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집중호우’ 올해만 30차례… “기후변화 맞춰 방재대책 재수립해야”
강남역 잠기게 한 ‘극한호우’
올해 시간당 100㎜ 이상 12차례… 8월 최다… 장마철보다 많아
한국선 폭우, 유럽선 폭염… 기후변화가 제트기류에 영향
강한 비 80년 뒤엔 1.5배
강남역 침수로 잠긴 차량
“시간당 85mm 강우를 감당할 수 있었지만 시간당 116mm의 비가 왔다.”
8일 유례없는 침수 사태를 겪은 서울 강남구가 침수 다음 날 밝힌 입장이다. 일반적으로 짧은 시간에 많은 비가 내리는 집중호우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시간당 30mm 이상’이다. 시간당 80mm 이상은 사람들이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 같다’고 느낄 정도의 폭우다.
하지만 이런 극한의 집중호우, 이른바 ‘극한호우’가 실제로 발생하고 있다. 특히 최근 25년간 국내 시간당 강수량 수치를 분석해 보면 극한호우가 결코 극히 드문 사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 시간당 80mm 넘는 비 25년간 576회
본보 취재진은 동네 단위 상세관측지점을 본격 설치한 1997년부터 2022년까지 전국 관측지점(2022년 기준 638곳)의 시간당 강수량 정보를 살펴봤다. 시간당 80mm 이상의 극한호우가 관측된 횟수는 올해만 해도 이달 11일까지 30차례에 달했다.
올해 시간당 최대강수는 8일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지점에서 관측된 141.5mm였다. 1994년 시작한 구(區)별 관측은 물론이고, 1907년 이래 시 차원의 관측 기록을 통틀어 서울에서 가장 많은 강수량이다. 서울의 8월 평균 강수량이 300mm 정도다. 보름간 내릴 비가 단 1시간 동안 쏟아졌다는 얘기다. 같은 날 서울 서초구, 강남구, 송파구, 6월 29일 충남 서산시 수석동 등 총 12개 지점에서 시간당 100mm 넘는 극한호우가 관측됐다.
시간당 80mm 이상의 극한호우는 2019년 30회, 2020년 35회, 2021년 21회 관측됐다. 극한호우가 결코 올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호우로 불어난 계곡물에 324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던 ‘지리산 폭우 참사’가 발생한 1998년에 극한호우 횟수는 34회였다. 특정 지역에 갑작스레 쏟아지는 폭우를 뜻하는 ‘게릴라성 호우’라는 말도 이때 처음 나왔다. 집중호우로 서울·경기 지역에서만 66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된 2001년에도 극한호우가 40회 나타났다. 이 해에도 7월 서울 종로구 송월동에 시간당 99.5mm, 서초구 서초동에 91.5mm의 비가 내리면서 고속터미널역이 침수되기도 했다.
‘우면산 산사태’가 발생한 2011년에는 27회의 극한호우가 발생했다. 이들을 비롯해 1997년 이래 25년 동안 관측된 극한호우는 총 576회에 달했다.
○ 따뜻해진 바다·극지… 폭염·폭우 불러
장기적으로 보면 이런 강한 호우가 늘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서울, 인천 등 전국 13개 대표 측정지점의 50년간 시간당 50mm 이상 강수일수는 1973∼1982년 연평균 2.4일이었다가 2012∼2021년 6.0일까지 늘었다.
극한호우가 늘어나는 가장 큰 원인은 기후변화다. 올해 상황만 봐도 알 수 있다. 올여름 태평양에서는 기상이변인 ‘라니냐’가 발생해 해수온도가 낮아졌고, 반대로 극지온도가 오르면서 위도 간의 온도차가 줄었다. 이 때문에 남북 간 온도차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움직이는 제트기류의 흐름이 정체됐다. 그 대신 남북 간 요동이 커졌다.
김성묵 기상청 재해기상대응팀장은 “남북으로 크게 요동치는 제트기류의 남쪽에 갇힌 지역엔 폭염이, 기류 경계면에 묶인 지역엔 비가 쏟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자는 최근 폭염을 겪은 유럽, 후자는 잦은 비가 오는 한국에 해당된다.
기후변화로 인해 제트기류 둔화와 기류 정체가 더 자주 발생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의 경우 찬 공기에 밀려 남동쪽으로 물러난 북태평양고기압의 가장자리를 통해 뜨거운 수증기가 다량 유입되고 있다. 이렇게 평상시와 다른 기압계로 인해 일시에 많은 수증기가 모이면 극한호우가 발생하게 된다.
○ 극한호우, 8월에 많고 가을까지 발생
극한호우는 일상적인 기상 현상이 아니다. 이 때문에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이 아니어도 나타날 수 있다. 실제 1997년 이래 관측된 극한호우를 월별로 살펴보면 장마가 주로 발생하는 7월(183회)보다 8월(204회)에 많이 발생했다. 9월(92회), 10월(57회) 등 가을철에 발생한 횟수도 적지 않다.
기상청은 우리가 지금과 유사한 수준의 온실가스를 계속 배출한다면 ‘100년에 한 번 나올 법한’ 강한 강수 빈도가 2040년까지 29%, 2060년까지 46%, 2100년까지 53% 증가할 것이라고 6월에 발표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더라도 그 빈도는 2100년까지 29% 늘어날 것으로 분석됐다.
정부는 지역별 침수 위험과 저수 및 배수 용량을 고려한 내수침수 위험지도를 만들고 있다. 김주완 공주대 대기과학과 교수는 “극단적인 호우는 단 한 번만 발생해도 큰 피해를 남기는 만큼 바뀐 기후를 토대로 도시 배수와 방재 정책을 재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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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이후 큰비 내리는 강수 경향 자리 잡아”
반년간 내릴 비 나흘새 쏟아져
온난화가 집중호우 패턴 바꿔
예측 어려운 강수 점점 늘어날 듯
8월 내린 이번 집중호우는 장마일까. “아니다”라는 게 기상청 답이다. 장마는 초여름 북상하는 북태평양고기압이 북쪽의 차고 건조한 기단을 밀어 올리면서 발생하는 충돌로 6월 하순부터 7월 초중순까지 비가 내리는 기상 현상이다.
장마 때는 약 30일 동안 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내려 한국 연간 강수량 1000∼1300mm의 절반가량이 이 시기에 집중된다.
하지만 올 8월 초 중부지방을 강타한 집중호우는 오히려 장마 때보다 더 많은 비를 뿌렸다. 경기 광주시 초월읍 643.0mm, 양평군 용문면 641.0mm 등 일부 지역은 8일 0시부터 12일 0시까지 나흘 동안 누적 강수량이 600mm를 넘었다. 반년 동안 내릴 비가 나흘 사이에 내린 셈이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인해 장마 직후인 8월 초중순 또다시 큰비가 내리는 강수 경향이 자리를 잡고 있다고 설명한다. 본래 장마가 지나고 나면 북태평양고기압이 한반도를 완전히 덮으면서 한여름 무더위가 시작되고, 북쪽 찬 공기가 다시 남하하는 8월 말, 9월 초까지 큰비가 내리지 않는 게 일반적이었다.
서경환 부산대 대기환경과학과 교수는 “1973년 이후부터 최근까지 강수 경향을 보면 8월 10일과 20일 집중호우가 내리는 우기가 찾아오는 것을 볼 수 있다”며 “이 기간에도 장마와 마찬가지로 56개 대표 관측지점 평균 7mm 이상의 비가 며칠 연속으로 내린다”고 말했다.
강수 시기뿐 아니라 강수의 양상도 ‘한 번에 많이 내리는’ 집중호우로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주완 공주대 대기과학과 교수는 “1961∼2020년을 30년씩 나눠 비교한 결과 하루 200mm 넘는 폭우가 전체 강수 중 3%에서 5%로 증가했다”며 “시간당 30mm 이상 집중호우가 늘어나는 경향도 뚜렷하게 나타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여전히 이 기간을 ‘제2장마’나 ‘우기’로 불러야 할지에 대해선 이견이 있다. 하지만 전문가 대부분이 앞으로 여름철 강수 패턴이 계속해서 바뀔 것이고, 예측하기 어려운 강수가 점점 늘어날 것이란 점에는 동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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