^
이제 이 달도 다 저물어 갑니다.
이 해가 다 저물어 다듯이...
건안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