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곡(盤谷) 조병의(曺秉儀, 1910~2008) 선생은
광주농업학교에 재학중이던 1928년 6월, 교내 항일학생결사인
광주농업학교 독서회에 가입하여 민족의식을 길렀으며, 민족차별을 자행하는
악질 일본인 교사의 추방운동을 전개하며 동맹휴학을 주동하기도 했다.
화순군 동복향교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나자 광주농업학교의
2학년 책임자로서 학생운동을 주도하여 학생들을 동원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고 이로 인하여 1930년 초 학교에서 퇴학당했다.
동복향교 입구
또한 독서회 활동과 관련하여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에 대한
조사를 받다가 1930년 7월 17일 광주지방법원 예심에서 면소로 석방되었다.
출옥 후 그는 고향 화순군으로 돌아가 농업에 종사하면서, 1935년 3월
고향에 야학을 설치하여 농촌 청소년의 문맹퇴치 및 독립사상 고취에 힘썼다.
동복향교 정문
27세 때인 1937년 고향인 화순군 외서면장에 임명되었다가, 2년 후
왜경 주재소장의 만행에 격분하여 구타한 후, 만주 위하현으로
피신하였으며, 광복 후에는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진보당의 죽산 조봉암 선생을 지지하다 옥고를 겪기도 하였다.
198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수여되었고,
이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수여되었다.
담너머로 본 동복향교
조병의선생은 1942년 부터 화순군 동복항교 원임을 맡고 있었는데,
6,25전쟁으로 소실되자, 1957년 본인 산의 목재로 대성전을 중건하여
위패를 봉안하고 묘정비를 세우는 등 문묘 복원에 노심초사하였다.
동복향교 담장 옆에서
갑신년(1944년)에는 왜인들이 병기제작용으로 민간의 유기는 물론
성균관 및 전국 향교의 제기를 수탈해가자 공이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홀로 부천에 있는 왜군 병기고를 방문하여 감수자에게 "일이 급박하여
민간의 것은 수탈해 갈지언정 문묘 제기를 수탈해 가는 것은 성현을
모독한 것이요 천리를 거역한 일이라 하늘을 거슬리고 성공한 자를 내가
보고 듣지도 못하였다."고 하며 조리 있게 설득하니, 감수자가 말을 못하고
제기를 돌려주므로 이 사실을 전국 370여 향교에 알려 모두 환수케 하였다.
동복향교입구 비림(1)
을유년(1945년) 가을에는 성균관장이 임의대로 성균관 성현 위패
일백십삼 위를 땅에 묻고, 도당들을 전국에 보내 땅에 묻거나 소각토록 하고,
또 공부자(공자) 탄신일에 1년에 한 번만 제례를 지내도록 통고하자,
공이 단호히 거부하고 춘추 석전을 폐하지 않았다.
동복향교입구 비림(2)
또 경향의 많은 선비들이 성균관에 모여 난적을 성토하고 복위를 논의함에
공이 위패 제작 경비를 부담하여 제공하기로 약속하고 이듬해에 계성사(啓聖祠)
오위(五位) 십철(十哲)과 송조(宋朝) 사현(四賢)의 위패를 다시 설치하였으니,
공의 공로는 동복향교는 물론 전국 유림에까지 미쳤다.
원임전교반곡처사(原任典校盤谷處士) 창녕조공 병의 공적비(昌寧曺公 秉儀 功績碑),
성균관장 김영근, 동복향교 고문 이규형, 동복향교 전교 조주환
선생은 학문에도 조예가 깊어 여러 문체의 문집을 남겼고 동강 김녕한,
춘포 공성학, 위창 오세창, 호정 정문원, 단운 민병승, 고암 송낙헌, 의산 이명세,
춘사 이병관, 흠재 최병심, 추수 김태영, 동오 조병현, 옥재 노호준, 입헌 정태중,
죽산 조봉암 선생 등 국중지사와 교유하는 등 선비의 모범이었다.
이러한 공로로 2017년 동복향교에 조병의(曺秉儀)의 공적비가 세워졌다.
동복향교앞 초가을 들녘
화순군 백아면 염수재(念修齋)
특히 조상에 대한 숭조와 애족정신도 남달라 창녕조씨 시조
태사공의 탄생설화가 깃든 창녕 화왕산 용지가 오랜세월로 메워지고
흔적조차 희미해지자 자제(子弟)들을 인솔하여 사비를 들여 복원하고
“용지동천(龍池洞天)”이란 기념비를 세워 사실을 후세에 알리고자 하였다.
염수재 정문
또한 직계 선조인 고려말 순절신 시중 조대운(曺大運)과 직제학
조유도(曺由道) 두 선생을 배향한 장성 경현사(景賢祠)가 훼철되자
위패를 작고한 조부의 서실인 석남재(石南齋)로 옮긴 후,
하반동(下盤洞)에 반계사(盤溪祠)를 지어 거기에 옮겨 모셨으며,
죽림(竹林)과 운곡(雲谷) 두 선생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그 외에도 6․25사변 때 소실된 재실 중건, 여러 대 선영의 석물 설치,
석남재 중수, 백부의 양재당(養齋堂) 건립, 화순 입향조 제각인 염수재
(念修齋) 중건, 밀직사공파 파보 편수와, 13대 종덕재 재장을 역임하였다.
입향조 조국경(曺國卿)의 염수재(念修齋)
조국경(曺國卿)은 송무 13세로 12세 여충(汝忠)의 셋째 아들
염수재 마당의 창녕조씨 선조 묘갈건립 기적비
창녕 화왕산 용지(龍池)
화왕산 용지(龍池)는 1958년 조병의에 의해 복원되었으며
1963년 국가에서는 화왕산성 일원을 국가 사적지로 지정하였고
창녕군에서는 2002년 ~ 2003년 화왕산성과 용지에 대한 정밀
발굴조사를 한 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으며, 창녕조씨
득성설화지는 경상남도 기념물 제246호로 지정하여 관리되고 있다.
창녕 조씨 득성 설화지 ~ 경상남도 기념물 제24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