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玅法蓮華經 觀世音菩薩普門品 第二十五
經典會上 玅法蓮華經 일일법문
玅法蓮華經 觀世音菩薩普門品 第二十五:
1-관세음보살보문품의 제목을 법화문구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하였다.
관세음보살보문품을 해석한다.
이 품은 당도(當途)의 왕경(王經)인지라 강(講)하는 사람이 매우 많다. 그러나 이제 나의 해석은 그런 다른 것들과는 같지 않다. 나에게는 따로 사기(私記) 두 권이 있는 터이나, 지금은 간략히 저 저서의 요지를 취해 이 제목을 해석하고자 한다.
이 제목을 해석컨대 통석(通釋)이 있고 별석(別釋)이 있으니, 통석에는 십쌍(十雙)이 있고, 별석에는 오척(五隻)이 있다.
십쌍(十雙)이란 첫째로 인법(人法)과 내지는 열째의 지단(智斷)이 그것이다……. 이제 첫째 것에 대해 논하건대, 관세음이란 인(人)이요, 보문이란 법(法)이다. 그런데 사람에는 여러 종류가 있고, 법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그러므로 앞의 문답에 의해 관세음의 인(人)을 논하고, 뒤의 문답에 의해 보문의 법을 논한 것이니, 인(人) 법(法)을 합쳐서 제목을 삼았으므로 관세음보문품이라 이른다고 함이다.
釋觀世音菩薩普門品. 此品是當途王經.講者甚衆.今之解釋 不與他同.別有私記兩卷.略撮彼釋此題.有通有別.通有十雙 別有五隻.十雙者.一人法 乃至第十智斷(云云).觀世音者 人也.普門者 法也.人有多種(云云).法有多種(云云).依前問答 論觀世音人.依後問答 論普門法.人法合題 故言觀世音普門品.
둘째로 관세음이란 대비(大悲)로 중생들을 괴로움에서 건져 줌이니, 앞의 문답에 의하건대 「백천의 고뇌가 다 해탈할 수 있게 된다」고 하셨다. 보문이란 대자(大慈)로 중생들에게 낙(樂)을 주는 일이니, 뒤의 문답에 의하건대 「그 제도할 바를 따라 법을 설한다」고 하셨다.
셋째로 관세음이란 지혜장엄(智慧莊嚴)이니, 지혜가 혹(惑)을 끊음이 밝을 녁이면 어둠이 없어지는 것과 같다. 보문이란 복덕장엄(福德莊嚴)이니, 복이 능히 수명을 일으킴이 마니주(摩尼珠)가 보배를 비오게 함과 같다.
二觀世音者 大悲拔苦.依前問答.百千苦惱 皆得解脫.普門者 大慈與樂.依後問答.應以得度而爲說法也 三觀世音者 智慧莊嚴.智能斷惑 如明時無闇.普門者 福德莊嚴.福能轉壽如珠雨寶者也.
넷째로 관세음이란 관(觀)이 경(境)과 일치함이니 곧 법신(法身)이다. 보문이란 적절히 몸을 나툼이니 곧 응신(應身)이다. 다섯째로 관세음이란 약수왕(藥樹王)이 온몸의 병을 무엇이나 고치는데 비유하고, 보문이란 여의주왕(如意珠王)이 요구하는 대로 무엇이나 주는 것에 비유한다.
四觀世音者 觀冥於境.卽法身也.普門者 隨所應現.卽應身也 五觀世音者.譬藥樹王 體愈病.普門者.譬如意珠王隨意所與.
여섯째로 관세음이란 남모르게 이익을 주어 보고 들음이 없게 하되, 삼독(三毒) 칠난(七難)을 다 떠나 이구양원(二求兩願)이 다 채워지는 일이다. 보문이란 드러내 이익을 끼침으로써 눈으로 삼십삼(三十三)의 성용(聖容)을 보고, 귀로 십구(十九)의 존귀한 가르침을 듣는 일이다.
일곱째로 관세음이란 자의(自意)를 따라 실지(實智)를 비추는 일이요, 보문이란 타의(他意)를 따라 권지(權智)를 비추는 일이다.
여덟째로 관세음이란 본제(本際)에서 움직이지 않는 일이요, 보문이란 자취를 방원(方圓)에 맡기는 일이다.
아홉째로 관세음이란 근본인 요인(了因)의 종자(種子)요, 보문이란 근본은 연인(緣因)의 종자다.
열째로 관세음이란 구경(究竟)은 지덕(智德)이어서 십사야(十四夜)의 달빛과 같다. 보문이란 구경은 단덕(斷德)이어서 이십구야(二十九夜)의 달의 그릇된 빛이 장차 다하려 하는 것과 같다.
六觀世音者.冥作利益 無所見聞.三毒七難皆離.二求兩願皆滿也.普門者 顯作利益.目睹三十三聖容.耳聞十九尊敎也.七觀世音者.隨自意照實智也.普門者.隨於他意 照權智也 八觀世音者.不動本際也 普門者.迹任方圓也 九觀世音者.根本是了因種子.普門者.根本是緣因種子也 十觀世音者.究竟是智德.如十四夜月光也.普門者.究竟是斷德.如二十九夜月邪輝將盡也.
경문(經文)의 두 문답은 무량한 도리를 함축하고 있으나, 간략히 십쌍(十雙)을 쓰는 터이니, 처음 인법(人法)으로부터 끝으로는 지단(智斷)에 이르기까지, 품(品)의 통명(通名)을 해석함이 그 도리에 있어서 대개 이와 같다.
經文兩問答含無量義.略用十雙.始從人法 終至智斷 釋品通名.其義如是.
따로 오척(五隻)을 논하건대, 첫째는 관(觀)이다. 관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니 석관(析觀) 체관(體觀) 차제관(次第觀) 원관(圓觀)이 그것이다. 석관이란 색(色)을 멸하여 공(空)에 들어감을 이르고 체관이란 색 그대로가 공임을 이른다. 차제관이란 석관에서 원관에 이름을 뜻하고 원관이란 석관 그대로를 실상이라 보고, 내지는 차제관도 실상이라 봄을 이른다. 그러나 지금은 삼관(三觀)을 제거하고 오직 원관만을 논하였다. 경문(經文)에서 「보문」이라 한 것도, 관(觀)이 원융(圓融)하지 못하다면 문(門)을 보(普)라고 못하리니, 곧 이 도리를 가리킨 것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세(世)에 대해 생각건대, 만약 행(行)의 면에서 말한다면 먼저 세(世)를 내세우고 뒤에 관(觀)이 놓여져야 하고, 만약 언설(言說)의 면에서 말한다면 먼저 관(觀)이 있고 뒤에 세(世)가 따라야 할 것인데, 지금은 언설의 편의를 따랐으므로 뒤에 세(世)를 논하게 된 것이다. 이 세(世)에도 여러 가지가 있으니, 유위세(有爲世) 무위세(無爲世) 이변세(二邊世) 부사의세(不思議世)가 그것이다. 유위세란 삼계(三界)의 세계다. 무위세란 이열반(二涅槃)이다. 이변세란 생사열반(生死涅槃)이다. 부사의세란 실상(實相)의 경지다. 지금은 여러 세계를 제거하고 다만 부사의세를 취하는 것이다.
世者.若就於行 先世後觀.若就言說 先觀後世.今從說便 故後論世.世亦多種.謂有爲世無爲世 二邊世 不思議世.有爲世者 三界世也.無爲世者 二涅槃也.二邊世者 生死涅槃也.不思議世者 實相境也.簡却諸世 但取不思議世也.
음(音)이란 근기(根機)다. 이 근기에도 여러 종류가 있으니, 인천(人天)의 근기 이승(二乘)의 근기 보살의 근기 부처님의 근기가 그것이다. 인천의 근기란 온갖 악을 짓지 말고 온갖 선을 받들어 행하는 일이다. 이승의 근기란 생사를 싫어하고 무위(無爲)를 기뻐하는 일이다. 보살의 근기란 남을 앞세우고 저를 뒤로 하는 자비인양(慈悲仁讓)이다. 부처님의 근기란 온갖 것 중에 온통 등관(等觀)을 가지고 들어가는 일체무애(一切無 )의 사람이 일도(一道)로 생사에서 벗어남을 이른다. 이 여러 음(音)의 근기를 제거하고 오직 부처님의 음을 지닌 근기를 취하고, 그러고 나서 응현(應賢)을 제푸는 것이다. 이 기응(機應)의 인연 때문에 관세음이라 이른다.
音者 機也.機亦多種.人天機 二乘機 菩薩機 佛機.人天機者.諸惡莫作 諸善奉行也.二乘機者.厭畏生死 欣尙無爲也.菩薩機者.先人後己 慈悲仁讓也.佛機者.一切諸法中 悉以等觀入.一切無 人.一道出生死也.揀却諸音之機.唯取佛音之機而設應.以此機應因緣 故名觀世音也.
보(普)란 두루 미친다(넓다)는 뜨이다. 여러 법은 무량하지만 만약 넓을 수 없다면 편법(偏法)이요, 만약 넓을 수 있다면 원법(圓法)이다. 그러므로 사익경(思益經)에서는 「온갖 법은 사(邪)도 되고, 온갖 법은 정(正)도 된다.」고 했다.
이제 간략히 십법(十法)에 입각해 보(普)를 밝히는데, 이 취지를 터득하고 나서 온갖 법을 유추(類推)하면 보 아님이 없으리니, 소위 자비보(慈悲普) 홍서보(弘誓普) 수행보(修行普) 이혹보(離惑普) 입법문보(入法門普) 신통보(神通普) 방편보(方便普) 설법보(說法普) 성취중생보(成就衆生普) 공양제불보(供養諸佛普)가 그것이다.
처음으로는 인천(人天)으로부터 끝으로는 보살에 이르도록 다 자비가 있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보(普)와 불보(不普)가 있게 마련이니, 생법(生法)의 양연(兩緣)은 자비의 주체(主體)가 편벽하여 대상을 받아들임이 넓지 못하므로 보(普)라 일컬을 수 없거니와, 무연(無緣)의 경우는 실상(實相)과 주체가 같아서 그 도리가 원융(圓融)하므로 자비도 두루 미치지 않음이 없어서, 자석(磁石)이 쇠를 끌어당기는 것처럼 저절로 합치하게 마련이다. 이 같은 자비가 두루 온갖 중생에 미치는 것을 자비보라 한다.
홍서보(弘誓普)에 대해 검토하건대, 홍(弘)은 넓다는 뜻이요 서(誓)는 제어(制御)니, 널리 약속하는 마음을 제어하기에 홍서라 하는 것이다. 홍서는 사제(四諦)에 입각해서 일어남이니, 만약 유작(有作) 무생(無生) 무량(無量)의 사제에 입각한다면, 법을 거두어들임이 다하지 못하므로 보(普)라 할 수 없거니와, 만약 무작(無作)의 사제에 입각할 때는 홍서보라 할 수 있게 된다.
수행보(修行普)에 대해 검토하건대, 예컨대 부처님(석존)이 정광불(定光佛)을 만나 뵙기 이전에는 무릇 수행하시는 바 있다 해도 진리와 합치하지 않았거니와, 기(記)를 얻고 난 후부터는 무엇을 만나거나 곧 진리였던 것과 같으니, 이지(理智)가 법을 상대로 수행하면 어떤 행(行)이건 보(普) 아님이 없게 된다.
단혹보(斷惑普)에 대해 검토컨대, 만약 일체지(一切智) 도종지(道種智)를 써서 사주(四住) 진사(塵沙) 따위 혹(惑)을 끊는 경우라면, 가지를 제거하는 것과 같으므로 단혹보라 못할 것이나, 만약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써서 무명(無明)을 끊는다면 오주(五住)가 온통 다하여 뿌리를 제거하는 것과 같아질 것이니, 이를 단혹보라 이른다.
입법문보(入法門普)에 관해 살피건대, 도전(道前)을 수방편(修方便)이라 하고 도후(道後)를 입법문(入法門)이라 하는데, 만약 이승(二乘)이 하나의 마음으로 하나의 선정(禪定)에 드는 경우라면, 하나의 마음이 하나의 일을 했을 뿐이므로 많을 수가 없어지고, 또 선정 때문에 매이는 바가 되므로 보(普)라고는 할 수 없게 된다. 또 역별같은 것도 여러 경지에 얕고 깊은 차별이 있으므로 또한 보(普)라고는 할 수 없다. 이에 비해 마약 왕삼매(王三昧)에 든다면, 온갖 삼매가 그 속에 들어와, 멸정(滅定)에서 나오지 않은 채 온갖 위의(威儀)를 나타낼 수 있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법문보라고 한다.
신통보(神通普)에 관해 생각건대, 대나한(大羅漢)의 천안(天眼)은 대천(大千)을 비추고, 지불(支佛)은 백불세계(百佛世界)를 비추고, 보살은 항사세계(恒沙世界)를 비추지만, 다 대상을 인식함이 좁고, 신통을 발하는데 있어서도 편벽하다. 이에 비해 만약 실상을 알고 나서 수행하는 경우라면, 일발일체발(一發一切發)이어서 상사(相似)의 신통이 있게 될 것임은 위에서 설한 그대로일 것이니, 하물며 참된 신통이야 어찌 보(普)가 되지 않겠는가.
방편보(方便普)에 관해 생각건대, 이것에는 두 종류가 있다. 도전(道前)의 방편은 수행중에 포함되니 그 첫째요, 둘째인 도후(道後)의 방편에는 또 둘이 있다. 첫째는 법체(法體)의 그것이니 입법문보(入法門普)에서 설한 바와 같고, 둘째는 화용(化用)이니, 이제 설하는 것과 같다. 곧 근기에 맞추어 중생을 구제하매 상황에 알맞아 일시에 원만하고 주변(周 )함이니, 다시 갖가지로 행동한다 해도 법성실제(法性實際)에 있어서는 감소됨이 없다. 이를 방편보라 한다.
설법보(說法普)에 관해 생각건대, 능히 하나의 묘음(妙音)으로 설하시되 십법계(十法界)의 근기에 들어맞으니, 그 종류를 따라 함께 해탈시킴이 수라(修羅)의 거문고와 같다. 그러므로 설법보라 한다.
성취중생보(成就衆生普)에 관해 생각건대, 온 세간과 출세간(出世間)의 온갖 사업은 다 보살이 한 것이니, 우물을 파고 배를 지으며, 신농(神農)이 약을 맛보며, 구름이 덮고 해가 비추는 따위가, 다 보살의 중생을 건지는 일 아님이 없고, 내지는 온갖 현성(賢聖)에게도 이익을 끼쳐 시교이희(示敎利喜)하여 삼보리(三菩提)에 들게 하였다. 이를 성취중생보라 한다.
공양제불보(供養諸佛普)에 관해 생각건대, 외사(外事)의 공양을 짓는 경우면 일시에 일식(一食) 일화(一華) 일향(一香)으로 널리 온갖 부처님께 공양하되, 전(前)이 없고 후(後)가 없이 일시에 똑같이 공양하고, 한 티끌 속에서 갖가지 티끌을 내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그리고 만약에 내관(內觀)을 짓는 경우라면, 원만한 지혜가 여러 행(行)을 인도할 때, 원만한 지혜를 일러 부처라 하고, 여러 행으로 원만한 지혜를 돕는 것이 곧 부처님을 공양함이 된다. 그리고 행이 다른 지혜를 돕는다면 공양보라고는 못하고, 여러 행으로 원만한 지혜를 돕는 것, 이것을 공양보라 한다.
문(門)에 대해 살피건대, 종가입공(從假入空)의 경우 공(空)은 통하며 가(假)는 막혔고, 종공입가(從空入假)의 경우 가(假)는 통하고 공은 막혔는데, 한쪽만 통하는 것은 보(普)가 아니고, 막힌 것은 막혔기 때문에 문(門)이 아니다. 이에 비해 중도는 공도 아니요 가도 아니어서, 바로 실상에 통하고 이제(二제)를 쌍조(雙照)하므로 보(普)라 이르고, 바로 통하므로 문(門)이라 한다.보문(普門)은 원통(圓通)의 것이므로 도리가 무량한 터이나 간략히 그 열 가지만 든 것이니 미루어 알 일이다.
普者 周 也.諸法無量 若不得普 則是偏法.若得普者 則是圓法.故思益云.一切法邪 一切法正.略約十法明普.得此意已 類一切法 無不是普.所謂慈悲普 弘誓普 修行普 離惑普 入法門普 神通普 方便普 說法普 成就衆生普 供養諸佛普.始自人天 終至菩薩 皆有慈悲.然有普有不普.生法兩緣 慈體旣偏.被緣不廣 不得稱普.無緣與實相體同.其理旣圓 慈靡不 .如磁石吸鐵 任運相應.如此慈悲 熏一切.名慈悲普.弘誓普者.弘廣也 誓制也.廣制惡心 故言弘誓.弘誓約四諦起.若約有作無生無量四諦者.收法不盡 不名爲普.若約無作四諦者.名弘誓普也.修行普者.例如佛未値定光佛前 凡有所修 不與理合.從得記已 觸事卽理.理智歷法而修行者.無行而不普也.斷惑普者.若用一切智道種智.斷四住塵沙等惑.如却枝條 不名斷惑普.若用一切種智 斷無明者.五住皆盡 如除根本 名斷惑普.入法門普者.道前名修方便.道後所入名入法門 若二乘以一心入一定.一心作一 不得衆多.又爲定所縛 故不名普.若歷別諸地淺深階差 亦不名普.若入王三昧.一切三昧悉入其中.不起滅定 現諸威儀.故名法門普.神通普者.大羅漢天眼照大千.支佛照百佛世界.菩薩照恒沙世界.皆緣境狹 發通亦偏.若緣實相修者.一發一切發.相似神通如上說.況眞神通而非普耶.方便普者二種.道前方便 修行中攝.道後又二.一者法體.如入法門中說.二者化用.如今說.逗機利物 稱適緣宜 一時圓遍.雖復種種運爲.於法性實際 而無損減.是名方便普.說法普者.能以一妙音.稱十法界機.隨其宜類 俱令解脫.如修羅琴 故名說法普.成就衆生普者.一切世間及出世間所有事業.皆菩薩所爲.鑿井造舟 神農嘗藥 雲蔭日照 利益衆生.乃至一切賢聖.示敎利喜 令入三菩提.是名成就衆生普.供養諸佛普者.若作外事供養.以一時一食 一華一香.普供養一切佛.無前無後 一時等供.於一塵中 出種種塵 亦復如是.若作內觀者.圓智導衆行.圓智名爲佛.衆行資圓智.卽是供養.若行資餘智.不名供養普.衆行資圓智.是名供養普.門者.從假入空 空通而假壅.從空入假 假通而空壅.偏通則非普.壅故非門.中道非空非假.正通實相 雙照二諦 故名普.正通故名門.普門圓通義 義則無量.略擧其十 類則可知.
이 품도 보현삼매(普現三昧)에 의한 화타유통(化他流通)이다. 글에 셋이 있으니, 첫째는 질문이요, 둘째는 답이요, 셋째는 이 품을 듣고 이익을 얻은 일이다. 문답이 각기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고, 첫 번의 질문은 다시 둘로 갈린다. 처음은 경가(經家)의 서술이다. 이원섭보살 번역
此品猶是普現三昧 化他流通也.文爲三.一問 二答 三聞品得益.問答兩番.初番問爲二.初經家 .
偈頌
寶雲地湧菩薩 觀世音菩薩合掌
一乘玅法蓮華經 地湧菩薩神通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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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일승묘법연화경 일체제불신통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