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어제는 ‘내일 제일 춥다고 하던데 해맞이는 가지말까?’ 라는 유혹이 줄 곳 따라다녔다.
나에겐 정말 또 다른 나가 있는가 보다. 가야되고 가보고 싶다는 나가 있고, 춥고 귀찮은데 가지 말자라는 나가 있었다. 그러나 결국 긍정의 나를 선택했다. 나의 내면에는 또 다른 나가 둘인 줄 알았는데 셋이나 있다. 긍정하는 나와 부정하는 나, 그리고 그 둘 사이를 중재하는 나가 있는가 보다.
그동안 아무리 추워도 내의를 입지 않았는데, 올 겨울에는 정말 오랜만에 내의를 입었다. 내의를 입고 보니 세월 속에 장사 없다더니 나도 나이를 먹으면서 약해지는가 보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런데다 해마다 하던 일출산행까지 하지 않으면 몸도 마음도 정말 나약해진 것 같아 포기할 수 없었다. 어제 일몰은 업무가 끝나지 않은 바람에 보지 못했고 일출은 어디에서 볼까 고민을 했다. 부모산으로 갈까. 산성으로 갈까. 아니면 평원이 좋았던 증평 두타산으로 갈까. 그도 아니면 날씨도 춥다는데 집에서 그냥 쉴까를 두고 고민했다.
전 날 대충 준비해 둔 탓에 아침에 일어나 간단히 세수하고 길을 나선 시간은 6시 30분. 시간상 산행초입인 증평 송산리까지는 30분 만에 가야하고, 송산리에서 두타산 능선의 송신탑까지는 40분 만에 올라야 한다는 계산에 마음이 급해졌다. 청주를 벗어나 증평에 부근에 들어서니 북쪽하늘에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아직 새벽이었다. 다행히 달빛과 눈이 있어 그리 어둡지는 않았고, 산행들머리도 전에 와 본 적이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찾아 들수 있었다.
오름길의 1/3도 되지 않았는데 뒤돌아보니 남쪽 산 능선에는 벌써 여명이 밝아 오고 있었다. 그간 운동하지 않은 탓에 다리보다는 오히려 허리가 아파왔지만 7시 40분 전에는 다 올라야 한다는 생각에 쉴 수 없었다. 힘에 부치는 체력을 탓하다 보니 문득 힘들지 않고 얻는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쾌락이라는 생각, 반대로 힘들이고 얻는 아름다움이야 말로 바로 예술이 아니겠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난 오늘 자연의 아름다운 예술을 감상하기 위해 힘들여 가는 길이라고 위안을 하며 오르고 또 올랐다.
새벽을 밝히던 여명의 처음은 푸르스름하던 기운으로 돌더니 금방 산 능선이 선명하도록 오렌지색으로, 그리고 이내 짙은 홍시색깔로 붉게 물들여 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초에 불을 붙이기에 앞서 밝히는 성냥불처럼, 여명만으로도 세상은 벌써 환하게 밝혀졌다. 앞서 가는 산행객은 다름아닌 손잡고 가는 손자와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여명속에 앞서가는 분이 연세가 적지 않은 할머니 같아 보여 설마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정말 할머니와 손자가 함께하는 산행객이었다. 무엇을 소원을 빌러 가시는 길인지 단순히 구경삼아 가시는지, 손자는 할머니 손을 이끌고 할머니는 손자 힘들까 어여 가라며 손사레 지으시는 모습이 다정하고 애틋한 사랑으로 엿 보였다.
산 정상에 오니 붉디 붉었던 여명은 어디로 사라지고 어느새 잿빛 하늘로 바뀌었다. 원래 해가 올라오는 예법이 이랬던가. 잠시 등 돌리고 올라 온 사이에 해 뜨는 곳의 색깔의 변화도 무쌍했다. 가까스로 정상부 송신탑까지 올라오니 시간은 벌써 7시 40분이 되어 일출시간이 다 되었다. 더 이동할 시간 없이 그 중 좋은 곳에 혼자만의 자리를 잡았다. 하늘은 시리도록 푸른데 저 아래 사람들이 사는 평원은 온통 흰 눈밭으로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눈 덮인 세상은 너무도 조용하고 평화롭게 보인다.
쟃빛으로 변했던 앞산 능선이 다시 빨갛게 물들어 오기 시작했다. 그 자리가 바로 일출의 자리인가 보았다. 혀끝이라고 비유하면 뜨겁지가 않아 적절하지 않고, 용광로라고 비유하면 너무 작아 그도 맞지 않다. 용광로에서 뚝뚝 떨어지는 쇳물과 같이 새빨간 해의 상단이 꽃봉오리 피어오르듯 산너머에서 올라온다. 그렇게 올라오나 싶더니 그 큰 해가 온전한 모습으로 산 위에까지 오르는데 불과 3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아~ 우주에서 가장 큰 별인 태양은 난초의 꽃대가 올라오는 것처럼 빠르니, 인생의 세월은 유수처럼 흘러간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그렇게 자연의 역사도 인생의 역사도 매일매일 이 순간같이 바뀌어 나가는 구나. 벌써 붉은 햇살의 기운이 온 세상을 비추었다.
새해 첫 햇살을 맞으며 뜨거운 물에 커피를 풀었다. 온천욕에 피로가 풀리듯 희고 검은 커피믹서가 뜨거운 물속에서 사르르 녹는다. 이 산꼭대기 추운 곳에서 뜨거운 커피를 마실 수 있다니... 산 중에서 한 잔의 커피가 맛있다거나, 따뜻하다기 보다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해는 마침내 다 떠올라 새해 나만의 일출의식은 모두 마치고 커피향도 햇살도 내 품으로 안았다. 나만의 해맞이 장소를 일어나 다시 산 능선으로 옮길 차례다. 해 오름으로 인해 가는 길옆에 새로운 생명, 그림자 하나가 더 붙었다. 불과 몇 분전에만 해도 내가 셋이라고 했는데 지금 보니 아무런 생각 없이 줄창 따라다니기만 하는 그림자가 있으니 도합 넷이 되었다.
통신대의 하늘은 언제 보아도 푸르다. 푸르름이 짙어 하늘이 아니라 바다와 같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해맞이를 했다. 할머니와 손자도 언제 도착했는지 두 손을 꼭 붙들고 잠시 있다가, 기특한 소년이 할머니 손을 잡고 조심조심 눈길을 내려간다. 그 모습을 보니 자신이 부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나는 왜 아버지며, 어머니 손을 꼭 붙들고 여행한 번 같이 못했을까?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다니는 것을 부끄럽다고 생각했을까?
산에만 오면 도지는 병이 있다. 왔던 길로 가자니 밋밋하고 재미가 없고, 어디든 한 바퀴 돌아가되 전에 가보지 않았던 길로 가려는 몹쓸 호기심이 발동하는 병이다. 오늘도 차가 있는 왔던 길을 포기하고 통신대에서 공병대 3거리로 해서 하산하기로 무작정하고 걸었다. 두타산 능선길이 다 좋은데 이 구간은 조망이 없어서 좀 아쉽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리고 공병대 삼거리로 내려오는 길이 계곡길이라 작은 흠이지만 그래도 괜찮다. 공병대를 지나고 부대 정문을 지나 다시 연탄 1리로 들어가 부대를 빙돌아 다시 산 밑으로 돌았다. 친구 K가 많이 생각난다. 잘 있는지...
송산리 법천사(07:00)~송신탑(07:40)~공병대 3거리~공병대~연탄1리~송산리(10:00)
첫댓글 "쟃빛으로 변했던 앞산 능선이 다시 빨갛게 물들어 오기 시작했다. 그 자리가 바로 일출의 자리인가 보았다. 혀끝이라고 비유하면 뜨겁지가 않아 적절하지 않고, 용광로라고 비유하면 너무 작아 그도 맞지 않다. 용광로에서 뚝뚝 떨어지는 쇳물과 같이 새빨간 해의 상단이 꽃봉오리 피어오르듯 산너머에서 올라온다."
선생님 반갑습니다. 오랜만의 글 감동으로 읽었어요. 긍정의 나와 부정의 나 그 사이의 나와 나의 그림자...공감이 갑니다. 덕분에 뜻있는 일출에 동반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새날엔 더욱 건강하시고 보람된 날들 되십시요.고맙습니다.
새해 첫날은 송구영신예배로 인하여 늘 밤을 새운답니다. 행사 마치고 새벽두시가 넘어서 집에오면 피곤해서 그냥 눕게 되지요. 해서...많은 사람이 맘을 설레면서 보러가는 일출은 해마다 늦잠을 자느라 못보고 지나지요... 정오가 지나서야 시골집에가서 어머님을 뵈는걸로 새해 첫날을 마무리 하였답니다. 일출을 보신 선생님들의 글이 없는가 이아침에 찾던 중 참으로 감동으로 읽었습니다선생님. 제가 일출을 본거나 진배 없으니 고맙습니다.그리고 좋은글 낚으신것 축하드립니다?^^
아~ 우주에서 가장 큰 별인 태양은 난초의 꽃대가 올라오는 것처럼 빠르니, 인생의 세월은 유수처럼 흘러간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그렇게 자연의 역사도 인생의 역사도 매일매일 이 순간같이 바뀌어 나가는 구나. 벌써 붉은 햇살의 기운이 온 세상을 비추었다. 새해아침 정상에서 해맞이 하신 선생님의 글 잘읽고 갑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요.
가장 멋진 나가 되어 일출을 맞으러 가시는 젊음이 부럽습니다. 보람차고 행복한 경인년이 되소서.
새해 일출을 보시고 섬세하게 표현하셨습니다. 저는 춥다고 꼼짝도 안했는데요. 소율선생님 새해도 만복이 깃드시고 건필하시길 빌겠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통해서나마 정상에서의 일출의 감동을 느끼네요. 집에서 동녘하늘이 밝아오는 것을 보았지만 산 정상에서의 느낌은 다를 것 같아요.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저도 날씨가 추워서 삼일 동안 꼼짝을 못했는데, 선생님의 글을 통하여 간접이나마 일출을 보게 되었네요. 새해에도 멋진 글로 자주 만나뵙기를 바라며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또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 잘 되기를 빕니다. 일출 모습을 담은 행복한 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새해 푸른솔 문학회 문우님들 모두 큰 뜻 이루는 한 해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떠오르는 태양처럼 정열의 새해 되소서. 새해 첫 작품을 쓰셨군요 참으로 부지런하십니다.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소율 선생님 참으로 감동입니다. 일출의 그 순간의 희열을 저도 느끼고 갑니다. 선생님께서 내복을 입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요즘 젊은이들 아무리 내의 입으라해도 입지 않더라구요. ㅎㅎ 올해 내내 좋은글 기대 하겠습니다.