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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늘로 돌아간 하용조>는 누구인가?
하용조(河用祚) 목사는 대한민국 대형교회의 한 대표적인 유형을 차지하는 <온누리 교회>를 세우고 이제까지 이끌어온 목사다.
건국대학교(학사)와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했다. 또한 미국 트리니티복음주의신학대학원를 비롯한 몇몇 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수여받기도 하였다. 한국독립교회 및 선교단체연합회의 병설 신학교인 횃불 트리니티 신학대학원대학교의 총장을 겸임하고 있다. 또한 기독교출판사 두란노의 원장직을 맡고 있다.
1. 한국의 경제 성장기에 가정교회 형식으로 사역을 시작하여 교세 확장 위주의 근본주의 신앙관으로 1985년 온누리교회를 설립하고 이끌어 왔다. 한국 기독교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장로교회의 변천 과정을 온누리 교회를 통해 알 수 있으며, 일반적으로 성공적인 것으로 치부되는 하용조 목사의 목회적 특징도 그와 동시에 파악할 수 있다.
첫째, <대중에 파급력이 큰 연예인>을 중심으로 사역을 펼쳐 <연예인 교회>로 알려지면서 급격하게 교세를 확장시켰다.[1] 성경공부를 내세우고 가정교회를 표방했으나, 실제로는 대중적 목회를 위한 대형교회를 지향하는 기반을 보였다. 서빙고동에서 시작된 온누리 교회는 이후에 양재, 부천 등의 수도권지역으로 지교회를 설립하고 교세를 확장하였다. 기존 교회들의 사경회/부흥회를 대신하는 것으로 현대 문화를 채택함은 물론, 이를 기반으로 교세 확장과 근본주의적 일방주의를 대중적 참여와 호응을 기반으로 추구한 것은 매우 이율배반적인 모습이다.
둘째, 초기부터 학구적이고 지적인 분위기를 유지함으로써 기존 기독교계에 식상해진 젊은 층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CCC로 대표되는 대학생 캠퍼스선교회의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준 것이다. 그는 깔끔하고 정갈한 설교와 각종 맞춤형 조직운동, 각종 이벤트성 기획, 과감하게 엄숙주의를 떨쳐버린 예배형식을 취함으로써, 중산층으로 부터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급성장하였고, 90년대 들어 사회적 영역이 부족했던 젊은 층을 중심으로 신도수가 급증하는 교회를 이끌 수 있었다.
셋째, 그는 미국의 신학을 공부한 이력은 분명하지 않으나, 매우 철저한 미국의 근본주의 기독교 신앙 전통을 견지하였다. 이는 그의 모든 활동에서 드러나는데, (한글이나 헬라어가 아닌) 영어를 기반으로 한 정보 및 종교활동이 특징이다. 또한 출판 및 문서활동을 중심으로 한 지적인 신앙분위기와 근본주의 선교관에 따른 무제한 무조건적 팽창/성장주의를 노골적으로 표방하였다. 이는 영어중심중의 문화로 기존 교회가 상실하고 있던 사회적 계몽기능을 흉내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한국사회가 영어우선으로 대표되는 미국문화의 의존성이 극단적으로 높아졌던 시기의 시대적 흐름과 정확히 일치한 것이다.
넷째, 대부분의 활동에서 기존 기독교가 가지고 있던 교파적인 틀을 벗어나 초교파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전의 교회들(예를들면 영락교회 등)이 가지고 있던 교파적인 한계를 초월하는 듯한 모습으로 대중의 호응을 받았다. 노회의 지도를 받고 장로들의 연합체로 운영되는 장로교단의 기존 전형을 거부하고 단위교회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활동함으로써, 옥**, 이**, 홍** 목사 등과 함께 초교파적인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는 대표주자로 인식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초기 선교이후 한국교회가 유지해온 교파적 진지한 선택을 송두리채 지워버리는 역할을 한 것이다.
다섯째, 온누리 교회는 지적인 프로그램과 감성적인 예전 활동을 병행함으로써, 기독교 신앙의 진지한 부담을 해결하고 대중적이고 피상적인 신앙을 급격히 확산시켰다. CCC의 사영리로 대표되는 현대 한국 기독교의 단순화된 복음주의가 새로운 형태의 프로그램으로 제공되었다. 이는 복음주의의 맥락을 취한 것으로 주장되기도 하지만, 기독교 신앙에서 깊이있는 세계관의 형성이나 구체적인 신앙관을 제공하지 못한채 대중적인 시류에 의존한 결과, 한국에서 기독교의 신앙형성 또는 발전의 기회 상실을 초래한 것으로 비판되기도 한다. 반면에 숭고하고 엄숙하고 묵상하는 예배에 싫증을 느끼는 젊은층들에게 콘서트 홀에 온 것처럼 각종 음향효과와 조명등으로 또한 각본이 있는 예배형식을 취함으로써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이는 예배가 각종 설정에 의존함으로인해 피상적인 감동에만 치우쳐 있다는 단점이 있다.
여섯째, 온누리 교회는 한국에서 수평이동을 통해 성장한 가장 대표적인 교회로 성장했다. 기존 교인들에게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재포장된 성경공부를 제공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또한 열린예배의 이름으로 초대되는 다른 교인 (결과적으로) 뺏어오기가 촉발되었을뿐만 아니라, ACT29과 같이 유사교회의 네트워크화 또는 다단계식 성장으로 나타났다. 이는 순복음교회의 지교회 체계와 유사하면서도 선교 영역을 공간적으로 구분했던 기존의 교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하용조 목사는 강력한 일인체제를 통해 교회를 성장시킨 한국형 목회자 유형의 대표격이다. 하지만 외형적으로 차별화된 모범적이고 고결한 리더쉽을 통해 한국인의 심성에 맞는 가부장적 리더쉽을 발휘했던 이전 1세대 목회자들과는 약간 다른 모습이었다.
2. 반면 몇가지 직접적인 비판도 하용조 목사를 뒤따르고 있었다.
첫째, 하용조 목사와 대한생명 최순영 전 회장과의 유착관계와 관련된 일들이다. 하용조 목사와 최순영 전회장은 매제관계로 최 전회장은 초창기 온누리교회 성전 건설에 수백억원에 이르는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핵심적인 인물이다. 예를들면 지금의 양재 온누리교회 성전 또한 신동아 학원재단의 횃불센터로, 신동아 그룹이 해체된 이후에도 현재까지 온누리교회가 사용하고 있다. 최 전회장은 성전 건설과 교회 헌금으로 수백억원에 이르는 자금으로 회사(대한생명) 공금을 사용했고, 이사회를 거치지 않고 단독으로 지원했던것으로 드러나 법적인 처벌을 받았다.
둘째, 최회장과의 관계는 단순한 유착을 넘어 종교를 자본주의 비리의 수단으로 전락한 것으로 비판되기도 하였다. 현재 최회장은 그의 범범 행위로 인해 수천억원의 추징금을 내야하지만, 미리 모든 재산을 종교재단 앞으로 돌려 놓아 자본도피를 달성해 놓은 상태로 볼 수 있다. 또한 신동아학원 재단에 속한 전주대학이나 횃불 트리니티 신학대학원 등등은 물론 한때 한동대학까지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가 총장이나 이사장직을 역임하므로, 이러한 범죄적 관계의 혐의로 부득이 여러가지 구설수에 오르게 되었다. 구체적으로는 최순영, 이형자 부부의 재산의 몰수를 방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설이 있다.
셋째, 하용조 목사는 근본주의 신앙 강요로 물의를 빚었던 한동대 3대 재단 이사장직을 지냈으며, 지금의 김영길 총장과 오성연 부총장은 온누리 교인이다. 오성연 부총장은 하용조목사의 하와이 별장과 두란노서원 빌딩의 관리를 맡고 있던 중, 교수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1996년 한동대 부총장으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 역시 온누리 교회 장로들의 천거로 한동대 부총장으로 들어왔다. 하용조 목사는 외양과는 달리 실질적으로 많은 영역에서 조용기 목사에 버금가는 다양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넷째, 특히 하용조 목사의 마지막 행적에서 드러난 대한 팽창주의/정복주의/세속주의적 행적에 비판 의견이 분분하다.
[팽창주의] 전형적인 부동산 기반의 팽창주의/정복주의 행적을 보였다. 온누리 교회는 지금의 서빙고 성전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서울 방배동에 2000천여평의 부지를 마련하여 새 성전을 건축하려고 했다. 그러나 인근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에 의해 새 성전 건립이 무산되었고 그 부지를 기업에 팔기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 덕분에 온누리 교회보다 먼저 유사한 행적을 취했던 교회들과는 오히려 다른 교회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유사한 목회관을 지속하여 양재동 횃불회관을 하용조 목사 매제인 최순영 전 대한생명 회장이 운영하던 신동아 재단에 전세로 임대하였고, 팽창주의를 노골화하기 시작한 지금의 양재 성전이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당시 탈세등 중대한 경제사범으로 조사 및 재판을 받고 있던 최순영씨 재산을 지키기 위해 모종의 역할을 했다는 것으로 의심되고 있다.
[정복주의] 결국 팽창주의에 따른 대규모 새성전 건립이 무산된 하 목사는 acts29 라는 프로그램으로 전국 각지에 여러 지교회를 설립하여 새로운 형식의 교세확장의 목표를 세우겠다는 정책을 공표했다. ACTS29란 이름은 28장으로 끝나는 사도행전을 계속 써나가겠다는 운동으로, 결국 온누리 교회의 지교회를 늘리겠다는 성장위주의 이벤트임이 드러났다. 장로교의 근본 권위인 노회와 교단의 조정과 권고를 무시한 ACTS29의 강행은 지(枝)교회가 세워질 예정지의 군소교회들로부터 강한 반발을 받았다. [2]
이런 문제는 이미 온누리교회의 2000/10000 비전에서 드러난 바 있다. 2000명의 선교사와 10000명의 사역자를 파송하겠다는 선언은 희망을 잃은 이들을 일으켜주는 실질적인 활동보다는 교세확장을 위한 교리확장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는 이미 20세기 이전에 구미 기독교가 저지른 정복주의적 선교관에 기반한 것으로, 현지문화를 무시한 무리한 전략이라는 지적이 있다. 이라크에서 참수당한 김선일씨도 온누리 교회와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특히 김선일씨의 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 온누리 교회측의 변호사가 참여하기도 하였다.
[세속주의] 미국 기독교가 보이는 정치 참여가 현대에 급격이 타락의 양상을 보여 사회적 지탄을 받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하용조 목사는 최근들에 적극적인 정치 참여 표방을 통해 세속주의의 양상을 보이기도 하였다. 이는 근본주의 신앙이 자주 드러내는 배타적인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모든 사회적 영역에서 기독교 신앙을 절대시하고 다른 신념이나 타종교의 신앙을 노골적으로 거부하거나 폄하하는 태도로 나타났다. 예를 들면, 2007년의 12월 주말설교에서는 크리스천(이명박)에 투표하자는 것을 설교에서 노골적으로 주장하여, 선관위로부터 정치개입으로 경고를 받기도 했다.
첫댓글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존경받는 목사님이 이정도라면 개신교 자체가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개신교의 구조적인 문제야 밑도 끝도 없지만 근본주의로의 쏠림현상은 언제 개선될지 모르겠네요
이영표 선수를 기독교로 이끄신..
자세히 읽어보니까 직접적인 비판인 부분은 선관위 경고 빼면 거의 대다수가 ~~~이런 설이 있기도 했다나 별 근거도 없는 비판이 다수네요.
저는 이런글이 왜 안올라오나하고 있었습니다. 하용조 목사님과 온누리 교회는 실제로 많은부분 비난을 받으며 지금까지 왔습니다. 특히나 이명박 지지 발언 등은 비스게에 올라오면 100이면 100 까일 내용이죠. 하지만, 실제로 교회 내외로 존경을 받았던 사람이고 종교와 문화분야에 있어서 많은 노력을 했던 목회자입니다. 다 잘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렇게 말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투병 생활 속에서도 일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다가 끝내 뇌출혈로 운명을 달리한 고인에 대해서 지금 타이밍에 이런글은 좀 아쉽지 않나 생각이되네요. 분명 사실인 내용도 있겠지만, 지금은 고인에 대해 애도하는 시기가 맞지않나합니다.
글쎄요. 이 글이 하용조 목사를 애도하지 말자는 글도 아니고 그가 했던 일을 서술한 글인데요. 전 이 사람이 누군지 오늘 처음 알았고 처음엔 이런 부분이 있었다는 걸 알지 못했습니다. 악의적 비난이 아닌 이 정도 정보는 올라와도 전혀 이상할거 없다고 봅니다. 이 시기 아니면 하용조 목사가 누구였는지 새로 아는 것도 쉽지 않을듯 한데요
뒷 부분의 비판은 비판이 아니라 비난에 가까워 보입니다만? 선관위 내용 제외하면 도대체 사실로 밝혀진 내용이 무엇인지....전부 이런이런 혐의를 받고 있다나 이런이런 설이 있다등 하나도 사실로 밝혀진 부분이 없는 내용으로 비난하는 것에 불과해 보입니다만........;;;;;;;;제가 장담하는데 이 정보로 하용조 목사님을 처음 안다면 100이면 100 부정적 인상을 받을거 같은데 말이죠. 이미 밑에 분들 반응 보니 제 예상이 맞네요.....
별로 밝혀진게 없군요. 그 부분은 제가 잘 몰랐네요. 하지만 그럼 그 부분이 잘못되었다고 말해야지 사망한 지 얼마 안되었다고 애도하는 차원에서 이야기하지 말자는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는건 변함 없습니다.
제가 더 글을 남겨봤자 기독교 용호리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겠지만 사람이 죽자마자 그에 대한 비판적 글이 바로 올라오는 것은 '이런사람 잘죽었다'는 의미로 느껴지네요. 솔직히 제가 좀오버하는거겠지만, 반기독교적인 비스게 분위기상 이런 글이 당연히 올라올거라 생각했습니다. 아주 흠 없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가족이고 친구인 사람이죽었는데 사망하자마자 이런류의 글이 올라오는건 개인적으로 썩유쾌하진 않데요.
76다마님! 아마 대부분의 비스게 회원들은 하용조 목사가 누군지조차 모를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과비판하는 것은 동시에 이뤄질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하용조목사의 개인을 두고 그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아마 훌륭한 인격을 가지신 분이겠지요.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목사의 상징성을 두고 비판을 하는 것입니다.
제가 글의 의도를 좀 왜곡한것같아 그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하용조목사가 사망이란 사건을 통해 게시판에 등장했고 그렇기에 그가 어떤인물인지 글쓰신분의 의사에 따라 글을 올리신 부분은 이해가 됐습니다. 바라보는 관점은 누구나 다를 수 있으니까요. 근데 상징성을 이야기하신 부분은 잘 이해가 안되네요. 하용조목사의 어떤 상징성을 비판하신 것인지 알고싶습니다.
그래도 이 게시판에서는 나름 중립을 지키는 수준이라 봅니다. 기독교 = 거짓 이게 이 게시판의 명제 아닌가요;;;ㅎㅎㅎ
목사들은 신도들한테는 존경받죠. 밖에 나가면 그 반대고요.
이런 사람이 대형교회 목사중에서 그나마 존경받을 사람이라면... 우리나라 대형교회의 목사 중에 존경할만한 사람은 없는 건가요?
털어서 먼지 안나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살아가며 실수, 때로는 범죄 할 수 있지만 어떻게 그것을 잘 반성하고 극복해냈는가~ 하는 그 삶에 초점을 맞춰보면 다르게 볼 수 있는 사람들도 많을거예요~ 모태로부터 아주 바람직하게만 잘 지내서 존경받을만한 사람은 이세상에 거의 없지 싶네요. 개인적으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대형교회의 목사들은 저도 존경하기 힘든 부분들이 많이들 보이는데 완벽히 청렴해서는 대통령이 될 수 없는것이 이세상의 현실이듯, 뭐랄까요 양심, 법, 상황, 가치관 이런 것들을 한 기준에 편협하게 두고 사람을 판단치는 못하겠다란 생각입니다.
흠... 제가 전에 본 짧은 인디언 속담같은 건데... 한 사람을 판단하려면 그사람이 걸어온 길을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걸어봐야만 판단할 수 있다;;; 뭐 암튼, 그렇습니다 ㅎㅎㅎ
저는 명색이 성직자라는 사람이 설교중에 대통령 후보 누구를 꼭 뽑아야 한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절대 존경할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확실한 혐의가아닌 설이라 비판내용은 좋게 안느껴집니다
미국의 신학을 공부한 이력은 분명하지 않으나...솔직히 제게는 이 글이 팩트에 기초하지 않았다는 단적인 증거로 여겨지는 문구입니다. 하용조목사님이 영국의 존 스토트 목사님에게서 공부한 사실은 하 목사님을 아는 사람이라면, 아니 인터넷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내용인데요 ;;;
팩트가 나열된 글이 아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