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스토리] 장량 편: 제1회 시황제 저격에 실패하고 스승을 만나다
(사진설명: 그림으로 보는 장량과 스승)
선견지명의 책사 장량
장량(張良)은 한(漢)나라 개국 황제 유방(劉邦)의 제일 책사이자 한나라의 뛰어난 군사가, 정치가이며 또 한나라의 개국공신이다. 그는 두터운 정과 뛰어난 모략, 담백한 마음으로 철학자들로부터 천고의 제일 기인(奇人)이라 불리기도 한다.
장량은 깊은 애국심으로 자신의 한(韓)나라를 멸망시킨 폭군 진시황제(秦始皇帝)에게 복수하고 뛰어난 모략으로 항우(項羽)를 이기고 유후(留侯)에 봉해지지만 명예와 이익에 욕심을 내지 않고 명철보신(明哲保身)과 공성신퇴(功成身退)로 천수를 누렸다.
황석공(黃石公)이 장량에게 신발 시중을 시킨 것은 장량의 참을성을 키워주기 위함이고 약속시간에 늦었다고 장량을 꾸짖은 것은 장량의 근면성을 양성하기 위함이었다.
선견지명의 책사 장량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아보자.
제1회 시황제 저격에 실패하고 스승을 만나다
박랑사(博浪沙)라는 시적인 분위기의 지명은 장량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필부의 힘으로 진시황제(秦始皇帝)를 저격한 것으로 인해 유명해지고 그로부터 후세에 길이길이 남게 되었다.
장량의 조상 5대는 모두 한(韓)나라의 재상이었다. 진(秦)나라가 한나라를 멸할 때 혈기가 왕성한 젊은 장량은 노기가 충천하여 망국의 원수를 반드시 갚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당시 장량은 3백의 하인을 거느린 갑부였는데 어린 동생이 요절하자 하인들을 다 내보내고 동생의 장례도 치르지 않고 가산을 털어 시황제를 죽일 힘센 장사를 구했다. 그는 과연 동이(東夷) 창해군(倉海君)의 천거로 천하의 장사를 찾았으며 60kg 무게의 큰 쇠망치를 특별히 제작했다.
박랑사는 동쪽으로 순시를 가는 진시황제가 반드시 거치는 곳이었다. 장량은 장사를 데리고 사전에 박랑사에 이르러 길가의 갈대나무 숲에 몸을 숨겼다. 좀 지나 서쪽에서 36대의 마차가 나타나더니 검은 깃발을 날리며 호호탕탕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마차의 행렬에서 여섯 필의 준마가 끄는 시황제의 어가는 보이지 않고 모두가 똑 같이 네 필의 말이 끄는 마차뿐이었다.
똑 같은 마차들 속에서 시황제의 마차를 찾아 낼 별다른 방법을 생각하지 못한 장량은 잠깐 생각하다가 고급스럽게 보이는 한 마차를 공격하라고 장사에게 눈짓했다. 장사가 쇠망치를 날리자 마차는 산산조각이 나고 마차에 탔던 사람도 당장에서 숨졌다. 하지만 그 마차에 탄 사람은 진시황제가 아니었다. 장량의 실패는 예상했던 것이었다. 왜냐하면 똑 같은 모양의 36대의 마차 중 한 대만 진시황제의 어가였고 나머지는 모두 자객을 미혹시키기 위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갈대밭에서 날아 온 쇠망치가 진시황제의 생명을 빼앗아 갈 번한 후 박랑사는 세상에 널리 이름을 날렸다. 권위가 침범을 받고 생명이 위협을 받은 진시황제는 대로해서 전국적 범위에서 자객 수배령을 내렸으며 거금을 현상금으로 걸었다. 시황제의 분노는 사라지지 않고 경호원들이 도처로 자객을 찾으러 다녔지만 그 때 장량은 벌써 무성한 갈대밭에 몸을 숨기고 하비(下邳)로 도주해 이름도 고치고 은둔한 뒤였다.
장량은 하비에 은둔해 쫓기는 생활을 했지만 여전히 차분하고 느긋했다. 그는 매일 이른 아침이면 정원에서 <손자(孫子)>를 읽고 황혼 때면 강가에 나가 산책을 즐겼다. 다른 사람들이 박랑사의 진시황제 저격사건을 논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장량은 시황제의 마차를 박살내지 못한 것을 탄식하고 자신이 살아서 도주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그 행동은 참으로 구사일생의 너무 위험한 작전이었다. 그럴 가치가 있을까? 지금 와서 장량은 자신이 유치하고 그 번 행동은 확실히 무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장량은 원래부터 생사를 가볍게 보고 의리를 중히 여기는 강한 의협심의 주인공이었다. 그리하여 살인을 저지른 항백(項伯)이 하비에 도주해오자 장량은 자신의 도주범 신분이 드러날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어려운 상황에서 항백을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하고 생사와 고난을 함께 했다.
어느 날, 장량은 강가에 산책을 나갔다가 다리를 건너게 되었다. 그 때 무명옷을 입고 수염과 머리털이 모두 하얀 선풍도골의 한 노옹이 다가오더니 자신의 신발을 벗어 다리 아래로 던지고는 장량을 보며 말했다.
“젊은이, 저기 가서 내 신발 좀 주어오게.”
장량은 놀라서 생각했다.
“누군데 감히 나를 부려? 내가 누군지 알기나 하는 거야?”
장량은 노옹의 뺨을 치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은발의 노옹을 바라보며 간신히 분노를 누르고 다리 아래로 내려가 신발을 주어왔다. 장량이 신발을 가지고 다시 다리 위로 올라가 노옹에게 신발을 건네자 노옹은 이번에는 이렇게 시켰다.
“자네가 신겨주게.”
장량은 마음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어차피 신발을 주어왔으니 내친 김에 다 해주자.”
장량은 꿇어 앉아 노옹이 신발을 신도록 시중을 들었고 노옹도 발을 내밀며 자연스럽게 장량의 시중을 받았다. 장량이 신발을 신겨드리자 노옹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가버렸다. 그 바람에 더욱 놀란 장량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노옹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한참 걸어가던 노옹이 다시 돌아와 말했다.
“싹수가 보이는 괜찮은 젊은이네 그려. 닷새 후 이른 아침 나와 이 곳에서 다시 만나세.”
이상하게 생각한 장량은 무릎을 꿇고 공손하게 대답했다.
“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닷새 후의 이른 아침 장량이 약속장소에 나가니 그 노옹은 벌써 나와 있었다. 장량을 본 노옹이 화를 냈다.
“노인과의 약속에 어찌 늦게 나오는가? 닷새 후에는 좀 더 일찍 나오게.”
노옹은 말을 마치자 홱 돌아서 가버렸다.
그로부터 또 닷새가 지나자 장량은 닭이 홰를 칠 무렵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날도 노옹이 먼저 와서 장량을 기다리다가 장량을 보자 화를 냈다.
“어떻게 또 늦게 오는가? 닷새 후에는 더 일찍 오게.”
또 닷새기 지나자 장량은 이번에는 야밤에 나갔다. 장량이 약속장소에 도착해서 좀 지나니 노옹이 왔다. 먼저 나와 있는 장량을 본 노옹은 그제야 기뻐하며 말했다.
“이제야 젊은이 답네 그려.”
그리고는 책 한 권을 내주며 말을 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 제왕의 책사가 될 수 있네. 이제 10년이 지나면 제왕이 나타날 걸세. 그리고 13년 후 나를 만나러 제북(濟北)으로 오게. 곡성(谷城) 산 자락의 황석(黃石)이 바로 날세.”
말을 마친 노옹은 자리를 떠나버렸고 그로부터 장량은 더는 그를 만나지 못했다.
날이 밝은 후 장량이 그 책을 보니 <소서(素書)>였다. 그날부터 장량은 밤낮으로 그 책을 읽으며 많은 것을 배웠다.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