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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9월 현재 피파 랭킹 169위. 168위인 탄자니아와 170위인 도미니카 공화국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유럽 국가들 중 최하위의 랭킹을 가지고 있는 팀이 바로 산 마리노이다.
"항상 지기만 하는 대표팀에게 과연 동기 부여를 심어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수없이 받아온 산 마리노 대표팀 감독 지암파올로 마짜(48)는 이러한 질문에 우선 웃음이 앞선다. 마짜는 이와 관련해 "당연히 없다. 선수들과 나는 우리 팀이 가진 실력과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을 잘 이해하고 있다. 패배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익숙해 질 수 있다."고 말했다.
역사적인 첫 A-매치 승리
산 마리노가 패배에 익숙해지기까지, 또 이러한 상황을 그저 웃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까지 그들이 걸어온 길은 결코 짧지 않았다. 지난 90년 공식적으로 산 마리노 국가 대표팀이 결성된 이래 현재까지 60차례 이상의 경기들을 가지면서 수많은 패배를 경험했고 이 과정 속에서 면역이 된 이른바 산 마리노판 '서울대 야구부'가 탄생한 것이다. 60여 차례의 A매치 경기들 중 대부분의 경기 양상은 산 마리노의 진영에서만 축구를 하는 반코트 경기가 대부분이었다. 대표팀을 구성한 지 3년만인 지난 93년 터키와 0-0의 무승부를 기록한 것과 2001년 라트비아와 1-1의 무승부를 기록했던 것이 그간 기록한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하지만 산마리노는 올해 들어 역사적인 첫 국제 경기 승리를 거두며 쾌재를 불렀다. 지난 4월 28일 리히텐슈타인과의 경기. 안디 셀바가 직접 프리킥을 성공시켜 리히텐슈타인을 1-0으로 누르고 역사상 최초의 승리를 거둔 순간 700여명의 관중들은 일제히 횐호성을 질렀으며 그들은 최초의 승리 순간을 만끽했다. "종료 휘슬이 울리는 순간 그것이 꿈이라고 생각했다"라며 마짜 감독은 당시를 회상한다. 현직 초등학교 체육 교사이기도 한 마짜 감독은 이어서 "당시 승리는 분명 산 마리노 축구 역사상 첫 승리인 만큼 의미가 크다. 하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꿈이 실현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리히텐슈타인은 우리와 비슷한 수준이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산 마리노에 축구가 들어온 것은 1920년대 초반으로 전해지고 있다. 해안가에서 산책을 즐기던 사람들이 임시 경기장을 만들면서 축구가 시작된 것으로 전해지는데, 자국 축구 협회가 구성된 시점은 이로부터 약 10년 후인 1931년이었다. 한편 FIFA(세계축구연맹) 가맹국으로 가입한 것은 이로부터 50여년이 훨씬 더 지난 1988년이었다. FIFA에 가입하기 전까지는 불과 몇 개의 클럽팀이 여름에 한해 한시적으로 리그를 운영했고 FIFA 가맹국으로 가입한 뒤부터는 클럽팀을 15개로 늘려 운영, 관리하고 있다. 아직 챔피언스리그 예선에 진출할 수 있는 티켓 배정은 없지만 리그 우승팀에게는 UEFA컵 1차 예선에 진출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고 있기도 하다.
올 시즌의 경우 지난 시즌 리그 우승팀인 펜나로사가 UEFA컵 1차 예선에 나섰지만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젤예즈니카에게 2패를 당하며 유럽 무대로의 진출이 좌절됐다. 현재 산 마리노 축구 협회가 노력하고 있는 당면 과제는 챔피언스리그 예선 진출권이 주어지는 순위로 UEFA 랭킹을 끌어올리는 것. 예선이긴 하지만 챔피언스리그에 참여할 수 있다면 축구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산 마리노 리그 경기당 평균 관중수는 현재 2~300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탈리아 해안에 위치해 있는 까닭에 산 마리노는 이탈리아 축구와도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산 마리노의 클럽팀은 편제상 이탈리아의 4부리그에 편입되어 있다. 물론 이탈리아 4부리그에서 함께 활동할 수는 있지만 산 마리노만의 독립된 리그 형태로 운영하고 있기는 하다.
산 마리노 출신 선수들 중 아직까지 그 누구도 다른 나라의 프로팀에 적을 준 선수는 없었다. 프로팀의 경기력을 따라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선수들이 등장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하지만 산 마리노는 이에 실망하지 않고 젊은 선수들의 육성에 힘을 기울이며 언젠가 프로 선수를 배출할 날을 차근히 준비하고 있음은 물론 더 나은 대표팀의 구성을 위해 청소년 대표들을 17세, 19세, 21세 이하별로 구성, 치밀한 준비 과정을 보이고 있다. 전체 인구 2만9,000명에 등록된 선수가 겨우 1,000명에 불과한 소국 산 마리노지만 미래 축구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만큼은 확실하게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축구 순혈주의 전통∙∙∙스페인 상대로 열전 준비
산 마리노의 또 하나의 특징은 국가 대표 선수들의 뿌리를 중요시한다는데 있다. 임의로 국적을 변경해 국가 대표가 되는 사례가 빈번한 요즘의 축구관과는 차이가 있다.
이탈리아와 접해 있어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탈리아령으로까지 알려지고 있기도 한 산 마리노는 자국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면 그 누구에게도 웬만해서는 자국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는다. 실제로 이탈리아 세리에A에서 오랜 기간 활약한 노장 로베르토 세볼리니의 경우 산 마리노 대표로 선발하자는 의견이 일각에서 제기되기도 했었다. 세볼리니는 이탈리아 출신이지만 이미 산 마리노에서 20년 이상을 거주하고 있는 산 마리노 인이나 다름없는 선수였다. 하지만 협회는 감독이 직접 추천한다해도 절대 산 마리노 시민권을 부여하지는 않을 것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실업률이란 단어가 없는 나라. 교육과 의료가 기본적으로 모두 무료인 나라. 이러한 특별한 제도를 상황을 제외하고는 이탈리아의 그 어떤 소도시와도 다를 것이 없는 나라 산 마리노. 축구도 자국의 클럽팀을 무조건적으로 좋아하지 않으며 유벤투스, AC밀란, 인터 밀란 등 이탈리아 팀들을 응원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산 마리노 대표팀 골키퍼인 가스페로니 역시 AC밀란의 팬이다. 그는 "3만 혹은 4만 이상의 구름 관중 앞에서 경기를 갖는 것은 정말로 흥분되고 내 자신의 커리어에도 엄청난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기회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에게는 그런 기회를 갖는 것이 1년에 1~2차례에 불과하다. 그 1~2번의 경기를 제외하면 남은 모든 경기들은 이탈리아 5부리그 정도에나 해당하는 규모로 경기를 치르기 때문에 전력 향상은 물론 동기부여를 얻을 수도 없다."라고 산 마리노 축구의 한계를 설명하고 있다.
이번 독일 월드컵 예선에서도 산 마리노는 세르비아-몬테니그로에게 0-3, 리투아니아에게 0-4 로 패한 바 있다. "우리와 상대하는 모든 팀들은 가능한 많은 골을 넣기 위해 경기 때마다 단단히 벼르고 나온다. 다른 팀들과의 득실 싸움에서 불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속한 조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라고 가스페로니 골키퍼는 말한다. 다른 팀들이 산 마리노를 상대로 한 골이라도 더 성공시키기 위해 사력을 다해 싸우는 동안 산 마리노 선수들은 최악의 점수차를 모면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셈이다.
이제는 지는 것이 너무나도 일상화된 산 마리노 선수들이지만 그들에게도 멋진 기억은 있다. 지난 1993년 11월 17일 홈에서 가진 잉글랜드와의 월드컵 예선에서 불과 8.3초만에 선제골을 터뜨리며 당시로서는 역사상 가장 빠른 공식 경기 득점 기록을 세웠던 것이다. 물론 최종 스코어는 1-7 의 대패였지만 당시 그들의 전광석화(?) 같은 득점은 잉글랜드를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대사건이었다. 더욱이 당시 잉글랜드는 최종 조 3위를 차지하며 미국 월드컵 행이 좌절되기까지 해 이들을 상대로 골을 뽑아낸 산 마리노의 자존심은 한층 높아졌다.
산 마리노는 이번 독일 월드컵 예선에서 앞선 언급한 리투아니아, 세르비아-몬테니그로를 비롯해 스페인, 벨기에, 보스니아-헤르치고비나 등과 함께 7조에 속해 있다. 특히 이들 중 스페인과의 대결은 산 마리노로서는 적잖이 흥분되는 경기가 아닐 수 없다. 많은 관중들 앞에서 자신들을 보여줄 수 있는 몇 안되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물론 산 마리노를 제물로 큰 점수차를 내기 위한 스페인의 준비도 만만치 않다.
지난 9월 3일 새롭게 스페인 감독으로 데뷔한 아라고네스는 스코틀랜드와의 평가전 당시 스코틀랜드와 산 마리노의 전술적인 운용이 비슷하다는 점을 언급하며 그 대결이 산 마리노와의 대결에 대한 좋은 벤치 마킹이 될 것이라는 인터뷰에서 한 바 있다. 물론 스코틀랜드와 산 마리노의 레벨은 분명 차이가 있지만 스페인이 어느 팀 하나도 분석을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뜻을 보인 만큼 산 마리노로서도 만반의 준비가 필요할 것임은 당연하다. 이른바 축구 변방인 산 마리노가 이번에는 어떤 모습을 보일 것이며 평가전이 아닌 이번 월드컵 예선에서도 첫 승리를 기어코 올릴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는 월드컵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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