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잠’이 돈 되는 시대 |
커지는 ‘슬리포노믹스’ 시장 |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슬리포노믹스는 ‘잠’(sleep)과 ‘경제’(economics)의 합성어로 바쁜 현대인의 숙면을 도와주는 수면 산업을 말한다. 해마다 스트레스 등으로 불면에 시달리는 현대인이 늘면서 국내 수면 산업 규모가 2조원대에 육박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보기술(IT) 업계도 이 분야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숙면을 돕는 웨어러블 기기와 애플리케이션이 잇따라 출시되면서 슬립테크 시장이 활짝 열렸다.
배순한 프로스트앤드설리번 연구원
우리는 일상적으로 “밤새 안녕하셨나요?” 혹은 “안녕히 주무셨습니까?”라는 인사를 주고받는다. 이 평범한 인사말에서 알 수 있듯 잠은 우리 삶에 중요한 기능을 하며, 사람들 또한 잠을 중요한 의미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최근 수면장애에 시달리는 사람이 늘고 있다. 불규칙한 생활습관과 일상의 스트레스 등으로 현대인은 쉽게 잠들지 못한다. 잠 못 이루는 한국인의 밤은 통계 수치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한국인의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7시간41분으로 OECD 18개 회원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OECD 평균 8시간22분보다 40분이나 짧다. 평균 수면 시간이 8시간50분으로 가장 오래 자는 프랑스인은 한국인보다 무려 1시간1분이나 더 잔다.
수면 부족에 대한 경고도 쏟아진다. 잠이 부족하면 신체의 모든 기능이 저하되는 듯하다. 잠이 부족하면 작업 능률이 떨어지고 만성피로, 우울증, 두통, 어지럼증은 물론이고 당뇨병 위험이 증가하며 신진대사 파괴를 유발한다. 잠이 부족하면 식욕이 늘거나 같은 양의 음식을 먹어도 살이 더 쪄 비만이 될 확률이 높아진다. 미국 국립수면재단(NSF)에서는 잠이 부족하면 성적 흥미도 못 느낀다고 밝혔다.
수면 시간뿐만 아니라 수면의 질도 그리 좋지 못하다. 2016년 불면증에 시달리는 성인 인구는 전체의 12%인 400만 명에 육박한 것으로 추산되며, 심각한 불면증으로 치료받은 환자도 급증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1~2015년) 불면증으로 진료를 받은 환자는 193만 명을 넘어섰다. 2011년 약 32만5천 명에서 2015년에는 72만1천 명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런 현상 때문인지 최근 시간당 요금을 내고 잘 수 있는 수면카페나 수면장애를 완화하는 입욕제, 수면 보조용품이 포함된 호텔 패키지 등 수면 관련 상품이 다양하게 나왔다. 롯데마트에선 2016년 기능성 베개와 매트리스의 판매가 전년 대비 각각 20.7%, 29.9% 증가했다. 구스다운(거위 앞가슴털) 이불 판매도 전년 대비 25.7% 늘었다. 숙면에 도움되는 향초의 판매도 15% 증가했다. 신세계백화점의 경우 지난 3년간 일반 침대 매출 신장률은 감소세를 보인 반면 프리미엄 침대는 두 자릿수 성장을 보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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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면을 도와주는 수면 산업이 급성장하는 가운데, 침대에도 다양한 스마트 기술이 접목되고 있다. 중국 베이징의 이케아 가구 코너에서 고객들이 깊은 잠에 빠져 있다. REUTERS |
수면+경제 ‘슬리포노믹스’
수면 보조식품도 잇따라 출시됐다. 2017년 초 CJ제일제당은 숙면에 도움을 주는 건강식품 ‘슬리피즈’를 선보였다. 슬리피즈는 북유럽인들이 숙면을 위해 수면 유도 물질인 멜라토닌이 다량 함유된 우유를 마신다는 점에 착안해 개발됐다. CJ제일제당은 수면 건강식품을 3년 내 200억원대로 성장시키겠다고 밝혔다. 캐나다에선 에너지드링크와 반대되는 음료 ‘슬로카우’(Slow Cow)가 인기를 끄는데, 슬로카우는 녹차의 아미노산인 테아닌(L-Theanine)이 주성분으로 긴장을 완화해준다.
급속히 성장하는 수면 관련 시장을 수면(sleep)과 경제(economics)의 합성어인 슬리포노믹스(수면경제·Sleeponomics)라 부른다. 미국(20조원)과 일본(6조원)의 시장규모에 비하면 아직 걸음마 수준이지만 국내시장도 2016년 2조원을 돌파할 정도로 급격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정보기술(IT) 업계도 이 현상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특히 기술을 활용해 숙면을 돕는 다양한 제품과 애플리케이션(앱)이 출시돼 본격적으로 슬립테크(Sleep-Tech)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2017년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가전박람회(CES)에 슬립테크 코너가 처음 등장했다. 참가 기업은 10곳에 그쳤지만, 현지 참가자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전세계 슬립테크 시장은 아직까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 미국 스타트업 베딧(Beddit)은 수면의 질을 확인할 수 있는 솔루션 개발 업체다. 기기를 침대 시트 밑에 두고 잠들면 블루투스를 통해 스마트폰에 수면 정보가 전송된다. 또 다른 스타트업인 케임브리지사운드매니지먼트(Cambridge Sound Management)는 가정 내 전원 코드에 꽂으면 주변 소리를 막아주는 기기인 이른바 ‘사운드 담요’로 잠잘 때 옆방 코 고는 소리나 옆집 개 짖는 소리를 막아주는 기능을 제공한다. 특히 미국 브룩스카(BruxCar)가 출시한 ‘슬립가드’는 미국 치과의사들이 잘못된 수면 습관 때문에 발생한 안면근육과 치아 손상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도입하고 있다.
현재까지 나온 슬립테크 제품은 공통적으로 수면 패턴을 추적, 기록, 분석하는 기능을 탑재했다. 이 기기들은 기존 수면 기기에 부착하거나 독립 기기로 존재하는 독립형과 신체 웨어러블형, 스마트폰 앱 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
스마트 기술이 침대에 이식된 독립형에는 미국 침대 제조업체 슬립넘버(Sleep Number)의 스마트 침대 잇베드(It Bed)를 들 수 있다. 이 제품은 사용자가 눕는 자세에 따라 매트리스 모양이 변하는 것은 물론 사용자의 다양한 생체정보까지 알려준다. 2016년 유럽 최대 가전전시회(IFA)에서 삼성전자가 공개한 슬립센스(SLEEPsense)는 침대 매트리스 밑에 깔아놓으면 수면 중 맥박과 호흡, 움직임을 측정해 수면의 질과 양을 분석해준다. 슬립센스는 단순히 수면 패턴 분석에 그치지 않고 수집된 정보를 이용해 에어컨, 오디오, 텔레비전 등 가전 기기와 연동돼 사용자가 편히 잠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두 번째 웨어러블 형태는 슬립테크 중 가장 활발한 분야다. 숙면을 유도하는 마스크나 머리띠, 팔찌 형태가 보편적인데 최근 머리에 착용하고 자면 꿈을 조절해 주는 기기도 나왔다. 미국 인텔클리닉이 개발한 스마트 안대 ‘뉴로온’이 대표적이다. 뉴로온은 밝은 빛을 눈에 쏴 잠자리를 편안하게 해준다. 이때 빛은 사용자의 바이오리듬과 멜라토닌 호르몬 조절 기능까지 맡아 숙면을 돕고, 기상 뒤에도 몸을 개운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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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정보기술(IT)을 활용해 숙면을 돕는 다양한 웨어러블 기기와 애플리케이션이 선보이고 있다. 수면 시간과 수면의 질을 파악할 수 있는 팔찌와 앱. REUTERS |
숙면 돕는 웨어러블 기기와 앱
또한 피트니스 웨어러블 기기 제조업체 조본(Jawbone)의 ‘UP3’는 내장형 가속도계가 수면의 질을 추적한다. UP3에 내장된 수면 추적 기능으로 수면 시간 및 수면의 질과 단계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 분야는 웨어러블 기기와 헬스케어 분야가 융합해 지속 발전하는 시장이며 현재 어느 정도 성숙한 시장이라 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앱 형태로 렘(REM·급속안구운동) 수면에 빠질 때 뒤척임이 많아진다는 점을 응용한 앱 슬립사이클(Sleep Cycle)이 대표적이다. 앱을 실행한 채 스마트폰을 침대에 두면 폰에 내장된 중력 센서가 사용자의 뒤척임이 심해지는 시간대를 분석해 알람을 울려준다. 따라서 얼마나 빨리 잠들고, 어느 시간대에 숙면을 취하는지, 얼마나 뒤척이는지 수면 데이터를 파악할 수 있다. 슬립베터(Sleep Better)는 세계적인 피트니스 앱 기업 ‘런타스틱’이 개발한 수면 앱이다. 수면 상태는 물론 선잠 시간과 숙면 시간, 잠들거나 깰 때까지 걸리는 시간 등 구체 정보를 파악할 수 있고 페이스북이나 전자우편을 통해 수면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카페인 소비량, 운동량, 음주량, 스트레스 정도 등의 정보를 입력하면 이것이 수면의 질에 미치는 영향도를 계산할 수 있다. 지금까지 시판된 다양한 슬립테크 제품 장치를 살펴보면 개인의 건강 및 수면 정보의 수집·분석이 점차 중요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빅데이터의 중요성이 슬립테크에서도 다시 확인되는 것이다. 모든 사물과 인간이 연결돼 ‘깨어 있는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시대에서 ‘깨어 있지 않은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기술의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국내에선 아직 슬립테크를 전면으로 내세우는 스타트업이나 기업이 나타나지 않았다. 수면의 중요성을 홀대하는 기업 분위기와 성공을 위해 수면 시간이 적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이 뿌리 깊게 자리잡은 탓이다. 미국 <허핑턴포스트>의 창립자 아리아나 허핑턴은 수면의 중요성을 외면하는 일부 인식에 대해 “하루 4~5시간 자고도 완벽하게 일할 수 있다는 건 착각이고 집단 환상이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다행인 것은, 국내에서 점차 수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수면 관련 시장 수치로도 증명됐다. 사회 분위기의 변화로 가까운 미래에 국내 IT 분야에서도 전세계 슬립테크 시장을 선도하는 획기적인 제품과 서비스가 개발되기를 기대한다.
* 프로스트앤드설리번(Frost & Sullivan)은 고객 성장의 가속화를 위해 협력하는 ‘성장 파트너’로서 팀리서치(TEAM Research), 그로스 컨설팅(Growth Consulting), 그로스팀멤버십(Growth Team Membership) 프로그램을 통해 고객이 효과적인 성장 전략을 수립·평가·실행할 수 있는 성장 위주의 문화를 창조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또한 50년 이상의 경험을 바탕으로 6대륙 40개 이상 사무소에서 1천여 개 글로벌 기업, 새로운 비즈니스 분야 및 투자계와 협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