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선의 시 명상] 나는 내가 아니다(후안 라몬 히메네스)
나를 지켜보는 나
셔터스톡
나는 내가 아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언제나 내 곁에서 걷고 있는 자,
이따금 내가 만나지만
대부분은 잊고 지내는 자,
내가 말할 때 곁에서 조용히 듣고 있는 자,
내가 미워할 때 용서하는 자,
가끔은 내가 없는 곳으로 산책을 가는 자,
내가 죽었을 때 내 곁에 서 있는 자,
그 자가 바로 나이다.
1956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스페인 시인, 후안 라몬 히메네즈(1891-1958)의 "나는 내가 아니다"를 읽고 있노라면 나보다 더 큰 나를 떠올리게 됩니다. 혹은 나보다 더 영원한 나, 어디에나 있는 나가 되기도 하겠지요.
혹자는 초월적인 존재, 영혼을 말하거나 신을 떠올리기도 할 겁니다. 분명한 것은 많은 이들이 이 시에 공감을 표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모두는 내 안에 무수한 내가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행동하는 나, 생각하는 나를 지켜보는 내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항상 느끼거나 깨닫지는 못하더라도 때로 지켜보는 나가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기도 하지요. 지켜보는 나는 나보다 더 큰 나입니다.
내 마음은 수시로 변하고 내 생각은 자주 변하지만 지켜보는 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지켜보는 나는 변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나의 삶이라는 길고도 짧은 여정을 통해 나의 내면과 외면을 함께 성장시키고자 노력한다면, 궁극적으로 지켜보는 나는 성숙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만 깨달음이 없이는 요원하겠지요.
저는 이 시를 읽으면서 대번 시인의 교육 배경을 떠올렸습니다. 어린 시절 예수회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므로 그 영향이 이 시에 '나를 지켜보는 나'로 나타나 있지 않은가 하고 생각한 것이지요.
글 | 이강선 교수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