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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3일 | 박성호 | 이란희 | 이수정 | 안태형 | 임원회의 |
3월 20일 | 이란희 | 이수정 | 이신정 전도사 | 공은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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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7일 | 안태형 | 이샛별 | 이신정전도사 | 이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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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후기
말씀제목: 기사도, 혹은 시대의 징조
본문: 누가복음 12, 54~56
54 예수께서 무리에게도 말씀하셨다. "너희는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비가 오겠다고 서슴지 않고 말한다.
그런데 그대로 된다.
55 또 남풍이 불면, 날이 덥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대로 된다.
56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왜 이 때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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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의 평행본문인 마가복음에서는 예수가 이 말씀을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에게 하는 말이라고 하고,
마태복음에서는 좀더 확장해서 '악하고 음란한 세대' 에게 하신 말씀으로 쓰여있다고 한다.
바리새파 혹은 사두개파일 수도 있고, 악하고 음란한 세대의 무리에 속할 수도 있는 나는 예수의 일갈 "위선자들아"에 당황한다. 예수님이 말하는 '이 때'가 언제인지 알 수 있는 인간은 누구일까? 단지 그 때를 분간하지 못하기에 나는 이렇게 매도되어도 되는 걸까? 내심 이런 저항감을 가지고 설교 말씀을 들었다.
목사님은 왕권사회에서 중세봉건사회, 근대로 넘어오는 역사적 배경과 미술사를 연결하여 말씀하셨는데,
시대의 변화도 그렇지만 근본적인 질적 변화는 인과관계("남풍이 불면 날이 덥겠다" 식의)나 바리새파 등이 예수에게 요구했던 어떤 표적(네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기적을 보여달라, 식의) 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르크스가 말한 역사 발전의 내적 필연성만으로도 아니고, 줄탁동시-안에서 미는 힘과 외부에서 쪼아주는 우연과도 같은 힘이 있어야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듯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나비효과'라고 도 말하여지는 우연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가.
그런데, 이 역사의 변화 와중에 등장한 시대의 징조, '기사도 정신'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10년 전 쯤에 보았던 영화가 떠올라 다시 찾아보게 되었다. 그 영화를 본 후, 그 감독의 다른 영화들도 무조건 보고 싶었지만, 국제영화제에서나 볼 수 있는 작품들이기에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 스페인 감독 알베르트 세라 <기사에게 경배를>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원작도 그렇지만, 이 영화 역시 관념적인 것을 쫓아 여행을 떠나는 늙고 삐쩍 곯은 노인 돈키호테와 뚱뚱하고 제대로 할줄 아는 것 없는 루저 산초의 여행기이다. 시적 이미지로 가득한 영화이지만 비전문배우이면서 이 감독의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풍부한 유머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의 계속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형형한 눈빛으로 자신의 믿음을 |
이야기하던 돈키호테와 그를 따르는 산초의 모습이 예수와 그를 따르던 제자들을 연상시킨다.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객관적인 증거는 없다.
예수는 오로지 주관적이고 주체적 태도 속에서만 그리스도이다.
'때'는 오로지 주관적이고 주체적 태도 속에서만 분간된다.
또 시대의 표적을 분간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믿음'에 있다는 말씀과
이 영화를 기억창고에서 다시 끄집어낼 수 있었음에 감사드린다.
첫댓글 면목도 없이 예정도 없이 갑자기 부탁드린 시사회였는데 모두 함깨 해주셔서 송구하고 또 감사합니다. 오늘 정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씀들 들었습니다. 몇 가지는 편집이나 후반 작업에서 해결할 수 있는 부분들을 찾았습니다. 무게 있고 근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이번 영화에서는 어렵겠지만 다음 작품에서는 좀 더 성숙한 생각들로 채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바닥이 보이네요. 결과물 다 만들고 나면 공부에 매진해야겠습니다. 오늘 감사합니다.^^
모든 창작, 실은 모든 삶의 창조적 시도와 모험 자체가 자신의 한계/바닥과 마찰하면서 넘어서는 일인 거 같아요. 시도가 없으면 넘어설 한계와 만나지도 못하겠지요. 그래도 라니씨 영화 만듦새는 날로 좋아지는 듯... 연기도 좋고 디테일도 좋았어요. 오래 고생한 결실,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엔 잘하자" 다짐하면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