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유다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하며 그 율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그의 조상들이 따라가던 거짓 것에 미혹되었음이라
2:5 내가 유다에 불을 보내리니 예루살렘의 궁궐들을 사르리라
2:6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며
2:7 힘 없는 자의 머리를 티끌 먼지 속에 발로 밟고 연약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2:8 모든 제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그들의 신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
2:9 내가 아모리 사람을 그들 앞에서 멸하였나니 그 키는 백향목 높이와 같고 강하기는 상수리나무 같으나 내가 그 위의 열매와 그 아래의 뿌리를 진멸하였느니라
2:10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인도하고 아모리 사람의 땅을 너희가 차지하게 하였고
2:11 또 너희 아들 중에서 선지자를, 너희 청년 중에서 나실인을 일으켰나니 이스라엘 자손들아 과연 그렇지 아니하냐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12 그러나 너희가 나실 사람으로 포도주를 마시게 하며 또 선지자에게 명령하여 예언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2:13 보라 곡식 단을 가득히 실은 수레가 흙을 누름 같이 내가 너희를 누르리니
2:14 빨리 달음박질하는 자도 도망할 수 없으며 강한 자도 자기 힘을 낼 수 없으며 용사도 자기 목숨을 구할 수 없으며
2:15 활을 가진 자도 설 수 없으며 발이 빠른 자도 피할 수 없으며 말 타는 자도 자기 목숨을 구할 수 없고
2:16 용사 가운데 그 마음이 굳센 자도 그 날에는 벌거벗고 도망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주해
1. 하나님은 목자요 농부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아모스를 불러 열방과 왕들과 이스라엘을 꾸짖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
1)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주변국가에 대한 심판을 선언한 후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선고한다.
2) 하나님은 온 열방과 모든 사람들의 주권자요 통치자요 심판자다.
3) 세상에 대한 심판은 슬픈 일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이 땅의 악과 교만을 심판하심으로 이 세상에 개입하시고, 악을 제거하시고, 결국은 구원으로 이끄는 구속사이기에 감사한 일이다.
2.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이 순결한 신부, 제사장 나라가 되어 하나님께 속한 세계가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다(출 19:5-6).
3. 주변 나라에 이어서 유다의 죄와 그로 인한 심판을 선고한다.
1) 이방 나라와는 달리 유다의 죄는 율법을 거부하고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고 조상들이 숭배한 거짓 우상들을 섬긴 것이다.
2) 물론 언약백성도 도덕법을 어겼고, 그것은 죄다. 그러나 언약 백성에게 있어서 가장 우선되는 죄는 율법을 거절하고 언약을 깨뜨린 것이다.
3) 이것이 예루살렘이 심판을 받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4) 언약 백성의 첫 번째 계명은 하나님 사랑이고, 그 사랑은 율법을 즐거워하여 언약 안에 거하는 것이다. 그 다음 계명이 이웃 사랑 계명이다.
4. 이제 아모스는 그의 청중들인 이스라엘의 죄악을 자세하게 드러내며 고발한다.
1) 이스라엘의 죄악은 점층적인 표현 그대로 세 가지 네 가지를 적시한다.
2) 그들은 돈 때문에 의로운 사람을 팔아넘기고 가난한 사람을 구두 한 켤레 값에 팔았다.
- 약한 사람의 머리를 짓밟고 가난한 사람을 길에서 쫓아냈다.
3) 그들은 형제를 사랑하기 보다는 도리어 자기 유익을 위하여 해를 가했다.
4) 또한 이교도의 풍요제 때 신전 창녀들과 관계함으로 계명을 어겼다.
5. 이스라엘의 악행에 이어서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배반한 죄를 드러낸다.
1)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 매우 강했던 아모리 족속(가나안 족속)을 멸하여 주셨다.
2) 그러면서 하나님이 베푸신 4가지 은혜를 말씀하신다.
6.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어 구원하셨다.
1) 그리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인도하셨다. 광야는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다.
2) 그리고 마침내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차지하게 하셨다.
3) 그리고 약속의 땅에서 언약적 복을 받게 하려고 선지자를 일으키셨고 나실인을 불러일으켰다.
4) 그런데 그들은 나실인에게 포도주를 마시게 하였고, 선지자들에게 명령하여 예언하지 말라고 하셨다.
7.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반역으로 갚은 그들에게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심판이 선고된다.
1) 하나님은 곡식 단을 가득 실은 수레가 흙을 누름 같이 이스라엘을 누르신다.
2) 아무도 이 심판에서 도망가거나 벗어날 수 없는 심판이다.
8. 하나님은 한편으로는 공의로 심판하시고, 한편으로는 그들을 낮추는 심판을 하신다.
1) 광야 40년은 이스라엘의 반역으로 인한 처벌의 의미가 담긴 시간이었다.
2) 그러나 하나님은 그 심판을 변하여 그들을 낮추시고 말씀으로 살게 하는 시간, 그들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공급하고 인도하는 시간이 되게 하셨다.
3) 그러기에 척박했던 광야, 이스라엘이 불평했던 광야를 “광야에서 인도한” 은혜를 알아야 한다고 하신다.
9.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광야 40년과 같다.
1) 이 광야는 우리의 죄로 인한 심판으로 시작된다.
2) 그런데 이 광야 여정을 보내면서 그 심판은 도리어 연단과 훈련이 되며, 하나님의 공급과 돌봄이 되며, 우리에게는 부족함이 없고, 말씀으로 살게 하는 은혜의 시간이 된다.
10. 하나님의 심판을 광야의 인도로 받는 자는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회복한다.
1) 그리고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말씀해 달라”고 한다.
2) 그리고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주님의 은혜이며,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안다.
3) 그 때, 하나님은 다시 값없는 은혜로 찾아 오사, 젖과 꿀이 흐르는 풍성한 생명을 누리도록 이끄신다.
11. 광야 40년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나님의 징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 바벨론 포로에서의 생활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라서 심판이 ‘저주와 사망’이 되기도 하고 ‘복과 생명’이 되기도 한다.
12. 광야의 인도, 심판이 변하여 은혜가 되었다.
1) 우리는 하나님이 “복과 생명”을 주시는지, “저주와 사망”을 주시는 지를 주목한다.
1) 그런데 생명의 사람은 무엇을 하던지 생명을 흘려보낸다.
2) 그러므로 사랑과 은혜, 생명의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것, 그분이 주시는 모든 것은 사랑과 은혜와 생명이다.
3) 반면 사단은 악이요 속이는 자이기 때문에 그가 형통하게 하던, 망하게 하던 다 악이요 속이는 것이다.
4) 그러므로 하나님이 행하시는 심판, 광야생활에는 주님의 은혜와 사랑, 생명이 있다.
◈ 나의 묵상
이틀 동안 오직 죄와 심판의 말씀을 묵상한다. 전에는 심판은 심판이고, 심판 후에 선포되는 회복의 소식만을 은혜로 보았다. 그러나 조금씩 심판으로 시작해서 심판으로 끝나는 말씀에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있음을 보게된다. 그렇다. 생명의 사람은 무엇을 하던지 생명을 흘려 보낸다. 다윗이 어디로 가던지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신 것처럼, 사랑의 하나님은 죄를 고발하던, 심판을 집행하시던, 구원을 행하시던, 형통하게 하시던 모두 사랑을 행하신다.
이방 나라들을 심판하는 하나님은 슬픈 이야기지만 하나님이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더욱 끔찍하다. 세상 사람들도 천벌이 있기를 원한다. 의인과 죄인에게 동일하게 비를 내리시는 하나님께서 세상도 하나님의 백성도 공의로 심판하시고, 주관하신다. 이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신다. 심판으로 들리는 소식도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심판이라고 여기니 감사하다. 심판이던 형통이던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면 좋은 것이다.
언약 백성을 향한 심판은 더욱 은혜와 사랑이 묻어난다. 민수기에서 보는 광야는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다. 백성들의 끊임없는 원망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끊임없는 심판이 반복된다. 광야라는 그 자체가 척박하고 심판의 성격이 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난 후, 하나님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인도하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요. 이스라엘이 순종해야 할 이유라고 말씀하신다.
나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은 그 때에도 은혜와 사랑이다. 그러나 우리의 입장에서는 광야를 지나는 동안에는 그 은혜를 감격하지 못한다. 세월이 지난 후 되돌아보면 그 광야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다. 나의 죄와 하나님의 심판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덮어 버린다. 그래서 오직 은혜와 사랑만을 찬양하게 되며, 그 곳에서 생명을 얻는다.
광야 길을 걷는 과정이기에 광야 길을 오직 은혜와 사랑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당장 편하게 쉴 집이 없고, 불편한 생활이 이어진다. 겨우 목숨을 연명하게 하는 것 같은 만나,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돌보심이 있지만 아름다운 산과 나무, 숲과 시내는 없다. 광야 길은 불편하다. 왜냐하면 나를 낮추기 위한 장소이니, 나의 연약함이 드러나는 장소다. 내가 약할 때, 주님의 능력이 머무는 것을 알게 하는 곳이 광야다. 조금 약하면 하나님을 의지하지만 너무 약하면 도리어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간다. 그래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그래서 믿음으로 광야에서 먹이시고 돌보시고, 사랑하시는 은혜의 하늘 아버지께 나아간다. 출애굽의 은혜, 그 구속의 은혜, 자녀된 권세를 한 번도 빼앗지 않으셨기에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아간다. 아들의 보혈, 그 십자가의 사랑과 복종을 의지하여 주님과 함께 은혜의 보좌로 나아간다. 아니, 나도 용납할 수 없는 나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용납한다. 내가 찾기 전에 먼저 찾아오시는 그 사랑, 끝까지 사랑하시는 그 사랑, 전부를 내어 주시는 그 사랑을 용납하며 믿음으로 그 사랑안에 거한다. 그 사랑에서 나를 끊어낼 피조물은 없다.
◈ 묵상 기도
주님, 아직 희미하게 보이는 심판을 통한 사랑, 광야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더욱 알게 하여 주십시오. 의미를 생각하고 사랑임을 아는 심판이 아니라, 심판을 생각하자마자 지극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생명을 주는 것으로 아는 지각을 주옵소서. 그리하여 장사됨이 복음임을, 심판이 복음임을 깨달아 알며, 마음에 새겨지게 하여 주십시오. 하나님이 은혜와 생명이기에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그 모든 것이 은혜와 생명임을 알게 하옵소서. 심판의 말씀을 통해 즉시로 주님의 사랑을 보지 못하듯이, 저의 광야를 통하여 즉시 주님의 은혜를 보지 못합니다. 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이 광야의 인도가 은혜와 사랑, 생명 주는 것임을 알게 하여 주십시오. 여호와를 아는 것, 그리고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을 아는 마음을 주십시오. 계엄선포후에 나라가 혼란합니다. 염려가 되지만 주님이 이 나라를 주관하시고 함께함을 보게 하시고, 주님의 개입과 공의와 인도를 구합니다. 이 나라의 정치, 경제, 교육, 가정, 문화, 그리고 교회를 통치하여 주십시오. 저 북한도 주님께서 돌보시어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옵소서. 국내외 선교지를 축복합니다. 비유의 사역을 끝까지 축복하시며, 학당과 특별히 선교원 선생님들과 원생들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유누라 선교사가 레바논에서 기쁨과 생명으로 사역하도록 역사하여 주십시오. 복음을 통해 생명을 얻고, 그 생명으로 복음을 전하는 교회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