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3년 가을,모리 가문은 핫토리 가문의 이가국을 접수하고 동맹이었던
기타바타케 가문에게 배신당했습니다.
이로서 모리 가문은 일본의 모든 가문이 적이 되었습니다.
이무렵 호조군 10000여명이 오미국 국경에서 상경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호조군과 대치하겠다는 구실로 오와리국으로 진군했던 기타바타케군 5000여명은
이제 호죠군과 함께 교토로 진군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타노군 1000여명이 와가사국 국경에서 대기하며
교토로 갈 시기를 가늠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동국의 대공세를 막을 모리군은 약 11000여명으로서
이가국의 모토하루님과 다카가게님의 군사 6000여명이
호조와 다케다,기타바타케의 공세를 대비하였고
탄바국에는 증원군 2000여명이 주둔하여 교토의 아시카가 막부군을 견제했고
구치바 우지무네의 모리군 3000여명이 야마토국으로 이동하여
기이국와 이세국의 기타바타케 가문의 영지를 공략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모리 가문의 문제는 동국의 다이묘들만이 아니었습니다.
1570년 전국포위망이 형성된 이후 모리 가문은 끊임없는 전투로 인해
막대한 자금을 소모하여 1573년 가을에는 보유한 자금이 거의 바닥나고 말았습니다.
이에 재정 담당 가신들이 모토나리님께 세율을 10%에서 50%로 인상해야 한다고 요청하니
모토나리님은 다카모토님과 상의하여 결정하기를 세율을 10%로 유지하되
일시적으로 각종 특별세를 부과하여 실질적으로 50%의 세율을 거두기로 결정하고
적용하였습니다.
이에 모리 가문 백성들은 불만을 느꼈으나 일시적인 특별세라는 명목과
모리 가문이 처한 상황을 생각하고는 대체적으로 따랐습니다.
그동안 모리 가문의 백성들은 10%의 세율에 만족하여 생활하고 있었고
거기에 막대한 전답 개간과 육상과 수상교통의 활성화와 교역 장려로
모리 가문의 백성들은 전국시대에도 불과하고 영지 내의 여행을 자유로이 하고
해외의 문화를 받아들이며 번영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영민들은 일시적으로 많은 세금을 바치더라도
모리 가문이 전국을 평정하길 소망했고
그 소망은 불평없는 세금 징수와 징병응모의 활성화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큐슈 남부 지역에서는 아소교 탄압과 지속적인 토벌활동에 높은세금까지 부과되자
이에 반발하는 백성들과 기리시탄(카톨릭 신자)들이 불만을 품었고
여기에 옛 이토 가문의 가신들이 모리 가문에 대한 잇키를 부추기며
그들을 조종하고 있었습니다.
큐슈 남부 잇키의 최후 주동자는 이토 가문의 멸문과정에서 살아남은
큐슈의 명장 츠게모리 였는데
그는 교토 인근에서 모리군이 처한 상황과 큐슈 남부의 불만을 주시하며
거사를 일으킬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 준비는 교묘하여 큐슈 남부는 높은 세율 부과에도 불구하고 평온했고
이에 모토나리님은 큐슈 남부가 거의 평정된 것으로 판단하고
다카모토님과 후쿠바라 다메미츠와 함께 병력 3000여명을 데리고
분고국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그무렵 분고국에서는 모리군 전함들이 건조되고 수군이 양성되고 있었는데
모토나리님은 전함에 병력을 싣고 시코쿠에 상륙하여
초소카베 가문을 평정할 계획을 품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한편 모리 수군의 대부분은 전국포위망이 형성된 이후 시코쿠의 해안가를 봉쇄하여
쵸소카베 가문의 상륙과 교역을 차단하고 있었습니다.
쵸소카베 가문이 끝내 바다로 진출하지 않자
모리 수군은 일부 전함을 도카이 해안으로 이동시켜
호죠가문의 교역로를 차단하고 배후 상륙을 도모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후쿠바라 가게히사가 지휘하는 모리군 전함 70여척이
도카이 해안으로 진출하여 교역로를 봉쇄하고
한편으로 호죠 가문 후방 지역의 상황을 정탐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호죠 가문이 가사하라 나리츠라에게 100여척의 전함을 주어
모리 수군을 공격하게 하니
이에 가게히사는 정박할 항구 없이 싸우는 것은 무모하다고 판단하고
시코쿠 해안으로 퇴각하였습니다.
가게히사 함대의 도카이 해안 진출이 좌절됨으로서 모리군은
호죠 가문을 바다에서 공략하는 계획을 보류하였습니다.
1573년 늦여름 기타바타케 가문이 모리 가문을 배신하기전에
기타바타케군은 주력군 5000여명을 오와리국 국경에 보내
호죠군과 대치함으로서 모리 가문이 기타바타케 가문을 믿게 하였는데
1573년 가을에 기타바타케 가문이 모리 가문을 배신한 이후,
기타바타케 가문은 주력군 5000여명을 호죠군과 함께 교토로 진군케하고
이세국의 나이토 요리아스의 군대 2500여명과 기이국의 병력 1000여명으로
영지를 지키면서 한편으로 모리군의 배후를 노렸습니다.
이에 모토하루님은 구치바 우지무네의 군대 3000여명을 야마토국에 보내어
기타바타케군의 공세를 견제하면서 한편으로 그들의 영지를 공략케 하였습니다.
한편 이세국의 나이토 요리아스는 모리군과 대치하면서 모리군을 격파하고
야마토국과 가와치국을 공략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계책을 내어 당주에게 보고하니
당주가 그 계획을 보고 마음에 들어하여 실행케 하였습니다.
이에 요리아스는 고스카에 모로야스에게 수성군 700여명을 주어
이세국 거성 아노츠성을 지키게하고
척후부대를 야마토국에 배치하여 모리군의 움직임을 정찰케하였으며
자신은 2500여명의 병력을 데리고 이세국 북방으로 이동하여
마치 오미국으로 진군하는 척하면서 몰래 아노츠성과 연락을 주고 받으며
모리군의 공격을 기다렸습니다.
요리아스의 계획은 우지무네의 모리군이 아노츠성을 공격하러 쳐들어오면
즉시 군대를 데리고 아노츠성을 복귀하여
아노츠성을 공격하는 모리군의 뒤를 쳐서 격멸하고
그동안 기이국의 기타바타케군이 야마토국과 가와치국을 공략하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우지무네는 기타바타케군을 제압하고 기이국과 이세국을 공략할 계획을 세워
모토하루님께 보고하였고 이에 모토하루님은 다카가게님으로 하여금
우지무네의 계획을 돕게끔 하였습니다.
이에 다카가게님은 휘하의 유능한 닌자들과 승려들 중 일부를 이세국에 보내어
공작활동 및 정찰을 실시하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모리군은 이세국의 기타바타케군이 북방으로 이동하였다는 정보를 알아냈고
아노츠성과 요리아스의 군대의 연락선에 정보원을 잠입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모리 가문의 승려들은 아노스성의 신자들에게
부처는 싸움을 일으킨 기타바타케 가문의 편이 아니라는 내용의 설교를
교묘하게 베푸니 신앙심 깊은 아노스 수성군들의 가치관이 흔들렸습니다.
이러한 공작원들의 성과는 다카가게님을 통해 우지무네에게 보고되었고
이에 우지무네는 1573년 겨울에 군대를 이끌고 이세국의 거성을 향해 급히 진군하여
공격하니 다카가게님의 닌자들이 척후부대의 연락을 차단하여 아노츠 수성군은
요리아스에게 연락을 할 수 없었고 수성군은 기타바타케 가문을 위한 마음으로
싸우는 게 아니라 단지 자신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 싸웠습니다.
우지무네는 궁수부대로 화공을 감행케하여 성의 방어능력을 약화시키고
진입로가 확보되자 승병부대를 앞세워 공격케하였는데
승병들이 투항하면 같은 불제자로서 살려주고 저항하면 지옥에 유황불에 던지겠다고
외쳐대며 퇴로를 열어주자 대다수의 수성병들은 목숨을 건지기 위해 달아났고
수성장 모로야스는 할복하였습니다.
이렇게 아노츠성을 점령하여 이세국을 장악한 우지무네는 이세국의 조세를 탕감하고
승려들로 신앙심 깊은 이세국 백성들을 설득케 한 다음,
아노츠성에 대규모 수성군이 주둔한것 처럼 꾸민 뒤에
군대를 데리고 기이국으로 진군하였습니다.
그리고 요리아스에게 전령을 보내어 말하길
"아노츠성은 이미 모리군이 장악하였다.
얕은 수법을 쓰다 웃음거리나 되지 말고 야전으로 당당히 결판을 내자!"
라고 하였습니다.
한편 이가국의 모리군은 호죠군과 기타바타케군의 대공세를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다카가게님의 정찰대중 일부가 지난 여름 전투에서 패한 다케다군 잔당들이
이가국 국경에 남아있다는 보고를 하니
다카가게님이 이에 모토하루님께 말하길
"지금 막연한 적의 대공세를 기다리며 가만히 있는게 어찌 좋겠습니까?
지난 여름 전투에서 패한 다케다 잔당들이 국경 근처에 아직 남아 있다고 하옵니다.
그들의 존재는 가치없으나 적의 주력군과 합류한다면 길잡이를 할 것이고
우리가 저들을 격멸한다면 우리 군사들의 사기 진작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제가 군사들을 데리고 가서 그 찌끄러기들을 소탕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라고 하니 이에 모토하루님이 허락하였습니다.
다카가게님은 군사 2700여명을 데리고 다케다 잔당들이 있는 곳으로 진군하되
자신은 하타모토들과 최정예기병들로 선봉부대에 서고
자신의 주력부대에 카케무샤를 두고 천천히 진군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다케다 잔당들은 다카카게님의 카케무샤에 속아
정작 다카가게가 직접 지휘하는 모리 기병대의 기습을 대비하지 못했습니다.
다케다군은 다카가게님의 주력부대를 피하여 도주하던 중
다카가게님이 직접 지휘하는 기병대가 매복한 지역을 지나게 되었고
그곳에서 모리군 기병대가 그들을 덮쳐 모조리 죽이고 수급 350여급을 얻었습니다.
모리군의 피해는 30여명에 불과했습니다.
우지무네가 이세국을 공략하기 전, 모토하루님은 기이국의 기타바타케군이
가와치국과 야마토국을 공략할까봐 염려하여
자신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야마토국을 통해 기이국을 공격하려고 하였습니다.
이에 다카가게님이 말리며 말하길
"지금 우리 두 형제가 합친 병력이 6000여명에 불과한데
오미국 인근에 집결한 적군은 15000여명에 달합니다.
만약 형님께서 군대를 이끌고 기이국을 평정한다면 이 아우는 형님이 돌아오시기전까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울 수는 있으나
이 이가국을 지켜낼 수 있다고 장담할 순 없사옵니다.
우지무네는 민첩하고 전공에 대한 탐욕이 강한 자이오니,
그는 이세국을 장악하면 곧장 기이국으로 진군할 것이옵니다.
그러니 기이국이 그동안 움직이지 못할 정도의 병력만 보내면 충분하옵니다."
라고 하여 모토하루님은 어쩔 수 없이 이가국에서 적군의 공세를 대비하면서
셋츠국에 집결중이던 모리 증원군을 기이국에 투입하게끔 하였습니다.
한편 셋츠국에는 쥬코쿠 남부지역의 나라들에서 징병된 군대가 집결하고 있었는데
후쿠바라 다메미츠의 조카 후쿠바라 가타이에가 가장 먼저 기병 80명을 데리고 왔고
160명의 사무라이들이 뒤이어 셋츠국 거성에 들어왔습니다.
이때 모토하루님의 명이 도착하였고 셋츠국 슈고(성주)는 병력이 500여명이 모이면
출격케 하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가타이에가 그의 부하들에게 의견을 물어 뜻을 확인한 뒤에 말하길
"지금 군대를 출격시키지 아니하고 기다린다면
그동안 기타바타케군이 가와치나 야마토 중 하나는 공략할 것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아비와 자식과 남편과 재산과 정조를 잃게 될 것입니다.
이곳에 모인자들은 비록 수는 그들에 비해 적을지는 모르나
모두 사무라이라 불리는 사람들이오.
어찌 우리의 안위를 위해 더 큰 희생을 참을 수 있겠소?
부디 우리를 보내어 그들의 침탈을 막게 해주시오."
이에 셋츠국 슈고가 마지못해 출격을 허락하며 말하길
"그대들의 의기는 가상하나 그 의기가 승리를 항상 보증해주진 않소이다.
내가 각지에 전령을 보내어 증원군을 조속히 보낼 것이니
그대는 부디 증원군이 합류할 때까지 적을 막기만 하되 싸우지는 마시오."
가타이에의 무사 240명이 기이국 거성 와카야마성에 도착할 무렵,
기이국 슈고 야마오카 노이야스는 700여명의 병사들을 데리고 출격하려고 하였습니다.
이에 가타이에가 무사들에게 말하길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 여기서 물러나 저놈들이 백성들을 유린하는 것을
목숨이 아깝다는 이유로 구경만 할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저들을 상대하여 무사로서 싸우다 죽어 충의를 다하고
역사에 아름다운 이름을 길이 남길 것인가?"
라고 하니 이에 무사들이 모두 죽기로 싸우자고 외치니
가타이에가 감격하여 말하길
"좋다! 제군들 모두 목숨을 하늘에 맡기고 부끄럽지 않게 싸우다 죽자!"
라고 하고 전투 대형을 갖추게 하였습니다.
한편 노이야스는 야마토국의 모리군이 이세국으로 진군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곧장 군대를 출격시켰다가 모리군이 공격을 감행하자 모리군의 첩보에 속았다고 생각하고
군대를 거두어 수성하였습니다.
그런데 모리군이 불과 240명에 불과하자 모든 병력을 동원하여 성을 나와
모리군을 공격하였습니다.
이에 가타이에는 기병대를 이끌고 나아가서
기타바타케군의 선봉부대인 궁수부대에 돌격하여 그들을 격파하니
기타바타케군이 몰려들었으나 가타이에는 능숙하게 기병을 물렸습니다.
그의 첫 돌격에서 모리군은 20여기를 잃었고
기타바타케군은 120여명이 참살되어 궁수부대가 패퇴하였습니다.
모리 기병 돌격에 많은 병졸들을 잃은 기타바타케군은 모리 기병들을 도륙내러 추격하였고
재정비한 모리 기병들은 기타바타케군 측면에 돌격하여
100여명의 사무라이를 쳐죽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기타바타케 보병들이 에워싸려고 하자 기병을 물리고 재정비하니
20여기의 기병이 돌격에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기타바타케군은 기병을 무시하고 모리군 보병을 향해 진군하였고
모리 기병대는 뒤를 보인 기타바타케 보병대 중에서 아시가루 창병대의 배후로 돌격하여
다시 100여명을 베고 포위당하기 전에 모리 보병대쪽으로 귀환했는데
또다시 20여기의 병력을 잃어 불과 18기만 남았습니다.
기타바타케군은 300여명을 잃었으나 아직 600명 넘게 남아있었습니다.
노이야스는 공격하기 앞서 모리군에게 큰소리로 말하길
"너희가 꽤 잘 싸웠다만 이제 우리가 총공격을 한다면
단 한명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너희를 굳이 몰살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 모두에게 이로운 제안을 하겠다.
너희가 여기서 순순히 물러난다면 우리는 너희를 추격하지도 않고 곱게 돌려보내 주겠다.
그러나 끝까지 싸우고자한다면 이 세상 끝까지 뒤지더라도
너희의 시체를 찾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라고 하니 이에 가타이에는 마지막으로 병력을 점고하고 전술을 짜니
모리군 진형으로 돌격하는 적 보병을 사무라이들이 돌격하여 맞서 싸우고
그동안 모리 기병들이 마지막으로 돌격하여 적장을 참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대답을 기다리던 노이야스의 보병대가 모리군 전열로 전진하였고
이에 모리군 사무라이들이 일제히 칼을 들고 돌격하여 맞서 싸웠습니다.
그동안 가타이에와 기병들은 기타바타케군을 우회하여 적군의 중앙 배후를 향해 돌격하니
모리 기병들은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걷어차고 베며 용감히 싸우다가 전멸하고
가타이에도 용감히 싸우다가 말이 적군의 창검에 찔려 낙마하자 땅에 나동그라졌고
뒤어 몰려든 적군 보병들을 단도로 찌르며 저항하다가 난도질 당했습니다.
모리군 사무라이들은 한동안 저항하다가 협공을 당해 궤멸되고
단지 34명의 사무라이만 목숨을 건져 야마토국으로 퇴각하였습니다.
노이야스는 죽지 않았지만 기타바타케군은 450여명이 전사하여 전력이 크게 약화되었고
결국 노이야스의 군대는 다시 성으로 물러나야 했습니다.
한편 큐슈 남부에서는 모토나리님과 모리군이 분고국으로 이동하여
시코쿠 출동 준비를 하던 1574년 2월 초,
기회를 옅보던 츠게모리와 옛 이토 가문의 가신들,불만을 품은 기리시탄들과 토호들이
일제히 거병하니 사쓰마국에선 츠게모리가 마츠오카 치카요리를 수장으로 내세워서
1900여명의 잇키들을 모아서 거병하고
오오쓰미국에서는 고다이 시게나가가 1120여명의 잇키들을 모아서 거병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분고국의 모토나리님은 다메미츠를 선봉으로 내세우고
급히 군대를 큐슈 남부로 진군하였는데
다메미츠는 선봉대가 본대와 연락이 끊어지지 않을 만큼 전진해야 한다는
병법의 기본도 거의 망각할 정도로 황급하게 오오쓰미국으로 내려가니
그 이유는 오오쓰미국의 슈고가 그가 아끼던 막내 아들
후쿠바라 우지토키 였기 때문 이었습니다.
1574년 2월 말,다메미츠의 정찰부대가 본대와 멀찍이 떨어진 채
오오쓰미국 거성 가노야성에 이르니
이미 시게나가의 잇키들이 성을 포위하고 항복 요구를 했다가 거절당하여
공성 준비를 끝내고 공격을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다메미츠의 정찰부대는 급히 기동하여 그들을 저지하려는 잇키 보병대를 회피하고
성에 불화살을 퍼붓는 잇키 궁수부대를 향해 돌격하여 80여명을 베었으나
잇키들이 몰려들자 급히 기동하여 물러나야 했습니다.
한편 우지토키는 휘하의 가병들을 데리고 성안으로 몰려드는 잇키들을 마구 베었으나
화살이 끝없이 쏟아지고 적이 협공을 하자 점차 가병들의 수가 줄어들었습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우지토키는 살아남은 가병 4명을 데리고 천수각에 들어가
자신과 결혼한지 100일도 되지 않은 자신의 처에게 말하길
"봄이 되면 그대와 킨타이교에서 벚꽃 구경을 하고 싶었으나 이제 틀린듯 하오.
작별이오. 이 못난 지아비를 용서하시오. 저 세상에선 절대로 떨어지지 맙시다.
먼저 가서 기다리고 계시오. 곧 다시 만납시다."
라고 하니 그의 처가 각오를 하고 스스로 칼로 목을 찌르고
우지토키가 그녀의 목을 베었습니다.
그리고 천수각에서 고함 지르며 말하길
"나는 모리가의 수석 가로 다메미츠 공의 아들 우지토키다!
오늘 모리의 무사를 베는 댓가가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마!"
라고 하고 천수각으로 내려와 잇키들을 마구 베니 그의 가병 4인이 주변에서
끝까지 싸우다가 차례로 죽고 그도 적을 베다가 장도가 부러지자 단도로 싸우다가
창검에 쳐박혀 고깃덩이가 되었습니다.
다메미츠는 40기의 하타모토로 구성된 정찰부대 중에서 약 절반을 잃은채 본대로 복귀했고
잇키들은 200여명이 전사했지만 오오쓰미국을 점령하였습니다.
시게나가는 우지토키의 목을 베어 승첩보고서와 함께
사쓰마국의 치카요시에게 보냈습니다.
한편 치카요시도 사쓰마국의 거성을 포위하고 수성군에게 항복요구를 하니
사쓰마국 슈고 시시도 스케이메는 사쓰마국 토호 출신으로서
한때 츠게모리 휘하에서 싸웠던 사람이라 츠게모리가 직접 항복요국를 하며 말하길
"그대는 옛 이토 가문에서 녹을 받았던 자가 아닌가?
이제 그 옛 이토의 충신들이 다시 충의로서 군을 일으켰네!
어찌 가문의 원수의 녹을 먹으며 살겠는가?
더군다나 그대의 군세는 우리와 비교도 못될 정도로 열세이니
성문을 열고 우리와 뜻을 같이하게!"
이에 스케이메가 답하여 말하길
"그대는 아직까지 그 질긴 목숨을 유지하고 살았군.
그대가 그대의 목표를 위해 목숨을 이어왔듯이
나도 나의 목표를 위해 지금까지 살았고 이 성을 맡았다.
그대는 이토 가문의 숙원을 풀기 위해 지금의 살육을 계속 하겠지.
그런데 그렇게 살육하면 천하의 살육을 끝낼 수 있는가?
난 이 전국의 살육이 지겨워.
내 아버지는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싸우다 죽었고
동생은 시마즈 가문을 위해 싸우다 죽었다.
그리고 난 이 살육을 끝내기 위해 이토 가문에 들어가 칼질을 했지.
하지만 그들은 살육을 즐기다가 모리 가문에게 망했다.
지금 모리 가문은 이 미친 시대의 살육을 끝내기 위해 싸우고 있다.
너희처럼 살육을 위한 살육은 하지 않아.
그대의 계획을 막기 위해 난 다시 무사로서 생사의 갈림길에 서보고자 한다.
이건 성안의 모든 수성군의 생각이기도 해.
그대는 사쓰마 무사가 한번 결심하면 죽어도 안바꾸는 거 잘 알지?"
이에 츠게모리는 츠카요시에게 공성 준비가 끝나는 즉시 성을 공격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공성준비를 마친 잇키들이 궁수들의 지원사격을 받으며 성으로 쳐들어오니
스케이메는 아시가루 창병대를 예상 침입로에 배치하여 적군을 대적케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가병들과 옛 이토 가문 출신 중무장 무사들을 대기하기 하게 하였습니다.
수성군 아시가루들은 적의 집중공격과 화살세례로 큰 피해를 입었지만
적의 압도적인 수에 밀려 방어지역에서 밀려나기 전까지 버텼습니다.
츠게모리와 츠카요시는 첫번째 침입로로 투입한 잇키들이
시간과 병력을 너무 많이 소모하자 또다른 침입로를 개척하여 그곳으로 병력을 투입시켰고
스케이메는 적의 침입로에 자신의 가병들을 투입하여 막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사무라이들을 데리고 천수각에서 츠게모리의 또다른 공세를 기다렸습니다.
그가 예상했던 대로 적의 2번째 공격은 소규모로서 쉽게 저지되었고
스케이메는 적의 3번째 공격이 시작되기 전에 무사들을 데리고 첫번째 침입로로 이동하여
천수각으로 몰려오는 잇키들을 공격하여 성에서 축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스케이메의 무사들이 신나게 잇키들을 베며 성 밖으로 추격하려고 하자
스케이메가 말리며 말하길
"방심하지 마라! 츠게모리는 마지막에 전력을 가장 많이 투입하는 자다!
이제 모두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라!"
한편 츠게모리는 2번째 공성부대가 성에서 물러나는 모습을 보고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요로이(갑옷)을 입고 직접 병력을 지휘하여
공성하고자 하니 츠카요시가 말리며 말하길
"츠게모리공이 직접 갑옷입고 칼을 휘두르기엔 나이가 너무 많소.
그리고 이번 공격에는 전체 전력의 절반으로서
지치고 소모된 채 싸우고 있는 적을 치는 것이니 반드시 이길 것이오.
그러니 여기서 승리를 기다리는 게 어떻겠소?"
이에 츠게모리가 말하길
"저 사쓰마의 시골무사가 이토 가문의 거병의 의기를 비하 하였으니
긍지높은 무가의 무사로서 어찌 그런 치욕을 참고 있겠소?
그리고 만약 우리의 형세가 적을 박살낼 수 있다면
내가 공성군과 함께 싸워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고
설사 내가 죽더라도 이길 수 있다면 족한 것이오.
허나 만약 이번 공격이 실패한다면 사쓰마국 공략은 끝장이오.
그렇게 되면 저 성에서 싸우다 죽는게 낫지."
라고 하고 끝내 3번째 공성군과 함께 성을 공격하니 그들이 성벽에 도착했을 무렵에
때마침 1번째 공성부대가 패퇴하여 달아나고 있었습니다.
이에 츠게모리가 두망병들을 가로막고 목을 베며 말하길
"이 잡것들아! 도망가지마라! 도망치면 살 듯 싶으냐! 싸워라!
무사가 아니라면 최소한 무사답게 싸우다 죽어야 죽어서라도 무사 대접을 받을 게 아니냐!
공격! 공격하라!"
라고 하고 병사들을 몰아 성을 공격케하고 전령에게 명령을 내려
그 명령을 궁수부대에 전달케 하였습니다.
츠게모리의 군사들이 2개의 통로를 통해 성안으로 들어가니
스케이메는 적이 적게 몰리는 통로에 편제가 유지된 무사들을 투입하고
적이 몰리는 통로에 크게 소모된 아시가루들과 가병들을 배치하고
그들을 자신이 직접 지휘했습니다.
그 결과 적은 수로 침투하던 잇키들은
무사들의 조직적인 반격에 많은 사상자를 내고 물러갔고
무사들은 잇키들을 격파하자마자 적군이 몰려든 통로쪽으로 달려갔습니다.
한편 잇키가 몰려든 통로에선 스케이메의 가병들과 아시가루들이
천수각쪽으로 밀리고 있었습니다.
츠게모리의 명령을 받은 궁수부대는 츠게모리의 명에 따라
모리군과 잇키들이 뒤섞인 성안에 화살이 다떨어질 때까지 화살을 쏟아 부었고
마침내 아시가루 부대가 전멸하고 가병들이 불과 10여명 밖에 남지 않았으며
스케이메도 싸우다가 창칼에 몇번 찔리고 베이고 화살이 여러 발 박힐 무렵에
무사들이 도착하여 잇키들을 마구 베어내며 성 밖으로 잇키들을 밀어냈습니다.
잇키 궁수부대가 화살이 다떨어지지자 츠게모리의 마지막 명을 받들어 공격을 시도했으나
모리군의 필사적인 방어에 그들마저 쫓겨났습니다.
한편 성밖에서 패퇴하는 잇키들을 초조하게 바라보던 츠카요시는
오오쓰미국에서 온 전령으로부터 승첩장계과 우지토키의 목을 받자
잇키의 영지가 생긴 것에 기뻐하여 군대에 오오쓰미국으로 철수 명령을 내렸습니다.
결국 380명의 모리군이 1920명의 잇키를 상대로 싸워 승리를 거두었고
모리군은 250여명이 전사했으나 잇키의 전사자는 1400여명이나 되었고
그중에는 츠게모리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츠게모리는 칼에 여러번 찔린 상태에서 싸우다가 잇키들이 달아나기 시작하자
성문쪽에서 그들을 막으며 독전하다가 달아나는 잇키들에게 짓밟혀 죽었고
스케이메는 잇키의 시체들을 집요하게 뒤져서
결국 츠게모리의 시체를 찾아 목을 베었습니다.
스케이메는 츠게모리의 목을 벤 뒤에
"그대의 무력을 가문이란 작은 세계가 아닌 천하라는 큰 세계를 위해 썼더라면...,"
이라고 하고는 전투로 인한 부상으로 인해 쓰러졌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1574년 3월, 다카모토님이 지휘하는 모리군이 가노야성을 포위하고는
항복요구도 하지 않고 공성준비를 끝낸뒤 곧바로 공격하였습니다.
이때 모토나리님이 전군에 명을 내리길
"저 성안에 있는 모든 생명체에 자비를 베풀지 말라.
그 어떤 항복도 받아들이지 말라. 모조리 죽여없애라."
이때 다메미츠가 선봉으로서 싸울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하니
모토나리님이 말씀하시길
"그대는 자식의 위험에 마음이 격하여 본대와의 연락이 두절될 정도로 나아갔다가
무사들만 잃고 돌아왔으니 그 죄가 가볍다고 할 수 없도다!
지금 그대가 군사를 맡는다면 우리 병사들의 희생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대가 이곳에서 아들을 잃었다면 나는 이곳에서
나의 충직한 신하와 병졸들과 백성들을 잃었다.
나는 이 평정에서 그대의 복수심으로 그대와 나의 사람들을 더 잃고 싶지 않다.
그대는 여기서 결과를 지켜보라. 그리고 살라. 살아서 적을 더 죽여라.
죽여서 그 희생으로 얻은 승리로서 천하를 평안케 하도록 하라."
비록 모토나리님은 다메미츠를 직접 싸우지 못하게 하였으나
대신 궁수부대를 지휘할 수 있게 하였고
그는 성을 향해 무자비한 불화살 공격을 감행하였습니다.
다메미츠의 화공에 시게나가의 궁수들이 무력화되었고
모리군 보병대는 안전하게 성문을 부수고 진입하니
시게나가와 그의 잇키들은 퇴로가 없고 모리군이 자비를 베풀지 않을 것이라는 알고
필사적으로 싸웠으나 전쟁을 지겹게 겪은 모리군에게 그들의 저항은
오합지졸 수준이여서 결국 학살당했습니다.
학살이 끝나고 병졸들이 수급 900여급과 수괴 시게나가가의 시체를 찾아 가져오니
모토나리님은 그것을 다메미츠에게 넘겨주었고
다메미츠는 자신의 칼이 닿을대로 닿아서 부러질때까지 그의 시체를 난도질 하고
조각조각 낸 다음 가루로 만들고 불태워버렸습니다.
그 후 모리군은 사쓰마국으로 곧장 진군하였습니다.
한편 치카요시의 사쓰마 잇키 570여명은 사쓰마국 거성에서 패주한 후,
오로지 오오쓰미국의 잇키만 믿고
오오쓰미국의 가노야성으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오쓰미국 국경에 이르러 피난하는 기리시탄들이 잇키들에게 말하길
"지금 가노야성은 모리군의 공격으로 함락되었고
오오쓰미국의 잇키들은 그 성에서 다 죽었소.
당신들 몰살당하고 싶지 않으면 흩어져 숨거나 이 나라를 떠나야 할 거요."
라고 하고 가버렸습니다.
이에 니이로 노무츠구가 치카요시에게 말하길
"모리군이 사쓰마국을 온다면 우리 군세로는 도저히 싸워 이길 수 없소이다.
하지만 이대로 흩어진다면 저들은 추격하고 수색하여 우리를 다죽이고 말 것이오.
내가 이곳에서 모리군을 상대하며 시간을 벌고 저들을 속일 것이니
그대는 고통스럽겠지만 수뇌부를 데리고 숨어서 다시 거병을 도모하시오."
라고 하고 같이 싸우다 죽겠다고 하는 치카요시를 억지로 말에 태워서
수뇌부와 함께 달아나게 한 다음,
자신은 남은 병사들을 모아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 아소님을 마음 놓고 믿을 수 있는 세상,
싸움없고 핍박없는 세상을 위해 거병했지만
이제 적군이 몰려온다. 우리가 의지할 동료들은 먼저 천국으로 갔다.
살아서 현세의 고통을 더 겪고 싶은 자들은 떠나도 말리지 않겠다.
이곳에서 죽어서 천국에 갈 자들은 남아라.
그 사나이들과 함께 저 모리놈들을 하나라도 더 죽이고 천국에 가겠다."
라고 하니 병졸들은 모두 죽기로 싸우겠다고 하였습니다.
노무츠구가 군사들을 포진시킨지 얼마안되어 모리군이 몰려오니
노무츠구는 병사들과 마지막 기도를 올리고 모리군 중앙을 향해 돌격하였고
모리군은 압도적인 군세로 그들을 포위한 후 전멸시켰습니다.
이리하여 큐슈 남부의 잇키를 평정한 모토나리님은 시코쿠 평정을 중단하고
군대를 사쓰마국에 주둔시켰으며 큐슈 남부 지역의 조세를 면제한 대신,
기리시탄을 철저하게 탄압하고 이토 가문의 옛 가신들을 조사하며
잇키의 배후를 색출하였습니다.
1574년 초봄, 우지무네의 군대는 눈길을 돌파하여 기이국을 침공하여
거성 와카야마성을 포위하고 공성준비를 하되 수성군에게 항복요구를 하지 않았습니다.
우지무네는 공성준비가 끝나자 곧바로 궁수부대로
성에 화살이 다떨어질 때까지 활을 쏘게 하였고
화살이 다떨어지자 보병들을 성안에 진입시켰습니다.
그 모리군 보병들은 성안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다 죽이라는
우지무네의 명을 수행했으며
기타바타케군 800여명과 노이카스는 무리군의 화살 공격에 절반이나 죽고
화살과 불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모리군의 창검에 저항하다가 고기가 되었습니다.
한편 이세국 북방에서 우지무네의 모리군의 공격을 대비하고 있던 요리아스는
기이국을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이세국을 공격하려고 하였는데
우지무네의 군대가 곧장 이세국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망설이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모리 가문의 닌자들이 거짓 전령을 보내어 기타바타케 당주가 그의 군대를
오미국으로 불렀다는 내용의 가짜 명령을 전달하니
그는 그 명령에 속아 군대를 데리고 오미국으로 이동하였고
그의 군대가 오미국 국경에 이를 무렵 기타바타케 당주가
그의 엄뚱한 이동을 추궁하는 전령을 보내자
모리 가문 닌자들이 그 전령이 당도하기 전에 요리아스를 독살해버렸습니다.
결국 오미국 국경의 기타바타케군은 기타바타케 당주의 군대와 합류하러 이동하였습니다.
1574년 여름, 모토하루님과 다카가게님이 이가국에서 전략회의를 하니
모토하루님은 호죠와 기타바타케군과의 결전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이에 다카가게님이 말씀하시길
"지금 저 호죠군과 기타바타케군은 오와리와 미노의 폭동과
우리 닌자들의 공작으로 인해 발이 묶여있습니다.
설사 진군하려고해도 이가국의 모리군과 오미국의 잇키들로 인해
교토로 상경하려면 몇달은 걸릴 것이옵니다.
이제 우리 모리군은 탄바국과 이세국,이가국의 전력을 합치면 11000여명이고
교토 공략을 배후에서 방해할 세력도 없사옵니다.
형님 말대로 결전이 필요하다면 오미국이 아닌
적의 상징인 교토에서 막부와 전국 다이묘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어떠하올련지요."
라고 하니 모토하루님이 기뻐하며 동의 하였습니다.
이에 다카가게님은 자신이 선봉대로 교토를 포위하여 적을 자극하고
교토 인근국의 모리군을 집결시켜 교토의 막부군과
지원하는 다이묘의 군대를 격파한다는 전략을 세워
모토나리님께 보고하고 이에 모토나리님이 허락하자
2700여명의 군대를 데리고 교토로 진군하여 교토성을 포위하였습니다.
다카가게님의 대담한 교토포위에 교토의 막부군은
비록 모리군보다 수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요격하지 않고 철저히 수성하면서
모리군을 탐색하였고
한편으로 다이묘들에게 몰래 서신을 보내 빨리 군대를 상경시키라고 독촉하였습니다.
1574년 늦여름, 그동안 조용했던 왜구들이 기나긴 바다의 평화와
모리 가문의 해양 정책으로 인해 도적질을 하기 힘들어지자
노다 유키마사라는 왜구 수괴를 중심으로 연합함대를 구성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대담하게도 모리 가문이 운영하는 다네가시마 섬의 무역소를 습격하였고
그 무역소를 관리하던 시시도 사다요리는 급히 큐슈에 왜구 출몰을 알리는 서신을 보내고
봉화를 피운다음, 상인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피신하였습니다.
이에 왜구들은 큰 이익을 얻지 못했고 그들은 큐슈 해안쪽으로 사라졌습니다.
1574년 가을, 교토성을 포위하던 다카가게님의 군대는 이가국으로 물러나고
대신 모토하루님의 군대가 교토성을 포위했습니다.
그동안 교토는 계속 다이묘들에게 상경 요구를 하였고
마침내 영지가 없던 기타바타케군이 교토로 진군하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다이묘들 중 가장 병졸 수가 많은 호죠군은 오미국과 미노국에서
잇키들과 모리 가문의 닌자들에 의해 보급이 끊겨 진군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모리군은 대담하게도 이세국을 지키고 있던 우지무네의 군대를
교토 공격 지원에 투입하게 하였고 탄바국에 증원군을 집결시켜서
결전을 대비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토하루님과 다카가게님은 포위만으로
교토의 의심많은 막부군을 끌어낼 수 없다고 판단하였고
마침내 다카가게님이 계책을 하나 내어 모토하루님께 바치니
이를 모토하루님이 받아들이고 탄바국에 전령을 보냈습니다.
모토하루님의 전령으로부터 명을 받은 탄바국 슈고는 기병부대장들을 불러 말하길
"지금 모토하루님께서 교토를 함락하기 위해 기꺼이 죽을 무사들을 구한다고 하는군.
모토하루님은 단 1개 기병부대를 필요로 하시는데 누가 갈 것인가?"
라고 하니 한 장수가 지원하여 말하길
"소인을 보내주소서."
라고 하니 그는 구치바 우지무네의 동생 구치바 우지토시 였습니다.
곧 구치바 우지토시는 교토 공격에 투입될 최정예 기병들을 선발하여 교토로 출격하였고
탄고국 슈고는 전령을 모토하루님께 보냈습니다.
첫댓글 점점 스케일이 커지는군요. 모리가문이 과연 통일을 할 수 있을지 흥미진진합니다.
오오
정말 재밌는데 조금 복잡해요 ㅠㅠ 저 시마즈 어려움으로하고있는데 저두 서부다장악하고 교토근처까지왔거든요 군대최강 호화구요. 그리고 동쪽은 가문 3개밖에안남앗는데 다들 지역이넓어서 님처럼 전국포위망? 그거 막부가하면 힘들겟네요 ㅠㅠ 재밋게보고있어요 파이팅 ㅋㅋ
그리고 노래제목뭐죠? 저두 저노래틀고게임하고싶네요 ㅋㅋ 왠지 저거틀면 진짜 빠져드는듯
정명섭:흠,이제 모리가문기도 거의 끝나가고 있습니다. ㅎㅎ빈센트:오오~그거슨 인생~ 오오~미키1994:그래도 후방에 적이 없고 앞에만 적이 있다면 싸울만 합니다. 저는 이 연재를 좀 복잡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게임은 1인칭으로 진행되지만 전쟁은 참가하는 모든 사람에게 각각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입장을 반영하다보니 복잡해집니다. 브금은 의무의 부름 현대전3(콜 오브 듀티:모던 워페어3) 엔딩곡 입니다.
대단하네요......^*^
이 브금은!!~~~ 콜오브듀티 모던워페어2 앤딩 브금이닷 혹시 제목아시면 답글 부탁해요
삼진:감사합니다.박경원:모던워페어3 엔딩 크레딧 입니다.
첫댓글 점점 스케일이 커지는군요. 모리가문이 과연 통일을 할 수 있을지 흥미진진합니다.
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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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노래제목뭐죠? 저두 저노래틀고게임하고싶네요 ㅋㅋ 왠지 저거틀면 진짜 빠져드는듯
정명섭:흠,이제 모리가문기도 거의 끝나가고 있습니다. ㅎㅎ
빈센트:오오~그거슨 인생~ 오오~
미키1994:그래도 후방에 적이 없고 앞에만 적이 있다면 싸울만 합니다. 저는 이 연재를 좀 복잡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게임은 1인칭으로 진행되지만 전쟁은 참가하는 모든 사람에게 각각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입장을 반영하다보니 복잡해집니다. 브금은 의무의 부름 현대전3(콜 오브 듀티:모던 워페어3) 엔딩곡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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