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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월 지리산 산행기 – 장터목의 눈보라에 천왕봉을 넘지 못하고>
□ 등반일정 : 2017.1.21. 07:00 – 1. 22. 19:00 (1박 2일)
□ 등반자 : 피플러버(회장님/남인복), 아톰(김종원), 알자리라(대장/임병선), 멍게(총무/조광성), 오솔길(김혜진), 꼬맹이(정은경), 지리산(김재철) 등 총 7인
□ 제목 : 장터목의 눈보라에 천왕봉을 넘지 못하고
“양치질은 할 수 하나요?” “물이 있으면 할 수 있지!”, “세수는 할 수 있나요?”, “샘에 가서 물을 떠와서 하면 돼. 그런데 세수하려고?” 동자스님과 큰 스님의 대화처럼 보인다. 여기서 동자스님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리산’이고, 큰 스님은 ‘멍게’ 총무이다.
지난 12월 송년 산악회 직후 뒤풀이에서 정유년 1월 산악회 장소가 사실상 지리산으로 확정되었다. 회장님께서 “눈 덮인 지리산에 가보고 싶다. 1월 정기산행은 지리산 1박 2일이 어떠냐?”고 알 대장님께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셨다. 회장님의 가이드라인을 거부하지 못한 알대장님께서 며칠 후 ‘백무동-장터목-천왕봉’ 일정을 잡으시고 카톡을 통해 공지하셨다.
지리산으로 일정이 잡히자 집사람을 졸랐다. “이번 산행에 지리산을 가기로 했다. 꼭 필요할 것이 스패치와 아이젠 그리고 추위를 막을 수 있는 겨울용 등산복이다. 이 중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스패치와 아이젠(앞 뒷면에 갈퀴가 있는 ‘대형’)이다. 언제 시간나면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지난해 연말 집사람과 선자령에 올랐는데, 이 때 눈 덮인 대관령에서 몰아치는 바람의 초강력성을 경험한 집사람이 두 말없이 사주겠다고 한다. 그날은 소형 아이젠을 집사람 신발에 매주고 나는 아이젠 없이 등산길에 올랐는데 내가 두 세 차례 넘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날 퇴근길에 목동의 한 백화점 앞에서 집사람을 만나 난생 처음으로 스패치를 샀다. 아이젠(대형)도 새로 샀다. 예전에 쓰던 아이젠은 발 가운데만 발톱(?)이 있어 미끄럼 방지에 한계가 많았다. 이전 산행에서도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소형 아이젠 때문에 미끄러저 엉덩방아를 수차례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 대형 아이젠과 스패치 구입으로 지리산 산행을 위한 개인적 준비가 마무리되었다.
이번 산행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여러 변수가 있었다. 산장 예약과, 교통편 예약, 그리고 산행 전날 입산이 통제 되었다는 청천병력 같은 소식까지 과정이 순탄치가 않았다. 산장 예약은 총 12명분을 했다. 알 대장님 4명, 멍게 총무님 4명, 아톰형 4명 이렇게 총 12명의 잠자리를 장터목산장에 예약하셨다. 그리고 산장에 참석할 지원자를 모집하셨다. 하지만 이번 산행에 아쉽게도 참석하지 못하신 회원 분들이 계신다. 막판에 못 가시게 된 컴불형, 가족이 유럽(스페인과 포르투갈) 여행을 하고 계신 희망과용기형, 다른 일정이 있으셨던 그냥형, 부모님 병원 진료 때문에 못 나오신 사니사나형, 이 밖에도 그린랜드형, 댕기형, 알대장님의 대체요원 요청에 응하지 못한 가상이형 등.... 알대장님이 목표로 했던 두 자리수 목표달성은 이번에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결국 초과예약을 일부 취소해야 하는 번거로움까지....
2017년 1월 2일 장터목 대피소 예약이 끝나자, 알 대장께서 백무동행 버스편은 각자 예약하라고 공지하셨다. 1월 3일 일부는 각자, 일부는 단체로 백무동행 버스편을 예약했다. 그런데 산행 전날 지리산에 눈이 와서 입산이 통제되었다는 소식에 모두들 망연자실.... “등산이 안 되면 둘레길이라도 산책하자”는 회장님의 결정으로 드디어 1.21일 7시 동서울 버스터미널에서 백무동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백무동까지 약 4시간 30분가량 소요되어 11시 30분경에 백무동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눈이 많이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와는 달리 화창한 날씨였다. 기온이 서울보다 더 따뜻했다. 산행에 앞서 ‘지리산펜션식당’(055-962-5622, 함양 마천면 강천리 백무동 184-1)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 메뉴로 5인은 산채비빔밥을, 1인은 다슬기해장국을, 1인은 또 다른 메뉴를 시켰다. 산채비빔밥에 요즘 AI 때문에 귀한 몸이 되신 계란 프라이가 올라오자 다른 메뉴를 시키신 분들이 소외감(?)과 아쉬움을 느끼신 것 같다. 여기에 두부김치와 함께 먹는 막걸리 맛은 일품이었다. 두부는 이 집 사장님이 “내가 직접 기른 콩으로 만들었다”고 자랑을 하시면서 거의 두 접시를 주셨다. 이 집 사장님의 인심이 묻어 나오는 대목이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산악회가 이 집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이 때부터 형성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후에 다루기로 한다.
건하게 막걸리까지 한잔 걸치고 산 입구의 국립공원관리공단 백무동사무소에 도착했다. 당초 우려했던 입산통제는 해제되고 “몇 명이 가느냐?”고 묻는 사무소 직원에게 알대장님이 “7명”이라고 말씀하시고 산행 가능여부를 확인한 후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신다. 입산 통제가 해제되었음을 알리는 미소일 것이다. 이 얼마나 다행이란 말인가!
조금 가다 보니 갈림길과 표지판이 나온다. 왼쪽 길은 ‘장터목’ 5.8km, 오른쪽 길은 ‘세석’ 6.5km 라고 적힌 표지판이다. 여기에서 잠시 회의를 한다. 곧장 장터목으로 향하자는 ‘비둘기파’와 세석을 찍고 장터목까지 가자는 ‘매파’와의 충돌이다. 당초 알 대장께서는 이번 산행 코스를 ‘백무동-한신계곡-영신봉-세석산장-장터목산장’으로 공지하셨다. 하지만 여성 회원들을 포함한 대다수는 곧장 장터목행을, 멍게총무님은 세석행을 주장한다. 결국 장터목행으로 단일화에 성공한다. 평소 같으면 원칙론을 주장하셨을 알대장님께서 전날 입산이 통제되었다는 공지와 날씨가 나빠질 수 있다는 기상여건을 고려해 장터목 직행에 동조를 하셨기 때문에 쉽게 단일화를 이루게 된 것이다.
대선후보 선정만큼이나 어려운 등산코스 단일화를 성공적으로 이룬 회원들은 일사분란하게 목적지를 향해 한발 한발 내딛기 시작했다. 하동바위를 지나고, 참샘을 지나 거의 중간지점에 해당하는 소지봉에 도달한다. 하지만 소지봉 도달 직전 회장님께서 등을 내게 돌리시며, 배낭 윗주머니에 노란색 지갑이 있는지 열어 확인해 달라고 하신다. 옆에 계신 아톰형께서 배낭 지퍼를 여신다. 노란 것은 맞지만 지갑이 아닌 안경집이다. 배낭에 지갑이 없는 것 아닌가? 아뿔싸!!!. 놀란 회장님께서는 급히 배낭을 내리셨고, 짐을 꺼내가며 두 세 차례 확인한다. 하지만 고대하던 지갑은 보이지 않았다.
회장님과 아톰형이 점심을 먹었던 식당 전화번호를 찾기 위한 경쟁에 돌입한다. 대한민국 인터넷 검색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네이버 검색을 통해 식당을 탐색하고 있는 아톰형이 정보의 바다(?)에서 헤매고 있는 사이, 회장님이 구글 검색을 통해 먼저 식당의 전화번호를 확인한다. 구글이 네이버 보다 한 수 위임을 실감하는 현장이다. 한해 광고가 3조원에 육박하고, 대한민국 검색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는 네이버에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다. 회장님이 식당에 전화를 한다. 전화벨은 울리지만 전화는 받지 않는다. 수차례 시도에도 반응이 없자 카드 불실신고라는 대안을 선택한다.
마음이 아프지만 안심하고 등산에 집중할 수 있도록 결국 2곳의 신용카드 회사에 분실신고를 마무리했다. (다음날 지갑은 점심을 먹었던 그 식당에서 찾게 된다. 전화가 되었더라면 거래중지를 시키고 다시 복구하는 번거로운 절차가 필요 없었으련만.... 전화가 연결되지 않는 바람에.... 하지만 이 집과 또 인연이 생긴다. 요즘 시쳇말로 ‘엮이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한다)
분실신고를 마치고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경사가 급한 길이 이어진다. 이 겨울에 땀을 흘리며 걷는다. 모두들 입었던 옷을 하나씩 벗어 배낭에 넣거나 배당 위에 묶는다. 모자도 벗었다. 정말 화창한 날씨다. 알대장께서 “지리산에서 이렇게 좋은 날은 1년 중 며칠 안 되는 보기 드믄 날씨”라며, “저기 보이는 봉우리가 천왕봉, 중봉, 제석봉”이라며 설명을 해주신다. 내가 그토록 그리던 천왕봉을 바로 앞에서 처음 본 순간이다.
사실 난 지리산 자락에서 태어났다. 전남 구례군 광의(光義)면이다. 광의면에는 방광(放光)리가 있다.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 이름도 방광(放光)초등학교이다. ‘놓을 방’에 ‘빛 광’이니 ‘빛을 놓는다’는 가히 신의 경지라 할 수 있다. 아마도 ‘빛이 잘 드는 곳’이라는 뜻일 것이다. 노고단을 올라가는 초입에는 천은사가 있다. 천은사가 있는 곳이 방광리이다. 지금은 천은사 앞에 저수지가 생겨 볼품이 없지만 내가 어릴 적에는 그 어디보다도 계곡이 좋은 곳이 천은사였다. 초등학교 때에는 대부분 봄·가을에 이곳 천은사로 소풍을 갔다. 천은사가 아니면 화엄사로 갔다. 화엄사는 천은사 보다 거리가 조금 더 멀어서 가까운 곳이 천은사이니 주로 천은사로 소풍을 간 것이다.
하지만 그 맑고 깨끗했던 계곡에 저수지가 생기면서 계곡이 물에 잠겼다. 천은사(泉隱寺)의 그전 이름은 감로사(甘露寺)였다고 한다. 달 감(甘)에 이슬 로(露)자이다. 절 안에 ‘이슬처럼 맑은 샘물’이 있어 감로사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임진왜란 후 소실된 건물을 중건하던 중 큰 구렁이가 나와 이를 잡아 죽였더니 더 이상 샘에서 물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샘이 숨은 절’이란 의미의 천은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소풍을 갈 때마다 선생님께서 해주신 이야기이다. 인터넷에 검색해 봤더니 똑같은 내용으로 기술되어 있다.
약 25년 전 가량으로 짐작된다. 요즘엔 누구나 생수를 먹지만 당시에는 생수가 일반화되기 이전이다. 서울에서 생수를 비싸게 판매 된 것을 보고 나도 후에 생수 장사를 하면 돈이 되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요즘은 생수 종류가 많아졌지만 당시에는 생수 브랜드가 별로 없었는데, 아마 ‘석수’ 정도가 있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청정지역인 지리산에서 물을 취수해 생수를 만들어 팔면 돈이 되겠다고 생각을 했다. 결국 공장에 매여 있어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말았지만 늘 아쉬움이 있었다. 당시 난 그 생수의 브랜드를 ‘감로수’, ‘지리산 감로수’로 이름까지 지어 놓았는데 말이다. 요즘은 ‘지리산 천년수’란 브랜드로 구례군 산동면에서 생수가 나오는데, 주로 전남지역 정도에 판매가 되는 것 같다. (혹시, 생수사업을 하고자 하시는 분들은 저와 같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 보심이 어떠실지? ㅎㅎ)
이런 지리적 기반에서 태어난 까닭에 나에게 지리산은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그래서 메일주소는 대부분 gojirimt를 쓴다. ‘지리산에 가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nogodan’으로 메일주소로 하려가가 좀 더 의미가 큰 jirisan 이나 jirimt 로 하려 했는데 이미 선점되어 있어서 gojirimt를 쓰게 된 것이다. 그래서 개인 메일주소가 gojirimt@naver.com 이 되었다.
‘천왕봉’은 내가 어릴 적부터 꾸어왔던 이상향 같은 곳, 꼭 올라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는 곳이었다. 노고단은 중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수 십 번 올랐지만 이 곳을 더 이상 넘지 못했다. 남산 밑에 사는 사람이 남산에 올라보지 못한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천왕봉에 도전하려면 최소 3∼4일은 잡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부터 임걸령, 노루목, 반야봉, 화개재 라는 봉우리 이름은 이곳을 다녀온 형이나 선배들을 통해 수 없이 많이 들었지만 나에게는 상상만의 장소에 불과했다. 더구나 이들 봉우리를 지나 천왕봉까지 올라가 보고 싶은 마음은 늘 마음 한 구석에 간직하고 있었다. 나에게 천왕봉은 꿈에 그리던 그런 상상의 봉우리였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 산행은 나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던 천왕봉이 제석봉 뒤로 숨는 것을 보며 오른쪽으로 계속 오르막에 오른다. 오르막 속에서 가끔씩 능선길이 나왔을 때에는 짧게 자란 산죽이 우리 일행을 반가이 맞이해 주었다. 능선 길 어느 지점에 올랐을 때 장터목 대피소 지붕이 보였다. 알 대장님께서 길게 잡아도 1시간 이내에, 짧으면 30분 이내에 목적지에 도달할 거라 말씀하신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힘을 내 다시 오른다. 꼬맹이형, 오솔길형이 뒤처졌다. 뒤는 멍게 총무님께 맡기고 가는 길을 재촉했다. 꼬맹이형, 오솔길형을 남겨둔 채 멍게총무님과 일행이 다시 합류한다. 5명이 눈이 쌓인 반대편 산들이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어느 지점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할 사람이 없어 5명이 한꺼번에 찍지 못했다. 결국 사진에는 돌아가며 4명씩만 출연한다. 알대장님께서는 기다리면 지나가는 사람이 있을 터이니 조금 있다가 5명이 함께 찍자고 했다. 하지만 기다리는데도 서툴고, 더구나 알대장님의 예지력을 믿지 못한 일행은 차례로 4명씩 돌아가며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몇 걸음 더 올라가다 내려오는 등산객을 만나고 보니 알대장님의 신통력을 무시한 게 미안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다.
가던 길을 다시 재촉한다. 산길은 일찍 어두워지는 법이다. 그리고 잠시 후 산장에 도착했다. 산장? 아니 대피소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이는 내부에 들어가 보면 바로 확인이 된다. 낭만적인 모습은 전혀 확인할 수 없고, 군부대의 막사 같은 분위기이다.
대피소에서 5시에 방 번호표를 배부한다는 소식에 먼저 저녁식사를 준비하기로 한다. 알대장님과 멍게총무님이 샘에 가서 물을 떠 오신다. 그리고 나 같은 초보자들이 무얼해야 할지 몰라 헤매고 있을 때 멍게 총무님이 버너를 꺼내 본격적인 식사를 준비하신다. 알대장님은 꼬맹이형, 오솔길형 마중을 나가셨단다. 알대장님과 멍게총무님이 없으면 우리는 밥을 굶어야 한다. 두 분의 중요성이 새삼 부각되는 장면이다. 두 분의 배낭 무게는 우리의 2∼3배에 달한다. 버너, 코펠, 식량 등 일용할 양식을 짊어지고 오시기 때문이다. 30여분쯤 기다리니 꼬맹이형, 오솔길형이 도착했다.
알대장님이 취사장으로 들어가 배낭을 놓고 나오시면서 나에게 대장 배낭 옆에 내 배낭을 놓고 자리를 잡고 있으란다. 우리 일행이 들어갈 때만 해도 취사장은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 조금 있다 보니 등산객들이 밀려 들어오면서 취사장은 자리 잡기 경쟁이 한창이다. 요리하고 식사할 자리를 잡아야하기 때문이다. 물론 요리도 식사도 서서한다. 물도 공급되지 않는다. 취사장은 오직 추위와 바람막이용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럼에도 숙박인원 대비 공간이 협소하여 자리를 잡기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잡았던 자리도 일부를 다른 등산객들에게 내줘야 했다.
알대장님과 멍게총무님 주도로 식사를 준비하던 중 5시가 되자 방 번호표를 배정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예약자들이 신분증을 들고 방배정표를 받아 온다. 방 배정표를 받아오신 아톰형이 일몰이 아름답다며 함께 보러 나가자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아톰형이 너무 춥다며 주머니에서 장갑과 휴대폰을 꺼내다가 방배정표를 바람에 날려 보냈다. 다행히 방배정표는 멀리 날아가지 않고, 언덕 바로 아래의 눈발 위에 멈췄다. 아톰형의 손을 잡고 언덕 밑으로 내려가 찾을 수 있었다. 하마터면 아톰형이 예약한 일행은 노숙을 하게 될 지도 모르는 상황이 발생할 뻔 했다.
저녁식사는 간편식으로 하기로 했다. 즉석 요리용 곤드레밥, 카레밥 등에 뜨거운 물을 넣어 15분을 기다리면 된단다. 아톰형은 그 와중에도 초시계까지 켜 놓고 15분을 재는 세심함을 보이신다. 문명의 이기를 최대한 활용하신다. 대범하실 것 같은 외모와는 다소 다른 모습이다. 참치를 넣은 김치찌개도 끓였다. 멍게총무님이 준비해온 복분자주에 안주로는 참치 김치찌개를 먹었다. 이렇게 저녁식사가 마무리된다.
7시, 모두 배정된 방으로 들어갔다. 1인당 모포 2장씩을 받았다. 모포 1장에 2,000원씩이란다. 1장은 바닥에 깔고, 1장은 덮는 용이다. 군대의 막사같은 분위기다. 각자의 잠자리 위치를 확인했다. 3팀으로 나뉘어져 흩어졌다. 아마도 방이 3개인 모양이다. 나는 멍게총무님과 같이 3호실 108번 109번 자리를 배정받았다. 3호실은 입구에서 아래로 한 층을 내려가야 한다.
잠자리를 잡고 멍게총무님께 물었다. “양치질은 할 수 하나요?” “물이 있으면 할 수 있지!”, “세수는 할 수 있나요?”, “샘에 가서 물을 떠와서 하면 돼. 그런데 세수하려고?!”
이는 산장에서 처음으로 잠을 자는 ‘지리산’의 질문에 우리 산악회의 예산집행을 책임지고 있는 ‘멍게’ 총무와의 대화이다. 대피소 숙박이 처음인 초보의 ‘우문’에 대한 산행 고수의 ‘현답’인 셈이다.
답답한 마음에 밖으로 나갔다. 거기서 아톰형을 만났다. 아톰형이 칫솔과 물병을 들고 나오시는 게 아닌가. “양치질 하시게요? 물이 없다는데요?” 하고 물었더니 “그래서 이렇게 물을 들고 나왔지” 하시면서 생수통을 보여주신다. “물 나눠줄테니 양치질 해” 하시는 것 아닌가? 얼마나 반갑던지. 잽싸게 방으로 들어가 멍게 총무님께 이 기쁜 소실을 알리고 칫솔을 들고 나왔다. 물이 부족할까봐 이를 닦은 후 2번 눈을 입에 넣어 뱉어냈다. 그리고 아톰형이 주신 물로 2번 입을 헹궈낸 것으로 양치질을 완성했다. 하지만 세수는 포기했다. 세수가 사치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사실 가지고 올라온 물 500밀리미터 짜리 1병 반쯤 남았지만 이는 내일 먹을 용으로 남겨놓아야 할 것 같아 쓰지 않은 것이다.
자리로 돌아와 보니 어떤 이들은 모포를 덮어쓰고 자고, 어떤 이들은 휴대폰을 보는 것이 아닌가. 나도 잠시 휴대폰을 보고 있는데 관리사무소에서 나온 직원이 “소등입니다”라며 불을 끄는 것이 아닌가? '이제 겨우 8시인데 어떻게 하라는 것이지' 혼자말로 중얼거리다가 소변을 보고 자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멍게 총무님께 다시 물었다. “이 건물에 화장실이 있나요?”, “화장실은 아까 산을 올라올 때 처음에 마주친 건물, 거기에 있어. 소변을 보려면 적당히 해결해”. 그래서 화장실까지 가지 않고 폭풍의 언덕에서 불어오는 눈 폭풍을 등지고 맞은편 낭떠러지에 실례를 했다. 그리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다시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평소 하루에 한 번씩은 숙제를 했는데 오늘은 산행하느라 잊었다. 그런데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밀린 숙제를 하라는 경고의 메시지가 아닌가. 결국 몰아치는 눈 폭풍을 뚫고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문 밑에서 밀려들어오는 자연의 찬바람에 몸을 맡기고 이렇게 또 하나의 근심을 해결했다. 나는 108번 자리를 차지했다. 그런데 내 옆자리인 107번에 ‘물이 샘’이라고 표기되어 있고, 그 부분을 다른 물건으로 가려놓았다. 그러면 이 자리에는 투숙객을 받지 않겠지? 라는 생각에 너무 기뻤다. 다닥다닥 붙어서 자는 자리에 옆자리가 비었다는 것은 분명 행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배낭도 이 공간에 배치했다. 조금이나마 독립성이 더 확보될 것을 기대하면서... 109번 자리인 멍게총무님도 가방을 이 공간으로 옮겨 놓았다. 107번 빈 자리는 좋았지만 그 너머에 106번 자리에서 저녁 내내 울려 퍼지는 지축을 뒤 흔드는 코고는 소리에 기나긴 섣달 밤을 거의 뜬눈으로 지새워야 했다. 8시에 불을 끄고 아침까지 잠 못 들고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고통인지....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아래 고이고이 넣었다가 어른님 오신 날 밤에 구비구비 펴리라....)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황진이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 산행 첫날이 마무리되었다.
잠시 잠이 들었다. 한기가 올라오고 바닥이 너무 딱딱해 불편했다. 일어나보니 12시였다. 한쪽에서는 코를 고는 소리가, 다른 한쪽에서는 방귀를 뀌는 소리가 요란하다. 자면서 계속해서 코고는 사람은 봤어도 주기적으로 방귀를 뀌는 사람은 차음 보았다. 더 이상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밖으로 나갔다. 여전히 눈보라가 휘몰아친다. 다시 돌아와 누웠다.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뒤척이다가 4시에 또 다시 밖으로 나왔다. 기온은 영하 13.6도를 나타내고 있다. 밖의 추위를 확인했기에 5시가 되자 옷을 더 껴입고 우리의 목적지 천왕봉에 갈 준비를 시작했다. 그런데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등반을 시도했는데 눈보라에 앞이 보이지 않아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천왕봉 산행은 힘들 거란다.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무려 50년을 넘게 기다려 왔던 천왕봉 등반인데....
어젯밤 밤새도록 몰아치는 바람은 너무나 강했다. 대피소가 날아갈 듯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바람소리가 두려웠다. 하산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으려나? 걱정이 되었다. 몇 미터 앞을 분간하기조차 어려웠다.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천왕봉에 함께 오르겠다고 전날 밤 아톰형과 약속을 했다. 6시에 만나 출발하기로 했다. 더 이상 뒤척이기도 힘들어 5:20분 멍게 총무님과 같이 배낭을 싸서 취사장으로 나왔다. 멍게총무님이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남자들은 5:30분경에 모두 나왔다. 간단히 아침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대책을 논의했다. 그리고 천왕봉 등정이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여성분들은 예지력이 있어 오늘 천왕봉에 오르지 않겠다고 어젯밤 눈보라를 보고 이미 결정했기 때문에 빨리 나오지 않으셨다. 결국 카톡을 보내 나오시라고 알렸고, 6시 30분경에 나와 식사를 하셨다.
7시경 하산하기로 했다. 하산은 두 팀으로 나누었다. 백무동 ‘직행팀’과 세석을 거쳐 내려오는 ‘둘레팀’이다. 둘레팀에는 알대장님과 멍게총무님 2명, 나머지 5명은 직행팀을 택했다.
내려오는 길은 눈보라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눈도 무릎까지 올라왔다. 직행팀의 선두는 아톰형이 맡았다. 속도가 나지 않았다. 설경에 도취되어 가끔씩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아톰형의 휴대폰이 얼어 잘 켜지지 않았다. 배낭에 매단 휴대폰 케이스에 보관했기 때문에 추위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내려올수록 눈의 양도 줄고 길 찾기도 쉬워졌다. 가끔 올라오는 등산객이 발자국을 남겨 길을 잃을 염려도 없었다.
하산길 끝 무렵부터 회장님의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된다. 아톰형이 묻고, 회장님의 설명으로 이어진다. 이야기는 식당에 도착해서도 계속된다. 회장님을 찾아왔다는 당시 의대생, 현재는 정신과 의사, 그리고 의사의 여동생 이야기까지 과거로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회장님께 다시 듣기로 하고 이만 생략한다.
하산 길은 그야말로 소설 속 동화나라 같은 설경이었다. 우리 산악회에서 많은 눈을 만끽한 산행으로 선자령, 한라산 산행 등을 꼽는데 이번 지리산 산행도 3번째 안에 드는 산행이라는 것이 대장님의 평가이다. 중간 중간 찍은 설경은 산행 사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리라. 다만 목적지인 천왕봉에 오르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다음에 다시 도전할 기회를 주신 것이기도 하고, 너무 쉽게 천왕봉을 노린 초보자들에 대한 경계인지도 모르겠다.
어디쯤 가고 있을까? 둘레팀을 걱정하며 직행팀은 11:30분에 전날 점심을 먹었던 지리산 펜션식당에 도착했다. 도토리묵, 두루치기에 막걸리를 시켜놓고 둘레팀에 카톡을 보냈다. 2시간 쯤 더 걸릴 것이라는 식당 주인 아주머니의 예상과는 달리 30분 내에 도착한다는 답장이 왔다. 우리 메뉴 소식을 접한 알대장님은 닭백숙이라도 시키라고 권하신다. 하지만 직행팀은 알대장님이 염원하신 닭백숙 대신 두루치기와 파전, 도토리묵 1개를 더 추가해 막걸리를 마신다.
둘레팀은 12시경에 식당에 도착했다. 통상 2시간 30분이 더 걸리는 코스를 불과 30분 만에 돌파한 것이다. 역시 대장님과 총무님다운 면모이다. 그리고 오리불고기에 소주를 드신다. 시시하게 막걸리 안 드신다. 소주를 3병을 드신 것 같다. 산행 실력 뿐 아니라 음주 실력도 으뜸이다. 도토리묵, 파전, 두루치기, 오리불고기... 모든 음식이 막이 있었지만 특히 도토리묵은 맛이 일품이었다. 지갑을 찾으신 회장님께서 기분이 좋으신지 이날 점심도 쏘시겠다고 하셨지만 총무님의 만류로 2일째 점심은 회비로 지불하기로 했다.
혹시나 했던 회장님의 지갑을 결국 식당에서 찾았다. 전날 점심을 회장님께서 쏘셨는데, 아마도 계산하다 그만 지갑을 두고 가신 모양이다. 식당 주인이 잘 챙겨 놓으셨단다. 이렇게 즐겁게 점심식사를 즐기는 동안 어느 덧 서울행 버스를 타야 할 시간이 되었다. 광주에서 왔다는 옆 팀은 우리보다 먼저 와서 식사를 하더니 식사가 끝나자 구수한 사투리를 써가며 계속해 고스톱을 치고 있다. 우리에게도 지갑을 가지고 참여하라고 권하면서....
아톰형이 장인 제사에 참석하셔야 한다며 먼저 1:30분차로 올라가셨다. 2:50분차를 예매한 나머지 5명은 2:30분까지 식당에서 머물렀다. 그리고 버스정류장으로 왔는데 이곳에서 식당과의 끈질긴 인연이 또 발생했다. 이번에는 오솔길형이 식당에 스틱을 놓고 왔다는 것이다. 차시간이 겨우 7분 남았는데 다시 스틱을 찾으러 종종걸음으로 식당으로 질주한 오솔길형. 드디어 스틱을 찾아 휘두르며 개선장군처럼 차에 탑승하신다. 출발시간을 겨우 2분 남겨 놓고... 우리 일행이 스틱을 놓고 간 것을 아시고 주인이 잘 챙겨 놓으셨단다. 아마도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도록 우리 산악회 연락처를 식당에 알려 주어야 할 모양이다. 큰 근심을 해결하러 가신 알대장님도 오솔길형과 같은 시간에 화장실에서 나와 차에 탑승하셨다. 초치기의 달인인 듯 싶다.
그리고 저녁 7시가 조금 넘어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했다. 전날 아침 7시에 동서울터미널을 출발해 다음 날 저녁 7시경에 다시 이곳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했으니 총 36시간의 지리산 산행이 막을 내린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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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6일 알대장님의 외동 따님 은별이가 <코리아헤럴드> 신문에 기자로 합격했단다. 대를 이은 성대 집안에, 대를 이은 기자 집안이 된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산악회 이름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끝.
첫댓글 재미지네..애쓰셨고, 다음 산행 같이 하세나!
한편의 아름다운 수필을 쓰셨네. ㅎㅎ 수고하셨삼요.^^
잘 읽었어요. 번개와 같은 속도에 재미까지^^.온몸이 아파 끙끙거리며 퇴근중입니다. 꼬래비였지만 늘 뿌듯한 산행입니다. 물론 소지봉 지나서는 잠깐 내가 왜 이 고생이지, 했지만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7.01.23 20:33
산행기 재밋게 읽었어.안갔어도 간듯하구나.^^
다음에 천왕봉 같이 오르자.
어린시절 짝사랑하던 고향의 지리산에게 보내는 연애편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수고했어요ㅎㅎ
천왕봉은 따스한 봄에 다시 한번 도전해보아요
글고 산에선 비누 치약은 금지입니다. 미생물들에게 치명적이랍니다^^
산장은 방학때나 성수기 제외한 주중에 가면 아주 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