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을 거슬러 모천(母川)을 찾아가는 연어
지인이 내가 엊그제 산 아파트가 나왔다고 저도 사겠다고 해 고향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고향 떠난 지 40여년이 흘렀으니 아무리 그 동안 가끔씩 들렸다 해도 어디가 어딘지 모르니 말 그대로 지인들과 같은 나그네다. 오래 만에 돌아오는 나그네를 환영이라도 하는 뜻일까? 지나가는 길목마다 복사꽃 살구꽃이 환하게 피어 반긴다. 오늘 이 곳의 날씨는 20여도를 넘나들고 있단다. 눈의 고장이라고만 알려 져 있어 추울 것이라는 생각은 오랜 타향살이에서 오는 착각이었다.
같이 간 지인들도 의외라는 듯 ‘어 꼭 남해안 같네! 강릉이 이렇게 따뜻한 도시였어?.’ 그들의 의아함은 나라고 다르지 않다. 아직은 두터운 코트를 입고 잠바를 입는 서울 날씨와는 달리 차창 속으로 스며드는 봄기운은 이미 완연한 봄 날씨였다.차창을 여니 봄바람이 여행객의 스트레스를 한 순간에 날려 버린다. 돌이켜보니 고향에 살 때 가끔씩 들르는 서울은 고향보다 추운 도시였다는 기억이 떠오른다. 그만큼 고향을 잊고 살았다는 증거다.
문득 안도현 시인의 동화 같은 에세이 ‘연어’에 나오는 한 대목이 떠올랐다.
‘거슬러 오른다는 건 또 뭐죠?’
‘거슬러 오른다는 것은 지금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 간다는 뜻이지. 꿈이랄까. 희망 같은 거 말이야. 힘겹지만 아름다운 일이란다.’ 라는 구절이 있다. 연어는 우리가 다 알다시피 마지막 꿈을 향 해 모천(母川)을 찾아 강을 거슬러 오른다. 때로는 거센 폭포 앞에서 몇 번씩 뛰어 오르기도 하고 물의 양이 턱없이 작아 헤엄치기 힘든 곳에서도 몸부림치며 거슬러 오른다. 그 연어들이 그렇게 힘든 여정을 선택한 것은 꿈과 희망인 다음 세대인 새 생명을 위해서다.
그렇다. 나는 지금 그 연어의 꿈을 꾸고 있다. 유년시절의 꿈과 사랑이 머물던 고향을 떠나 거대한 서울이란 세상에서 살다가 지금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있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찾아 떠나려 한다. 고향이 없는 내 후손들에게 고향다운 고향을 만들어주고 싶은 연어의 마음이다. 모든 사람들이 노후에 꿈꾸는 것처럼 고향 시골에 아담한 작은 텃밭 하나가 달린 전원주택을 짓고 내 후손들에게 고향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허나 현실은 그 꿈을 시키기엔 너무 걸리는 게 많았다. 그 꿈을 먼저 실현한 선배들의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또 내가 가지고 있는 형편들을 생각하면서.....
차선책을 생각해야 했다. 전원주택이 무리가 있으면 아파트는 어떨까? 작은 텃밭만 포기한다면 바다가 좋고 그 바다에서 나는 해산물을 좋아하는 가족들에게도 좋은 바닷가 아파트를 사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작은 아파트 한 채면 충분 할 테고 그럼 관리하기도 좋고, 최소의 돈으로 살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 |
인 정도의 돈으로 살 수 있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아닌가. 한 달을 두 달을 찾아 헤매고 삼년이 흘러도 눈에 들어오는 아파트가 없었다.
송정앞바다에서 펼쳐지는 카이트 써핑
그러다 만난 아파트, 경포 바다와 안목바다 사이에 있는 바다. 송정해변 앞에 있는 미니아파트다. 송정해변엔 바닷물이 맑고 깨끗하기로 유명하다. 긴 세월 군철책선으로 둘러 쳐져있었던 탓에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한다하는 '카이트서핑'의 마나아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이 짙푸른 바다와 하늘에다 펼치는 화려한 페라글라이딩(Paragliding)은 보는 것만으로도 신나는 풍경이다. 어디 그 뿐인가? 은빛 모래사장을 걷다가 바닷물 속에 들어가 조개를 잡으며 놀 수 있는 곳이 송정 해변이다. 아침마다 해 떠 오르는 장면도 놓칠 수 가 없다. 눈 오면 눈 오는 대로 비 오면 비오는 대로 어디를 둘러보아도 한 폭의 멋진 풍경화가 아닌가. 내 추억속의 풍경이 고스란히 그 곳에 있으니 내 과거와 현대가 사이좋게 공존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바로 그 앞에 미니아파트가 나왔다니 망설일게 없었다. 앞 뒤 잴 것도 없이 계약을 했다. 비싸게 사면 얼마나 비싸게 사겠는가? 나는 지금 연어의 꿈을 꾸는 중인걸. 생각해 보면 연어라는 말 속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들어있다. 출렁이며 흐르는 푸른 강물의 노래 소리가 들어있고 산새들의 지저귐이 들어있다. 연어들이 고향인 강물을 떠나 바다라는 거대한 세상에 살다가, 잊고 살던 강물의 냄새를 기억해 내는 순간, 멀고도 험한 길을 헤치며 고향 길로 향한다. 누가 가르쳐 준적도 없고, 누가 가라고 등 떠민 적도 없다. 오직 기억에 의존하여 거슬러 오르다 모천(母川)에 다다르면 안도하며 새끼들을 낳아 고향을 주고 생을 마감하는 연어처럼 나도 그런 꿈을 꾼다.
강원도 강릉시 송정해변( 경포바다와 안목바다 사이)
내 후손들에게 고향을 만들어 주고 싶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내 아이들이나 손자들에겐 고향이 없다. 시시각각(時時刻刻)으로 변하는 서울에서 그리움이 짙게 배인 고향을 찾기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외롭거나 슬플 때, 혹은 기뿐 일이 있어 찾아가면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고향의 풍경을 아이들에게 남겨주고 싶다. 있는 사람들에겐 코웃음을 칠 수 있는 작은 것이지만 바다가 있고 모래사장이 있는 곳을 문득 문득 떠 올릴 수 있는 풍경이면 그 하나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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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퇴직후의 꿈은 누구나 크게 다를바 없나봅니다.
저 또한 도시생활을 접고 시골로 왔으나 집 마련이 넘 어려워
본집을 장만할 때까지 우선 지낼 자그마한 집을 사서 지낸지 7여년 만에야
비로소 본집을 지금 짓고 있습니다.
적당한 규모의 작은 대지가 없어 600평을 샀습니다.
필요한 200여 평 외는 매각하기로 하고-
이 넓은 천지에 둥지하나 틀 장소가 어이 그리도 어려운지? 참 오래 걸렸습니다.
감사합니다. 내내 즐거움에 임하십시오^^
맞아요? 제 생각에도 200평이면 딱 좋은 것 같습니다.
전원으로 간 선배님들이 충고 하시더라구요. 놀자고 올 거면 오지마라
한 일주일 머물렀는데 눈만 뜨면 일이더라구요 그래서 접었습니다.
거기다 비우면 물건들 없어지고..
서울생활을 완전히 접을 수 없는 저로서는 그야말로 꿈으로 남겼습니다. ㅠㅠ
좋겠수
고향 같은 고향을 찾았으니
고향 찾아 갈 여유가 없다우
그러니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며
즐겁게 산다우
강원도 홍천군 구성포가 고향이지만 ㅋㅋㅋ
고향 같은 고향이 아니라 고향입니다.
지금은 가족 중 누구도 살지 않는 그래도 동창이며 친척들이 살아
가끔씩 들르면 좋겠다 싶어서 그리 했지요
신록같은 싱그러운 작은 꿈
무릎을 맞대고 앉아 먼 아련한 이야기를 듣는 듯 조근조근 풀어내는 필자님글은 잠깐 우리 모두가 꾸던 꿈이 현실감으로... 정말 잘하셨습니다
날마다 산책하시며 들으실 바람소리 몽돌의 이야기가 어느새 저에게도 감이 오네요 수필가님 건강하소서
감사합니다. 솔바람소리 속을 걷는 꿈을 꿉니다.
모래 사장을 걷는 꿈을 꿉니다.
그 어렸을 적 발에 밟히던 저 조개를 올 여름엔 찾아 봐야겠습니다.
군철책선에 가려져 있던 은둔의 바다라 아직 있겠지 싶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