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연재하는 말러 전곡 이야기의 2번째입니다.
과연 1번처럼 많은 분이 읽어주실 지 궁금하네요.
<교향곡 1번 이야기 에필로그>
1번 공연을 보러 갔을 때 공연 예정 시간보다 일찍 공연장에 들어갔거든요. 그때 악장을 하던 분이 미리 오셔서 혼자 뭔가를 열심히 연습했는 데 1번 3악장에 나오는 '방황하는 젊은이'의 4곡에서 따온 테마를 바탕으로 한 악장 솔로였습니다. 약간 그로테스크하지만 나름대로 매력있는 멜로디라고 생각했는 데 혹시 들어본 여러분 생각은 어떠세요? 그 부분에 대한 또하나 이야기는 '방황하는 젊은이'를 들을 때 바로 그 부분에서 멜로디가 바리톤으로 커버할 수 없을만큼 올라갑니다. 그래서 과연 바리톤이 그걸 어떻게 부를까 걱정스럽게 들었는 데. 이런...반주와 노래가 다르구요 주 멜로디는 반주를 따라 흐르더군요.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요 1번의 연결고리를 어느정도 붙잡고 2번을 소개해 드리고 싶어서 입니다. 많은 분들이 1번과 2,3,4번을 분리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데요.. 2번 교향곡 초연 직후 "여기서 죽은이는 D장조 교향곡의 주인공인 영웅인 것이다…" 이라고 말러가 말했다 그러거든요. 판단은 여러분께 맡기겠습니다.
<교향곡 2번 이야기>
그럼 교향곡 2번 이야기로 들어가 보죠. 베토벤은 어쩜 후배 작곡가들에게 큰 과제를 남겼을 지도 모릅니다. 비엔나 스타일이라고 하는 데요 1악장 4악장은 빠르고 2악장에는 느린 악장을 3악장에는 춤곡을 배치하는 양식을 9번에서 깼거든요. 베토벤의 9번은 2악장에 스케르초를 3악장에 느린악장을 배치했고 당시의 분위기에서 엽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4악장에 성악 솔로와 합창을 들여와서 오페라나 오라토리오 미사곡과 교향곡이 갖고 있던 벽을 살짝 허물었거든요. 그후 2, 3악장을 뒤집는 정도는 멘델스존이나 슈만에 의해 시도가 되었구요. 멘델스존은 2번 교향곡을 거의 칸타타 분위기로 만든 바 있고 베를리오즈는 극적 교향곡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연가곡과 교향곡의 성격을 가진 '여름밤'에서 성악을 도입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말러가 2번째 교향곡을 쓰면서 다시 도전합니다.
죄송합니다. 한번 뜸을 더 들이겠습니다. 제가 베토벤 9번 전곡을 처음 접한 건 중학교 2학년 때 입니다. 몸을 비틀거나 중간에 테입의 스톱 버튼을 누르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는 데 1년이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3악장이 정말 아름답다라는 느낌을 받는 데 또 1년이 걸렸습니다. 게다가 말러 교향곡 1번이 정말 매력적이다라는 느낌을 받은 건 실황을 본 이후입니다. 말러 2번은 글쎄요. 난해하다고 하는 사람도 물론 많은 데요 베토벤 9번을 끝까지 들어줄 인내력과 3악장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심미안 그리고 말러 1번을 소화해 낼 수 있는 분이 아직 접하지 않았다면 분명 그 매력에 빠질 수 있을 겁니다. 좀 더 나가서 저처럼 말러의 11개의 교향곡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될지도 모르죠.
1악장은 1번처럼 어두움 속의 약간의 움직임같은 느낌을 주면서 시작합니다. 조성의 변화와 반전 어쩜 말러가 말하는 교향곡 영웅의 시련과 영광인지도 모르겠네요. 중간의 세악장은 간주곡 형식을 염두에 두고 작곡되었다고 하네요. 랜틀러 형식의 안단테 악장(랜틀러는 왈츠와 비슷한 3박자 춤곡인 데 왈츠보다는 좀 소박한 느낌을 줍니다. 물론 왈츠도 슈트라우스 이전에는 소박했다고 하는데요...)에서는 뭔가 추억이란 단어를 떠올리게도 합니다. 트리오의 애상적인 멜로디 때로는 어두운 부분과 애절한 부분.. 스케르쪼 3악장에서 주인공은 추억속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옵니다. 여기서 전 말러 1번과의 약간의 연결고리를 보게 되는 데요 1번 1악장의 주제가 약간 냉소적으로 편곡된 느낌을 받습니다. 어떤 부분은 브루크너 4번 3악장의 트리오에서 따왔다는 느낌도 받구요. 물론 제 개인적인 느낌이니까 크게 신경 안쓰셔도. 4악장 '원광'(Urlicht: 아마 태초의 빛이란 뜻이구요 이걸 아이디로 쓰는 말러 팬을 본적 있는 것 같슴다.)에서는 아침의 꾸밈없는 믿음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게 됩니다. 어떻게 들으면 지루한 노래지만 몇 번 들어서 멜로디 라인을 따라가게 되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피날레 악장에서 우리는 삶의 의미가 과연 무엇이냐는 혼란스런 의무에 다시 지견하게 되고, 첫 악장에서 선보인 주제들이 조금씩 다시 등장하면서 전체적인 통일성을 보이며 마무리를 합니다. "부름의 소리가 들리는데, 모든 생명의 종말이 예고되며 심판의 날이 오고 있음이 선언된다. 대지는 공포에 떨고 무덤이 열리면서 죽은 자들이 다시 세상으로 돌아와 끝이 보이지 않는 행렬을 이루게 된다. 지상의 위대함과 왜소함, 왕과 거지, 옳은 자와 그른 자들이 모두 순례자의 행렬을 이루며 자비와 구원을 바라는 울음소리가 귓가에 진동한다.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트럼펫 소리가 메아리치고, 뒤를 잇는 무시무시한 저각 뒤에 나이팅게일의 노랫소리가 마치 지상의 삶에 있어서 마지막 메아리처럼 저 멀리서 들려오기 시작한다. 이제 천국의 합창이 저 멀리서 들려오기 시작한다. "부활하리라, 너는 부활하리라! 신의 축복이여! 찬란한 빛이 우리의 존재에 스며들어 축복을 내리오! 심판도, 죄인도 없으리. 위대한 사랑은 만물에 자비와 영광을 내리리!""어떠세요? 물론 굳이 이런 말을 쓰지 않더라도 뭔가를 찬양하는 듯한 피날레에서는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더군요.
<말러 교향곡 2번의 음반 이야기>
말러 2번을 제가 처음 접한 건 학부 4학년이었던 96년도 울학교 개교 50주년 기념 음악회에서 였슴다. 1악장은 작곡과의 대학원 생이 지휘를 했었고 1악장 후 4악장 5악장의 가사를 한글로 번역해서 읽어주었고 2,3,4,5악장은 임헌정 교수님의 지휘로 공연되었죠. 처음 들었을 때 이 작품이 난해하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사이사이에 관악기 주자가 스르륵 사라져서 어디선가 다시 나타나 팡파르를 불고 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재밌고 이 공연은 꼭 실황으로 봐야만 한다는 생각을 했죠. 이 작품의 최고 명연은 클램페러와 래틀을 꼽고 있습니다. 래틀은 인간적으로 좀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고 클램페러(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를 장만해서 듣고 있구요 사실 클램페러보다는 개인적으로 아바도(시카고 교향악단)의 연주를 더 즐겨 듣고 있습니다. 아바도를 듣고 전 깜짝 놀랐습니다. 이거 말러 2번 맞아? 1악장부터 너무나 칼라풀 했거든요. 마치 자켓의 그림처럼 검정색 바탕에 색색의 면이 존재하는 미술작품을 보는 느낌입니다. 4악장에 한해서는 클램페러에 더 높은 점수를 줍니다. 왜냐하면 솔로를 맡은 자넷 베이커가 정말 발군의 노래를 부르거든요. 부족한 표현력으로 묘사하자면 '거역할 수 없는 목소리'입니다. 5악장은 아바도의 부활이 뭔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라면 클램페러는 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제 개인적인 취향은 아바도의 느낌을 더 좋아합니다. 두 연주를 듣다보면 트라이앵글 소리에도 주목하게 되는데요. 클램페러의 연주에서는 챙하고 투명하게 울려서 어쩌면 5악장에 청량감을 주는 트라이앵글 소리가 아바도 반에서는 거의 다른 악기에 파묻혀 있습니다. 말을 길게 할 수록 5악장이 주는 감동을 깎아먹는다는 느낌이 계속 드네요. 그럼 다음엔 요즘 부천 필의 연주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말러 3번 이야기를 들고 여러분을 찾아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